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내가 어때서’…‘섹시 모델’ 가고 ‘나다움’이 대세

입력 2019.12.12 (16:39) 수정 2019.12.12 (16: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쇼(위) 리조(아래)

빅토리아 시크릿 쇼(위) 리조(아래)

오늘 발표된 '타임' 선정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인물'은 지난주 열렸던 미국의 연말 음악 축제 '징글볼'에서도 화제가 된 인물입니다. '징글볼' 중에서도 가장 큰 무대에서 "BTS의 지민이한테 하는 것처럼 환호해달라"고 말해 팬들 호응을 이끌어낸 가수 '리조(Lizzo)'인데요.

리조 "내가 어때서"..'나다움'으로 세상에 맞서다

‘타임’ 선정 ‘2019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인물’ 리조 (출처 : 타임지 홈페이지 캡처)‘타임’ 선정 ‘2019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인물’ 리조 (출처 : 타임지 홈페이지 캡처)

리조는 사실 BTS의 지민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도 올해 역대급 스타가 된 가수입니다. 내년 1월에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무려 8개 부문에 후보자로 올랐습니다. 그래미 어워드 후보자로 처음 이름을 올리면서 최다 부문 후보가 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됐는데요.

물론 리조의 음악 실력이 가장 큰 인기 비결이겠지만, 이것만으로 그녀의 신드롬급 인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대중문화계에도 고질적인 선입견들이 존재하는데요. '여자 가수는 어릴 때 데뷔하면 할 수록 좋다', '여가수는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식의 발상입니다.

리조와 백 댄서들 (출처 : 게티이미지)리조와 백 댄서들 (출처 : 게티이미지)

31살인 리조는 탄탄한 음악 실력, 재치있는 가삿말과 더불어 자존감 넘치는 당당한 모습이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 모든 선입견을 깨고 차트 역주행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그동안 미국 대중문화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빅 사이즈' 몸매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활동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

백댄서 빅 걸스(the Big Girls)’역시 모두 빅 사이즈 댄서들로 구성했는데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 하지만 이 또한 아름답고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리조의 모습이 큰 공감을 불러온 것이죠.

덕분에 2년 전 발표했던 '트루스 허츠(Truth Hurts)'라는 노래는 다른 여러 요인에도 힘입어, 올해 빌보드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하더니 1위에 등극했습니다. 엊그제는 2016년 발표했던 노래 '굿 에즈 헬 (Good As Hell)'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제작해서 공개했는데 이 곡 역시 빌보드에서 다시 인기몰이 중입니다.

10일 발표한 ‘Good As Hell(2019)’의 뮤직비디오 한 장면 (출처 : 유튜브 리조 공식계정)10일 발표한 ‘Good As Hell(2019)’의 뮤직비디오 한 장면 (출처 : 유튜브 리조 공식계정)

이제는 '보디 포지티비티'가 대세

'보디 포지티비티(Body Positivity)', 자신의 신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자는 바람은 사실 올해 갑자기 불어닥친 건 아닙니다. 이 개념은 모든 사람은 인종, 나이, 성 정체성을 떠나서 모두 다 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그동안 '뚱뚱함을 인정해 달라는 시위' 정도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보디 포지비티비' 바람은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와 만나면서 전 세계 문화를 실질적으로 뒤흔들었는데요.

리조처럼 훈풍을 타고 전성기를 맞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섹시 엔젤'로 대표되던 한 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유명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입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선 ‘엔젤’ 모델 (출처 : EPA=연합뉴스)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선 ‘엔젤’ 모델 (출처 : EPA=연합뉴스)

빅토리아 시크릿은 최근 23년 동안 진행했던 패션쇼를 올해부터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미 지난 5월 쇼의 TV 중계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서 한 발 더 나간 셈입니다.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한 연출력으로 매해 연말 주목받았던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는 그동안 '섹시미', '날씬함'을 강조하는 쇼로 널리 이름을 알려 왔습니다. 정상급 모델들을 '빅토리아 엔젤'로 내세워 공공연하게 '여성이 입어줬으면 싶은 속옷', '입으면 모델처럼 멋지게 보일 거란 속옷'이라는 판타지를 팔아 왔던 것이죠.

'섹시 엔젤' 말고 이젠 '내'가 되겠다

하지만 이 '환상'은 23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쇼 시청률이 몇 년 사이 계속 하락하고 매출도 부진했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습니다. 여성들은 이제 남성들에게 환상을 주는 불편한 속옷을 입느니 내가 입기 편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겠다는 겁니다.

올해 9월 열린 ‘새비지 x 펜티’ 쇼 (출처 : AP=연합뉴스)올해 9월 열린 ‘새비지 x 펜티’ 쇼 (출처 :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신체 사이즈를 내세운 속옷 브랜드가 일제히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수 리한나가 선보인 한 속옷 브랜드는 올가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로 쇼를 꾸몄습니다.

'나를 사랑하자'에서 시작된 '다양성' 인정하기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는 이제 '보디 포지티비티'를 넘어 '다양성'이라는 개념과 맞닿으면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건 사회의 편견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때 가능해지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내가 나를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다른 사람들(다양성)도 편견 없이 인정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텐데요.

 트렌스젠더 모델들로만 구성된 ‘마르코 마르코 언더웨어 SS 2019’ 쇼 (출처 : 애티튜드 잡지 캡처) 트렌스젠더 모델들로만 구성된 ‘마르코 마르코 언더웨어 SS 2019’ 쇼 (출처 : 애티튜드 잡지 캡처)

패션계는 대표적으로 이 새로운 경향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 체격의 모델들이 런웨이에 서는 건 이제 기본이고요. 올가을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젠더를 바꾼 모델들로만 쇼를 구성하거나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여기는' 모델, 남성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매여있지 않은 모델들이 등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 정체성, 인종, 나이 등 사회적 편견이 생길 수 있는 모든 '선'을 넘어서는 다양성을 향해 가는 겁니다. 우리 사회, 우리 문화계는 언제쯤 '나다움'이 대세가 될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내가 어때서’…‘섹시 모델’ 가고 ‘나다움’이 대세
    • 입력 2019-12-12 16:39:56
    • 수정2019-12-12 16:40:58
    글로벌 돋보기

빅토리아 시크릿 쇼(위) 리조(아래)

오늘 발표된 '타임' 선정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인물'은 지난주 열렸던 미국의 연말 음악 축제 '징글볼'에서도 화제가 된 인물입니다. '징글볼' 중에서도 가장 큰 무대에서 "BTS의 지민이한테 하는 것처럼 환호해달라"고 말해 팬들 호응을 이끌어낸 가수 '리조(Lizzo)'인데요.

리조 "내가 어때서"..'나다움'으로 세상에 맞서다

‘타임’ 선정 ‘2019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인물’ 리조 (출처 : 타임지 홈페이지 캡처)
리조는 사실 BTS의 지민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도 올해 역대급 스타가 된 가수입니다. 내년 1월에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무려 8개 부문에 후보자로 올랐습니다. 그래미 어워드 후보자로 처음 이름을 올리면서 최다 부문 후보가 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됐는데요.

물론 리조의 음악 실력이 가장 큰 인기 비결이겠지만, 이것만으로 그녀의 신드롬급 인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대중문화계에도 고질적인 선입견들이 존재하는데요. '여자 가수는 어릴 때 데뷔하면 할 수록 좋다', '여가수는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식의 발상입니다.

리조와 백 댄서들 (출처 : 게티이미지)
31살인 리조는 탄탄한 음악 실력, 재치있는 가삿말과 더불어 자존감 넘치는 당당한 모습이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 모든 선입견을 깨고 차트 역주행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그동안 미국 대중문화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빅 사이즈' 몸매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활동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

백댄서 빅 걸스(the Big Girls)’역시 모두 빅 사이즈 댄서들로 구성했는데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 하지만 이 또한 아름답고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리조의 모습이 큰 공감을 불러온 것이죠.

덕분에 2년 전 발표했던 '트루스 허츠(Truth Hurts)'라는 노래는 다른 여러 요인에도 힘입어, 올해 빌보드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하더니 1위에 등극했습니다. 엊그제는 2016년 발표했던 노래 '굿 에즈 헬 (Good As Hell)'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제작해서 공개했는데 이 곡 역시 빌보드에서 다시 인기몰이 중입니다.

10일 발표한 ‘Good As Hell(2019)’의 뮤직비디오 한 장면 (출처 : 유튜브 리조 공식계정)
이제는 '보디 포지티비티'가 대세

'보디 포지티비티(Body Positivity)', 자신의 신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자는 바람은 사실 올해 갑자기 불어닥친 건 아닙니다. 이 개념은 모든 사람은 인종, 나이, 성 정체성을 떠나서 모두 다 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그동안 '뚱뚱함을 인정해 달라는 시위' 정도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보디 포지비티비' 바람은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와 만나면서 전 세계 문화를 실질적으로 뒤흔들었는데요.

리조처럼 훈풍을 타고 전성기를 맞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섹시 엔젤'로 대표되던 한 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유명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입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선 ‘엔젤’ 모델 (출처 : EPA=연합뉴스)
빅토리아 시크릿은 최근 23년 동안 진행했던 패션쇼를 올해부터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미 지난 5월 쇼의 TV 중계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서 한 발 더 나간 셈입니다.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한 연출력으로 매해 연말 주목받았던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는 그동안 '섹시미', '날씬함'을 강조하는 쇼로 널리 이름을 알려 왔습니다. 정상급 모델들을 '빅토리아 엔젤'로 내세워 공공연하게 '여성이 입어줬으면 싶은 속옷', '입으면 모델처럼 멋지게 보일 거란 속옷'이라는 판타지를 팔아 왔던 것이죠.

'섹시 엔젤' 말고 이젠 '내'가 되겠다

하지만 이 '환상'은 23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쇼 시청률이 몇 년 사이 계속 하락하고 매출도 부진했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습니다. 여성들은 이제 남성들에게 환상을 주는 불편한 속옷을 입느니 내가 입기 편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겠다는 겁니다.

올해 9월 열린 ‘새비지 x 펜티’ 쇼 (출처 :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신체 사이즈를 내세운 속옷 브랜드가 일제히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수 리한나가 선보인 한 속옷 브랜드는 올가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로 쇼를 꾸몄습니다.

'나를 사랑하자'에서 시작된 '다양성' 인정하기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는 이제 '보디 포지티비티'를 넘어 '다양성'이라는 개념과 맞닿으면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건 사회의 편견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때 가능해지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내가 나를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다른 사람들(다양성)도 편견 없이 인정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텐데요.

 트렌스젠더 모델들로만 구성된 ‘마르코 마르코 언더웨어 SS 2019’ 쇼 (출처 : 애티튜드 잡지 캡처)
패션계는 대표적으로 이 새로운 경향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 체격의 모델들이 런웨이에 서는 건 이제 기본이고요. 올가을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젠더를 바꾼 모델들로만 쇼를 구성하거나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여기는' 모델, 남성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매여있지 않은 모델들이 등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 정체성, 인종, 나이 등 사회적 편견이 생길 수 있는 모든 '선'을 넘어서는 다양성을 향해 가는 겁니다. 우리 사회, 우리 문화계는 언제쯤 '나다움'이 대세가 될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