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과 대화가 된다?…‘벽간 소음’에 뿔난 주민들

입력 2019.12.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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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천장을 울리는 층간소음, 생각만으로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고질적인 층간소음은 말다툼과 보복성 소음, 폭력 사건으로까지 번지기도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젠 옆집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른바 '벽간 소음' 때문입니다. 벽을 타고 옆집의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린다며 벽간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내 공간을 방해하는 층간·벽간 소음 피해 사례는 각양각색입니다.

KBS에도 이런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제보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는데요. 도대체 얼마나 심하기에 이런 호소를 하는 걸까요?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옆집 통화 내용도 들려요"…이 정도면 두 지붕 한 가족?

제보자 A 씨의 부모님은 경기도의 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A 씨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난해 지어진 유명 건설사의 아파트인데, 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 집 안방끼리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제보자의 요청으로 이 건설사의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A 씨 부모님은 이사 온 뒤부터 '본의아니게' 옆집과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옆집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 전화벨소리, 기침 소리까지 실시간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옆집 아이가 밤새 기침을 한 다음날, A 씨 어머니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어젯밤에 기침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엔 이상하게도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통화 내용을 들은 옆집 아이가 거실로 잠자리를 옮긴 겁니다.

옆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옆집 주민 B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처음엔 우리 집만 소음에 시달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 부모님이 벽간 소음에 시달린다고 말하는 통화 내용을 안방에서 듣게 됐고, 옆집도 사정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그러면서 "밤이 되면 A 씨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시공사 묵묵부답" vs "피해 사례 현장 조사가 먼저"

두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이 '벽간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시공사의 부실공사 때문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실제로 2018년 초, 주민 16가구는 시공사에 벽간 소음 피해 상황을 알리고 보수공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에는 시공사에 벽간 소음 피해를 접수시키라는 안내문이 붙으면서 유사 피해 신고가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최근까지는 이렇다할 시공사의 조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B 씨가 시공사에 문의하자, 피해 접수 사례가 너무 많아 직접 현장 조사를 한 뒤 결정하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시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시공사 담당자는 이달 초 아파트로 찾아와 '옆집과 대화가 가능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렇지만 '건축상 하자가 있다'고 공식 인정하지 않고, "주민들의 민원을 상부에 전달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떠났습니다.

취재진은 시공사 측에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시공사 측은 "피해가 접수된 세대 전체를 조사하고 문제가 확인된 세대를 한꺼번에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라며 "시간이 걸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초기에 피해를 접수한 세대에 대해서는 보수를 완료했다"며 "앞으로도 피해가 인정이 된다면 보수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실공사 가능성에 대해 시공사 측은 "소음을 느끼는 건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시공상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 "벽간 소음을 인정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마련돼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부 가구에 대해 보수 공사를 진행해놓고, 이제 와서 '시공상의 문제라고 단언하긴 어렵다'는 답변은 궁색합니다.

지난해 층간소음 약 3만 건…"부실시공 가능성 높아"

당연히 이 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일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겁니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벽간 소음 포함) 상담접수 건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무려 28,231건이 접수되기도 했습니다. 이 중 벽간 소음에 대한 통계가 따로 분류돼 있진 않습니다.

정부도 층간, 벽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책을 마련하긴 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층간소음을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인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구조에 대한 사전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벽간 소음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소음의 원인이 생활 습관보다는 부실시공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세대 간 벽 사이에 넣는 단열재가 소리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단열재 양이 부족하거나 성능이 떨어질 경우 소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5월 감사원이 발표한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감사원은 층간소음 기준이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층간소음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조사 결과 조사 대상의 60%에 해당하는 114세대가 최소 성능기준에도 미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당해본 사람만 안다는 '층간·벽간' 소음 문제. 이웃끼리 서로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죠. 생활 소음이 이웃집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건설사들이 '제대로 짓는 것'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 KBS는 '벽간소음'과 관련해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으로나, 카카오톡에서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보내실 수 있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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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집과 대화가 된다?…‘벽간 소음’에 뿔난 주민들
    • 입력 2019-12-25 08:00:41
    취재K
'쿵쿵쿵' 천장을 울리는 층간소음, 생각만으로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고질적인 층간소음은 말다툼과 보복성 소음, 폭력 사건으로까지 번지기도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젠 옆집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른바 '벽간 소음' 때문입니다. 벽을 타고 옆집의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린다며 벽간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내 공간을 방해하는 층간·벽간 소음 피해 사례는 각양각색입니다.

KBS에도 이런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제보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는데요. 도대체 얼마나 심하기에 이런 호소를 하는 걸까요?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옆집 통화 내용도 들려요"…이 정도면 두 지붕 한 가족?

제보자 A 씨의 부모님은 경기도의 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A 씨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난해 지어진 유명 건설사의 아파트인데, 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 집 안방끼리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제보자의 요청으로 이 건설사의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A 씨 부모님은 이사 온 뒤부터 '본의아니게' 옆집과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옆집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 전화벨소리, 기침 소리까지 실시간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옆집 아이가 밤새 기침을 한 다음날, A 씨 어머니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어젯밤에 기침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엔 이상하게도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통화 내용을 들은 옆집 아이가 거실로 잠자리를 옮긴 겁니다.

옆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옆집 주민 B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처음엔 우리 집만 소음에 시달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 부모님이 벽간 소음에 시달린다고 말하는 통화 내용을 안방에서 듣게 됐고, 옆집도 사정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그러면서 "밤이 되면 A 씨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시공사 묵묵부답" vs "피해 사례 현장 조사가 먼저"

두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이 '벽간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시공사의 부실공사 때문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실제로 2018년 초, 주민 16가구는 시공사에 벽간 소음 피해 상황을 알리고 보수공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에는 시공사에 벽간 소음 피해를 접수시키라는 안내문이 붙으면서 유사 피해 신고가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최근까지는 이렇다할 시공사의 조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B 씨가 시공사에 문의하자, 피해 접수 사례가 너무 많아 직접 현장 조사를 한 뒤 결정하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시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시공사 담당자는 이달 초 아파트로 찾아와 '옆집과 대화가 가능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렇지만 '건축상 하자가 있다'고 공식 인정하지 않고, "주민들의 민원을 상부에 전달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떠났습니다.

취재진은 시공사 측에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시공사 측은 "피해가 접수된 세대 전체를 조사하고 문제가 확인된 세대를 한꺼번에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라며 "시간이 걸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초기에 피해를 접수한 세대에 대해서는 보수를 완료했다"며 "앞으로도 피해가 인정이 된다면 보수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실공사 가능성에 대해 시공사 측은 "소음을 느끼는 건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시공상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 "벽간 소음을 인정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마련돼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부 가구에 대해 보수 공사를 진행해놓고, 이제 와서 '시공상의 문제라고 단언하긴 어렵다'는 답변은 궁색합니다.

지난해 층간소음 약 3만 건…"부실시공 가능성 높아"

당연히 이 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일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겁니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벽간 소음 포함) 상담접수 건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무려 28,231건이 접수되기도 했습니다. 이 중 벽간 소음에 대한 통계가 따로 분류돼 있진 않습니다.

정부도 층간, 벽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책을 마련하긴 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층간소음을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인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구조에 대한 사전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벽간 소음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소음의 원인이 생활 습관보다는 부실시공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세대 간 벽 사이에 넣는 단열재가 소리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단열재 양이 부족하거나 성능이 떨어질 경우 소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5월 감사원이 발표한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감사원은 층간소음 기준이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층간소음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조사 결과 조사 대상의 60%에 해당하는 114세대가 최소 성능기준에도 미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당해본 사람만 안다는 '층간·벽간' 소음 문제. 이웃끼리 서로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죠. 생활 소음이 이웃집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건설사들이 '제대로 짓는 것'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 KBS는 '벽간소음'과 관련해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으로나, 카카오톡에서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보내실 수 있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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