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체납 보고서]⑨ 징수율 3%?…공개·신고 제도 의미 살리려면

입력 2020.02.03 (07:00) 수정 2020.02.0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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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체납자들의 ‘버티기’ 행태는 징수율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고액 개인 체납자들의 체납액은 한 해 수조 원씩 발생하는데, 과연 이 가운데 얼마나 징수될까요?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국세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년 치 데이터를 받아 분석했습니다.

징수율 1~3%…일반 체납자 30%대보다 현저히 떨어져

2018년 신규 공개자들의 체납액은 모두 3조 5천380억 원이었는데요. 이 해 징수한 금액은 천2백억 원에 그쳤습니다. 신규 체납액 대비 징수 금액을 비교하면 3.4% 수준입니다. 여기서 징수 금액은 2018년에 발생한 체납액 가운데 징수한 금액만 뜻하는 게 아니라, 2004년부터 누적된 체납액 가운데 2018년에 걷은 금액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이 수치도 그 전에 비하면 나아진 겁니다. 2017년에는 1.3%, 2016년에는 0.9%였습니다. 고액 체납자들에 대한 징수율은 1~3%대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백억 원을 고액 체납하면 1~3억 원 정도만 회수하는 셈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일반 개인 체납자들의 징수율은 30%대 수준인 데 비해 고액 체납자들의 징수율이 1~3%대에 그치는 것은 고액 체납자들은 명단 공개 이후에 징수한 실적만 비교해서 낮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고액 체납자들에게서 징수한 금액도 일반 체납자 징수 금액에 포함된다"며 "명단에 올라간 후에는 재산이 압류된 뒤라 납세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기회가 될 때마다 “고액 체납자들을 추적하고 있고, 앞으로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특히 "‘악성 체납자’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액 체납자들 가운데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안 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국세청 또한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세청 트위터, 고액 체납자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국세청 트위터, 고액 체납자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진관 세무사는 "사업 위기가 올 것을 예상했을 때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미리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다"며 "체납자들이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재산을 빼돌렸거나 현금 매출을 숨기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도박이 '예술 스포츠업'…인적사항 제대로 기재하나?

국세청 관계자는 고액 체납자 명단 공개 제도의 목적이 이른바 '망신주기'와 '신고 장려'라고 밝혔습니다. 체납자들을 압박해 납세를 유도하고, 은닉 재산이 있다면 주변인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동안 신상 공개를 해도 큰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먼저 공개되는 정보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세기본법 제85조의 5에 따르면, 고액 체납자는 성명, 나이, 직업, 주소 등 다양한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적어도 국세청의 고액 체납자 공개 웹페이지에서는 체납자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밝혀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체납자의 납세능력을 가늠하고 동명이인을 구분하는 중요 정보인 '직업(업종)'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명단에 오른 뒤 지금까지 고액 체납자 1위를 지키고 있는 홍영철 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47살 홍 씨는 부가가치세 등 2가지 세목을 무려 1,632억 원이나 체납했는데요. 국세청은 지난해 보도자료를 내고 브리핑을 통해 홍 씨가 '온라인 도박 운영업'에 종사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국세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명단상에는 홍 씨의 직업(업종)이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이라고 돼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의 깊게 확인하지 않으면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경우는 또 발견됐습니다. 역시 온라인 도박의 사례였습니다. 국세청은 조세범 처벌법을 어겨 유죄판결이 확정된 이들에 대해서도 포탈세액이 연간 2억 원 이상이면 별도로 인적사항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다음 사례들은 두 명단에 모두 올랐지만, 직업(업종) 표기가 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조세 포탈범 명단에는 '도박 사이트 운영업'으로 기재돼 있는데, 고액 체납자 명단에는 직업이 빠져 있거나 '서비스업' 등으로 달리 표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기관에서 내는 두 개 자료의 정보도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홍 씨의 경우 업종 분류를 대분류로 적용했다"며 "대업태에서 세세분류로 들어가면 도박장 운영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브리핑 당시에는 홍 씨가 '온라인 도박업'에 종사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브리핑 때는 홍 씨가 체납액 1위라 별도로 조사해 구체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액 체납자는 일정 체납 시기가 지나 조건이 되면 명단에 올리기 때문에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입니다. 조세 포탈범은 고발 이후 조사가 이뤄지지만, 그 조사 결과를 고액 체납자 관리팀과 공유하거나 고액 체납자 정보와 비교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직업 공란도 만여 건…상속세, 증여세 안 낸 부유층일수록 ‘인적사항’ 덜 공개

더구나 직업(업종)을 아예 적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체 고액 체납자 3만 8천 155명 가운데 직업을 공란으로 비워둔 경우는 만 천 407명으로 29.9%를 차지했습니다. 10명 중 3명가량은 직업이 아예 공개가 안 된 것입니다. 국세청은 직업 확인은 명단 공개 당시에 전산상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경우만 그 자료를 그대로 올리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자 등록을 안 한 사람들의 직업은 아예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직업(업종) 표시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세금을 안 낸 체납자인지 분석해봤습니다. 직업이 공란인 만 천 407명을 체납 대표 세목별로 구분해봤더니, 이른바 고소득층의 세목일수록 직업이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표본이 적은 경우는 수치가 왜곡될 수 있어, 세목별로 직업 미표시자가 백 명 이상인 경우만 비율을 따져봤습니다. 이에 따라 증권거래세 등 9개 세목에 대한 177명은 제외됐습니다.

먼저 상속세를 내지 않은 사람들이 직업이 공란인 경우가 가장 많았는데, 그 비율은 66.9%나 됐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데도 세금을 안 낸 사람들의 10명 중 7명꼴로 직업이 공개되지 않은 겁니다. 이어 증여세 55.4%, 양도소득세 52.2% 순으로 이들 세금을 내지 않은 고액 체납자들의 직업이 표시가 안 돼 있었습니다. 세목을 보면 상대적으로 부유층이어서 징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데도 말입니다.


국세청은 "명단상 직업 정보가 빠진 경우에도, 징수 과정에서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뭘 하는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을수록 신상 공개를 통한 압박과 신고자 정보 제공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은 "국세청이 납세자 보호를 명분으로 자료를 잘 제공하지 않아 조세 관련 감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고해도 포상금 지급은 6.2%…한 해 23건에 불과

인적사항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영향일까요? 체납자의 은닉 재산을 제보한 사람들에게 포상금을 주는 '은닉재산 신고포상금 제도'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통계연보에는 은닉재산 신고 및 포상금 지급 현황이 나와 있는데요. 국세청 관계자는 “이 자료상 수치는 개인 체납자와 법인 체납자 신고 건수가 합쳐진 것이지만, 대부분 신고는 개인 체납자에 대해 들어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5년간 현황을 보면, 연평균 신고 건수는 370건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포상금을 지급한 건은 23건에 그칩니다. 신고도 적고, 포상금 지급은 더욱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신고를 해도 포상금을 지급한 건수가 6.2%밖에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건당 포상금액은 평균 3천56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납액 50억 원 이상인 체납자가 677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포상금액을 최대 2억 원까지 지급하게 돼 있지만, 실제 지급되는 포상금은 크지 않습니다. 징수 금액에 따라 포상금 지급률은 5~20% 수준을 적용하는데, 그 결과는 3천5백만 원을 웃도는 수준인 겁니다.


게다가 징수금액이 5천만 원 미만이면 포상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과도한 제보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신고 자체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회입법조사처 임언선 입법조사관은 신고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상금을 지급하는 징수금액 기준을 천만 원 미만으로 낮추고 포상금 지급률도 대폭 확대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체납액 못 쌓이게 공개 기준 낮춰야’…'끝까지 징수' 원칙 분명히

나아가 고액 체납자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공개 체납액 기준을 낮춰, 체납액이 더 쌓이기 전에 납세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공개 기준은 체납액 2억 원 이상인데, 1억 원이나 출국규제 기준인 5천만 원 이상으로 낮추자는 방안이 거론되는 겁니다. 출국규제는 체납액 5천만 원 이상인 체납자 중 해외 이주나 도피 우려가 있는 자에게 적용하고 있는데요. 이 기준에 맞춰 명단 공개를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체납액 징수에 가장 골칫거리였던 은닉 재산 추적과 관련해선 개선책이 마련됐습니다. 올해부터는 관련법이 개정돼 체납자들의 배우자와 친인척까지 금융거래 조회가 가능하게 됐는데요. 체납자가 가족의 명의로 재산을 숨겨 놓았는지 확인하려는 조치입니다. 또 실명 공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체납자들에 대한 징벌도 강화됐습니다. 체납액 2억 원 이상인 고액 상습 체납자의 경우, 최대 30일간 유치장 등에 감치할 수 있게 됩니다.

고액 체납자들의 '나 몰라라' 행태는 비단 나라 곳간을 비게 할 뿐 아니라, 성실 납세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납세 의지를 떨어뜨리게 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버티기 전략'으로 소멸시효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체납자들에게 '엄중 처벌', '끝까지 징수' 원칙이 살아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고액 체납자 명단공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현재 3만 8천 명까지 누적된 고액 체납자들은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분석 : 정한진 팀장, 윤지희
데이터 시각화 :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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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액체납 보고서]⑨ 징수율 3%?…공개·신고 제도 의미 살리려면
    • 입력 2020-02-03 07:00:40
    • 수정2020-02-03 07: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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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체납자들의 ‘버티기’ 행태는 징수율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고액 개인 체납자들의 체납액은 한 해 수조 원씩 발생하는데, 과연 이 가운데 얼마나 징수될까요?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국세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년 치 데이터를 받아 분석했습니다.

징수율 1~3%…일반 체납자 30%대보다 현저히 떨어져

2018년 신규 공개자들의 체납액은 모두 3조 5천380억 원이었는데요. 이 해 징수한 금액은 천2백억 원에 그쳤습니다. 신규 체납액 대비 징수 금액을 비교하면 3.4% 수준입니다. 여기서 징수 금액은 2018년에 발생한 체납액 가운데 징수한 금액만 뜻하는 게 아니라, 2004년부터 누적된 체납액 가운데 2018년에 걷은 금액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이 수치도 그 전에 비하면 나아진 겁니다. 2017년에는 1.3%, 2016년에는 0.9%였습니다. 고액 체납자들에 대한 징수율은 1~3%대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백억 원을 고액 체납하면 1~3억 원 정도만 회수하는 셈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일반 개인 체납자들의 징수율은 30%대 수준인 데 비해 고액 체납자들의 징수율이 1~3%대에 그치는 것은 고액 체납자들은 명단 공개 이후에 징수한 실적만 비교해서 낮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고액 체납자들에게서 징수한 금액도 일반 체납자 징수 금액에 포함된다"며 "명단에 올라간 후에는 재산이 압류된 뒤라 납세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기회가 될 때마다 “고액 체납자들을 추적하고 있고, 앞으로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특히 "‘악성 체납자’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액 체납자들 가운데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안 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국세청 또한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세청 트위터, 고액 체납자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진관 세무사는 "사업 위기가 올 것을 예상했을 때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미리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다"며 "체납자들이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재산을 빼돌렸거나 현금 매출을 숨기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도박이 '예술 스포츠업'…인적사항 제대로 기재하나?

국세청 관계자는 고액 체납자 명단 공개 제도의 목적이 이른바 '망신주기'와 '신고 장려'라고 밝혔습니다. 체납자들을 압박해 납세를 유도하고, 은닉 재산이 있다면 주변인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동안 신상 공개를 해도 큰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먼저 공개되는 정보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세기본법 제85조의 5에 따르면, 고액 체납자는 성명, 나이, 직업, 주소 등 다양한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적어도 국세청의 고액 체납자 공개 웹페이지에서는 체납자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밝혀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체납자의 납세능력을 가늠하고 동명이인을 구분하는 중요 정보인 '직업(업종)'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명단에 오른 뒤 지금까지 고액 체납자 1위를 지키고 있는 홍영철 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47살 홍 씨는 부가가치세 등 2가지 세목을 무려 1,632억 원이나 체납했는데요. 국세청은 지난해 보도자료를 내고 브리핑을 통해 홍 씨가 '온라인 도박 운영업'에 종사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국세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명단상에는 홍 씨의 직업(업종)이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이라고 돼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의 깊게 확인하지 않으면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경우는 또 발견됐습니다. 역시 온라인 도박의 사례였습니다. 국세청은 조세범 처벌법을 어겨 유죄판결이 확정된 이들에 대해서도 포탈세액이 연간 2억 원 이상이면 별도로 인적사항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다음 사례들은 두 명단에 모두 올랐지만, 직업(업종) 표기가 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조세 포탈범 명단에는 '도박 사이트 운영업'으로 기재돼 있는데, 고액 체납자 명단에는 직업이 빠져 있거나 '서비스업' 등으로 달리 표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기관에서 내는 두 개 자료의 정보도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홍 씨의 경우 업종 분류를 대분류로 적용했다"며 "대업태에서 세세분류로 들어가면 도박장 운영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브리핑 당시에는 홍 씨가 '온라인 도박업'에 종사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브리핑 때는 홍 씨가 체납액 1위라 별도로 조사해 구체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액 체납자는 일정 체납 시기가 지나 조건이 되면 명단에 올리기 때문에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입니다. 조세 포탈범은 고발 이후 조사가 이뤄지지만, 그 조사 결과를 고액 체납자 관리팀과 공유하거나 고액 체납자 정보와 비교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직업 공란도 만여 건…상속세, 증여세 안 낸 부유층일수록 ‘인적사항’ 덜 공개

더구나 직업(업종)을 아예 적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체 고액 체납자 3만 8천 155명 가운데 직업을 공란으로 비워둔 경우는 만 천 407명으로 29.9%를 차지했습니다. 10명 중 3명가량은 직업이 아예 공개가 안 된 것입니다. 국세청은 직업 확인은 명단 공개 당시에 전산상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경우만 그 자료를 그대로 올리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자 등록을 안 한 사람들의 직업은 아예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직업(업종) 표시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세금을 안 낸 체납자인지 분석해봤습니다. 직업이 공란인 만 천 407명을 체납 대표 세목별로 구분해봤더니, 이른바 고소득층의 세목일수록 직업이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표본이 적은 경우는 수치가 왜곡될 수 있어, 세목별로 직업 미표시자가 백 명 이상인 경우만 비율을 따져봤습니다. 이에 따라 증권거래세 등 9개 세목에 대한 177명은 제외됐습니다.

먼저 상속세를 내지 않은 사람들이 직업이 공란인 경우가 가장 많았는데, 그 비율은 66.9%나 됐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데도 세금을 안 낸 사람들의 10명 중 7명꼴로 직업이 공개되지 않은 겁니다. 이어 증여세 55.4%, 양도소득세 52.2% 순으로 이들 세금을 내지 않은 고액 체납자들의 직업이 표시가 안 돼 있었습니다. 세목을 보면 상대적으로 부유층이어서 징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데도 말입니다.


국세청은 "명단상 직업 정보가 빠진 경우에도, 징수 과정에서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뭘 하는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을수록 신상 공개를 통한 압박과 신고자 정보 제공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은 "국세청이 납세자 보호를 명분으로 자료를 잘 제공하지 않아 조세 관련 감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고해도 포상금 지급은 6.2%…한 해 23건에 불과

인적사항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영향일까요? 체납자의 은닉 재산을 제보한 사람들에게 포상금을 주는 '은닉재산 신고포상금 제도'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통계연보에는 은닉재산 신고 및 포상금 지급 현황이 나와 있는데요. 국세청 관계자는 “이 자료상 수치는 개인 체납자와 법인 체납자 신고 건수가 합쳐진 것이지만, 대부분 신고는 개인 체납자에 대해 들어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5년간 현황을 보면, 연평균 신고 건수는 370건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포상금을 지급한 건은 23건에 그칩니다. 신고도 적고, 포상금 지급은 더욱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신고를 해도 포상금을 지급한 건수가 6.2%밖에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건당 포상금액은 평균 3천56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납액 50억 원 이상인 체납자가 677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포상금액을 최대 2억 원까지 지급하게 돼 있지만, 실제 지급되는 포상금은 크지 않습니다. 징수 금액에 따라 포상금 지급률은 5~20% 수준을 적용하는데, 그 결과는 3천5백만 원을 웃도는 수준인 겁니다.


게다가 징수금액이 5천만 원 미만이면 포상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과도한 제보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신고 자체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회입법조사처 임언선 입법조사관은 신고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상금을 지급하는 징수금액 기준을 천만 원 미만으로 낮추고 포상금 지급률도 대폭 확대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체납액 못 쌓이게 공개 기준 낮춰야’…'끝까지 징수' 원칙 분명히

나아가 고액 체납자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공개 체납액 기준을 낮춰, 체납액이 더 쌓이기 전에 납세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공개 기준은 체납액 2억 원 이상인데, 1억 원이나 출국규제 기준인 5천만 원 이상으로 낮추자는 방안이 거론되는 겁니다. 출국규제는 체납액 5천만 원 이상인 체납자 중 해외 이주나 도피 우려가 있는 자에게 적용하고 있는데요. 이 기준에 맞춰 명단 공개를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체납액 징수에 가장 골칫거리였던 은닉 재산 추적과 관련해선 개선책이 마련됐습니다. 올해부터는 관련법이 개정돼 체납자들의 배우자와 친인척까지 금융거래 조회가 가능하게 됐는데요. 체납자가 가족의 명의로 재산을 숨겨 놓았는지 확인하려는 조치입니다. 또 실명 공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체납자들에 대한 징벌도 강화됐습니다. 체납액 2억 원 이상인 고액 상습 체납자의 경우, 최대 30일간 유치장 등에 감치할 수 있게 됩니다.

고액 체납자들의 '나 몰라라' 행태는 비단 나라 곳간을 비게 할 뿐 아니라, 성실 납세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납세 의지를 떨어뜨리게 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버티기 전략'으로 소멸시효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체납자들에게 '엄중 처벌', '끝까지 징수' 원칙이 살아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고액 체납자 명단공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현재 3만 8천 명까지 누적된 고액 체납자들은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분석 : 정한진 팀장, 윤지희
데이터 시각화 :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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