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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사건’말고 ‘이춘재 사건’으로 불러주세요”…화성시의 호소
입력 2019.11.28 (17:47) 수정 2019.11.28 (17:49) 취재K
이춘재 검거로 '범죄도시' 이미지 부활
"'이춘재 사건'으로 해달라" 결의
경찰이 공식적으로 이춘재 실명 밝혀야 가능
경기도 화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동탄 신도시'였다. '송산 포도'나 '전곡항' 등 화성의 또 다른 상징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화성 하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첫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한 지도 16년이나 지난 기억 저편의 일이 소환된 것이다. 화성 사람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안전한 도시 노력' 하루아침에 물거품

화성이 다시 살인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건 이춘재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9월 중순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 일부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며 이춘재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때부터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연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윤 모 씨가 범인으로 잡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과 미제로 남아 있던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도 이춘재가 자백했다고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화성시는 그동안 '안전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살인사건이 주로 일어난 화성 병점동 등을 담당하는 화성동탄경찰서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

화성시의 모습도 '천지개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특히 이춘재가 집과 범행 현장이 있는 진안동과 병점동은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변화는 이춘재가 붙잡히면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화성은 마치 지금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도시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춘재 사건'으로 불러 달라"

'살인사건의 도시'라는 불명예가 30여 년 만에 되살아나자 시의회가 나섰다. 시의회는 오늘(28일) 열린 본회의에서 박경아 의원이 발의한 '화성연쇄살인사건 명칭변경 촉구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의회는 결의문에서 "1986년부터 91년까지 화성 병점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지만, 사건명에 '화성'이라는 지명이 붙여져 30여 년간 오명을 짊어지고 있다"며 "경찰과 각 언론사는 화성시민 전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을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의문을 발의한 박경아 의원은 "10여 년 전 화성으로 이사를 왔다"며 "당시 지방에 있는 친척들은 '화성에 죽으러 가느냐'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고작 10년 정도지만, 화성시민은 30여 년을 이런 불명예를 안고 살아온 것"이라며 "시의회는 시민의 대변자인 만큼 의회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표 발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유영철·강호순…사건명에 이름 붙어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화성시의회의 요구가 무리한 건 아니다.

유영철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신사동 등 서울 일대에서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은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린다.

강호순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에서 7명을 살해한 사건 역시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이 명칭이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강호순이 잡히면서 명칭이 바뀌었다.


경찰은 이춘재를 이춘재라 부를 수 있을까

결의문을 채택한 화성시의회는 이 결의문을 경찰청과 각 언론사에 보내 앞으로 명칭을 바꿔줄 것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일부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며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했다. 나머지 언론들은 경찰이 이춘재를 정식 피의자로 입건한 이후부터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지금은 언론사 대부분이 이춘재의 실명을 보도하고 있다. 언론사가 화성시의회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명칭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은 화성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는 걸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이 모 씨라고 했을 뿐이다. 경찰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이춘재를 언급하며 질문하면, 경찰은 이 모 씨 혹은 피의자라고 언급하며 답을 할 정도다.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바꿔 부르려면 범인이 이춘재라는 걸 공식적으로 밝히는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

명칭 변경의 효과는 언론이 개별적으로 할 때보다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로 하고 언론이 따라갈 때 더 클 수밖에 없다. 오명을 벗고 싶은 화성시의 호소에 경찰이 어떤 답을 내놓을까.
  • “‘화성 사건’말고 ‘이춘재 사건’으로 불러주세요”…화성시의 호소
    • 입력 2019-11-28 17:47:48
    • 수정2019-11-28 17:49:59
    취재K
이춘재 검거로 '범죄도시' 이미지 부활<br />"'이춘재 사건'으로 해달라" 결의<br />경찰이 공식적으로 이춘재 실명 밝혀야 가능
경기도 화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동탄 신도시'였다. '송산 포도'나 '전곡항' 등 화성의 또 다른 상징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화성 하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첫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한 지도 16년이나 지난 기억 저편의 일이 소환된 것이다. 화성 사람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안전한 도시 노력' 하루아침에 물거품

화성이 다시 살인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건 이춘재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9월 중순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 일부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며 이춘재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때부터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연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윤 모 씨가 범인으로 잡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과 미제로 남아 있던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도 이춘재가 자백했다고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화성시는 그동안 '안전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살인사건이 주로 일어난 화성 병점동 등을 담당하는 화성동탄경찰서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

화성시의 모습도 '천지개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특히 이춘재가 집과 범행 현장이 있는 진안동과 병점동은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변화는 이춘재가 붙잡히면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화성은 마치 지금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도시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춘재 사건'으로 불러 달라"

'살인사건의 도시'라는 불명예가 30여 년 만에 되살아나자 시의회가 나섰다. 시의회는 오늘(28일) 열린 본회의에서 박경아 의원이 발의한 '화성연쇄살인사건 명칭변경 촉구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의회는 결의문에서 "1986년부터 91년까지 화성 병점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지만, 사건명에 '화성'이라는 지명이 붙여져 30여 년간 오명을 짊어지고 있다"며 "경찰과 각 언론사는 화성시민 전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을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의문을 발의한 박경아 의원은 "10여 년 전 화성으로 이사를 왔다"며 "당시 지방에 있는 친척들은 '화성에 죽으러 가느냐'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고작 10년 정도지만, 화성시민은 30여 년을 이런 불명예를 안고 살아온 것"이라며 "시의회는 시민의 대변자인 만큼 의회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표 발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유영철·강호순…사건명에 이름 붙어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화성시의회의 요구가 무리한 건 아니다.

유영철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서울 신사동 등 서울 일대에서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은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린다.

강호순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에서 7명을 살해한 사건 역시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이 명칭이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강호순이 잡히면서 명칭이 바뀌었다.


경찰은 이춘재를 이춘재라 부를 수 있을까

결의문을 채택한 화성시의회는 이 결의문을 경찰청과 각 언론사에 보내 앞으로 명칭을 바꿔줄 것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일부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며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했다. 나머지 언론들은 경찰이 이춘재를 정식 피의자로 입건한 이후부터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지금은 언론사 대부분이 이춘재의 실명을 보도하고 있다. 언론사가 화성시의회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명칭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은 화성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는 걸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이 모 씨라고 했을 뿐이다. 경찰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이춘재를 언급하며 질문하면, 경찰은 이 모 씨 혹은 피의자라고 언급하며 답을 할 정도다.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바꿔 부르려면 범인이 이춘재라는 걸 공식적으로 밝히는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

명칭 변경의 효과는 언론이 개별적으로 할 때보다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로 하고 언론이 따라갈 때 더 클 수밖에 없다. 오명을 벗고 싶은 화성시의 호소에 경찰이 어떤 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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