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래가 남긴 것]② 허술한 관리…전문 기관은 왜 불참?

입력 2020.01.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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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주시 한림항에서 진행된 대형고래 공동부검 현장

지난 3일 제주시 한림항에서 진행된 대형고래 공동부검 현장

제주 해상에서 16년 만에 멸종위기종 대형고래 사체가 발견돼 국내 첫 공동 부검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참고래 공동 부검 현장은 전문적인 모습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KBS 제주는 현장에서 벌어진 허술한 관리 실태와 제주 고래 연구의 현주소를 2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연관기사] ① 부검, 신고도 안 했다…표피 몰래 챙기기도

② 허술한 체계, 당국 공동 논의 시급

국내 유일 고래전문 연구기관 고래연구센터, 왜 참여하지 않았나?

"연구에 대한 욕심?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 같아 참여하지 못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손호선 고래연구센터장의 말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제주에서 13m 길이의 멸종위기종 참고래 사체가 발견됐지만, 연구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울산 고래연구센터에서 만난 손 센터장은 "문서 상은 아니었지만, 제주도에서 누가 연구를 맡고, 최종 샘플은 어떻게 쓰겠다는 안이 나온 상황이었다. 고래연구센터가 주도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손호선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장 손호선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장

지난 3일 제주에서 국내 최초로 참고래 사체 공동 부검이 진행됐다. 이번 연구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를 중심으로 비영리환경단체인 세계자연기금과 서울대, 인한대, 한양대 등 민간 주도로 진행됐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혼획된 참고래는 이번이 네 번째다. 그만큼 중요한 사료였지만 정작 정부 기관은 참여하지 못했다.

손 센터장은 "사후 신고 절차, 샘플을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이력 관계, 또 해양수산생명자원 관리를 위한 절차들이 있는데, 현장에서 법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연구가 가능하겠냐는 고민이 들었다.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 같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부검은 민간 공동연구라는 의의가 있었으나 한계도 많았다. 제주도로부터 참고래를 넘겨받은 김병엽 제주대 교수가 공동부검을 진행한 뒤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허술한 관리 속에 고래 표피 등이 반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원 예산도 없어 연구진들이 사비를 내 제주에 내려와야 했고, 마트에 가서 회칼을 사와 해체를 해야 할 만큼 장비도 인력도 열악했다.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사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사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사는 "현장에서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우린 해양생태계 법을 준수하고, 해양생명자원법도 준수해야 하지만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더 큰 갈등이 생길 것 같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저희 센터가 고래류 전문 연구기관이지만, 저희 센터가 다 할 수 없다. 다른 새로운 연구자들이 고래를 연구해야 하고, 다른 기관도 그런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지만, 그런 과정도 투명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구조전문 치료 지정기관 있으나 마나

허술한 고래 연구 배경에는 허술한 대응체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정 교수에게만 해양생물 구조 신고가 몰리며 정확한 집계는 물론 해양생태계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해상에서 고래 등 해양생물이 좌초되거나 혼획되면 통상 어민이 해경으로 신고한다. '해양동물전문구조·치료기관의 관리와 지원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신고를 받은 해경은 신속한 치료와 대응을 위해 지정된 전문구조치료 기관에 출동을 요청해야 한다.

제주지역 ‘구조치료지정기관’ 한화아쿠아플라넷 연도별 구조 실적제주지역 ‘구조치료지정기관’ 한화아쿠아플라넷 연도별 구조 실적

현재 제주에 등록된 구조치료지정기관은 한화아쿠아플라넷 제주와 마린파크 등 2곳. 지난해 제주해경에 접수된 고래 관련 신고는 130여 건에 달하지만, 한화아쿠아플라넷 제주가 해경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건수는 5차례(거북이)에 불과하다. 2016년에도 거북이 1건, 2017년 고래 2건, 2018년 해마 1건 등이 구조 실적의 전부다. 마린파크 역시 2011년 구조치료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지금까지 해경으로부터 출동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

반면 이번 참고래 공동부검을 주도한 김병엽 교수가 지난해 해경과 어민 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확인한 고래류만 50여 개체, 바다거북은 30여 개체에 달한다. KBS 취재 결과 김 교수는 지난해 포획·채취한 고래류(해양보호생물 포함) 50여 개체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KBS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인 지난 6일 신고를 마쳤다.

한 구조전문기관 관계자는 "구조치료기관 유지를 위해 1년에 2번씩 교육을 받고, 출동준비 예행연습 등을 상시로 하고 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마을 어촌계와 해경을 상대로 홍보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구조전문기관 관계자는 "정확한 현황 등 자료가 잘 정리되면 상관없는데 해수부로 공유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수의사나 고래 전문가가 아닌,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실습선 지도교수로 구조 전문가에 가깝다. 현재 현장에선 김 교수가 먼저 연락을 받은 뒤 초동 조치하거나, 치료 등이 필요할 경우 구조치료기관으로 요청하는 방식 등으로 해양생물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김병엽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교수김병엽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교수

김 교수는 해양생태계법을 잘 알지 못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장의 애로 사항을 강하게 전달했다. 김 교수는 "해양생물이 어떻게 혼획되고 죽는지 등을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 그냥 방류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지역 서식지가 어떻게 위협받는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걸 뒤에서 하는 곳이 없다. 제주에 있으니 이런 것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민들이 전화 오면 바로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해양생물 샘플을)갖고 있으면 돈도 안 되고, 재산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통계도 없는 상황"이라며 "샘플을 챙겼다가 각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한테 조건 없이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제가 있는 한 웬만하면 일찍 현장에 간다. 그래야 해경도 업무를 끝내서 복귀해 본인 업무를 본다. 최근에는 고래연구센터에 많이 공유한다. 왜냐하면, 접근성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샘플링을 다해서 다 보내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 민간 연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김 교수는 2013년에 수족관에 팔려가 공연을 하던 돌고래 '제돌이'의 방류 이후 제주 해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해양생물 사고 등을 도맡아오고 있다.

부검 장비·연구 과정 지원 절실


이번 참고래 공동 부검 현장에선 전문장비들이 턱없이 부족해 우리나라 고래 연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부검을 집도한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은 "연구진들이 자비로 제주까지 내려와야 했고 부검 장비도 부족해 칼을 인근 도축장에서 빌리거나 마트에서 회칼을 사와야 했다"며 당시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에 "부검과정에서 나온 표피와 골격 등에 대한 표본을 검사하려면 냉동 보관과 시료액 처리 등을 해야 하는데 관련 인프라가 없는 상황"이라고 고래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래연구는 고래 자체에 대한 학술 가치는 물론 바다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구의 생태계 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알 기회가 되는 만큼 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관 유기적 협력 불가능한가?


현장에서의 갈등을 이유로 고래 연구가 사실상 제각각 진행되면서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제주 참고래 부검을 집도한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은 "미국은 전미 지역을 세분화 지역에서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해양생물의 구조부터 왜 죽었는지 등을 검사할 수 있는 검사실을 비롯해 그 지역에서 해양포유류를 연구하고, 지역민에게 교육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며 "우리나라는 해경이 거점별로 1차 대응을 하고 있고, 구조치료만 할 수 있도록 몇몇 기관이 정해져 있다. 더 많은 연구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역 대학이나 사설 연구기관과 연계하는 방법, 환경단체 등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를 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다양한 종의 해양생물이 올라오는 제주 특성을 고려해 지역 전문가와 기관이 함께 해양생물을 구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나 정부 차원의 인프라 지원도 시급하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고래 연구 과정에서의 명확한 체계 정립도 필요하다. 손호선 고래연구센터장은 "현재 고래 사체를 연구용으로 쓸 경우에 해경이 표본을 통제하다가 연구자에게 넘기는 것까지는 규정이 있는데, 그 이후에 연구자가 어떠해야 하고, 어떤 행위를 신고해야 한다는 부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 센터장은 "현재 해양생태계법은 고래만 다루는 게 아니라 갑각류, 산호류 등 모든 걸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래만 한정해 어떤 특정 절차 등을 구성하는 게 쉽지 않다"며 "너무 법적으로 옭아매지 않으면서도 샘플이 허술하게 다뤄지지 않도록 좋은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 센터장은 올해 안에 고래 연구와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모은 뒤 해양보호생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과 절차를 만들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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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래가 남긴 것]② 허술한 관리…전문 기관은 왜 불참?
    • 입력 2020-01-22 08:00:28
    취재K

지난 3일 제주시 한림항에서 진행된 대형고래 공동부검 현장

제주 해상에서 16년 만에 멸종위기종 대형고래 사체가 발견돼 국내 첫 공동 부검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참고래 공동 부검 현장은 전문적인 모습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KBS 제주는 현장에서 벌어진 허술한 관리 실태와 제주 고래 연구의 현주소를 2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연관기사] ① 부검, 신고도 안 했다…표피 몰래 챙기기도

② 허술한 체계, 당국 공동 논의 시급

국내 유일 고래전문 연구기관 고래연구센터, 왜 참여하지 않았나?

"연구에 대한 욕심?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 같아 참여하지 못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손호선 고래연구센터장의 말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제주에서 13m 길이의 멸종위기종 참고래 사체가 발견됐지만, 연구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울산 고래연구센터에서 만난 손 센터장은 "문서 상은 아니었지만, 제주도에서 누가 연구를 맡고, 최종 샘플은 어떻게 쓰겠다는 안이 나온 상황이었다. 고래연구센터가 주도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손호선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장
지난 3일 제주에서 국내 최초로 참고래 사체 공동 부검이 진행됐다. 이번 연구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를 중심으로 비영리환경단체인 세계자연기금과 서울대, 인한대, 한양대 등 민간 주도로 진행됐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혼획된 참고래는 이번이 네 번째다. 그만큼 중요한 사료였지만 정작 정부 기관은 참여하지 못했다.

손 센터장은 "사후 신고 절차, 샘플을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이력 관계, 또 해양수산생명자원 관리를 위한 절차들이 있는데, 현장에서 법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연구가 가능하겠냐는 고민이 들었다.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 같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부검은 민간 공동연구라는 의의가 있었으나 한계도 많았다. 제주도로부터 참고래를 넘겨받은 김병엽 제주대 교수가 공동부검을 진행한 뒤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허술한 관리 속에 고래 표피 등이 반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원 예산도 없어 연구진들이 사비를 내 제주에 내려와야 했고, 마트에 가서 회칼을 사와 해체를 해야 할 만큼 장비도 인력도 열악했다.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사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사는 "현장에서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우린 해양생태계 법을 준수하고, 해양생명자원법도 준수해야 하지만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더 큰 갈등이 생길 것 같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저희 센터가 고래류 전문 연구기관이지만, 저희 센터가 다 할 수 없다. 다른 새로운 연구자들이 고래를 연구해야 하고, 다른 기관도 그런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지만, 그런 과정도 투명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구조전문 치료 지정기관 있으나 마나

허술한 고래 연구 배경에는 허술한 대응체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정 교수에게만 해양생물 구조 신고가 몰리며 정확한 집계는 물론 해양생태계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해상에서 고래 등 해양생물이 좌초되거나 혼획되면 통상 어민이 해경으로 신고한다. '해양동물전문구조·치료기관의 관리와 지원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신고를 받은 해경은 신속한 치료와 대응을 위해 지정된 전문구조치료 기관에 출동을 요청해야 한다.

제주지역 ‘구조치료지정기관’ 한화아쿠아플라넷 연도별 구조 실적
현재 제주에 등록된 구조치료지정기관은 한화아쿠아플라넷 제주와 마린파크 등 2곳. 지난해 제주해경에 접수된 고래 관련 신고는 130여 건에 달하지만, 한화아쿠아플라넷 제주가 해경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건수는 5차례(거북이)에 불과하다. 2016년에도 거북이 1건, 2017년 고래 2건, 2018년 해마 1건 등이 구조 실적의 전부다. 마린파크 역시 2011년 구조치료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지금까지 해경으로부터 출동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

반면 이번 참고래 공동부검을 주도한 김병엽 교수가 지난해 해경과 어민 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확인한 고래류만 50여 개체, 바다거북은 30여 개체에 달한다. KBS 취재 결과 김 교수는 지난해 포획·채취한 고래류(해양보호생물 포함) 50여 개체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KBS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인 지난 6일 신고를 마쳤다.

한 구조전문기관 관계자는 "구조치료기관 유지를 위해 1년에 2번씩 교육을 받고, 출동준비 예행연습 등을 상시로 하고 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마을 어촌계와 해경을 상대로 홍보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구조전문기관 관계자는 "정확한 현황 등 자료가 잘 정리되면 상관없는데 해수부로 공유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수의사나 고래 전문가가 아닌,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실습선 지도교수로 구조 전문가에 가깝다. 현재 현장에선 김 교수가 먼저 연락을 받은 뒤 초동 조치하거나, 치료 등이 필요할 경우 구조치료기관으로 요청하는 방식 등으로 해양생물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김병엽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교수
김 교수는 해양생태계법을 잘 알지 못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장의 애로 사항을 강하게 전달했다. 김 교수는 "해양생물이 어떻게 혼획되고 죽는지 등을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 그냥 방류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지역 서식지가 어떻게 위협받는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걸 뒤에서 하는 곳이 없다. 제주에 있으니 이런 것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민들이 전화 오면 바로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해양생물 샘플을)갖고 있으면 돈도 안 되고, 재산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통계도 없는 상황"이라며 "샘플을 챙겼다가 각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한테 조건 없이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제가 있는 한 웬만하면 일찍 현장에 간다. 그래야 해경도 업무를 끝내서 복귀해 본인 업무를 본다. 최근에는 고래연구센터에 많이 공유한다. 왜냐하면, 접근성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샘플링을 다해서 다 보내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 민간 연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김 교수는 2013년에 수족관에 팔려가 공연을 하던 돌고래 '제돌이'의 방류 이후 제주 해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해양생물 사고 등을 도맡아오고 있다.

부검 장비·연구 과정 지원 절실


이번 참고래 공동 부검 현장에선 전문장비들이 턱없이 부족해 우리나라 고래 연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부검을 집도한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은 "연구진들이 자비로 제주까지 내려와야 했고 부검 장비도 부족해 칼을 인근 도축장에서 빌리거나 마트에서 회칼을 사와야 했다"며 당시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에 "부검과정에서 나온 표피와 골격 등에 대한 표본을 검사하려면 냉동 보관과 시료액 처리 등을 해야 하는데 관련 인프라가 없는 상황"이라고 고래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래연구는 고래 자체에 대한 학술 가치는 물론 바다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구의 생태계 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알 기회가 되는 만큼 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관 유기적 협력 불가능한가?


현장에서의 갈등을 이유로 고래 연구가 사실상 제각각 진행되면서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제주 참고래 부검을 집도한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은 "미국은 전미 지역을 세분화 지역에서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해양생물의 구조부터 왜 죽었는지 등을 검사할 수 있는 검사실을 비롯해 그 지역에서 해양포유류를 연구하고, 지역민에게 교육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며 "우리나라는 해경이 거점별로 1차 대응을 하고 있고, 구조치료만 할 수 있도록 몇몇 기관이 정해져 있다. 더 많은 연구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역 대학이나 사설 연구기관과 연계하는 방법, 환경단체 등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를 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다양한 종의 해양생물이 올라오는 제주 특성을 고려해 지역 전문가와 기관이 함께 해양생물을 구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나 정부 차원의 인프라 지원도 시급하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고래 연구 과정에서의 명확한 체계 정립도 필요하다. 손호선 고래연구센터장은 "현재 고래 사체를 연구용으로 쓸 경우에 해경이 표본을 통제하다가 연구자에게 넘기는 것까지는 규정이 있는데, 그 이후에 연구자가 어떠해야 하고, 어떤 행위를 신고해야 한다는 부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 센터장은 "현재 해양생태계법은 고래만 다루는 게 아니라 갑각류, 산호류 등 모든 걸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래만 한정해 어떤 특정 절차 등을 구성하는 게 쉽지 않다"며 "너무 법적으로 옭아매지 않으면서도 샘플이 허술하게 다뤄지지 않도록 좋은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 센터장은 올해 안에 고래 연구와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모은 뒤 해양보호생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과 절차를 만들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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