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수입차 중에 일본 차만 ‘두 자릿수’ 번호판…왜?

입력 2019.12.13 (18:19) 수정 2019.12.1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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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세 자리 번호판으로 등장한 일본차 모는 용자'

지난 9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세 자리 번호판을 달고 있는 일본 차의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걸까요? 올해 9월, 자동차 번호체계가 개편됨에 따라 신규 자동차들은 앞자리가 세자리 수인 번호판을 받습니다. 즉 사진 속 자동차는 일본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매한 '신규 일본 차'라는 뜻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3자리 일본차 불법 행위 보면 신고 칼같이 하자’ ,‘신제품! 매국노 에디션’ 과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온라인상의 논란이 보여주듯, 세 자리 수 번호판은 불매운동 이후 구입한 일본차를 구별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불매운동과 더불어 이런 여론까지 일자 일본차 소비는 위축됐고, 일본차 업체들은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두 자리 번호판이 가능하다고?

일본차 업체 프로모션 링크 일부 캡처일본차 업체 프로모션 링크 일부 캡처

일본차 구매를 고민하던 지인이 받은 프로모션 링크를 봤습니다. 광주지역 고객에 한정된 '특급 혜택'이라고 소개하며, ‘번호판 2자리 출고’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일본 불매운동 이후 일본차를 구입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꺼려하는 걸 공략한 새로운 판매 전략인 겁니다. 사실인 걸까. 취재진은 일본차 매장 네 곳을 찾았습니다.

"두자릿수 원하시면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번호판 짧은 거 있잖아요. 옛날 걸로 그걸 받고 다시 다는 거에요. 그 과정이 좀 복잡합니다."
"원래 긴 게 달려 있는데 짧은 걸로 받을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야죠."

취재를 위해 찾은 일본차 매장에서 직접 들은 말입니다. 구매 상담을 하다 일본 불매운동 때문에 세자릿수 번호판이 부담스럽다고 하자 ‘원하면 두 자릿수 번호판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흔쾌히 말합니다. 찾아간 모든 업체에서 ‘두자리 번호판’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광주의 한 일본차 매장광주의 한 일본차 매장

방법이 있습니다. 신규자동차의 번호와 이 번호가 적힌 번호판 발급 업무는 각 구청이 담당합니다. 이를 위해 구청에 자동차 업체에서 발급하는 ‘자동차 제작증’을 제출해야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출생신고서 비슷한 건데, 차종과 차명, 제작일, 연식 등을 기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자리 번호판의 비밀은 이 제작증에 기록하게 되어 있는 ‘등록번호판의 규격’에 있습니다.

‘긴 번호판’과 ‘짧은 번호판’ 규격‘긴 번호판’과 ‘짧은 번호판’ 규격

번호판은 크기와 재질에 따라 종류가 6가지 가까이 됩니다. 이 중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번호판은 ‘긴 번호판’과 ‘짧은 번호판’ 두 가지 입니다. ‘긴 번호판’은 우리가 최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가로 510mm, 세로 110mm 규격입니다.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 형태입니다.

반면 ‘짧은 번호판’은 가로 335mm, 세로 155mm 또는 가로 335mm, 세로 170mm 규격입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차들이 '긴 번호판'을 달고 다니게끔 설계되어 있고, 일부 수입차나 옛날 차종의 경우 트렁크나 앞범퍼 모양에 따라 '짧은 번호판'을 달기도 합니다.

자동차 제작증에 기록된 ‘등록번호판의 규격’ 예시자동차 제작증에 기록된 ‘등록번호판의 규격’ 예시

두자리수 번호판을 받으려면 ‘등록 번호판 규격’ 란에 ‘긴 번호판’이 아닌 ‘짧은 번호판’ 혹은 긴 것과 짧은 것이 섞인 ‘혼합 번호판’ 규격을 기록하면 됩니다. 짧은 번호판은 아직 앞자리가 두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취재 당일, 구청에 제출된 일본차 제작증을 살펴보면 '등록 번호판 규격'에 '짧은 번호판'이 기록돼 있습니다. 구청은 제작증에 기록된 번호판 규격에 따라 번호판을 발급할 뿐입니다.

두 자리 '짧은 번호판' 받은 뒤 '긴 번호판'으로 규격만 교체

실제로 번호판을 발급받는 구청 주차장에서 기다려 봤더니, 긴 번호판 틀에 짧은 번호판을 억지로 단 일본차들이 잇따라 들어왔습니다. 차는 긴 번호판을 붙이게끔 설계되어 나왔는데, 두 자리 번호를 받으려고 ‘짧은 번호판’을 발급받아 부착하다 보니 엉성하게 붙여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고시 위반'입니다. '자동차 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520mmx110mm 규격의 번호판을 부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동차에는 520mmx110mm 규격의 번호판을 부착하여야 한다' 고 나와 있습니다. 긴 번호판을 달도록 설계되어 있으면 긴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차에 억지로 붙여진 짧은 번호판일본차에 억지로 붙여진 짧은 번호판

이렇게 '짧은 번호판' 규격을 기록해 두 자리수 번호를 발급 받은 뒤, 자동차 검사소에 가면 규격이 ‘긴 번호판’ 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일본 신규 차량이지만 ‘두자릿 수’ 번호에 '긴 번호판'을 달면서 불매운동 이전 구입한 차량처럼 ‘세탁’하는 겁니다.

어차피 자동차 검사소에 가서 떼버릴 번호판이어서, '봉인'도 안 돼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나사 두 개로만 가볍게 고정돼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봉인이 안 된 번호판을 달고 운행하는 것 역시 불법입니다.

고시 위반에, 불법운행까지 유도하고 있는 일본차 판매업체들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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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수입차 중에 일본 차만 ‘두 자릿수’ 번호판…왜?
    • 입력 2019-12-13 18:19:18
    • 수정2019-12-13 23:07:14
    취재K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세 자리 번호판으로 등장한 일본차 모는 용자' 지난 9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세 자리 번호판을 달고 있는 일본 차의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걸까요? 올해 9월, 자동차 번호체계가 개편됨에 따라 신규 자동차들은 앞자리가 세자리 수인 번호판을 받습니다. 즉 사진 속 자동차는 일본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매한 '신규 일본 차'라는 뜻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3자리 일본차 불법 행위 보면 신고 칼같이 하자’ ,‘신제품! 매국노 에디션’ 과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온라인상의 논란이 보여주듯, 세 자리 수 번호판은 불매운동 이후 구입한 일본차를 구별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불매운동과 더불어 이런 여론까지 일자 일본차 소비는 위축됐고, 일본차 업체들은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두 자리 번호판이 가능하다고? 일본차 업체 프로모션 링크 일부 캡처 일본차 구매를 고민하던 지인이 받은 프로모션 링크를 봤습니다. 광주지역 고객에 한정된 '특급 혜택'이라고 소개하며, ‘번호판 2자리 출고’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일본 불매운동 이후 일본차를 구입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꺼려하는 걸 공략한 새로운 판매 전략인 겁니다. 사실인 걸까. 취재진은 일본차 매장 네 곳을 찾았습니다. "두자릿수 원하시면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번호판 짧은 거 있잖아요. 옛날 걸로 그걸 받고 다시 다는 거에요. 그 과정이 좀 복잡합니다." "원래 긴 게 달려 있는데 짧은 걸로 받을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야죠." 취재를 위해 찾은 일본차 매장에서 직접 들은 말입니다. 구매 상담을 하다 일본 불매운동 때문에 세자릿수 번호판이 부담스럽다고 하자 ‘원하면 두 자릿수 번호판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흔쾌히 말합니다. 찾아간 모든 업체에서 ‘두자리 번호판’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광주의 한 일본차 매장 방법이 있습니다. 신규자동차의 번호와 이 번호가 적힌 번호판 발급 업무는 각 구청이 담당합니다. 이를 위해 구청에 자동차 업체에서 발급하는 ‘자동차 제작증’을 제출해야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출생신고서 비슷한 건데, 차종과 차명, 제작일, 연식 등을 기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자리 번호판의 비밀은 이 제작증에 기록하게 되어 있는 ‘등록번호판의 규격’에 있습니다. ‘긴 번호판’과 ‘짧은 번호판’ 규격 번호판은 크기와 재질에 따라 종류가 6가지 가까이 됩니다. 이 중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번호판은 ‘긴 번호판’과 ‘짧은 번호판’ 두 가지 입니다. ‘긴 번호판’은 우리가 최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가로 510mm, 세로 110mm 규격입니다.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 형태입니다. 반면 ‘짧은 번호판’은 가로 335mm, 세로 155mm 또는 가로 335mm, 세로 170mm 규격입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차들이 '긴 번호판'을 달고 다니게끔 설계되어 있고, 일부 수입차나 옛날 차종의 경우 트렁크나 앞범퍼 모양에 따라 '짧은 번호판'을 달기도 합니다. 자동차 제작증에 기록된 ‘등록번호판의 규격’ 예시 두자리수 번호판을 받으려면 ‘등록 번호판 규격’ 란에 ‘긴 번호판’이 아닌 ‘짧은 번호판’ 혹은 긴 것과 짧은 것이 섞인 ‘혼합 번호판’ 규격을 기록하면 됩니다. 짧은 번호판은 아직 앞자리가 두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취재 당일, 구청에 제출된 일본차 제작증을 살펴보면 '등록 번호판 규격'에 '짧은 번호판'이 기록돼 있습니다. 구청은 제작증에 기록된 번호판 규격에 따라 번호판을 발급할 뿐입니다. 두 자리 '짧은 번호판' 받은 뒤 '긴 번호판'으로 규격만 교체 실제로 번호판을 발급받는 구청 주차장에서 기다려 봤더니, 긴 번호판 틀에 짧은 번호판을 억지로 단 일본차들이 잇따라 들어왔습니다. 차는 긴 번호판을 붙이게끔 설계되어 나왔는데, 두 자리 번호를 받으려고 ‘짧은 번호판’을 발급받아 부착하다 보니 엉성하게 붙여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고시 위반'입니다. '자동차 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520mmx110mm 규격의 번호판을 부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동차에는 520mmx110mm 규격의 번호판을 부착하여야 한다' 고 나와 있습니다. 긴 번호판을 달도록 설계되어 있으면 긴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차에 억지로 붙여진 짧은 번호판 이렇게 '짧은 번호판' 규격을 기록해 두 자리수 번호를 발급 받은 뒤, 자동차 검사소에 가면 규격이 ‘긴 번호판’ 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일본 신규 차량이지만 ‘두자릿 수’ 번호에 '긴 번호판'을 달면서 불매운동 이전 구입한 차량처럼 ‘세탁’하는 겁니다. 어차피 자동차 검사소에 가서 떼버릴 번호판이어서, '봉인'도 안 돼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나사 두 개로만 가볍게 고정돼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봉인이 안 된 번호판을 달고 운행하는 것 역시 불법입니다. 고시 위반에, 불법운행까지 유도하고 있는 일본차 판매업체들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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