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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
입력 2020.01.20 (13:01) 취재K
20대는 모두 분노한다... 누가 ‘이남자’인가


‘이남자’, 그러니까 ‘20대 남성 보수화론’은 어쩌면 ‘88만 원 세대’ 이후 20대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전염성 강한’ 언어다. ‘일베’에 모여들고, 여성을 비하하며, 정치적으로 진보진영을 역겨워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면 ‘이남자’는 분명 문제적 현상이다.

“마땅히 진보적이어야 할 20대가 왜 60대처럼 보수적인가?” 혹은 “조국 국면에서 왜 명문대생들은 검찰 개혁이란 거악 대신 입시 부정이라는 작은 흠결만 보는가”라는 생각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이남자’의 인식은 왜곡돼있다.

어떤 이는 ‘반공 학교 교육’에서 원인을 찾는다. 보수 정권의 의식화 때문이란 의미다. ‘아버지의 재산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친여성’ 정책 기조가 거세진 데 따른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불만이란 분석도 있다.

‘세습 중산층 사회’는 이 ‘이남자’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이 책 '서평'으로 '이남자' 문제를 조명해본다

‘이남자’는 없다. 한국 자본주의 고도화에 따라 달라진 사회경제 구조가 있을 뿐

저자는 우선 ‘20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긴 했다’고는 본다. 그러나 그 ‘일’은 정치적 선동이나 임기제 정권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자체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회 경제적 하부구조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90년대생의 인식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남자’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남자’는 없다. 20대라는 연령은 너무나 이질적인 소집단으로 분절되어 있다. 예컨대, 20대라는 코끼리가 있다면 ‘이남자’는 이 코끼리의 고작 다리 한쪽을 만진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탄생한 언어다. ‘성급한 결론’에 불과하단 것이다.

90:10의 세습 중산층 사회가 만들어졌다

대신 존재하는 것은 사회 경제 환경의 변화다. 크게 보면 ‘노동시장의 변화’와 ‘산업 고도화’, ‘여성의 사회경제 지위의 부상’, 그리고 ‘86세대가 형성한 사회경제 자본의 자녀세대 이전’ 등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 보면 고도화된 자본주의에서 ‘세습’과 ‘노동시장변화’라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게 한국이라는 사회적 조건에서 보면 ‘여성 지위의 향상’과 ‘86세대의 성공’과 중첩되며 일어났다. 그래서 부가 세습되고, 부모가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자녀세대도 좋은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본다면,

①고용시장 변화 : 20대 장기 미취업 남성의 증가라는 현상

질 좋은 일자리가 줄고 있다. 탈산업화 시대 성장의 한계와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있다. 경남지역은 조선과 자동차 등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도소매숙박업종 종사자만 늘었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인해 경영회계사무, 금융보험, 연구 관련 직종이 줄고, 음식서비스와 고령자 대상 보건의료 서비스 일자리가 늘었다. 숙련도를 기준으로 보면 중간 숙련 일자리가 줄고, 고숙련 일자리가 소폭, 저숙련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결론적으로 4년제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줄었다.

실업 통계를 보자. 통계청이 집계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상의 ‘장기 미취업 청년(만 29세 이하, 6개월 이상)’은 2013년 75만 명 수준에서 2017년 80만 명, 2018년 83만 명, 2019년 88만 명으로 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의 실업자로 볼 수 있는데, 성별격차가 극명하다.


2013년 75만 명일 때는 남자 26만, 여자 49만이었지만, 같은 통계는 2019년 남자 40만, 여자 48만으로 변한다. 여성의 장기 실업은 소폭 줄었는데, 남성의 장기실업은 14만 명 늘었다. 20대 실업 문제는 보다 세밀한 풍경에서 20대 남성 실업의 문제다.

왜 남성 만의 문제가 되었을까? 가장 단순하게는 여성 대졸자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의 대학 졸업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늘고 있다. 또 탈산업화 사회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높은 업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의 변화는 이렇게 정리된다.


②교육을 통한 세습 : 부모세대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직업이 된다

서울대 입학 고등학교와 인원수의 집중도를 예로 든다. 점점 특정 학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특정 지역과 특수 목적 고교를 중심으로 명문학교가 다시 등장했다. 이제는 중학교부터 지역별 학력차가 극명하다.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경제적 투자로 인한 성적 격차이지만,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대학 입학에 유리한 이른바 ‘스펙’ 쌓기 격차도 된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과장이 있긴 하지만 ‘자녀를 관리하는 것이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자본’이란 세태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부모의 경제자본이 자녀의 인적자본(교육) 투자로 연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경제자본과 인적자본을 활용해 ‘스펙’ 쌓기에 유리한 사회연결망을 획득한다면 결국 고용시장으로 이어져 자녀 세대에서 경제자본 축적에 유리한 구조로 이어진다. (김희삼, p146)

③ 90:10, 부를 대물림하는 10% 부모의 정체는 '86세대'

이 부모세대의 정체는 86세대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닌 이들 세대는 ①대졸자가 급증하고, ②수출 대기업이 세계적 비상을 시작하고, ③IT 등 신성장 산업이 떠오르고, ④이러한 상황에서 급증한 소득을 자산(특히 부동산) 시장으로 투하할 수 있는 역사적 조건을 갖추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이라는 행운의 가장 큰 수혜집단이 되었다.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이 되었다.

교육뿐만 아니라 자산을 통해서도 부를 이전한다. 이제 20대에게 부동산과 같은 자산 격차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출발선이며,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격차가 되었다.

20대는 이 부모로부터 세습된 조건과 사회고도화에 따른 고용시장의 변동을 복합적으로 인식하며 '물려받은 불평등'의 문제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이남자’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90년대생의 세분화된 인식

이런 사회경제적 구조 아래 자라난 90년대생의 인식구조를 저자 남녀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또 조금씩 다른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구분해 이렇게 정리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바꾸지 않으면 정치지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가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다룬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86세대’론이 86세대의 포기와 양보를 통한 타협을 모색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이 교수를 비판하면서 ‘기회의 평등’을 구조화할 방법을 찾는다. ‘86의 포기’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기회의 평등’을 제도화할 정책을 추진하자, 그를 위한 돈은 ‘소득세 개편’으로 확보하자, 상층 근로소득자들의 조세부담률이 너무 낮은데 높여야 한다는 논리구조다. 지금까지의 분석에 비해 이 내용이 풍부하진 않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적 예견도 한다는 점. 저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20대 남성은 ‘보수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고 ‘무당파’가 많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 무당파의 인식은 이렇다.


그리고 저자는 ‘무당’이 되어 무당파들이 30대가 되는 2022년 대선이나 2024년 총선이 ‘20대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정치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예견한다. 두고 볼 일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 지음. 2020. 생각의 힘
  • 이제는 ‘이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
    • 입력 2020-01-20 13:01:47
    취재K
20대는 모두 분노한다... 누가 ‘이남자’인가


‘이남자’, 그러니까 ‘20대 남성 보수화론’은 어쩌면 ‘88만 원 세대’ 이후 20대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전염성 강한’ 언어다. ‘일베’에 모여들고, 여성을 비하하며, 정치적으로 진보진영을 역겨워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면 ‘이남자’는 분명 문제적 현상이다.

“마땅히 진보적이어야 할 20대가 왜 60대처럼 보수적인가?” 혹은 “조국 국면에서 왜 명문대생들은 검찰 개혁이란 거악 대신 입시 부정이라는 작은 흠결만 보는가”라는 생각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이남자’의 인식은 왜곡돼있다.

어떤 이는 ‘반공 학교 교육’에서 원인을 찾는다. 보수 정권의 의식화 때문이란 의미다. ‘아버지의 재산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친여성’ 정책 기조가 거세진 데 따른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불만이란 분석도 있다.

‘세습 중산층 사회’는 이 ‘이남자’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이 책 '서평'으로 '이남자' 문제를 조명해본다

‘이남자’는 없다. 한국 자본주의 고도화에 따라 달라진 사회경제 구조가 있을 뿐

저자는 우선 ‘20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긴 했다’고는 본다. 그러나 그 ‘일’은 정치적 선동이나 임기제 정권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자체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회 경제적 하부구조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90년대생의 인식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남자’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남자’는 없다. 20대라는 연령은 너무나 이질적인 소집단으로 분절되어 있다. 예컨대, 20대라는 코끼리가 있다면 ‘이남자’는 이 코끼리의 고작 다리 한쪽을 만진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탄생한 언어다. ‘성급한 결론’에 불과하단 것이다.

90:10의 세습 중산층 사회가 만들어졌다

대신 존재하는 것은 사회 경제 환경의 변화다. 크게 보면 ‘노동시장의 변화’와 ‘산업 고도화’, ‘여성의 사회경제 지위의 부상’, 그리고 ‘86세대가 형성한 사회경제 자본의 자녀세대 이전’ 등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 보면 고도화된 자본주의에서 ‘세습’과 ‘노동시장변화’라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게 한국이라는 사회적 조건에서 보면 ‘여성 지위의 향상’과 ‘86세대의 성공’과 중첩되며 일어났다. 그래서 부가 세습되고, 부모가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자녀세대도 좋은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본다면,

①고용시장 변화 : 20대 장기 미취업 남성의 증가라는 현상

질 좋은 일자리가 줄고 있다. 탈산업화 시대 성장의 한계와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있다. 경남지역은 조선과 자동차 등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도소매숙박업종 종사자만 늘었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인해 경영회계사무, 금융보험, 연구 관련 직종이 줄고, 음식서비스와 고령자 대상 보건의료 서비스 일자리가 늘었다. 숙련도를 기준으로 보면 중간 숙련 일자리가 줄고, 고숙련 일자리가 소폭, 저숙련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결론적으로 4년제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줄었다.

실업 통계를 보자. 통계청이 집계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상의 ‘장기 미취업 청년(만 29세 이하, 6개월 이상)’은 2013년 75만 명 수준에서 2017년 80만 명, 2018년 83만 명, 2019년 88만 명으로 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의 실업자로 볼 수 있는데, 성별격차가 극명하다.


2013년 75만 명일 때는 남자 26만, 여자 49만이었지만, 같은 통계는 2019년 남자 40만, 여자 48만으로 변한다. 여성의 장기 실업은 소폭 줄었는데, 남성의 장기실업은 14만 명 늘었다. 20대 실업 문제는 보다 세밀한 풍경에서 20대 남성 실업의 문제다.

왜 남성 만의 문제가 되었을까? 가장 단순하게는 여성 대졸자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의 대학 졸업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늘고 있다. 또 탈산업화 사회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높은 업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의 변화는 이렇게 정리된다.


②교육을 통한 세습 : 부모세대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직업이 된다

서울대 입학 고등학교와 인원수의 집중도를 예로 든다. 점점 특정 학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특정 지역과 특수 목적 고교를 중심으로 명문학교가 다시 등장했다. 이제는 중학교부터 지역별 학력차가 극명하다.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경제적 투자로 인한 성적 격차이지만,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대학 입학에 유리한 이른바 ‘스펙’ 쌓기 격차도 된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과장이 있긴 하지만 ‘자녀를 관리하는 것이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자본’이란 세태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부모의 경제자본이 자녀의 인적자본(교육) 투자로 연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경제자본과 인적자본을 활용해 ‘스펙’ 쌓기에 유리한 사회연결망을 획득한다면 결국 고용시장으로 이어져 자녀 세대에서 경제자본 축적에 유리한 구조로 이어진다. (김희삼, p146)

③ 90:10, 부를 대물림하는 10% 부모의 정체는 '86세대'

이 부모세대의 정체는 86세대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닌 이들 세대는 ①대졸자가 급증하고, ②수출 대기업이 세계적 비상을 시작하고, ③IT 등 신성장 산업이 떠오르고, ④이러한 상황에서 급증한 소득을 자산(특히 부동산) 시장으로 투하할 수 있는 역사적 조건을 갖추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이라는 행운의 가장 큰 수혜집단이 되었다.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이 되었다.

교육뿐만 아니라 자산을 통해서도 부를 이전한다. 이제 20대에게 부동산과 같은 자산 격차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출발선이며,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격차가 되었다.

20대는 이 부모로부터 세습된 조건과 사회고도화에 따른 고용시장의 변동을 복합적으로 인식하며 '물려받은 불평등'의 문제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이남자’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90년대생의 세분화된 인식

이런 사회경제적 구조 아래 자라난 90년대생의 인식구조를 저자 남녀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또 조금씩 다른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구분해 이렇게 정리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바꾸지 않으면 정치지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가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다룬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86세대’론이 86세대의 포기와 양보를 통한 타협을 모색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이 교수를 비판하면서 ‘기회의 평등’을 구조화할 방법을 찾는다. ‘86의 포기’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기회의 평등’을 제도화할 정책을 추진하자, 그를 위한 돈은 ‘소득세 개편’으로 확보하자, 상층 근로소득자들의 조세부담률이 너무 낮은데 높여야 한다는 논리구조다. 지금까지의 분석에 비해 이 내용이 풍부하진 않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적 예견도 한다는 점. 저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20대 남성은 ‘보수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고 ‘무당파’가 많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 무당파의 인식은 이렇다.


그리고 저자는 ‘무당’이 되어 무당파들이 30대가 되는 2022년 대선이나 2024년 총선이 ‘20대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정치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예견한다. 두고 볼 일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 지음. 2020. 생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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