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공황장애가 내탓이라고? “자살은 국가적 재난”

입력 2019.12.0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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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설리와 구하라, 그리고 배우 차인하. 두 달여 만에 세 명의 연예인이 팬들을 뒤로하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4일에는 11인조 아이돌 가수 워너원의 멤버인 강다니엘 씨가 방송 활동을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평소 우울증과도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매년 산업재해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사람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을 단지 이례적인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매일 37명이 '극단적 선택'…"주변인들에게 신호 보낸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13,670명. 전년 대비 9.7% 늘었습니다. 하루 평균 37명 정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셈입니다. 특히 10대 사망자의 35.7%, 20대의 47.2%, 30대의 39.4%가 '고의적 자해(자살)'로 숨졌습니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로, 보건복지부는 '정신적 문제'를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심리적인 문제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어릴 적 겪었던 경험이나 사고로 남게 된 트라우마가, 적절한 시기에 극복되지 않을 때 성인이 되어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심하면 자살까지 연결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한우울조율병학회 전덕인 이사장은 "대다수의 우울증 환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일종의 신호를 보낸다"며 "평소 아끼던 물건을 건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이상 조짐이 보이면 주변인들이 세심히 관심을 기울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언론에서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를 때마다 환자들이 더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주변인들이 평소 우울증 조짐을 보이던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힘든 일을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몇 해 전, OECD가 36개 국가의 국민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답변을 통계로 내봤더니 OECD 평균으로는 88%, 한국인은 72.4%만 긍정적으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국민 10명 중 3명은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사국 중 '꼴찌'에 해당하는 결과였습니다.

생의 절벽 끝에서 맘껏 고충을 털어놓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 정신과 병원 방문과 심리 치료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병원을 찾는 데에도 소극적입니다. 일각에서는 그럴수록 일선 학교와 사회, 국가가 더 세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치유를 모색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막아야 한단 겁니다.

자살 전담 정부 각료까지…"자살은 국가적 재난"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해외 정책들이 있습니다.
연간 자살자 수가 3만 명을 웃돌면서 '자살 대국'이라 불렸던 일본은 상실감에 젖은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자살을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총리가 주도하는 범정부 차원의 자살종합대책회의를 설치했습니다. 또, 관련 예산을 해마다 7천억 원씩 투입하는 등 전방위적인 자살 예방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자살자 수가 30%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자살예방 담당 국무상(차관급)'을 두고 자살 예방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또 우울증과 고독사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로움 국무상'을 임명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외로움 담당 부처는 ‘외로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곤경에 빠진 국민이 국가와 사회에 위험 신호를 보내길 권합니다. 영국에서 외로움과 자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자살은 우리 모두의 문제"…제도적 보완 필요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자살예방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자살위험에 노출된 국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국가와 지자체는 자살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합니다.

법률이 제정된 지 올해로 8년째.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국회 자살예방포럼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발표한 '2018 지방자치단체 자살예방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예방 담당 공무원은 1.02명에 불과합니다. 공무원 1명이 10만 명의 정신 건강을 돌본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역부족입니다.

지원도 부족합니다. 지자체 예산 중 자살예방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0.016%(평균 9천4백여만 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 내부에 자살예방 조직을 둔 곳은 절반 정도에 그칩니다. 나머지는 외부기관에 자살 관련 업무를 맡기는 식인데, 경기 광주시와 전남 영암군 등 5개 지자체는 이마저도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원혜영 국회 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는 "재난 수준의 자살문제를 해법을 모색하고자, 지자체 조직과 인사, 예산, 사업의 현황을 최초로 파악한 결과, 일선 현장의 열악한 인력과 예산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주승용 공동대표도 “자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의식이 현저히 낮은 상태"라며 "자살은 사회문제라는 인식 아래, 자살예방법의 제정 목적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혼자 견디고 있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연락 바랍니다. 자살예방 핫라인☎1577-0199 (www.hopeclick.or.kr) 희망의 전화 ☎129 (www.129.go.kr) 생명의 전화 ☎1588-9191 (www.lifeline.or.kr) 청소년상담원 ☎1388 (www.cyber1388.kr)에서 24시간 대기 중인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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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공황장애가 내탓이라고? “자살은 국가적 재난”
    • 입력 2019-12-07 07:03:15
    취재K
가수 설리와 구하라, 그리고 배우 차인하. 두 달여 만에 세 명의 연예인이 팬들을 뒤로하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4일에는 11인조 아이돌 가수 워너원의 멤버인 강다니엘 씨가 방송 활동을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평소 우울증과도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매년 산업재해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사람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을 단지 이례적인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매일 37명이 '극단적 선택'…"주변인들에게 신호 보낸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13,670명. 전년 대비 9.7% 늘었습니다. 하루 평균 37명 정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셈입니다. 특히 10대 사망자의 35.7%, 20대의 47.2%, 30대의 39.4%가 '고의적 자해(자살)'로 숨졌습니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로, 보건복지부는 '정신적 문제'를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심리적인 문제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어릴 적 겪었던 경험이나 사고로 남게 된 트라우마가, 적절한 시기에 극복되지 않을 때 성인이 되어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심하면 자살까지 연결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한우울조율병학회 전덕인 이사장은 "대다수의 우울증 환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일종의 신호를 보낸다"며 "평소 아끼던 물건을 건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이상 조짐이 보이면 주변인들이 세심히 관심을 기울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언론에서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를 때마다 환자들이 더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주변인들이 평소 우울증 조짐을 보이던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힘든 일을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몇 해 전, OECD가 36개 국가의 국민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답변을 통계로 내봤더니 OECD 평균으로는 88%, 한국인은 72.4%만 긍정적으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국민 10명 중 3명은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사국 중 '꼴찌'에 해당하는 결과였습니다.

생의 절벽 끝에서 맘껏 고충을 털어놓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 정신과 병원 방문과 심리 치료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병원을 찾는 데에도 소극적입니다. 일각에서는 그럴수록 일선 학교와 사회, 국가가 더 세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치유를 모색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막아야 한단 겁니다.

자살 전담 정부 각료까지…"자살은 국가적 재난"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해외 정책들이 있습니다.
연간 자살자 수가 3만 명을 웃돌면서 '자살 대국'이라 불렸던 일본은 상실감에 젖은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자살을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총리가 주도하는 범정부 차원의 자살종합대책회의를 설치했습니다. 또, 관련 예산을 해마다 7천억 원씩 투입하는 등 전방위적인 자살 예방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자살자 수가 30%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자살예방 담당 국무상(차관급)'을 두고 자살 예방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또 우울증과 고독사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로움 국무상'을 임명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외로움 담당 부처는 ‘외로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곤경에 빠진 국민이 국가와 사회에 위험 신호를 보내길 권합니다. 영국에서 외로움과 자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자살은 우리 모두의 문제"…제도적 보완 필요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자살예방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자살위험에 노출된 국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국가와 지자체는 자살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합니다.

법률이 제정된 지 올해로 8년째.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국회 자살예방포럼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발표한 '2018 지방자치단체 자살예방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예방 담당 공무원은 1.02명에 불과합니다. 공무원 1명이 10만 명의 정신 건강을 돌본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역부족입니다.

지원도 부족합니다. 지자체 예산 중 자살예방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0.016%(평균 9천4백여만 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 내부에 자살예방 조직을 둔 곳은 절반 정도에 그칩니다. 나머지는 외부기관에 자살 관련 업무를 맡기는 식인데, 경기 광주시와 전남 영암군 등 5개 지자체는 이마저도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원혜영 국회 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는 "재난 수준의 자살문제를 해법을 모색하고자, 지자체 조직과 인사, 예산, 사업의 현황을 최초로 파악한 결과, 일선 현장의 열악한 인력과 예산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주승용 공동대표도 “자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의식이 현저히 낮은 상태"라며 "자살은 사회문제라는 인식 아래, 자살예방법의 제정 목적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혼자 견디고 있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연락 바랍니다. 자살예방 핫라인☎1577-0199 (www.hopeclick.or.kr) 희망의 전화 ☎129 (www.129.go.kr) 생명의 전화 ☎1588-9191 (www.lifeline.or.kr) 청소년상담원 ☎1388 (www.cyber1388.kr)에서 24시간 대기 중인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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