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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태석 신부 10주기…‘울지마 톤즈’의 후예들
입력 2020.01.14 (08:13) 수정 2020.01.14 (13:20) 아침뉴스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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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따뜻한 미소, 기억나실 겁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로 들어가 남김 없이 자신을 바쳤던 의사, 고 이태석 신부입니다.

오늘 14일은 고 이태석 신부의 열 번째 기일입니다.

아직도 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까닭에 오늘 그의 고향 부산에서는 이태석 기념관이 문을 엽니다.

영화 '울지마 톤즈'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그의 일대기죠,

이 영화의 시즌 2도 그의 10주기에 맞춰 지난 9일 개봉됐습니다.

부산의 판잣집,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다시 광주가톨릭대를 거쳐 사제 서품을 받습니다.

남수단 톤즈와 연을 맺은 건 1999년 그의 나이 36살 때입니다.

현지 신부의 안내로 오지 중 오지인 톤즈를 가 보고 1주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상상으로도 떠올리기 힘들만큼 가난했고, 45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에 습기도 많아 외지인들이 머물기는 너무도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톤즈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왜 하필'이라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름다운 향기에 이끌려서...”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수녀들의 사랑, 자갈치 시장에서 고생하며 10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이 자신을 이끈 아름다운 향기라고 말했습니다.

톤즈로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전쟁과 전염병, 굶주림에 찌든 마을 주민들이 하루 2~3백 명씩 이곳을 찾았습니다.

남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딩카족 후예들이 사랑과 눈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수십 년 내전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총칼 대신 악기를 들게 했습니다.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로 끝나는 성가 '묵상’을 중학교 3학년 때 작사·작곡했을 만큼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되살려 남수단 초유의 35인조 밴드를 창단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낮은 곳에 사랑을 쏟느라 정작 자기 몸에 암세포가 퍼지는 줄은 몰랐습니다.

2008년 한국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던 그 순간에도 현지에서 파다 만 우물을 걱정했습니다.

[故 이태석/신부 : "집도 없었고, 아이들도 다 헐벗고 다니고, 굶는 아이들도 하루에 겨우 한 끼 먹는 애들도 많았었고..."]

이번에 개봉된 영화 울지마 톤즈2에는 그의 제자들 이른바 ‘톤즈의 후예’들이 등장합니다.

이태석 신부가 2008년 귀국해 투병하면서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자, 대신 톤즈의 아이들을 한국으로 불렀습니다.

대학에 보내 공부를 시키기로 한 겁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이 신부의 사동이었던 토마스 아콧입니다.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고, 2년 전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콧은 깊은 감사의 뜻으로 이 신부의 동상에 자신의 학사모를 씌웠습니다.

[토마스 타반 아콧 : "외과 공부를 하면서 레지던트 끝나고 나서 우리나라에 돌아가서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을 갖고 봉사 활동을 할 생각이 있습니다."]

영화 속 또 다른 등장 인물인 아순타 아조크는 앞서 보셨던 이태석 밴드 단원입니다.

이 신부의 도움으로 이화여대를 졸업한 아조크는 2012년 한국을 방문해 동료 단원 28명과 함께 이 신부의 묘소에 진혼곡을 바쳤습니다.

연주를 채 끝내기도 전 이 신부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흐느끼다 끝내 목 놓아 울어 주위를 숙연케 했습니다.

이 땅에서도 ‘제2의 이태석’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올해 ‘이태석 봉사상’을 받은 외과 의사 박세업 씨...15년째 몽골,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모리타니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07년 출범한 수단어린이장학회는 후원국을 확대해 동티모르 등 10여 개 나라를 지원합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태석 신부의 짧은 삶을 아쉬워하고 슬퍼합니다.

비극의 땅에서 사랑의 씨앗을 틔운 그의 삶은 수단 교과서에 수록됐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마, 네 이웃을 위해 울어 줘"라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 역시, 책 속에 남아 그가 말한 아름다운 향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 故 이태석 신부 10주기…‘울지마 톤즈’의 후예들
    • 입력 2020-01-14 08:15:19
    • 수정2020-01-14 13:20:56
    아침뉴스타임
이 분의 따뜻한 미소, 기억나실 겁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로 들어가 남김 없이 자신을 바쳤던 의사, 고 이태석 신부입니다.

오늘 14일은 고 이태석 신부의 열 번째 기일입니다.

아직도 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까닭에 오늘 그의 고향 부산에서는 이태석 기념관이 문을 엽니다.

영화 '울지마 톤즈'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그의 일대기죠,

이 영화의 시즌 2도 그의 10주기에 맞춰 지난 9일 개봉됐습니다.

부산의 판잣집,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다시 광주가톨릭대를 거쳐 사제 서품을 받습니다.

남수단 톤즈와 연을 맺은 건 1999년 그의 나이 36살 때입니다.

현지 신부의 안내로 오지 중 오지인 톤즈를 가 보고 1주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상상으로도 떠올리기 힘들만큼 가난했고, 45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에 습기도 많아 외지인들이 머물기는 너무도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톤즈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왜 하필'이라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름다운 향기에 이끌려서...”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수녀들의 사랑, 자갈치 시장에서 고생하며 10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이 자신을 이끈 아름다운 향기라고 말했습니다.

톤즈로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전쟁과 전염병, 굶주림에 찌든 마을 주민들이 하루 2~3백 명씩 이곳을 찾았습니다.

남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딩카족 후예들이 사랑과 눈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수십 년 내전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총칼 대신 악기를 들게 했습니다.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로 끝나는 성가 '묵상’을 중학교 3학년 때 작사·작곡했을 만큼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되살려 남수단 초유의 35인조 밴드를 창단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낮은 곳에 사랑을 쏟느라 정작 자기 몸에 암세포가 퍼지는 줄은 몰랐습니다.

2008년 한국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던 그 순간에도 현지에서 파다 만 우물을 걱정했습니다.

[故 이태석/신부 : "집도 없었고, 아이들도 다 헐벗고 다니고, 굶는 아이들도 하루에 겨우 한 끼 먹는 애들도 많았었고..."]

이번에 개봉된 영화 울지마 톤즈2에는 그의 제자들 이른바 ‘톤즈의 후예’들이 등장합니다.

이태석 신부가 2008년 귀국해 투병하면서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자, 대신 톤즈의 아이들을 한국으로 불렀습니다.

대학에 보내 공부를 시키기로 한 겁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이 신부의 사동이었던 토마스 아콧입니다.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고, 2년 전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콧은 깊은 감사의 뜻으로 이 신부의 동상에 자신의 학사모를 씌웠습니다.

[토마스 타반 아콧 : "외과 공부를 하면서 레지던트 끝나고 나서 우리나라에 돌아가서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을 갖고 봉사 활동을 할 생각이 있습니다."]

영화 속 또 다른 등장 인물인 아순타 아조크는 앞서 보셨던 이태석 밴드 단원입니다.

이 신부의 도움으로 이화여대를 졸업한 아조크는 2012년 한국을 방문해 동료 단원 28명과 함께 이 신부의 묘소에 진혼곡을 바쳤습니다.

연주를 채 끝내기도 전 이 신부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흐느끼다 끝내 목 놓아 울어 주위를 숙연케 했습니다.

이 땅에서도 ‘제2의 이태석’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올해 ‘이태석 봉사상’을 받은 외과 의사 박세업 씨...15년째 몽골,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모리타니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07년 출범한 수단어린이장학회는 후원국을 확대해 동티모르 등 10여 개 나라를 지원합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태석 신부의 짧은 삶을 아쉬워하고 슬퍼합니다.

비극의 땅에서 사랑의 씨앗을 틔운 그의 삶은 수단 교과서에 수록됐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마, 네 이웃을 위해 울어 줘"라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 역시, 책 속에 남아 그가 말한 아름다운 향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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