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는 투명한 검증 과정…효과는?

입력 2020.01.25 (07:02) 수정 2020.01.2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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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가짜뉴스’ 말고 ‘허위조작정보’…팩트체크는 가려낼 수 있을까?〉에서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따져봤습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팩트체크의 과정과 수용자들의 인식에 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게 팩트체크 대상일까?"

KBS 팩트체크 팀은 날마다 아이템 회의를 합니다. 정치인들의 주요 공식 발언은 물론 각급 정부 기관의 정책, 주요 언론 보도에서 인용된 각종 수치, 심지어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슈 등 광범위한 주제들이 논의 대상입니다.

정확하게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상당 부분 논의는 아이템으로 채택할 지 여부, 즉 '팩트체크 대상인 지'에 집중됩니다. 판단 기준은 '주장 또는 명제의 사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습니다.

명확한 기준이 있으니 검증 대상 선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는 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객관성' 따지는 검증 과정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우리 경제 상황 설명 가운데 "부정적인 지표들은 점점 적어지고 긍정적인 지표 늘어나고 있다"는 언명은 어떨까요?

KBS팩트체크 팀은 실제, 해당 내용에 대한 검증 가능성을 따져봤습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관은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였습니다. 먼저, 청와대 참모진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지표들의 총합은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공개 자료가 없는 데다, 당연히 대통령이 언급한 결과를 재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포괄적으로 정부가 공개하는 내용 가운데 후보군을 추려봤습니다. 한국은행의 '한눈에 보는 우리나라 100대 통계지표'와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최근 경제 동향 이른바 그린북, 또는 통계청이 운영하는 국가통계 포털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KBS 팩트체크팀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더라도 '임의로 선정한 기준'이라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해당 지표들은 경제성장률이나 고용, 물가 등 상당 부분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지표를 선택할지는 검증 이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긍정과 부정 숫자라는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객관적' 선택이 중요한 데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환율이나 금리처럼 긍정과 부정을 둘러싼 견해가 엇갈리는 분야의 경우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한 측면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지표 숫자 관련 언급은 '객관적으로 사실 여부를 따질 근거가 부족해 검증할 수 없다'는 게 팀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KBS 팩트체크 팀은 순수한 주장이나 수사적 표현, 미래 예측, 발언의 인과관계 등 역시 검증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KBS는 지난해 말 뉴스룸 취재제작회의에서 팩트체크팀 운영 원칙을 공유했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검증대상은 사회적으로 오해와 오인을 불러올 진술과 여러 다양한 경로로 반복 유통될 소지가 다분한 발언, 대중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사안들, 자유와 평등, 인권 등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발언 등으로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소스인가?"

팩트체크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검증 과정에 대한 신뢰'는 대상 선정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지난해 말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불구속기소 할 당시 변호인 측은 "검찰이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 끝에 어떻게 해서든 조 전 장관을 피고인으로 새우겠다는 억지 기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는 미국 남서부 원주민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속설을 차용한 것입니다.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근거로 자주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비유는 적절하게 인용된 것일까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해당 표현은 미국 원주민 출신 유명 작가인 셔먼 알렉시(Sherman Alexie)가 했던 말로 나옵니다.

"인디언 기우제가 언제나 효과적인 이유를 아십니까? 인디언들은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가 셔먼 알렉시의 북 콘서트를 홍보하는 사이트 같은 곳에서는 해당 문구를 대표 인용구로 활용하고 있는 예도 있습니다. 해당 문구가 올라와 있는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살펴보면 과학과 이성을 앞세운 서구의 관점에서 '비합리적 전통'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작가의 시각을 근거로 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해당 문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죠. 이들 가운데는 '인디언 기우제' 자체가 작가 셔먼 알렉시의 주장과 전혀 동떨어진 의미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 인디아나-퍼듀대학의 필린(Johnny P. Flynn) 교수의 글이 대표적 예입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은 기후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비가 내릴 징후 파악에 능하고, 이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면 곧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필린 교수의 설명입니다. 즉,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게 아니라 비 내리기 직전에 기우제를 시작한다는 뜻이 되겠죠.

그뿐만 아니라 기우제의 성격 역시 '자연과 수확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반론인 셈입니다. 이런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는 인용의 적절성 여부, 즉 팩트체크 기사를 내보낼 수 있을까요? 저희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먼저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언명이라는 점이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판단 근거 즉, 소스에 대한 신뢰 역시 확신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게 만든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팩트체크 과정은 관련 법령이나 판례, 객관적으로 나타난 통계 자료 등이 주요 검증 수단이 됩니다.

인디언 기우제의 경우 최소한 미국 내 '권위 있는' 기관 단체의 설명을 찾을 수 있어야 했지만, 저희 검증 과정에서는 이에 부합되는 '신뢰성 있는 소스'를 찾지 못했습니다.

리서치 결과, 어떻게 해석할까?

이 같은 아이템 선정 과정을 거쳐 신뢰할 만 한 소스를 통한 팩트 확인이 이뤄지면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도 난관이 있었습니다.

최근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현 정부 출신 인사들이 "민생은 뒷전이고 오로지 총선에 올인"하고 있다며 "현 정부 공직자 출신 134명, 청와대 출신 인사들 70여 명"으로 구체적 수치를 적시했습니다.

심 원내대표는 그 근거로 지난 16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사들의 명단을 들었죠. 그래서 KBS 팩트체크팀은 선관위에서 공개한 해당 명단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직속 기구에 위촉된 인사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실제,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사들 가운데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위촉한 자문위원, 전문위원, 특별위원이라고 밝힌 이들이 50명 넘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관위는 송재호 위원장을 선거 90일 전 사퇴해야 하는 공직자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죠. 송 위원장은 결국 공직자 사퇴 시한을 닷새 넘긴 지난 21일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총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선관위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모두 공직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출마 집단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기준을 세우기 힘들었던 상황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BS 팩트체크 팀은 아직 객관적인 검증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다만, 공직자의 비례대표 출마시한인 선거 30일 전까지 적절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잡아 해당 사안을 다시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조금 다르기는 해도 '조사 시점'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처음으로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수출' 관련 언급을 했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열린 해당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수출 호조가 눈에 띈다며 "연초부터 1일 평균 수출이 증가로 전환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선 새해 들어 수출이 오히려 0.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차이는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 개최 시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통계청은 열흘 단위로 수출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데 회의가 개최될 당시 인용된 통계는 1월 10일까지 집계 결과로 실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5.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의 인용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죠. 그런데 이튿날 공식 집계가 반대인 '감소세'로 나오면서 이른바 견강부회 논란이 빚어진 것이었죠.

검증의 관점에서 보면 집계 시점을 달리할 경우 "늘었다"와 "줄었다."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이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다른지에 대한 해설은 가능해도 사실을 검증하기는 어렵다는 게 팀의 결론이었습니다.

엇갈리는 평가…논의 자체가 '의미'

이렇게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거쳐 생산한 기사에 대한 수용자들의 평가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지난 21일 디지털 기사로 소화했던 “文 대통령은 정말로 영화 ‘판도라’ 보고 탈원전 결심했나?”를 살펴보겠습니다.

탈원전 정책은 현 정부 이전부터 문 대통령이 소신이나 정책 공약 등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던 내용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내용입니다. 현 정부 탈원전 정책의 적정성 여부에 관한 판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3일 오전까지 올라온 5백 건 가까운 댓글 가운데 상당수는 검증 내용과 달리 현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수용자들의 반응에 대해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장은 인지 부조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즉, 기존의 생각과 같은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수용자들의 경우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 노출됐을 때 일단 부담으로 느끼는 자연스러운 인지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지 부조화 상황이 되면 회피하거나 자신의 원래 생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데 이는 결국 팩트 체크 결과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다고 해도 기존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인식은 결국 왜 하필 그 아이템을 선정했느냐는 문제 제기나 검증을 수행한 언론사의 정체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생산된 기사보다는 생산 과정이나 생산 주체의 편향성을 문제 삼으면서 검증 자체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검증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숱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필요한 걸까요?

정 센터장은 "사실 검증 후에 해당 검증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팩트체크의 효과"라고 말합니다. 불편부당한 아이템 선정과 합리적이고 투명한 검증 과정을 거쳐 내려진 결론이라고 한다면 공론의 장에서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결국 진실에 부합하는 결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학계는 물론 현실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발걸음은 더디게 나아가고 있는 것도 현실로 보입니다. 다만, 현업에 있는 기자로서 여러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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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는 투명한 검증 과정…효과는?
    • 입력 2020-01-25 07:02:27
    • 수정2020-01-25 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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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가짜뉴스’ 말고 ‘허위조작정보’…팩트체크는 가려낼 수 있을까?〉에서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따져봤습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팩트체크의 과정과 수용자들의 인식에 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게 팩트체크 대상일까?" KBS 팩트체크 팀은 날마다 아이템 회의를 합니다. 정치인들의 주요 공식 발언은 물론 각급 정부 기관의 정책, 주요 언론 보도에서 인용된 각종 수치, 심지어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슈 등 광범위한 주제들이 논의 대상입니다. 정확하게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상당 부분 논의는 아이템으로 채택할 지 여부, 즉 '팩트체크 대상인 지'에 집중됩니다. 판단 기준은 '주장 또는 명제의 사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습니다. 명확한 기준이 있으니 검증 대상 선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는 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객관성' 따지는 검증 과정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우리 경제 상황 설명 가운데 "부정적인 지표들은 점점 적어지고 긍정적인 지표 늘어나고 있다"는 언명은 어떨까요? KBS팩트체크 팀은 실제, 해당 내용에 대한 검증 가능성을 따져봤습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관은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였습니다. 먼저, 청와대 참모진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지표들의 총합은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공개 자료가 없는 데다, 당연히 대통령이 언급한 결과를 재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포괄적으로 정부가 공개하는 내용 가운데 후보군을 추려봤습니다. 한국은행의 '한눈에 보는 우리나라 100대 통계지표'와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최근 경제 동향 이른바 그린북, 또는 통계청이 운영하는 국가통계 포털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KBS 팩트체크팀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더라도 '임의로 선정한 기준'이라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해당 지표들은 경제성장률이나 고용, 물가 등 상당 부분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지표를 선택할지는 검증 이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긍정과 부정 숫자라는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객관적' 선택이 중요한 데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환율이나 금리처럼 긍정과 부정을 둘러싼 견해가 엇갈리는 분야의 경우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한 측면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지표 숫자 관련 언급은 '객관적으로 사실 여부를 따질 근거가 부족해 검증할 수 없다'는 게 팀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KBS 팩트체크 팀은 순수한 주장이나 수사적 표현, 미래 예측, 발언의 인과관계 등 역시 검증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KBS는 지난해 말 뉴스룸 취재제작회의에서 팩트체크팀 운영 원칙을 공유했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검증대상은 사회적으로 오해와 오인을 불러올 진술과 여러 다양한 경로로 반복 유통될 소지가 다분한 발언, 대중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사안들, 자유와 평등, 인권 등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발언 등으로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소스인가?" 팩트체크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검증 과정에 대한 신뢰'는 대상 선정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지난해 말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불구속기소 할 당시 변호인 측은 "검찰이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 끝에 어떻게 해서든 조 전 장관을 피고인으로 새우겠다는 억지 기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는 미국 남서부 원주민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속설을 차용한 것입니다.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근거로 자주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비유는 적절하게 인용된 것일까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해당 표현은 미국 원주민 출신 유명 작가인 셔먼 알렉시(Sherman Alexie)가 했던 말로 나옵니다. "인디언 기우제가 언제나 효과적인 이유를 아십니까? 인디언들은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가 셔먼 알렉시의 북 콘서트를 홍보하는 사이트 같은 곳에서는 해당 문구를 대표 인용구로 활용하고 있는 예도 있습니다. 해당 문구가 올라와 있는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살펴보면 과학과 이성을 앞세운 서구의 관점에서 '비합리적 전통'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작가의 시각을 근거로 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해당 문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죠. 이들 가운데는 '인디언 기우제' 자체가 작가 셔먼 알렉시의 주장과 전혀 동떨어진 의미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 인디아나-퍼듀대학의 필린(Johnny P. Flynn) 교수의 글이 대표적 예입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은 기후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비가 내릴 징후 파악에 능하고, 이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면 곧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필린 교수의 설명입니다. 즉,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게 아니라 비 내리기 직전에 기우제를 시작한다는 뜻이 되겠죠. 그뿐만 아니라 기우제의 성격 역시 '자연과 수확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반론인 셈입니다. 이런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는 인용의 적절성 여부, 즉 팩트체크 기사를 내보낼 수 있을까요? 저희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먼저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언명이라는 점이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판단 근거 즉, 소스에 대한 신뢰 역시 확신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게 만든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팩트체크 과정은 관련 법령이나 판례, 객관적으로 나타난 통계 자료 등이 주요 검증 수단이 됩니다. 인디언 기우제의 경우 최소한 미국 내 '권위 있는' 기관 단체의 설명을 찾을 수 있어야 했지만, 저희 검증 과정에서는 이에 부합되는 '신뢰성 있는 소스'를 찾지 못했습니다. 리서치 결과, 어떻게 해석할까? 이 같은 아이템 선정 과정을 거쳐 신뢰할 만 한 소스를 통한 팩트 확인이 이뤄지면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도 난관이 있었습니다. 최근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현 정부 출신 인사들이 "민생은 뒷전이고 오로지 총선에 올인"하고 있다며 "현 정부 공직자 출신 134명, 청와대 출신 인사들 70여 명"으로 구체적 수치를 적시했습니다. 심 원내대표는 그 근거로 지난 16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사들의 명단을 들었죠. 그래서 KBS 팩트체크팀은 선관위에서 공개한 해당 명단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직속 기구에 위촉된 인사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실제,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사들 가운데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위촉한 자문위원, 전문위원, 특별위원이라고 밝힌 이들이 50명 넘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관위는 송재호 위원장을 선거 90일 전 사퇴해야 하는 공직자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죠. 송 위원장은 결국 공직자 사퇴 시한을 닷새 넘긴 지난 21일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총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선관위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모두 공직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출마 집단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기준을 세우기 힘들었던 상황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BS 팩트체크 팀은 아직 객관적인 검증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다만, 공직자의 비례대표 출마시한인 선거 30일 전까지 적절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잡아 해당 사안을 다시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조금 다르기는 해도 '조사 시점'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처음으로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수출' 관련 언급을 했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열린 해당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수출 호조가 눈에 띈다며 "연초부터 1일 평균 수출이 증가로 전환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선 새해 들어 수출이 오히려 0.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차이는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 개최 시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통계청은 열흘 단위로 수출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데 회의가 개최될 당시 인용된 통계는 1월 10일까지 집계 결과로 실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5.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의 인용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죠. 그런데 이튿날 공식 집계가 반대인 '감소세'로 나오면서 이른바 견강부회 논란이 빚어진 것이었죠. 검증의 관점에서 보면 집계 시점을 달리할 경우 "늘었다"와 "줄었다."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이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다른지에 대한 해설은 가능해도 사실을 검증하기는 어렵다는 게 팀의 결론이었습니다. 엇갈리는 평가…논의 자체가 '의미' 이렇게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거쳐 생산한 기사에 대한 수용자들의 평가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지난 21일 디지털 기사로 소화했던 “文 대통령은 정말로 영화 ‘판도라’ 보고 탈원전 결심했나?”를 살펴보겠습니다. 탈원전 정책은 현 정부 이전부터 문 대통령이 소신이나 정책 공약 등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던 내용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내용입니다. 현 정부 탈원전 정책의 적정성 여부에 관한 판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3일 오전까지 올라온 5백 건 가까운 댓글 가운데 상당수는 검증 내용과 달리 현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수용자들의 반응에 대해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장은 인지 부조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즉, 기존의 생각과 같은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수용자들의 경우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 노출됐을 때 일단 부담으로 느끼는 자연스러운 인지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지 부조화 상황이 되면 회피하거나 자신의 원래 생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데 이는 결국 팩트 체크 결과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다고 해도 기존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인식은 결국 왜 하필 그 아이템을 선정했느냐는 문제 제기나 검증을 수행한 언론사의 정체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생산된 기사보다는 생산 과정이나 생산 주체의 편향성을 문제 삼으면서 검증 자체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검증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숱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필요한 걸까요? 정 센터장은 "사실 검증 후에 해당 검증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팩트체크의 효과"라고 말합니다. 불편부당한 아이템 선정과 합리적이고 투명한 검증 과정을 거쳐 내려진 결론이라고 한다면 공론의 장에서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결국 진실에 부합하는 결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학계는 물론 현실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발걸음은 더디게 나아가고 있는 것도 현실로 보입니다. 다만, 현업에 있는 기자로서 여러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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