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법정에 선 전직 기무사 ‘넘버 2’…그는 말이 없었다

입력 2019.12.26 (17:39) 수정 2019.12.2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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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형 선고에 고개 떨군 투스타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보석 결정은 취소한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법정에서 재판장이 별 두 개짜리 견장을 단 2스타 장군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군복을 입고 있던 장군은 실형 선고를 예상하지 못한 듯 고개를 흔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법정에 선 피고인은 기무사령관, 참모장 등과 공모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수개월 간 옛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이었다.

징역 1년의 실형에 보석 결정까지 취소됨에 따라 곧바로 구치소에 수감될 소 전 참모장에게 재판장은 '수감되기 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며 마지막 발언 기회를 줬다.

재판장과 변호인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기만 할 뿐,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소 전 참모장은 어렵게 입을 뗐다. "집행유예 아닌가요?" 재판장은 곧바로 "실형입니다"라고 답했고, 소 전 참모장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뱉은 뒤 뭔가를 말하려는 듯 계속 몸을 들썩였지만 끝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군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에서 '넘버 2'인 참모장까지 올라갔던 소 전 참모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세월호 유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했던 기무사

재판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전남지역을 담당하는 610기무부대장(대령)이었던 소 전 참모장이 군 관련 첩보의 수집을 명할 수 있는 직무상의 권한을 이용해 그 휘하의 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옛 국군기무사령부옛 국군기무사령부

이에 대해 소 전 참모장 측은 "기무부대원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동향을 살핀 것"이라며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도 "군의 인원과 장비 등이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된 사실이 인정되고, 유가족의 요구사항 관련 정보는 군 관련 임무 수행에 필요한 것"이라며 세월호 유가족 요구사항을 파악할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소 전 참모장의 부대원들이 군의 작전과 무관한 유가족들의 불필요한 동향까지 폭넓게 수집했다고 판단했다. 기무부대원들이 진도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에 상주하면서 실종자가 쓰러지거나 오열하고 언론 취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동향을 파악하는가 하면, 시시콜콜한 대화 내용까지 청취해 보고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세월호 참사 당시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꾸려졌고, 군과 해경에서 공식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 등을 청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유족들의 의견 청취를 위한 활동이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지휘부의 지휘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는 소 전 참모장 측 항변 역시 법원에 제시된 증거와 증언 등을 볼 때,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소 전 참모장이 세월호 참사 직후 2주 동안 퇴근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상황과 관련된 각종 업무를 총괄했고, 특히 기무부대원들에게 '만일의 경우 세월호 실종자 가족인 것처럼 행세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 등을 결재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관련 기무부대의 활동을 꼼꼼하게 알았음에도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고 보고서를 계속 승인·결재하는 등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처음부터 소 전 참모장이 세월호 관련 특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군인의 의무 저버렸다"

재판부는 소 전 참모장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지시 행위는 국군기무사령부령이 정한 기무사령부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기무사가 작성한 세월호 유가족 사찰 문건기무사가 작성한 세월호 유가족 사찰 문건

특히 "국민은 국가 기관에 의해 동향이 수집돼 상부에 보고될 거란 걱정 없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며 "국가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슬픔에 빠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를 비방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 조직적으로 사찰한 것은 범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의 의무를 저버렸고, 부대원들이나 기무사령부 지휘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며 소 전 참모장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소 전 참모장과 같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육군 준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처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지역을 담당하는 310기무부대장(대령) 자리에 있으면서 기무사령관, 참모장 등과 공모해 세월호 참사 다음 날부터 수개월 간 기무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와 함께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등을 위해 방첩 활동에 사용되는 기동방탐차량과 작전통신보안장비로 민간인들의 전기통신 내용을 불법 감청한 혐의로 기소된 기무사 간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이 선고됐다.

"어떻게 군법이 깃털처럼 가벼울 수 있나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사건 1심 판결' 결과에 아쉬움이 많아 보였다. 노란 패딩을 입고 단체로 군사법원을 찾은 유가족들은 재판부가 소 전 참모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자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누군가는 "어떻게 군법이 깃털처럼 가벼울 수 있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군사법원에서 나오는 세월호 유가족들. 2019.12.24군사법원에서 나오는 세월호 유가족들. 2019.12.24

세월호 유가족인 문종택(故 문지성 양 아버지)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명령에 누구보다도 충실해야 할 군 조직이면, 법을 어겼을 때는 그만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게 맞지 않느냐"며 "군법이 민간 법보다 엄격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문 씨는 끝내 사과 한마디 없던 소 전 참모장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그렇게 (말할) 기회를 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많이 오셨는데, 그의 주장대로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어찌 됐건 기무사 부대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점에 대해 '백번 사죄드립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 전 참모장이) 징역 1년을 받고 억울해서 부들부들 떨던데, 그걸 본 내가 더 부들부들 떨려서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한참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 그의 휴대 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지금 (오후) 4시 16분이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휴대 전화에 4시 16분에 맞춰 알람을 해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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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법정에 선 전직 기무사 ‘넘버 2’…그는 말이 없었다
    • 입력 2019-12-26 17:39:27
    • 수정2019-12-26 17:39:37
    취재후·사건후
실형 선고에 고개 떨군 투스타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보석 결정은 취소한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법정에서 재판장이 별 두 개짜리 견장을 단 2스타 장군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군복을 입고 있던 장군은 실형 선고를 예상하지 못한 듯 고개를 흔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법정에 선 피고인은 기무사령관, 참모장 등과 공모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수개월 간 옛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이었다.

징역 1년의 실형에 보석 결정까지 취소됨에 따라 곧바로 구치소에 수감될 소 전 참모장에게 재판장은 '수감되기 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며 마지막 발언 기회를 줬다.

재판장과 변호인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기만 할 뿐,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소 전 참모장은 어렵게 입을 뗐다. "집행유예 아닌가요?" 재판장은 곧바로 "실형입니다"라고 답했고, 소 전 참모장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뱉은 뒤 뭔가를 말하려는 듯 계속 몸을 들썩였지만 끝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군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에서 '넘버 2'인 참모장까지 올라갔던 소 전 참모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세월호 유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했던 기무사

재판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전남지역을 담당하는 610기무부대장(대령)이었던 소 전 참모장이 군 관련 첩보의 수집을 명할 수 있는 직무상의 권한을 이용해 그 휘하의 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이에 대해 소 전 참모장 측은 "기무부대원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동향을 살핀 것"이라며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도 "군의 인원과 장비 등이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된 사실이 인정되고, 유가족의 요구사항 관련 정보는 군 관련 임무 수행에 필요한 것"이라며 세월호 유가족 요구사항을 파악할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소 전 참모장의 부대원들이 군의 작전과 무관한 유가족들의 불필요한 동향까지 폭넓게 수집했다고 판단했다. 기무부대원들이 진도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에 상주하면서 실종자가 쓰러지거나 오열하고 언론 취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동향을 파악하는가 하면, 시시콜콜한 대화 내용까지 청취해 보고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세월호 참사 당시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꾸려졌고, 군과 해경에서 공식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 등을 청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유족들의 의견 청취를 위한 활동이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지휘부의 지휘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는 소 전 참모장 측 항변 역시 법원에 제시된 증거와 증언 등을 볼 때,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소 전 참모장이 세월호 참사 직후 2주 동안 퇴근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상황과 관련된 각종 업무를 총괄했고, 특히 기무부대원들에게 '만일의 경우 세월호 실종자 가족인 것처럼 행세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 등을 결재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관련 기무부대의 활동을 꼼꼼하게 알았음에도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고 보고서를 계속 승인·결재하는 등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처음부터 소 전 참모장이 세월호 관련 특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군인의 의무 저버렸다"

재판부는 소 전 참모장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지시 행위는 국군기무사령부령이 정한 기무사령부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기무사가 작성한 세월호 유가족 사찰 문건
특히 "국민은 국가 기관에 의해 동향이 수집돼 상부에 보고될 거란 걱정 없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며 "국가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슬픔에 빠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를 비방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 조직적으로 사찰한 것은 범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의 의무를 저버렸고, 부대원들이나 기무사령부 지휘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며 소 전 참모장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소 전 참모장과 같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육군 준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처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지역을 담당하는 310기무부대장(대령) 자리에 있으면서 기무사령관, 참모장 등과 공모해 세월호 참사 다음 날부터 수개월 간 기무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와 함께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등을 위해 방첩 활동에 사용되는 기동방탐차량과 작전통신보안장비로 민간인들의 전기통신 내용을 불법 감청한 혐의로 기소된 기무사 간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이 선고됐다.

"어떻게 군법이 깃털처럼 가벼울 수 있나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사건 1심 판결' 결과에 아쉬움이 많아 보였다. 노란 패딩을 입고 단체로 군사법원을 찾은 유가족들은 재판부가 소 전 참모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자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누군가는 "어떻게 군법이 깃털처럼 가벼울 수 있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군사법원에서 나오는 세월호 유가족들. 2019.12.24
세월호 유가족인 문종택(故 문지성 양 아버지)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명령에 누구보다도 충실해야 할 군 조직이면, 법을 어겼을 때는 그만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게 맞지 않느냐"며 "군법이 민간 법보다 엄격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문 씨는 끝내 사과 한마디 없던 소 전 참모장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그렇게 (말할) 기회를 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많이 오셨는데, 그의 주장대로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어찌 됐건 기무사 부대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점에 대해 '백번 사죄드립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 전 참모장이) 징역 1년을 받고 억울해서 부들부들 떨던데, 그걸 본 내가 더 부들부들 떨려서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한참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 그의 휴대 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지금 (오후) 4시 16분이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휴대 전화에 4시 16분에 맞춰 알람을 해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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