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급식은 ‘오병이어’의 기적?

입력 2020.01.22 (13:52) 수정 2020.01.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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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치원 3법이 통과됐습니다. 학교급식법이 개정돼 유치원에서도 공공급식의 길이 열렸고, 회계관리 시스템이 강화되며 급식비를 빼돌리는 사례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 밥 문제'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 됐습니다.

그렇다면 유치원 원아 수의 두 배가 넘는 140만여 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어떨까요?

KBS는 공공운수노조 '어린이집 비리고발 상담센터'와 함께 보육교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온라인 서면 인터뷰에 지난 6일부터 일주일간 125명이 참여했고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정확한 전달을 위해 교사들이 답한 원문 그대로를 소개합니다. 교사들의 대답을 보면 어린이집 급식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습니다.

"급식, 모자라거나 더럽거나…."

먼저 급·간식의 양과 질이 식단표와 다르거나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느낀 경우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 비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혹은 사라지거나"

보육교사들은 식재료를 원장이 빼돌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영수증 구매 내역과 식단표 내용만 일치하면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뒤 점검 나가니까 준비하세요."

이렇게 현장 교사들은 어린이집 급식 문제가 흔하다고 말하는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기에 너무 어리고, 부모님들은 어렵게 찾은 어린이집이 어딘가 불안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리·감독 기관이 있는 거겠죠. 각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어린이집에 대해 정기적인 지도·점검에 나섭니다. 급·간식 운영 및 건강·위생 관리 실태도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보육 당국인 보건복지부와 현장 점검을 맡은 지자체는 부실 급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보육교사들도 이 정기점검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사들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지도·점검 사실을 일주일 전 미리 통보한다는 겁니다. 현행 행정조사법이 그렇게 돼 있다는 게 보건복지부 설명입니다. 하지만 같은 법에는 증거 인멸 등으로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예외로 두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미리 통보 없이 나가면 원장이 잠깐 자리를 비워 조사가 안 이뤄질 수도 있는 데다가, (통보 없이) 점검하는 것은 범죄자 취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익명으로 제보하세요, 하지만 비밀은 없습니다."

물론 정기점검과 별도로 민원이 들어올 때 수시점검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가령 보육교사가 '급식에 문제가 있으니 좀 점검해달라'고 지자체에 얘기하는 겁니다. 이 경우 미리 알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들의 용기가 필요 없어져야

이렇게 꼭꼭 숨은 어린이집 급식 문제가 종종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다 못한 보육교사들이 학부모나 언론에 급식 사진을 제보할 때입니다.

지난해 말 불거졌던 '청주 어린이집 급식 사태'를 보실까요. 비어 있는 반찬 칸과 건더기를 찾기 힘든 국물로 충격을 안겼습니다. 교사들이 여러 차례 부실 급식을 고쳐 달라 여러 번 원장에게 말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속상한 마음에 학부모에게 제보한 뒤 문제가 드러난 겁니다.


사건 이후 결국 원장에 6개월간 자격 정지, 어린이집에 1개월간 운영 정지라는 이례적으로 강력한 행정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지금 기댈 건 교사들의 고발 뿐인 겁니다.

하지만 문제를 처음 고발한 교사 3명 중 2명은 지난달 말 권고사직을 당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교사들의 고발로 문제가 드러나고 급식도 개선됐는데, 선생님들의 처지는 오히려 더 불안정해진 겁니다.

언제까지나 아이들의 급식 문제를 교사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언제쯤 교사들의 용기가 필요 없어질까요?

제보를 기다립니다

KBS는 오늘 밤 〈뉴스9〉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짚고 보육교사들의 증언을 들어 봅니다.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어린이집 급식 문제를 다룰 예정인 만큼,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어린이집 급식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계시거나 증언을 해 주실 분은 전화 02-781-4444번으로 전화하시거나 카카오톡 'KBS제보'를 검색하시고 제보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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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집 급식은 ‘오병이어’의 기적?
    • 입력 2020-01-22 13:52:30
    • 수정2020-01-22 14:51:31
    취재K
얼마 전 유치원 3법이 통과됐습니다. 학교급식법이 개정돼 유치원에서도 공공급식의 길이 열렸고, 회계관리 시스템이 강화되며 급식비를 빼돌리는 사례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 밥 문제'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 됐습니다.

그렇다면 유치원 원아 수의 두 배가 넘는 140만여 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어떨까요?

KBS는 공공운수노조 '어린이집 비리고발 상담센터'와 함께 보육교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온라인 서면 인터뷰에 지난 6일부터 일주일간 125명이 참여했고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정확한 전달을 위해 교사들이 답한 원문 그대로를 소개합니다. 교사들의 대답을 보면 어린이집 급식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습니다.

"급식, 모자라거나 더럽거나…."

먼저 급·간식의 양과 질이 식단표와 다르거나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느낀 경우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 비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혹은 사라지거나"

보육교사들은 식재료를 원장이 빼돌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영수증 구매 내역과 식단표 내용만 일치하면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뒤 점검 나가니까 준비하세요."

이렇게 현장 교사들은 어린이집 급식 문제가 흔하다고 말하는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기에 너무 어리고, 부모님들은 어렵게 찾은 어린이집이 어딘가 불안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리·감독 기관이 있는 거겠죠. 각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어린이집에 대해 정기적인 지도·점검에 나섭니다. 급·간식 운영 및 건강·위생 관리 실태도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보육 당국인 보건복지부와 현장 점검을 맡은 지자체는 부실 급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보육교사들도 이 정기점검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사들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지도·점검 사실을 일주일 전 미리 통보한다는 겁니다. 현행 행정조사법이 그렇게 돼 있다는 게 보건복지부 설명입니다. 하지만 같은 법에는 증거 인멸 등으로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예외로 두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미리 통보 없이 나가면 원장이 잠깐 자리를 비워 조사가 안 이뤄질 수도 있는 데다가, (통보 없이) 점검하는 것은 범죄자 취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익명으로 제보하세요, 하지만 비밀은 없습니다."

물론 정기점검과 별도로 민원이 들어올 때 수시점검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가령 보육교사가 '급식에 문제가 있으니 좀 점검해달라'고 지자체에 얘기하는 겁니다. 이 경우 미리 알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들의 용기가 필요 없어져야

이렇게 꼭꼭 숨은 어린이집 급식 문제가 종종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다 못한 보육교사들이 학부모나 언론에 급식 사진을 제보할 때입니다.

지난해 말 불거졌던 '청주 어린이집 급식 사태'를 보실까요. 비어 있는 반찬 칸과 건더기를 찾기 힘든 국물로 충격을 안겼습니다. 교사들이 여러 차례 부실 급식을 고쳐 달라 여러 번 원장에게 말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속상한 마음에 학부모에게 제보한 뒤 문제가 드러난 겁니다.


사건 이후 결국 원장에 6개월간 자격 정지, 어린이집에 1개월간 운영 정지라는 이례적으로 강력한 행정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지금 기댈 건 교사들의 고발 뿐인 겁니다.

하지만 문제를 처음 고발한 교사 3명 중 2명은 지난달 말 권고사직을 당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교사들의 고발로 문제가 드러나고 급식도 개선됐는데, 선생님들의 처지는 오히려 더 불안정해진 겁니다.

언제까지나 아이들의 급식 문제를 교사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언제쯤 교사들의 용기가 필요 없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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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오늘 밤 〈뉴스9〉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짚고 보육교사들의 증언을 들어 봅니다.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어린이집 급식 문제를 다룰 예정인 만큼,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어린이집 급식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계시거나 증언을 해 주실 분은 전화 02-781-4444번으로 전화하시거나 카카오톡 'KBS제보'를 검색하시고 제보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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