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오피스텔·용돈·책까지 업체 돈으로…유재수의 슬기로운(?) 뇌물 생활

입력 2019.12.14 (08:01) 수정 2019.12.1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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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이 구속영장 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이 구속영장 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감독 대상 업체 관계자들부터 장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낸 유 전 부시장의 공소장을 보면, 유 씨가 2010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자산운용사 등 업체 4곳으로부터 뇌물 등으로 받아챙긴 금품은 4천5백90만 원 가량입니다.
10년 가까이 받은 뇌물 수수액치고는 그다지 많다고 보기 어려운 액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도 유 씨에 대해 한 사람에게 3천만 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때 적용할 수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범행의 방식입니다.

공소장에 나온 유 씨의 범행 기록을 보면 '정말 이런 것까지 받았나' 싶을 정도의 적나라한 뇌물 수수 행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파트 산다'며 무이자로 돈 빌리고, '집값 안오른다'며 천만 원 안갚아

유재수 씨는 아파트를 장만하는 방법부터 남들과는 달랐습니다.

2010년 초 해외에 파견 근무를 나가기 전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사두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다'며 평소 알고 지내던 채권 추심업체 회장 A씨에게 2억5천만 원을 무이자로 빌렸습니다.

남들에게 들킬 것을 우려해선지 빌린 돈은 장인 명의 계좌로 받았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입니다.

약 1년 2개월에 걸쳐 채무를 상환하던 유 씨는 남은 채무 2천만 원 중 천만 원을 송금하면서 A 회장에게 '사놓은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아 손해를 볼 상황'이라는 취지로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A 회장은 '내가 추천해준 아파트가 가격이 오르지 않아 손해를 보게 생겼다면 나머지 천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며 유 씨의 남은 채무를 면제해줬습니다.

유 씨는 그즈음 A 회장에게 '미국에서 아는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있는데 돈을 보내달라'며 용돈 200만 원을 받아 썼습니다.

이번엔 장모 계좌로 받았습니다.

금융위원회의 고위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뇌물을 받기 위해 장인·장모의 은행 계좌까지 알뜰히 이용한 겁니다.

'쉴 곳 필요하다'며 오피스텔 임차도 업체 돈으로

유 씨는 2015년 9월, 이번엔 '쉴 곳이 필요하다'며 자산운영사 대표 B씨에게 서울 강남구의 오피스텔을 얻어달라고 합니다.

이미 서울 강남에 자기 집이 있는데도 근처에 오피스텔이 추가로 필요한 이유를 도통 알기 어렵지만, B씨는 유 씨의 요구에 즉각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180만 원의 고급 오피스텔을 얻어줍니다.

유 씨는 이 오피스텔을 약 6개월간 사용했고 월세와 관리비 등으로 약 1,300만 원을 B씨로부터 받아 챙겼습니다.

부인 항공권·골프채에 아들 용돈도 업체 관계자가

자기만 받는게 조금 미안했는지 유 씨는 어느 시점부터 가족들까지 살뜰히 챙기기 시작합니다.

건당 150만 원에서 250만 원에 이르는 부인의 항공권 요금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이 알던 업체 대표에게 내달라고 요구하고 업체 법인카드나 직원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부인에게 선물한 골프채 대금 80만 원도 업체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또 유 씨는 2016년 11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식당에서 채권추심업체 회장 A씨와 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유 씨의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들도 함께 했는데, A씨는 유 씨의 아들들에게 100만 원을 줬습니다.

아마도 유 씨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사업가가 '용돈이나 하라'며 준 것으로 이해하고 받았을 겁니다.
유 씨와 유 씨 가족이 얼마나 업체로부터 받는 뇌물에 무감각해져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내 책도 남의 돈으로 구매…"사서 다시 배송해달라"

이렇게 나랏일하랴 업체 관계자들 만나랴 정신 없이 살아온 유 씨, 조금이라도 쉬면 좋았을텐데 바쁜 시간을 쪼개 책도 냈습니다.
금융위의 고위 간부로서 이론은 물론 실물 경제에도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유 씨의 저서가 얼마나 훌륭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유 씨는 그런 자신의 책을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을 겁니다. 다만, '내 돈이 아닌 업체의 돈으로' 말입니다.

유 씨는 A씨 등에게 수십권 씩 뭉텅이로 자신의 책을 사달라고 한 뒤 자기 사무실이나 처가 등으로 배송하도록 했습니다.
이 밖에도 동생의 취업을 청탁하고 아들의 인턴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숙박업소를 공짜로 사용하거나 직원들에게 줄 명절 선물을 대신 사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슬기로운(?) 뇌물 생활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찰 "유재수 비리, 청와대 감찰에서도 확인 가능했다"

검찰은 이런 유 씨의 공소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런 비위 의혹의 상당 부분은 지난 2017년 청와대의 특별 감찰에서 확인했거나 확인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유 씨에 대한 청와대 감찰이 석연치 않게 중단됐을 가능성을 검찰이 의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반면, 청와대 감찰의 최종 책임자였던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지난해 12월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감찰 중단 경위를 묻는 질문에 "첩보를 조사한 결과 그 비위 첩보 자체에 대해서는 근거가 약하다고 보았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수사는 유 씨의 개인 비위를 넘어 감찰 중단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감찰에서 확인 가능한 사안이었다'는 검찰의 말과 '비위 첩보의 근거가 약하다고 봤다'는 조 전 수석의 말 가운데 누구 말이 맞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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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오피스텔·용돈·책까지 업체 돈으로…유재수의 슬기로운(?) 뇌물 생활
    • 입력 2019-12-14 08:01:40
    • 수정2019-12-14 08:23:13
    취재K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이 구속영장 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감독 대상 업체 관계자들부터 장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낸 유 전 부시장의 공소장을 보면, 유 씨가 2010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자산운용사 등 업체 4곳으로부터 뇌물 등으로 받아챙긴 금품은 4천5백90만 원 가량입니다.
10년 가까이 받은 뇌물 수수액치고는 그다지 많다고 보기 어려운 액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도 유 씨에 대해 한 사람에게 3천만 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때 적용할 수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범행의 방식입니다.

공소장에 나온 유 씨의 범행 기록을 보면 '정말 이런 것까지 받았나' 싶을 정도의 적나라한 뇌물 수수 행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파트 산다'며 무이자로 돈 빌리고, '집값 안오른다'며 천만 원 안갚아

유재수 씨는 아파트를 장만하는 방법부터 남들과는 달랐습니다.

2010년 초 해외에 파견 근무를 나가기 전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사두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다'며 평소 알고 지내던 채권 추심업체 회장 A씨에게 2억5천만 원을 무이자로 빌렸습니다.

남들에게 들킬 것을 우려해선지 빌린 돈은 장인 명의 계좌로 받았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입니다.

약 1년 2개월에 걸쳐 채무를 상환하던 유 씨는 남은 채무 2천만 원 중 천만 원을 송금하면서 A 회장에게 '사놓은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아 손해를 볼 상황'이라는 취지로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A 회장은 '내가 추천해준 아파트가 가격이 오르지 않아 손해를 보게 생겼다면 나머지 천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며 유 씨의 남은 채무를 면제해줬습니다.

유 씨는 그즈음 A 회장에게 '미국에서 아는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있는데 돈을 보내달라'며 용돈 200만 원을 받아 썼습니다.

이번엔 장모 계좌로 받았습니다.

금융위원회의 고위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뇌물을 받기 위해 장인·장모의 은행 계좌까지 알뜰히 이용한 겁니다.

'쉴 곳 필요하다'며 오피스텔 임차도 업체 돈으로

유 씨는 2015년 9월, 이번엔 '쉴 곳이 필요하다'며 자산운영사 대표 B씨에게 서울 강남구의 오피스텔을 얻어달라고 합니다.

이미 서울 강남에 자기 집이 있는데도 근처에 오피스텔이 추가로 필요한 이유를 도통 알기 어렵지만, B씨는 유 씨의 요구에 즉각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180만 원의 고급 오피스텔을 얻어줍니다.

유 씨는 이 오피스텔을 약 6개월간 사용했고 월세와 관리비 등으로 약 1,300만 원을 B씨로부터 받아 챙겼습니다.

부인 항공권·골프채에 아들 용돈도 업체 관계자가

자기만 받는게 조금 미안했는지 유 씨는 어느 시점부터 가족들까지 살뜰히 챙기기 시작합니다.

건당 150만 원에서 250만 원에 이르는 부인의 항공권 요금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이 알던 업체 대표에게 내달라고 요구하고 업체 법인카드나 직원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부인에게 선물한 골프채 대금 80만 원도 업체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또 유 씨는 2016년 11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식당에서 채권추심업체 회장 A씨와 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유 씨의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들도 함께 했는데, A씨는 유 씨의 아들들에게 100만 원을 줬습니다.

아마도 유 씨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사업가가 '용돈이나 하라'며 준 것으로 이해하고 받았을 겁니다.
유 씨와 유 씨 가족이 얼마나 업체로부터 받는 뇌물에 무감각해져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내 책도 남의 돈으로 구매…"사서 다시 배송해달라"

이렇게 나랏일하랴 업체 관계자들 만나랴 정신 없이 살아온 유 씨, 조금이라도 쉬면 좋았을텐데 바쁜 시간을 쪼개 책도 냈습니다.
금융위의 고위 간부로서 이론은 물론 실물 경제에도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유 씨의 저서가 얼마나 훌륭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유 씨는 그런 자신의 책을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을 겁니다. 다만, '내 돈이 아닌 업체의 돈으로' 말입니다.

유 씨는 A씨 등에게 수십권 씩 뭉텅이로 자신의 책을 사달라고 한 뒤 자기 사무실이나 처가 등으로 배송하도록 했습니다.
이 밖에도 동생의 취업을 청탁하고 아들의 인턴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숙박업소를 공짜로 사용하거나 직원들에게 줄 명절 선물을 대신 사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슬기로운(?) 뇌물 생활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찰 "유재수 비리, 청와대 감찰에서도 확인 가능했다"

검찰은 이런 유 씨의 공소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런 비위 의혹의 상당 부분은 지난 2017년 청와대의 특별 감찰에서 확인했거나 확인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유 씨에 대한 청와대 감찰이 석연치 않게 중단됐을 가능성을 검찰이 의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반면, 청와대 감찰의 최종 책임자였던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지난해 12월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감찰 중단 경위를 묻는 질문에 "첩보를 조사한 결과 그 비위 첩보 자체에 대해서는 근거가 약하다고 보았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수사는 유 씨의 개인 비위를 넘어 감찰 중단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감찰에서 확인 가능한 사안이었다'는 검찰의 말과 '비위 첩보의 근거가 약하다고 봤다'는 조 전 수석의 말 가운데 누구 말이 맞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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