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망 담은 풍선, 바닷새를 죽음으로 내몬다?

입력 2020.01.03 (10:01) 수정 2020.01.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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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열린 ‘2020년 일출제’ 행사. 관광객들이 일제히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함덕리사무소]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열린 ‘2020년 일출제’ 행사. 관광객들이 일제히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함덕리사무소]

"하늘로 날린 풍선, 과연 어디로 갈까요?"

수십 개의 풍선이 하늘로 떠오릅니다. 1월 1일, 새해 소망을 담아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을 찾은 관광객과 제주도민들이 날린 풍선입니다. 새해 첫해가 떠오른 오전 7시 20분쯤부터 10분 동안 하늘로 날아간 풍선은 무려 천 개에 달합니다.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가 올린 게시글. 연예인 윤세아 씨도 게시글을 공유하며 우려를 나타냈다.[사진 출처 :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동물권 행동단체 ‘카라’가 올린 게시글. 연예인 윤세아 씨도 게시글을 공유하며 우려를 나타냈다.[사진 출처 :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

이 행사에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가 공개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처구니없고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며 어제 띄운 풍선을 모두 회수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연예인 윤세아 씨도 게시글을 공유하고, 행사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형형색색 한 풍선을 날리며 새해 소망을 비는 행사에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이유, 대체 뭘까요?

"풍선, 플라스틱보다 위험해"…죽어가는 바다 생물

동물보호단체가 우려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해양생태계 파괴'입니다. 바람이 빠져 물렁물렁한 형태로 쪼그라든 풍선 잔해를 바닷새들이 먹이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 신주운 팀장은 "바닷새나 거북이 같은 바다 생물들이 풍선 잔해를 삼켰을 경우 사망률이 40% 이상"이라며 "풍선의 얇은 고무가 위벽에 달라붙거나 기도를 막고, 합병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그 심각성을 설명했습니다.

또 "제주 남방큰돌고래처럼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생물들은 한 번 풍선을 먹는다고 죽진 않지만, 풍선 잔해들이 쌓이고 쌓이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동물들, 점점 줄어가는 해양동물 개체 수를 보며 인간인 우리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해양 및 남극학연구소 연구 결과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해양 및 남극학연구소 연구 결과

풍선이 플라스틱보다 해양 생물들에 더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산하 해양 및 남극학연구소(IMAS)와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가 지난해 3월 발표한 공동연구를 보면, 풍선과 풍선 잔해들은 해양 쓰레기 가운데 바닷새를 죽음으로 내몰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풍선처럼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연성 플라스틱은 바닷새들이 삼키는 해양 쓰레기의 5%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걸 삼켰을 경우 다섯 중 하나는 죽음에 이른다고 하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단 바닷새뿐만이 아닙니다. 바다 거북이도 풍선 같은 연성 플라스틱들을 먹으면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연구 결과입니다.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사진 출처 : 함덕리사무소]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사진 출처 : 함덕리사무소]

"관광객들 어떻게 유인할 겁니까?"…마을 경제에 직격탄 우려

몇 차례 전화를 돌린 끝에 담당자와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시에서 열린 행사였지만 제주시는 어떤 일이 어디에서 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주시 조천읍사무소에 연락했지만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함덕리 사무소와 통화한 끝에 행사 주최 측인 함덕리 이장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일출제가 열린 지 올해로 20주년. 풍선 날리기 행사를 진행한 지는 5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방문객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습니다.

함명용 이장은 "그동안 행사를 진행하면서 '풍선 잔해를 어떻게 처리할 거냐' 등의 지적은 받아보지 못했다"며 "일단 이런 지적이 나왔으니, 풍선 개수를 줄이든 행사 자체를 중단하든 여러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타격 입을 마을 경제가 걱정된다는 게 함 이장의 설명입니다. 올해 함덕 서우봉 해변 일출제를 찾은 관광객은 1,500여 명. 아무런 행사 없이 이만한 관광객들이 함덕 서우봉 해변을 찾겠느냐고 그는 토로했습니다.

함 이장은 "제주 경제가 안 좋다고 난리지만 관광객 1,500명만 오더라도 주변 숙소며 식당, 기념품 가게 등 마을 경제가 활성화된다"며 "풍선 날리기 행사가 환경을 파괴한다며 우릴 매도만 할 게 아니라 마을 경제에 미칠 타격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터진 풍선 줄로 목숨을 잃거나, 풍선 끈에 발이 묶인 새 [사진 출처 : 경기도]터진 풍선 줄로 목숨을 잃거나, 풍선 끈에 발이 묶인 새 [사진 출처 : 경기도]

풍선 날리기 보이콧한 경기도…제주도의 선택은?

경기도는 지난해 연말 행사에서 풍선 날리기 행사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경기도 내 시군과 산하기관은 물론, 경기도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들도 이러한 행사를 개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경기도는 "헬륨 풍선의 경우 공기보다 가벼워 멀리 날아가 행사를 마친 뒤 수거하기가 어렵고, 자연 분해되는 데도 최대 20년이 걸린다"며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격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지브롤터 등 선진국들은 풍선 날리기 행사를 금지하는 만큼, 관련법을 제정하자는 제안도 환경부에 제시했습니다. 관련법 제정이 어렵다면 풍선 날리기 행사를 금지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이자는 의견도 덧붙였지만, 아직 답은 받지 못했다고 경기도는 밝혔습니다.

제주는 물론, 여러 지자체가 올해도 풍선 날리기 행사들을 열었습니다. 여기에 동물권행동단체 카라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국 지자체들의 유사한 행사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각 지자체에 풍선 잔해 회수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친환경 섬, 제주도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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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소망 담은 풍선, 바닷새를 죽음으로 내몬다?
    • 입력 2020-01-03 10:01:45
    • 수정2020-01-03 15:03:13
    취재K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열린 ‘2020년 일출제’ 행사. 관광객들이 일제히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함덕리사무소]

"하늘로 날린 풍선, 과연 어디로 갈까요?"

수십 개의 풍선이 하늘로 떠오릅니다. 1월 1일, 새해 소망을 담아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을 찾은 관광객과 제주도민들이 날린 풍선입니다. 새해 첫해가 떠오른 오전 7시 20분쯤부터 10분 동안 하늘로 날아간 풍선은 무려 천 개에 달합니다.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가 올린 게시글. 연예인 윤세아 씨도 게시글을 공유하며 우려를 나타냈다.[사진 출처 :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
이 행사에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가 공개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처구니없고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며 어제 띄운 풍선을 모두 회수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연예인 윤세아 씨도 게시글을 공유하고, 행사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형형색색 한 풍선을 날리며 새해 소망을 비는 행사에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이유, 대체 뭘까요?

"풍선, 플라스틱보다 위험해"…죽어가는 바다 생물

동물보호단체가 우려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해양생태계 파괴'입니다. 바람이 빠져 물렁물렁한 형태로 쪼그라든 풍선 잔해를 바닷새들이 먹이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 신주운 팀장은 "바닷새나 거북이 같은 바다 생물들이 풍선 잔해를 삼켰을 경우 사망률이 40% 이상"이라며 "풍선의 얇은 고무가 위벽에 달라붙거나 기도를 막고, 합병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그 심각성을 설명했습니다.

또 "제주 남방큰돌고래처럼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생물들은 한 번 풍선을 먹는다고 죽진 않지만, 풍선 잔해들이 쌓이고 쌓이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동물들, 점점 줄어가는 해양동물 개체 수를 보며 인간인 우리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해양 및 남극학연구소 연구 결과
풍선이 플라스틱보다 해양 생물들에 더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산하 해양 및 남극학연구소(IMAS)와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가 지난해 3월 발표한 공동연구를 보면, 풍선과 풍선 잔해들은 해양 쓰레기 가운데 바닷새를 죽음으로 내몰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풍선처럼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연성 플라스틱은 바닷새들이 삼키는 해양 쓰레기의 5%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걸 삼켰을 경우 다섯 중 하나는 죽음에 이른다고 하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단 바닷새뿐만이 아닙니다. 바다 거북이도 풍선 같은 연성 플라스틱들을 먹으면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연구 결과입니다.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사진 출처 : 함덕리사무소]
"관광객들 어떻게 유인할 겁니까?"…마을 경제에 직격탄 우려

몇 차례 전화를 돌린 끝에 담당자와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시에서 열린 행사였지만 제주시는 어떤 일이 어디에서 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주시 조천읍사무소에 연락했지만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함덕리 사무소와 통화한 끝에 행사 주최 측인 함덕리 이장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일출제가 열린 지 올해로 20주년. 풍선 날리기 행사를 진행한 지는 5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방문객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습니다.

함명용 이장은 "그동안 행사를 진행하면서 '풍선 잔해를 어떻게 처리할 거냐' 등의 지적은 받아보지 못했다"며 "일단 이런 지적이 나왔으니, 풍선 개수를 줄이든 행사 자체를 중단하든 여러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타격 입을 마을 경제가 걱정된다는 게 함 이장의 설명입니다. 올해 함덕 서우봉 해변 일출제를 찾은 관광객은 1,500여 명. 아무런 행사 없이 이만한 관광객들이 함덕 서우봉 해변을 찾겠느냐고 그는 토로했습니다.

함 이장은 "제주 경제가 안 좋다고 난리지만 관광객 1,500명만 오더라도 주변 숙소며 식당, 기념품 가게 등 마을 경제가 활성화된다"며 "풍선 날리기 행사가 환경을 파괴한다며 우릴 매도만 할 게 아니라 마을 경제에 미칠 타격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터진 풍선 줄로 목숨을 잃거나, 풍선 끈에 발이 묶인 새 [사진 출처 : 경기도]
풍선 날리기 보이콧한 경기도…제주도의 선택은?

경기도는 지난해 연말 행사에서 풍선 날리기 행사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경기도 내 시군과 산하기관은 물론, 경기도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들도 이러한 행사를 개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경기도는 "헬륨 풍선의 경우 공기보다 가벼워 멀리 날아가 행사를 마친 뒤 수거하기가 어렵고, 자연 분해되는 데도 최대 20년이 걸린다"며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격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지브롤터 등 선진국들은 풍선 날리기 행사를 금지하는 만큼, 관련법을 제정하자는 제안도 환경부에 제시했습니다. 관련법 제정이 어렵다면 풍선 날리기 행사를 금지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이자는 의견도 덧붙였지만, 아직 답은 받지 못했다고 경기도는 밝혔습니다.

제주는 물론, 여러 지자체가 올해도 풍선 날리기 행사들을 열었습니다. 여기에 동물권행동단체 카라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국 지자체들의 유사한 행사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각 지자체에 풍선 잔해 회수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친환경 섬, 제주도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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