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안인득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면 기사를 지워야 할까?
입력 2019.11.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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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에게 1심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했다.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살인. 범행의 치밀성과 잔혹함에 대한 배심원단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만약 시간이 흘러 안인득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언론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해 달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인자에게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질 권리'가 있을까? 최근 독일에서 살인자의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독일 헌재 "살인자에게도 잊혀질 권리 있다…이름 삭제해야"
독일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가 현지시간 27일 성명서를 냈다. 1982년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삭제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남성이 1981년 12월 저지른 살인사건은 독일 사회에서 크나큰 이슈였다. '아폴로니아'라는 범선의 선원이었던 남성은 캐리비안해를 항해하던 중 싸움 끝에 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43살이었던 남성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만인 2002년에 석방됐다.
워낙 대중의 관심이 컸던 터라 이후 사건은 책으로 출판됐고, 독일 공영방송 ARD는 2004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사건을 다룬 1982년과 1983년 기사 세 건을 1999년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했는데, 자유롭게 검색이 가능한 이 기사에는 남성의 실명이 나온다.
2009년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남성은 슈피겔을 상대로 이름을 지워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 기사 때문에 프라이버시권은 물론 인격을 개선할 여지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맺을 수도 없다고 했다.
2012년 독일 연방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대중이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며, 그의 이름은 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범죄인의 인격 보호보다 언론의 공익적 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다른 판단을 했다. "검색 엔진이 현재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범죄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한 기사의 공익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건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공익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함께 '잊혀질 권리'는 범죄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모든 가해자가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변호사·언론단체 환영…이유는 달라
판결이 나오자 변호사와 언론단체에서 똑같이 환영 논평이 나왔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개인정보 전문 변호사인 크리스티안 졸메케는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자라 할지라도 잊혀질 권리가 있고, 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졸메케 변호사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지, 그리고 어느 수준까지 기록을 지워야 하는지는 법원이 개별적 사안에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엔 전체 기사 삭제가, 어떤 경우엔 범인의 이름만 삭제하는 경우가 적절할 수도 있다. 기사는 계속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만, 범죄 관련자의 이름은 더는 검색돼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기자회' 독일사무소는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언론 자유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환영했다. 기자회는 개인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시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티안 미르 국경없는기자회 대표는 "적어도 독일에 있어 언론의 온라인 기록이 과도한 제한으로 인해 저널리즘 연구에 사용할 수 없게 될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인격권' vs '언론자유' 논쟁 격화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사생활 보호'와 '정보의 자유' 간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독일과 유럽국가들에서 수년 동안 논쟁이 일고 있는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2014년, 검색 결과를 지워달라는 개인들의 요청을 검색 엔진들이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2016년 프랑스 정보감시기관인 CNIL는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거부해온 구글에게 1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반발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는데,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이 같은 판결은 유럽연합 사법권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판결을 올해 따로 받아내는 등 검색 회사와 유럽연합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이번 사건은 다시 연방법원으로 넘어갔다. 연방법원 또는 하급 법원은 헌재의 판결 취지에 따라 다시 판결해야 한다. 만일 슈피겔을 비롯해 다른 언론들이 기사를 삭제하고,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독일 언론은 전망한다.
제소 대상이 된 슈피겔 측은 당분간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피겔은 자사 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원고 혼자서 잊혀질 권리를 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을 강조했다.
어떤 정보가 흥미롭게, 불쾌하게, 또는 사악하게 기억돼야 할지는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슈피겔은 또, 개인의 인격권에 자신과 관련된 과거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하게 할 권한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만약 시간이 흘러 안인득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언론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해 달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인자에게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질 권리'가 있을까? 최근 독일에서 살인자의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
독일 헌재 "살인자에게도 잊혀질 권리 있다…이름 삭제해야"
독일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가 현지시간 27일 성명서를 냈다. 1982년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삭제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남성이 1981년 12월 저지른 살인사건은 독일 사회에서 크나큰 이슈였다. '아폴로니아'라는 범선의 선원이었던 남성은 캐리비안해를 항해하던 중 싸움 끝에 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43살이었던 남성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만인 2002년에 석방됐다.
워낙 대중의 관심이 컸던 터라 이후 사건은 책으로 출판됐고, 독일 공영방송 ARD는 2004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사건을 다룬 1982년과 1983년 기사 세 건을 1999년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했는데, 자유롭게 검색이 가능한 이 기사에는 남성의 실명이 나온다.
1982년 당시 ‘슈피겔’ 기사
2009년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남성은 슈피겔을 상대로 이름을 지워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 기사 때문에 프라이버시권은 물론 인격을 개선할 여지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맺을 수도 없다고 했다.
2012년 독일 연방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대중이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며, 그의 이름은 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범죄인의 인격 보호보다 언론의 공익적 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독일 헌법재판소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잊혀질 권리’ 보장해야”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다른 판단을 했다. "검색 엔진이 현재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범죄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한 기사의 공익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건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공익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함께 '잊혀질 권리'는 범죄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모든 가해자가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변호사·언론단체 환영…이유는 달라
판결이 나오자 변호사와 언론단체에서 똑같이 환영 논평이 나왔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개인정보 전문 변호사인 크리스티안 졸메케는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자라 할지라도 잊혀질 권리가 있고, 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졸메케 변호사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지, 그리고 어느 수준까지 기록을 지워야 하는지는 법원이 개별적 사안에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엔 전체 기사 삭제가, 어떤 경우엔 범인의 이름만 삭제하는 경우가 적절할 수도 있다. 기사는 계속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만, 범죄 관련자의 이름은 더는 검색돼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기자회' 독일사무소는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언론 자유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환영했다. 기자회는 개인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시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티안 미르 국경없는기자회 대표는 "적어도 독일에 있어 언론의 온라인 기록이 과도한 제한으로 인해 저널리즘 연구에 사용할 수 없게 될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인격권' vs '언론자유' 논쟁 격화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사생활 보호'와 '정보의 자유' 간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독일과 유럽국가들에서 수년 동안 논쟁이 일고 있는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2014년, 검색 결과를 지워달라는 개인들의 요청을 검색 엔진들이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2016년 프랑스 정보감시기관인 CNIL는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거부해온 구글에게 1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반발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는데,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이 같은 판결은 유럽연합 사법권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판결을 올해 따로 받아내는 등 검색 회사와 유럽연합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이번 사건은 다시 연방법원으로 넘어갔다. 연방법원 또는 하급 법원은 헌재의 판결 취지에 따라 다시 판결해야 한다. 만일 슈피겔을 비롯해 다른 언론들이 기사를 삭제하고,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독일 언론은 전망한다.
제소 대상이 된 슈피겔 측은 당분간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피겔은 자사 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원고 혼자서 잊혀질 권리를 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을 강조했다.
어떤 정보가 흥미롭게, 불쾌하게, 또는 사악하게 기억돼야 할지는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슈피겔은 또, 개인의 인격권에 자신과 관련된 과거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하게 할 권한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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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리포트] 안인득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면 기사를 지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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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1-30 08:00:44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에게 1심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했다.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살인. 범행의 치밀성과 잔혹함에 대한 배심원단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만약 시간이 흘러 안인득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언론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해 달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인자에게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질 권리'가 있을까? 최근 독일에서 살인자의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독일 헌재 "살인자에게도 잊혀질 권리 있다…이름 삭제해야"
독일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가 현지시간 27일 성명서를 냈다. 1982년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삭제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남성이 1981년 12월 저지른 살인사건은 독일 사회에서 크나큰 이슈였다. '아폴로니아'라는 범선의 선원이었던 남성은 캐리비안해를 항해하던 중 싸움 끝에 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43살이었던 남성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만인 2002년에 석방됐다.
워낙 대중의 관심이 컸던 터라 이후 사건은 책으로 출판됐고, 독일 공영방송 ARD는 2004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사건을 다룬 1982년과 1983년 기사 세 건을 1999년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했는데, 자유롭게 검색이 가능한 이 기사에는 남성의 실명이 나온다.
2009년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남성은 슈피겔을 상대로 이름을 지워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 기사 때문에 프라이버시권은 물론 인격을 개선할 여지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맺을 수도 없다고 했다.
2012년 독일 연방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대중이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며, 그의 이름은 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범죄인의 인격 보호보다 언론의 공익적 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다른 판단을 했다. "검색 엔진이 현재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범죄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한 기사의 공익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건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공익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함께 '잊혀질 권리'는 범죄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모든 가해자가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변호사·언론단체 환영…이유는 달라
판결이 나오자 변호사와 언론단체에서 똑같이 환영 논평이 나왔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개인정보 전문 변호사인 크리스티안 졸메케는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자라 할지라도 잊혀질 권리가 있고, 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졸메케 변호사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지, 그리고 어느 수준까지 기록을 지워야 하는지는 법원이 개별적 사안에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엔 전체 기사 삭제가, 어떤 경우엔 범인의 이름만 삭제하는 경우가 적절할 수도 있다. 기사는 계속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만, 범죄 관련자의 이름은 더는 검색돼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기자회' 독일사무소는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언론 자유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환영했다. 기자회는 개인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시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티안 미르 국경없는기자회 대표는 "적어도 독일에 있어 언론의 온라인 기록이 과도한 제한으로 인해 저널리즘 연구에 사용할 수 없게 될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인격권' vs '언론자유' 논쟁 격화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사생활 보호'와 '정보의 자유' 간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독일과 유럽국가들에서 수년 동안 논쟁이 일고 있는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2014년, 검색 결과를 지워달라는 개인들의 요청을 검색 엔진들이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2016년 프랑스 정보감시기관인 CNIL는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거부해온 구글에게 1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반발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는데,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이 같은 판결은 유럽연합 사법권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판결을 올해 따로 받아내는 등 검색 회사와 유럽연합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이번 사건은 다시 연방법원으로 넘어갔다. 연방법원 또는 하급 법원은 헌재의 판결 취지에 따라 다시 판결해야 한다. 만일 슈피겔을 비롯해 다른 언론들이 기사를 삭제하고,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독일 언론은 전망한다.
제소 대상이 된 슈피겔 측은 당분간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피겔은 자사 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원고 혼자서 잊혀질 권리를 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을 강조했다.
어떤 정보가 흥미롭게, 불쾌하게, 또는 사악하게 기억돼야 할지는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슈피겔은 또, 개인의 인격권에 자신과 관련된 과거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하게 할 권한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만약 시간이 흘러 안인득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언론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해 달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인자에게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질 권리'가 있을까? 최근 독일에서 살인자의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독일 헌재 "살인자에게도 잊혀질 권리 있다…이름 삭제해야"
독일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가 현지시간 27일 성명서를 냈다. 1982년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삭제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남성이 1981년 12월 저지른 살인사건은 독일 사회에서 크나큰 이슈였다. '아폴로니아'라는 범선의 선원이었던 남성은 캐리비안해를 항해하던 중 싸움 끝에 총으로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43살이었던 남성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만인 2002년에 석방됐다.
워낙 대중의 관심이 컸던 터라 이후 사건은 책으로 출판됐고, 독일 공영방송 ARD는 2004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사건을 다룬 1982년과 1983년 기사 세 건을 1999년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했는데, 자유롭게 검색이 가능한 이 기사에는 남성의 실명이 나온다.
2009년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남성은 슈피겔을 상대로 이름을 지워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 기사 때문에 프라이버시권은 물론 인격을 개선할 여지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맺을 수도 없다고 했다.
2012년 독일 연방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대중이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며, 그의 이름은 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범죄인의 인격 보호보다 언론의 공익적 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다른 판단을 했다. "검색 엔진이 현재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범죄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한 기사의 공익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건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공익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함께 '잊혀질 권리'는 범죄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모든 가해자가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변호사·언론단체 환영…이유는 달라
판결이 나오자 변호사와 언론단체에서 똑같이 환영 논평이 나왔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개인정보 전문 변호사인 크리스티안 졸메케는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자라 할지라도 잊혀질 권리가 있고, 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졸메케 변호사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지, 그리고 어느 수준까지 기록을 지워야 하는지는 법원이 개별적 사안에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엔 전체 기사 삭제가, 어떤 경우엔 범인의 이름만 삭제하는 경우가 적절할 수도 있다. 기사는 계속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만, 범죄 관련자의 이름은 더는 검색돼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기자회' 독일사무소는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언론 자유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환영했다. 기자회는 개인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시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티안 미르 국경없는기자회 대표는 "적어도 독일에 있어 언론의 온라인 기록이 과도한 제한으로 인해 저널리즘 연구에 사용할 수 없게 될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인격권' vs '언론자유' 논쟁 격화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사생활 보호'와 '정보의 자유' 간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독일과 유럽국가들에서 수년 동안 논쟁이 일고 있는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2014년, 검색 결과를 지워달라는 개인들의 요청을 검색 엔진들이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2016년 프랑스 정보감시기관인 CNIL는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거부해온 구글에게 10만 유로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반발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는데,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이 같은 판결은 유럽연합 사법권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판결을 올해 따로 받아내는 등 검색 회사와 유럽연합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이번 사건은 다시 연방법원으로 넘어갔다. 연방법원 또는 하급 법원은 헌재의 판결 취지에 따라 다시 판결해야 한다. 만일 슈피겔을 비롯해 다른 언론들이 기사를 삭제하고,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독일 언론은 전망한다.
제소 대상이 된 슈피겔 측은 당분간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피겔은 자사 기사에서 "헌법재판소가 원고 혼자서 잊혀질 권리를 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을 강조했다.
어떤 정보가 흥미롭게, 불쾌하게, 또는 사악하게 기억돼야 할지는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슈피겔은 또, 개인의 인격권에 자신과 관련된 과거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하게 할 권한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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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석 기자 ksy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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