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한국사 ‘제주4·3’ 필수 교육내용으로 반영

입력 2019.12.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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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전국 모든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을 한국사 수업시간 때 현대사의 주요 사건으로 배우게 됩니다. 제주도교육청은 내년 3월부터 쓰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제주4·3 교육과정이 필수 내용으로 들어갔다며, 이는 2년 전부터 교육청에서 마련한 역사교과서 4·3 집필 기준이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검인정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는 제주4·3이 광복과 통일정부 수립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학습요소로 반영됐습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4·3을 한국전쟁 전의 역사로 기술해 4·3이 정부 수립에 반대한 폭동이나 좌우대립의 소요사태 등으로 규정됐고, 이로 인해 교과서 편찬 때마다 4·3 왜곡·폄하 등의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4·3을 통일정부 수립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일어난 민족사적 사건으로 새롭게 규정하기 위한 '검인정 역사교과서 4·3 집필 기준 개발 연구용역'을 진행했습니다. 교육청은 이 용역을 통해 광복 이후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수립 과정에서 '4·3의 역사적 위상 설정', '정부 진상보고서를 토대로 4·3의 배경·전개 과정·의의를 객관적으로 서술', '진상규명과 관련자의 명예회복 과정에서 얻은 화해와 상생, 평화, 인권의 가치를 드높이는 사례' 등의 집필기준안 기본 방향을 도출하고 이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대상으로 중·고교 교육과정 학습요소 집필기준안에 반영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정의할 수 있다.…잠정적으로 4·3사건 인명피해를 25,000~30,000명으로 추정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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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교 한국사 ‘제주4·3’ 필수 교육내용으로 반영
    • 입력 2019-12-17 13:49:02
    사회
내년부터 전국 모든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을 한국사 수업시간 때 현대사의 주요 사건으로 배우게 됩니다. 제주도교육청은 내년 3월부터 쓰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제주4·3 교육과정이 필수 내용으로 들어갔다며, 이는 2년 전부터 교육청에서 마련한 역사교과서 4·3 집필 기준이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검인정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는 제주4·3이 광복과 통일정부 수립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학습요소로 반영됐습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4·3을 한국전쟁 전의 역사로 기술해 4·3이 정부 수립에 반대한 폭동이나 좌우대립의 소요사태 등으로 규정됐고, 이로 인해 교과서 편찬 때마다 4·3 왜곡·폄하 등의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4·3을 통일정부 수립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일어난 민족사적 사건으로 새롭게 규정하기 위한 '검인정 역사교과서 4·3 집필 기준 개발 연구용역'을 진행했습니다. 교육청은 이 용역을 통해 광복 이후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수립 과정에서 '4·3의 역사적 위상 설정', '정부 진상보고서를 토대로 4·3의 배경·전개 과정·의의를 객관적으로 서술', '진상규명과 관련자의 명예회복 과정에서 얻은 화해와 상생, 평화, 인권의 가치를 드높이는 사례' 등의 집필기준안 기본 방향을 도출하고 이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대상으로 중·고교 교육과정 학습요소 집필기준안에 반영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정의할 수 있다.…잠정적으로 4·3사건 인명피해를 25,000~30,000명으로 추정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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