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게 의미 없어요”…강남역 8번출구 25m 고공농성 ‘200일’

입력 2019.12.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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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좀 무딘 거 같아요. 날짜란 게.... 시간 가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1년이나 하루나 똑같아요. 마음의 변화는 크게 없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 왕복 8차선대로, 지상에서 25m 떨어진 교통관제탑 꼭대기에서 200번째 아침을 맞이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말입니다.

26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머물고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 교통관제탑.26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머물고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 교통관제탑.

1991년 삼성테크윈 해고..정년 한 달 남기고 고공농성 돌입

1982년 삼성항공(옛 삼성테크윈)에 입사한 김 씨는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1991년 해고됐습니다.

김 씨는 94년 삼성종합건설에 입사했다가 1년 만에 퇴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그는 삼성이 삼성테크윈 복직을 약속하며 삼성종합건설에서 잠시 일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후 꾸준히 복직 투쟁을 해오다 만 60세 정년을 한 달 앞둔 지난 6월 10일, 김 씨는 '삼성 측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안에는 끝날 것을 기대했던 고공농성은 김 씨의 정년을 지나고도 다섯 달을 더해 200일이 됐습니다.

지난 21일 교통 관제탑 위에서 발언하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지난 21일 교통 관제탑 위에서 발언하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

"잠잘 때 다리 한 번 펴고 잤으면...."

200일간 지상에서 25m 떨어진 지름 1.5m 크기의 원형 관제탑 위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잠자리에서 다리 한번 펴보고 싶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름에는 잘 때 관제탑 바깥으로 다리를 뻗어서라도 다리를 펼 수가 있었는데, 겨울이 되니 추위 때문에 그의 키보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야 할 수밖에 없어 힘들다는 겁니다.

김 씨는 화재위험 등으로 인해 전열 기구 사용도 자제하고, 핫팩과 내복으로 한겨울 추위를 버티고 있습니다. 밤이 길어지고, 움직이지 못하고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예전과 달리 폐소공포증 증상이 나타나 밤에 잘 때 외투도 못 입고 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가 되기를 고대했다고도 했습니다.

'복직 문제 얘기 어렵다는 삼성' VS "해결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

김 씨가 고공에서 200일을 보내는 사이 법원은 삼성 임원진 등에 대해 계열사들이 노조 와해를 기획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재판에서 삼성전자 서비스 노조 와해를 계획한 혐의 등으로 이사회 의장과 부사장이 법정 구속된 겁니다.

삼성은 이에 대해 "노사 문제로 많은 분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며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노조 와해 기획 등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지칭해 사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 해고 노동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씨에 대한 삼성의 입장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삼성 측은 김 씨가 다녔던 회사는 이미 매각돼 계열사가 아니므로 복직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삼성이 복직을 결정해도 올해로 만 60세가 된 김 씨는 이미 해당 기업에서의 정년이 지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김 씨가 원하는 것은 삼성의 공개사과와 명예복직입니다.

김 씨는 "삼성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면서 "삼성 측이 사과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있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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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가는 게 의미 없어요”…강남역 8번출구 25m 고공농성 ‘200일’
    • 입력 2019-12-26 15:44:52
    취재K
"이제는 좀 무딘 거 같아요. 날짜란 게.... 시간 가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1년이나 하루나 똑같아요. 마음의 변화는 크게 없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 왕복 8차선대로, 지상에서 25m 떨어진 교통관제탑 꼭대기에서 200번째 아침을 맞이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말입니다.

26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머물고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 교통관제탑.
1991년 삼성테크윈 해고..정년 한 달 남기고 고공농성 돌입

1982년 삼성항공(옛 삼성테크윈)에 입사한 김 씨는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1991년 해고됐습니다.

김 씨는 94년 삼성종합건설에 입사했다가 1년 만에 퇴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그는 삼성이 삼성테크윈 복직을 약속하며 삼성종합건설에서 잠시 일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후 꾸준히 복직 투쟁을 해오다 만 60세 정년을 한 달 앞둔 지난 6월 10일, 김 씨는 '삼성 측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안에는 끝날 것을 기대했던 고공농성은 김 씨의 정년을 지나고도 다섯 달을 더해 200일이 됐습니다.

지난 21일 교통 관제탑 위에서 발언하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
"잠잘 때 다리 한 번 펴고 잤으면...."

200일간 지상에서 25m 떨어진 지름 1.5m 크기의 원형 관제탑 위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잠자리에서 다리 한번 펴보고 싶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름에는 잘 때 관제탑 바깥으로 다리를 뻗어서라도 다리를 펼 수가 있었는데, 겨울이 되니 추위 때문에 그의 키보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야 할 수밖에 없어 힘들다는 겁니다.

김 씨는 화재위험 등으로 인해 전열 기구 사용도 자제하고, 핫팩과 내복으로 한겨울 추위를 버티고 있습니다. 밤이 길어지고, 움직이지 못하고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예전과 달리 폐소공포증 증상이 나타나 밤에 잘 때 외투도 못 입고 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가 되기를 고대했다고도 했습니다.

'복직 문제 얘기 어렵다는 삼성' VS "해결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

김 씨가 고공에서 200일을 보내는 사이 법원은 삼성 임원진 등에 대해 계열사들이 노조 와해를 기획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재판에서 삼성전자 서비스 노조 와해를 계획한 혐의 등으로 이사회 의장과 부사장이 법정 구속된 겁니다.

삼성은 이에 대해 "노사 문제로 많은 분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며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노조 와해 기획 등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지칭해 사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 해고 노동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씨에 대한 삼성의 입장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삼성 측은 김 씨가 다녔던 회사는 이미 매각돼 계열사가 아니므로 복직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삼성이 복직을 결정해도 올해로 만 60세가 된 김 씨는 이미 해당 기업에서의 정년이 지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김 씨가 원하는 것은 삼성의 공개사과와 명예복직입니다.

김 씨는 "삼성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면서 "삼성 측이 사과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있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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