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들여 장착한 매연저감장치…현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입력 2020.01.19 (10:20) 수정 2020.01.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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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레미콘 회사로 트럭이 연기를 내며 들어가고 있다.

경기도의 한 레미콘 회사로 트럭이 연기를 내며 들어가고 있다.

"매연저감장치 때문에 일을 못 하겠어요."

경기도의 한 레미콘 회사를 찾았습니다. 레미콘 트럭 수십 대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대략 10분의 1은 매연저감장치를 단 차량입니다. 그런데 기사들은 하나같이 저감장치가 골칫거리라고 얘기합니다.

"2018년에 업체에서 나와서 이걸 달라고, 정부에서 비용은 다 지원해 준다고 해서 달았어요. 매연을 줄여 준다고 하니까 얼른 달았죠.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니까 연기가 더 많이 나오더라고요. 하얀 연기가 무슨 연막탄 터진 것처럼 나와요. 그러면 뒤에 차들이 빵빵거리고, 사진 찍어서 구청에 신고해 버리고. 제가 그것 때문에 구청에 몇 번을 다녀왔어요. AS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고치고 고쳐도 문제는 계속 반복이에요."

"하얀 연기가 하루에도 여러 번 터져요. 냄새도 많이 나고. 그러니까 어디 일을 가면 매연 나온다고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니까 공사장에서 다음부터는 일 나오지 말라고."


일반 경유차보다 19배 미세먼지 내뿜는 노후 건설기계일반 경유차보다 19배 미세먼지 내뿜는 노후 건설기계

'미세먼지 폭탄' 노후 건설기계

노후 건설기계는 일반 경유차보다 미세먼지를 19배나 내뿜습니다. 노후 건설기계 저감조치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부는 노후 건설기계를 조기 폐차할 경우 한 대당 최대 3천만 원을, 매연저감장치 장착에는 비용 전액인 천백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워낙 고가다 보니 조기 폐차보다 저감장치를 다는 운전자들이 많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지금까지 2천4백여 대가 저감장치를 달았고, 260억 원 이상이 투입됐습니다.

"저감장치 안 달려고 집단행동하는 것 아냐?"

저감장치는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걸러 줍니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만큼, 차량 연비나 출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레미콘· 펌프 트럭 기사들은 그것만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짙은 연기와 잦은 고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민원이 잇따르자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현장 점검을 나갔습니다. 레미콘 회사 세 군데를 방문해 현장에서 저감장치를 단 차량 8대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8대 중 6대는 저감장치가 고장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환경부는 8대 모두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는 정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레미콘 트럭 기사들은 현장에서 고장 난 장치를 고친 후 측정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후 건설기계에 장착된 매연저감장치노후 건설기계에 장착된 매연저감장치

건설기계에 고장 잦은 이유는?

건설기계에서 특히 연기나 고장이 잦은 이유는 뭘까요? 운행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매연저감장치는 고속으로 일정 시간 이상을 달려 줘야 필터에 남아 있는 재를 태워 없애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저속으로 짧은 거리만 왔다 갔다 하는 건설기계 운행 특성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를 없애는 과정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다 보니 여러 가지 고장이 발생하고 강제로 재를 태우는 과정에서 하얀 연기가 배출되기도 하는 겁니다.


장착만 하면 미세먼지 뚝…? 실제로 저감 효과를 내고 있을까

이런 문제가 잇따르면 결국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원래 목적 달성도 어렵게 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연기 나고 고장 나는 저감장치를 떼어 버리겠다는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레미콘 트럭 기사 A 씨는 공사장 출입 금지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매연저감장치를 떼어 냈다레미콘 트럭 기사 A 씨는 공사장 출입 금지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매연저감장치를 떼어 냈다

레미콘 트럭 기사 A 씨는 지난달 말 저감장치를 떼어 냈습니다. 구청에 탈거 신고까지 마쳤습니다. 수시로 나오는 연기 때문에 AS 기사를 수십 번 불렀다고 합니다. 나아지는 건 없었습니다. 올해부턴 수도권 대형 공사장에 들어가려면 저감장치가 장착돼 있어야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일감을 놓치더라도 저감장치를 떼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이전부터 저감장치는 작동이 안 되고 있었습니다. 고장이 나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응급조치를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전선을 떼어내서 기계를 멈추게 하라"고 알려줬다는 겁니다.

또 다른 기사는 저감장치를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떼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조작해서 작동이 안 되게 해 주는 기술자도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저감장치 보급 대수가 늘어나는 만큼 미세먼지가 줄고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저감장치 사후 관리·대안 마련해야…. 조기폐차 유도 등 강력한 조치 필요

건설기계 기사들은 현재의 저감장치로는 문제가 계속 생길 거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장치를 개발하든지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환경부는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저감장치 외에 대안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AS 등 사후 관리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관리가 힘든 저감장치보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큰 조기 폐차를 확대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창현 국회 환노위원은 "개정된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저감장치를 임의로 탈거하거나 훼손하는 경우 처벌받게 된다"며, "운전자들의 주장대로 기계에 문제가 있다면 빨리 기술적으로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필수 교수도 "유럽에서는 노후 건설기계의 미세먼지를 아주 심각하게 인식하고 아예 도심 진입을 못 하게 한다. 실질적인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는 효과가 있는 방법을 과감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감장치를 장착하고 나면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단속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줄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착 이후에 저감장치를 몰래 떼어 버리거나 무력화시켜도 환경 당국이나 자치단체가 이를 알아내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동차검사를 더욱 강화하고, 배출가스 단속을 늘리는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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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9 10:20:12
    • 수정2020-01-19 18:26:58
    취재K

경기도의 한 레미콘 회사로 트럭이 연기를 내며 들어가고 있다.

"매연저감장치 때문에 일을 못 하겠어요."

경기도의 한 레미콘 회사를 찾았습니다. 레미콘 트럭 수십 대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대략 10분의 1은 매연저감장치를 단 차량입니다. 그런데 기사들은 하나같이 저감장치가 골칫거리라고 얘기합니다.

"2018년에 업체에서 나와서 이걸 달라고, 정부에서 비용은 다 지원해 준다고 해서 달았어요. 매연을 줄여 준다고 하니까 얼른 달았죠.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니까 연기가 더 많이 나오더라고요. 하얀 연기가 무슨 연막탄 터진 것처럼 나와요. 그러면 뒤에 차들이 빵빵거리고, 사진 찍어서 구청에 신고해 버리고. 제가 그것 때문에 구청에 몇 번을 다녀왔어요. AS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고치고 고쳐도 문제는 계속 반복이에요."

"하얀 연기가 하루에도 여러 번 터져요. 냄새도 많이 나고. 그러니까 어디 일을 가면 매연 나온다고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니까 공사장에서 다음부터는 일 나오지 말라고."


일반 경유차보다 19배 미세먼지 내뿜는 노후 건설기계
'미세먼지 폭탄' 노후 건설기계

노후 건설기계는 일반 경유차보다 미세먼지를 19배나 내뿜습니다. 노후 건설기계 저감조치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부는 노후 건설기계를 조기 폐차할 경우 한 대당 최대 3천만 원을, 매연저감장치 장착에는 비용 전액인 천백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워낙 고가다 보니 조기 폐차보다 저감장치를 다는 운전자들이 많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지금까지 2천4백여 대가 저감장치를 달았고, 260억 원 이상이 투입됐습니다.

"저감장치 안 달려고 집단행동하는 것 아냐?"

저감장치는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걸러 줍니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만큼, 차량 연비나 출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레미콘· 펌프 트럭 기사들은 그것만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짙은 연기와 잦은 고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민원이 잇따르자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현장 점검을 나갔습니다. 레미콘 회사 세 군데를 방문해 현장에서 저감장치를 단 차량 8대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8대 중 6대는 저감장치가 고장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환경부는 8대 모두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는 정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레미콘 트럭 기사들은 현장에서 고장 난 장치를 고친 후 측정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후 건설기계에 장착된 매연저감장치
건설기계에 고장 잦은 이유는?

건설기계에서 특히 연기나 고장이 잦은 이유는 뭘까요? 운행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매연저감장치는 고속으로 일정 시간 이상을 달려 줘야 필터에 남아 있는 재를 태워 없애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저속으로 짧은 거리만 왔다 갔다 하는 건설기계 운행 특성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를 없애는 과정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다 보니 여러 가지 고장이 발생하고 강제로 재를 태우는 과정에서 하얀 연기가 배출되기도 하는 겁니다.


장착만 하면 미세먼지 뚝…? 실제로 저감 효과를 내고 있을까

이런 문제가 잇따르면 결국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원래 목적 달성도 어렵게 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연기 나고 고장 나는 저감장치를 떼어 버리겠다는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레미콘 트럭 기사 A 씨는 공사장 출입 금지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매연저감장치를 떼어 냈다
레미콘 트럭 기사 A 씨는 지난달 말 저감장치를 떼어 냈습니다. 구청에 탈거 신고까지 마쳤습니다. 수시로 나오는 연기 때문에 AS 기사를 수십 번 불렀다고 합니다. 나아지는 건 없었습니다. 올해부턴 수도권 대형 공사장에 들어가려면 저감장치가 장착돼 있어야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일감을 놓치더라도 저감장치를 떼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이전부터 저감장치는 작동이 안 되고 있었습니다. 고장이 나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응급조치를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전선을 떼어내서 기계를 멈추게 하라"고 알려줬다는 겁니다.

또 다른 기사는 저감장치를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떼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조작해서 작동이 안 되게 해 주는 기술자도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저감장치 보급 대수가 늘어나는 만큼 미세먼지가 줄고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저감장치 사후 관리·대안 마련해야…. 조기폐차 유도 등 강력한 조치 필요

건설기계 기사들은 현재의 저감장치로는 문제가 계속 생길 거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장치를 개발하든지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환경부는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저감장치 외에 대안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AS 등 사후 관리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관리가 힘든 저감장치보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큰 조기 폐차를 확대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창현 국회 환노위원은 "개정된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저감장치를 임의로 탈거하거나 훼손하는 경우 처벌받게 된다"며, "운전자들의 주장대로 기계에 문제가 있다면 빨리 기술적으로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필수 교수도 "유럽에서는 노후 건설기계의 미세먼지를 아주 심각하게 인식하고 아예 도심 진입을 못 하게 한다. 실질적인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는 효과가 있는 방법을 과감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감장치를 장착하고 나면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단속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줄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착 이후에 저감장치를 몰래 떼어 버리거나 무력화시켜도 환경 당국이나 자치단체가 이를 알아내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동차검사를 더욱 강화하고, 배출가스 단속을 늘리는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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