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일본→미국군 주둔한 용산기지 반환 첫발…협상은 험로 예상

입력 2019.12.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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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용산에는 미군 기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군 허가 없이는 접근 조차 불가능해 서울 속의 작은 미국이나 다름없습니다.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 캠프 코이너, 캠프 킴 등 미군기지 면적을 모두 합치면 243만 제곱미터, 서울 용산구 전체 면적의 10분의 1이 넘습니다.

정부는 오늘(11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미국과의 제200차 소파(SOFA) 합동위원회에서 용산 기지 반환 협의 절차를 개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미 정상이 용산 기지 이전에 합의한 2003년 이후 16년 만에 첫발을 뗀 겁니다.

자료제공: 용산문화원자료제공: 용산문화원

몽골→일본→미국…'외국군 주둔지' 용산

용산에 외국군이 주둔한 역사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3세기 말,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은 용산에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 기지를 설치했는데, 용산 역사에 기록된 첫 외국군 주둔입니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초기에는 왜군이 용산에 후방 병참기지를 조성했고, 1882년 임오군란 당시에는 청나라군 지휘소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는 일본군이 주둔했습니다. 일본군 8천여 명이 용산에 주둔하며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했고, 일제강점기인 1908년에는 제2대 조선 총독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용산구 일대를 군용지로 강제수용해 일본군사령부를 건설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미군이 용산에 들어왔습니다. 1945년 9월에 미24군단 예하 7사단이 들어와 3년여 동안 용산 군사기지를 사용했습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한국군이 사용하다 6·25 전쟁이 발발했고 1952년 2월 한국 정부가 용산기지를 미군에 정식으로 공여했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1953년 9월 미 8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했고, 1957년에는 유엔군 사령부가 이전해왔습니다. 이후 창설된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도 용산에 자리 잡았습니다.

정부는 한미가 용산 기지 반환 협의 절차를 시작한 것에 대해 "용산이 과거 외국 군대 주둔지로서의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오늘(11일) 정부합동브리핑에서 용산 미군기지 반환 절차 개시를 발표하고 있는 임찬우 국무조정실 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장오늘(11일) 정부합동브리핑에서 용산 미군기지 반환 절차 개시를 발표하고 있는 임찬우 국무조정실 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장

첫발은 뗐지만 앞으로 험로 예상

한미가 용산 기지 반환 절차에 들어간 것 자체로는 의미가 크지만, 앞으로 언제쯤 실제 반환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2003년 한미 정상이 용산 기지 이전에 합의하고,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 오늘 협상 절차 개시를 선언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사이 2005년 용산국가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2007년에는 용산공원조성 특별법까지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지연됐습니다.

이번 정부합동브리핑에 참석한 관계자는 용산 기지 반환을 언제쯤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이제 절차에 따라 반환 계획을 수립하고 환경 조사를 한 뒤에 미국 측과 환경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현시점에서 반환 시기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용산 기지의 오염 정도를 평가하고 이에 대한 미측의 책임 정도를 따지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정부 관계자는 "(용산 기지의) 오염 개연성이 높지만 아직 조사가 안 된 상태"라면서, "정확한 비용은 환경 조사를 해야 추산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 측은 미국 군대가 쓰던 시설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이나 보상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소파 규정을 근거로 환경 정화 의무가 없다는 게 기본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는 해당 조항이 미국 측의 환경 정화 의무까지 면제하는 건 아니라고 보고 있어서, 이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를 좁혀 가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반환된 강원도 원주의 캠프 이글과 캠프 롱,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동두천의 캠프 호비 쉐아 사격장도 2009년~2011년 사이 폐쇄된 지 거의 10년 만에야 반환됐습니다. 오염 책임과 비용 분담에서 한미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용산 기지 반환 역시 앞으로의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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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일본→미국군 주둔한 용산기지 반환 첫발…협상은 험로 예상
    • 입력 2019-12-11 19:40:01
    취재K
서울 한복판, 용산에는 미군 기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군 허가 없이는 접근 조차 불가능해 서울 속의 작은 미국이나 다름없습니다.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 캠프 코이너, 캠프 킴 등 미군기지 면적을 모두 합치면 243만 제곱미터, 서울 용산구 전체 면적의 10분의 1이 넘습니다.

정부는 오늘(11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미국과의 제200차 소파(SOFA) 합동위원회에서 용산 기지 반환 협의 절차를 개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미 정상이 용산 기지 이전에 합의한 2003년 이후 16년 만에 첫발을 뗀 겁니다.

자료제공: 용산문화원
몽골→일본→미국…'외국군 주둔지' 용산

용산에 외국군이 주둔한 역사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3세기 말,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은 용산에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 기지를 설치했는데, 용산 역사에 기록된 첫 외국군 주둔입니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초기에는 왜군이 용산에 후방 병참기지를 조성했고, 1882년 임오군란 당시에는 청나라군 지휘소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는 일본군이 주둔했습니다. 일본군 8천여 명이 용산에 주둔하며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했고, 일제강점기인 1908년에는 제2대 조선 총독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용산구 일대를 군용지로 강제수용해 일본군사령부를 건설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미군이 용산에 들어왔습니다. 1945년 9월에 미24군단 예하 7사단이 들어와 3년여 동안 용산 군사기지를 사용했습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한국군이 사용하다 6·25 전쟁이 발발했고 1952년 2월 한국 정부가 용산기지를 미군에 정식으로 공여했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1953년 9월 미 8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했고, 1957년에는 유엔군 사령부가 이전해왔습니다. 이후 창설된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도 용산에 자리 잡았습니다.

정부는 한미가 용산 기지 반환 협의 절차를 시작한 것에 대해 "용산이 과거 외국 군대 주둔지로서의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오늘(11일) 정부합동브리핑에서 용산 미군기지 반환 절차 개시를 발표하고 있는 임찬우 국무조정실 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장
첫발은 뗐지만 앞으로 험로 예상

한미가 용산 기지 반환 절차에 들어간 것 자체로는 의미가 크지만, 앞으로 언제쯤 실제 반환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2003년 한미 정상이 용산 기지 이전에 합의하고,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 오늘 협상 절차 개시를 선언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사이 2005년 용산국가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2007년에는 용산공원조성 특별법까지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지연됐습니다.

이번 정부합동브리핑에 참석한 관계자는 용산 기지 반환을 언제쯤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이제 절차에 따라 반환 계획을 수립하고 환경 조사를 한 뒤에 미국 측과 환경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현시점에서 반환 시기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용산 기지의 오염 정도를 평가하고 이에 대한 미측의 책임 정도를 따지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정부 관계자는 "(용산 기지의) 오염 개연성이 높지만 아직 조사가 안 된 상태"라면서, "정확한 비용은 환경 조사를 해야 추산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 측은 미국 군대가 쓰던 시설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이나 보상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소파 규정을 근거로 환경 정화 의무가 없다는 게 기본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는 해당 조항이 미국 측의 환경 정화 의무까지 면제하는 건 아니라고 보고 있어서, 이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를 좁혀 가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반환된 강원도 원주의 캠프 이글과 캠프 롱,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동두천의 캠프 호비 쉐아 사격장도 2009년~2011년 사이 폐쇄된 지 거의 10년 만에야 반환됐습니다. 오염 책임과 비용 분담에서 한미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용산 기지 반환 역시 앞으로의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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