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동에 양말 공장이 100개라고요?

입력 2020.01.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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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폭탄 세일', '한 켤레 1000원'

거리를 지나다보면 가판에서 이런 문구 많이 보셨을 겁니다. 매일 갈아 신는 만큼 흔한 게 양말이지요. 그런데 이 양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나라 양말 공장은 크게 세 지역, 섬유 산업이 발달했던 대구, 또 경기도와 서울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무려 30%가 넘는 양말 공장이 있는데 도봉구에만 200개가 넘는 양말 공장들이 밀집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00개 정도가 창동에 모여 있습니다. 창동을 두고 '대한민국의 발바닥'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양말은 양말 기계가 뚝딱 만드는 것 아닌가?' 호기심을 품고 설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21일, 도봉구에 가서 양말공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손으로 만들던 시절부터 지금까지…'20년은 기본'

강대훈 씨와 김연숙 씨 부부의 공장은 도봉구 창동 주택가에 있는 건물 지하에 있습니다. 양말을 짜는 직조기 40여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사이로 실을 갈고 있는 김연숙 씨가 보였습니다. 김 씨는 1986년 강대훈 씨와 결혼하면서 양말 일을 처음 하게 됐습니다. "옛날엔 양말이 (지금처럼) 한 짝씩 나오지 않고 붙어 나와서 손으로 다 떼어줘야 했다"고 김 씨는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강대훈 씨 양말 공장 내부. 직조기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실험실 같기도 합니다.강대훈 씨 양말 공장 내부. 직조기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실험실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기계 6대만 봤어요. 지금은 많이 보는 곳은 20대까지도 보게 됐어요." 김 씨의 말입니다.

옛 자료를 보면 손으로 물레를 돌려 직접 짜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컴퓨터에서 디자인 파일을 USB에 담고, 그걸 직조기에 꽂아 입력하면 기계가 양말을 짜 줍니다. 다 짜면 마치 뻥튀기처럼 '퐁'하고 기계가 양말을 뱉어냅니다. 그런데 이건 발가락 부분이 뚫려있는 상태라, 다른 곳으로 옮겨 앞부분을 꿰맵니다. 완성된 양말을 다림질하고 포장하면 이제 우리와 만날 준비가 다 되는 겁니다. 중간중간, 바느질과 다림질을 위해 끊임없이 뒤집어줘야 하니, 아직도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게 양말입니다.

양말 산업에 뛰어든 지 40년 됐다는 강대훈 씨.양말 산업에 뛰어든 지 40년 됐다는 강대훈 씨.

강대훈 씨는 40년 동안이나 양말 일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장님 밑에서 일을 배우다, 사장님이 '공장을 차리라'면서 양말 기계를 물려줘 공장을 열었습니다. 섬유 산업, 그 중에서도 양말 산업이 성업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강 씨는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공장에 많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송인수 씨도 강 씨와 마찬가지로 다른 양말 사업체에서 일하다가 독립한 사례입니다. 도봉구에서 양말 공장을 시작한 지 올해가 벌써 32년째라고 하는데, 여러모로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시작할 때엔 꿈이 많았죠. 수출도 많았고, 사업도 크게 한번 해보고 싶었고. 그런데 지금은 수출이 줄어서 내수로 쏠리다 보니 가격이 많이 떨어졌죠."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 건 송 씨뿐만이 아닐 겁니다. 도봉구청이 조사를 해봤더니, 200개 넘는 양말 공장 가운데 28%가 20년이 넘은 사업체였습니다. 그런데 강 씨도 송 씨도, 그리고 다른 많은 양말 공장들은 왜 도봉구에 모여들었을까요?

"(그 당시엔) 이쪽 지역은 상권이 많이 이뤄지지 않았고, 지하실이 가격도 좀 싸잖아요. 양말 공장이 소음이 있기 때문에 지상에선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공장이 100% 지하에 있다고 봐야죠."

양말 기계에 실을 갈아 끼우는 송인수 씨.양말 기계에 실을 갈아 끼우는 송인수 씨.

이 일대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가 입주 조건 중 하나가 된 건데, 또 소음 때문에 지상에는 공장을 차릴 수 없어 또 저렴한 지하실로 공장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말을 짜는 실에서 나오는 먼지를 밖으로 배출하기 힘든 게 골칫거리였죠.

김연숙 씨도 "지하였기 때문에 환풍기 설치도 거의 못 해서, 청소해도 먼지가 솜처럼 쌓이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습니다. 구청에서 공기 정화 장치를 지원받았고, 송 씨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지켜보는 장치를 공장에 달았습니다. 이 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환경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한다고 합니다. 시대도 환경도 바뀌었습니다.

'양말 박물관' 꿈꾸고 온라인도 도전…"앞으로도 양말 하고 싶어요"

이번에 만난 양말 공장 사람들, 지금도 저마다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강대훈 씨는 앞으로 '양말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0년 전 일본 여행을 갔다가 맥주 박물관에 관광객이 모이는 걸 보고 처음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박물관' 꿈을 꾸는지라, 강 씨에게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추억의 물건'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USB를 쓰기 전 여기에 양말 일감을 받아 디자인 파일을 저장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모인 플로피 디스크 1000장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쓰지는 않아도 내가 그동안 양말을 하면서 살아온 역사잖아요."

강대훈 씨가 30년 동안 간직해 온 플로피 디스크. 양말 디자인 20개가 담겨 있습니다.강대훈 씨가 30년 동안 간직해 온 플로피 디스크. 양말 디자인 20개가 담겨 있습니다.

송인수 씨는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습니다. 송 씨의 아들이 아버지가 만든 양말을 온라인에 팔아보자고 한 건데요. 송 씨는 "최근 다른 공장들도 아버지가 양말을 만들면 아들이나 딸이 온라인에서 파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봉구를 떠나거나, 양말을 그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없을까요? 모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기에 공장들이 모여 있으니, 일 없으면 옆 공장에서 얻어다가 하고, 많으면 내가 줄 수도 있고 해요."(강대훈 씨)
"여기서 오래 해 왔고, 지금 저희 아들 친구가 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앞으로 제가 안 하게 되면 그 친구한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죠." (송인수 씨)

오늘도, 양말 공장 사람들은 색색의 실타래와 함께 바쁘게 돌아가는 양말 기계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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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창동에 양말 공장이 100개라고요?
    • 입력 2020-01-24 08:02:22
    취재K
'양말 폭탄 세일', '한 켤레 1000원'

거리를 지나다보면 가판에서 이런 문구 많이 보셨을 겁니다. 매일 갈아 신는 만큼 흔한 게 양말이지요. 그런데 이 양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나라 양말 공장은 크게 세 지역, 섬유 산업이 발달했던 대구, 또 경기도와 서울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무려 30%가 넘는 양말 공장이 있는데 도봉구에만 200개가 넘는 양말 공장들이 밀집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00개 정도가 창동에 모여 있습니다. 창동을 두고 '대한민국의 발바닥'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양말은 양말 기계가 뚝딱 만드는 것 아닌가?' 호기심을 품고 설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21일, 도봉구에 가서 양말공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손으로 만들던 시절부터 지금까지…'20년은 기본'

강대훈 씨와 김연숙 씨 부부의 공장은 도봉구 창동 주택가에 있는 건물 지하에 있습니다. 양말을 짜는 직조기 40여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사이로 실을 갈고 있는 김연숙 씨가 보였습니다. 김 씨는 1986년 강대훈 씨와 결혼하면서 양말 일을 처음 하게 됐습니다. "옛날엔 양말이 (지금처럼) 한 짝씩 나오지 않고 붙어 나와서 손으로 다 떼어줘야 했다"고 김 씨는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강대훈 씨 양말 공장 내부. 직조기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실험실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기계 6대만 봤어요. 지금은 많이 보는 곳은 20대까지도 보게 됐어요." 김 씨의 말입니다.

옛 자료를 보면 손으로 물레를 돌려 직접 짜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컴퓨터에서 디자인 파일을 USB에 담고, 그걸 직조기에 꽂아 입력하면 기계가 양말을 짜 줍니다. 다 짜면 마치 뻥튀기처럼 '퐁'하고 기계가 양말을 뱉어냅니다. 그런데 이건 발가락 부분이 뚫려있는 상태라, 다른 곳으로 옮겨 앞부분을 꿰맵니다. 완성된 양말을 다림질하고 포장하면 이제 우리와 만날 준비가 다 되는 겁니다. 중간중간, 바느질과 다림질을 위해 끊임없이 뒤집어줘야 하니, 아직도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게 양말입니다.

양말 산업에 뛰어든 지 40년 됐다는 강대훈 씨.
강대훈 씨는 40년 동안이나 양말 일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장님 밑에서 일을 배우다, 사장님이 '공장을 차리라'면서 양말 기계를 물려줘 공장을 열었습니다. 섬유 산업, 그 중에서도 양말 산업이 성업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강 씨는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공장에 많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송인수 씨도 강 씨와 마찬가지로 다른 양말 사업체에서 일하다가 독립한 사례입니다. 도봉구에서 양말 공장을 시작한 지 올해가 벌써 32년째라고 하는데, 여러모로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시작할 때엔 꿈이 많았죠. 수출도 많았고, 사업도 크게 한번 해보고 싶었고. 그런데 지금은 수출이 줄어서 내수로 쏠리다 보니 가격이 많이 떨어졌죠."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 건 송 씨뿐만이 아닐 겁니다. 도봉구청이 조사를 해봤더니, 200개 넘는 양말 공장 가운데 28%가 20년이 넘은 사업체였습니다. 그런데 강 씨도 송 씨도, 그리고 다른 많은 양말 공장들은 왜 도봉구에 모여들었을까요?

"(그 당시엔) 이쪽 지역은 상권이 많이 이뤄지지 않았고, 지하실이 가격도 좀 싸잖아요. 양말 공장이 소음이 있기 때문에 지상에선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공장이 100% 지하에 있다고 봐야죠."

양말 기계에 실을 갈아 끼우는 송인수 씨.
이 일대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가 입주 조건 중 하나가 된 건데, 또 소음 때문에 지상에는 공장을 차릴 수 없어 또 저렴한 지하실로 공장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말을 짜는 실에서 나오는 먼지를 밖으로 배출하기 힘든 게 골칫거리였죠.

김연숙 씨도 "지하였기 때문에 환풍기 설치도 거의 못 해서, 청소해도 먼지가 솜처럼 쌓이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습니다. 구청에서 공기 정화 장치를 지원받았고, 송 씨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지켜보는 장치를 공장에 달았습니다. 이 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환경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한다고 합니다. 시대도 환경도 바뀌었습니다.

'양말 박물관' 꿈꾸고 온라인도 도전…"앞으로도 양말 하고 싶어요"

이번에 만난 양말 공장 사람들, 지금도 저마다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강대훈 씨는 앞으로 '양말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0년 전 일본 여행을 갔다가 맥주 박물관에 관광객이 모이는 걸 보고 처음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박물관' 꿈을 꾸는지라, 강 씨에게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추억의 물건'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USB를 쓰기 전 여기에 양말 일감을 받아 디자인 파일을 저장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모인 플로피 디스크 1000장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쓰지는 않아도 내가 그동안 양말을 하면서 살아온 역사잖아요."

강대훈 씨가 30년 동안 간직해 온 플로피 디스크. 양말 디자인 20개가 담겨 있습니다.
송인수 씨는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습니다. 송 씨의 아들이 아버지가 만든 양말을 온라인에 팔아보자고 한 건데요. 송 씨는 "최근 다른 공장들도 아버지가 양말을 만들면 아들이나 딸이 온라인에서 파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봉구를 떠나거나, 양말을 그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없을까요? 모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기에 공장들이 모여 있으니, 일 없으면 옆 공장에서 얻어다가 하고, 많으면 내가 줄 수도 있고 해요."(강대훈 씨)
"여기서 오래 해 왔고, 지금 저희 아들 친구가 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앞으로 제가 안 하게 되면 그 친구한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죠." (송인수 씨)

오늘도, 양말 공장 사람들은 색색의 실타래와 함께 바쁘게 돌아가는 양말 기계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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