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워킹그룹이 뭐길래…“이름 떼고 비공개로 진행”

입력 2020.02.0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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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부대표가 다음 주 초 한국을 찾습니다.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만나 한미 워킹그룹을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미 워킹그룹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남북 관계와 남북 협력, 그리고 그에 따른 대북 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입니다. 2018년 1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첫 회의를 가진 뒤 정례적으로 회의가 열려왔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북한 개별 관광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 구상을 밝힌 직후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북한 개별 관광을 포함한 남북 협력 사업은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었는데, 그 회의가 다음 주 열리는 겁니다.

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 개최 결과 보도자료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 개최 결과 보도자료

그런데 이번 워킹그룹 회의는 이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과거에는 회의 개최 사실도 공개하고, 개최 결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알렉스 웡 등 미국 대표단의 동선도 철저히 보안에 부쳐졌습니다.

'워킹그룹'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워킹그룹 회의의 내용은 기존과 같지만, 명칭과 형식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최종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방한하는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부대표방한하는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부대표

■ "한미 워킹그룹은 新 총독부"…북한 반발·내부 비판 의식한 듯

일단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 워킹그룹 때문에 남북 협력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해왔습니다.

"남북 협력을 파탄 내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 있다", "미국이 함부로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 "남측이 미국의 지휘봉에 따라 남북 관계를 대하고 있다" 등 강한 표현으로 워킹그룹을 비난해왔습니다.

북한은 특히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기업인들의 방북 신청이 기각된 것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가 진척이 없는 점,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 이후 추가 움직임이 없는 점 등을 언급하며 한미 워킹그룹의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북한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에 나온 한미 워킹그룹 비난 기사북한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에 나온 한미 워킹그룹 비난 기사

여기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불을 지핀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달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하자, 해리스 대사는 곧바로 남북 협력은 비핵화 진전과 함께 가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강조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 관광 구상을 언급하자, 이번엔 한미 워킹그룹을 내세워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 북한과의 어떤 계획도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 겁니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잇따라 파장을 낳으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워킹그룹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창의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고, 주야장천 남북 관계에 대해서 된다, 안 된다는 얘기만 한다"며 "그러니 신 조선총독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 외교부 "원활한 남북 협력 위해 워킹그룹 출범했지만, 현실적 한계"

한미 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출범했습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이 도출되지 못하자,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협력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단을 먼저 구성한 겁니다.

특히 2018년 초반 남북 화해 국면에서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 수로 공동 조사, 남북 공동 유해 발굴 등 남북 간 협력이 속속 진행되는데, 대북 제재에 번번이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자 '대북 제재 예외'를 미국과 직접 논의할 실무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가 얼마나 촘촘하게 돼 있는지 실무를 접하다 보면 깜짝 놀랄 정도"라면서 "그동안 남북 경의선 철도 현지 조사, 남북 공동 유해 발굴 등 여러 사업 추진 과정에서 유엔과 미국 재무부를 통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대북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도 지난달 "미국이 이건 안 된다며 거절한 건 없다"면서 "미국으로서는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없도록 워킹그룹에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대북 제재 때문에 남북 문제라도 미국, 또는 유엔과 논의를 거쳐야 하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점도 무시 못 할 부분이란 뜻입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관광 등과 관련해 "대북 제재의 틀을 충실히 이행하는 가운데 한다는 것이 우리 원칙"이라면서 "그런 틀 내에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북한에도 이득이 되는지를 점검하면서 관계 부처가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미국의 '남북 관계 속도 조절론'에 이용될 가능성"

한미 워킹그룹 운영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출범 초기부터 예견된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 2018년 11월 워킹그룹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북한은 즉각 워킹그룹 출범을 반대하고 효용성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그동안 미국은 남북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될 때 마다 이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남측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과 간섭행위를 일삼아왔고 지금도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를 조절하라고 강박하면서 일정에 올라 있는 협력 사업들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내 일각에서도 미국이 비핵화와 남북 협력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한미 워킹그룹을 활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습니다.

운용의 묘를 활용하면서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이 병행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워킹그룹을 남북 관계 방해꾼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 등 남북 협력에 속도를 내기로 한 만큼, 앞으로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지, 걸림돌이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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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워킹그룹이 뭐길래…“이름 떼고 비공개로 진행”
    • 입력 2020-02-07 16:16:24
    취재K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부대표가 다음 주 초 한국을 찾습니다.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만나 한미 워킹그룹을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미 워킹그룹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남북 관계와 남북 협력, 그리고 그에 따른 대북 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입니다. 2018년 1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첫 회의를 가진 뒤 정례적으로 회의가 열려왔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북한 개별 관광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 구상을 밝힌 직후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북한 개별 관광을 포함한 남북 협력 사업은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었는데, 그 회의가 다음 주 열리는 겁니다.

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 개최 결과 보도자료
그런데 이번 워킹그룹 회의는 이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과거에는 회의 개최 사실도 공개하고, 개최 결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알렉스 웡 등 미국 대표단의 동선도 철저히 보안에 부쳐졌습니다.

'워킹그룹'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워킹그룹 회의의 내용은 기존과 같지만, 명칭과 형식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최종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방한하는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부대표
■ "한미 워킹그룹은 新 총독부"…북한 반발·내부 비판 의식한 듯

일단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 워킹그룹 때문에 남북 협력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해왔습니다.

"남북 협력을 파탄 내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 있다", "미국이 함부로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 "남측이 미국의 지휘봉에 따라 남북 관계를 대하고 있다" 등 강한 표현으로 워킹그룹을 비난해왔습니다.

북한은 특히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기업인들의 방북 신청이 기각된 것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가 진척이 없는 점,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 이후 추가 움직임이 없는 점 등을 언급하며 한미 워킹그룹의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북한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에 나온 한미 워킹그룹 비난 기사
여기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불을 지핀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달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하자, 해리스 대사는 곧바로 남북 협력은 비핵화 진전과 함께 가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강조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 관광 구상을 언급하자, 이번엔 한미 워킹그룹을 내세워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 북한과의 어떤 계획도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 겁니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잇따라 파장을 낳으면서, 우리 내부에서도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워킹그룹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창의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고, 주야장천 남북 관계에 대해서 된다, 안 된다는 얘기만 한다"며 "그러니 신 조선총독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 외교부 "원활한 남북 협력 위해 워킹그룹 출범했지만, 현실적 한계"

한미 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출범했습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이 도출되지 못하자,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협력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단을 먼저 구성한 겁니다.

특히 2018년 초반 남북 화해 국면에서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 수로 공동 조사, 남북 공동 유해 발굴 등 남북 간 협력이 속속 진행되는데, 대북 제재에 번번이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자 '대북 제재 예외'를 미국과 직접 논의할 실무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가 얼마나 촘촘하게 돼 있는지 실무를 접하다 보면 깜짝 놀랄 정도"라면서 "그동안 남북 경의선 철도 현지 조사, 남북 공동 유해 발굴 등 여러 사업 추진 과정에서 유엔과 미국 재무부를 통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대북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도 지난달 "미국이 이건 안 된다며 거절한 건 없다"면서 "미국으로서는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없도록 워킹그룹에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대북 제재 때문에 남북 문제라도 미국, 또는 유엔과 논의를 거쳐야 하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점도 무시 못 할 부분이란 뜻입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관광 등과 관련해 "대북 제재의 틀을 충실히 이행하는 가운데 한다는 것이 우리 원칙"이라면서 "그런 틀 내에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북한에도 이득이 되는지를 점검하면서 관계 부처가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미국의 '남북 관계 속도 조절론'에 이용될 가능성"

한미 워킹그룹 운영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출범 초기부터 예견된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 2018년 11월 워킹그룹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북한은 즉각 워킹그룹 출범을 반대하고 효용성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그동안 미국은 남북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될 때 마다 이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남측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과 간섭행위를 일삼아왔고 지금도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를 조절하라고 강박하면서 일정에 올라 있는 협력 사업들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내 일각에서도 미국이 비핵화와 남북 협력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한미 워킹그룹을 활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습니다.

운용의 묘를 활용하면서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이 병행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워킹그룹을 남북 관계 방해꾼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 등 남북 협력에 속도를 내기로 한 만큼, 앞으로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지, 걸림돌이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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