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6호에 위작이?'...감사 청구

입력 2020.02.14 (20:42) 수정 2020.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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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이순신 장군 관련
문헌 3가지로 된 
국보 76호에 위조된 편지가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라남도의회가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하기로
만장일치로 의결까지 했다는데...
  이런 주장의 내용과 배경은 무엇인지
김광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전라남도의회가 

국보 제76호 서간첩의 친필 여부를
감사원이 밝혀주라고 요청하기로 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서간첩이 진짜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섭니다. 

이 일의 시작은 이순신 장군이 말한 ‘약무호남 시무국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나라를 구한 호남의 역할을 인정한 충
무공의 말의 의미가

일제 강점기에 갑자기 등장한 편지 이후 
축소 또는 왜곡됐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임진왜란 직후와 정조 때 등
조선시대에 만든 문헌 세 가지와는 달리
이 문헌은 진위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애깁니다.

임종기 전라남도의회 의원

"서간첩은 이충무공 전서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1934년 서장석 본에 속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충무공 전서는 정조 때 1795년에 만들어진 건데..'

2년 가까이 문헌을 연구해 본 결과

수신인의 직위도 당대의 직위가 아니고
상식적 단어를 거꾸로 썼거나 추가되는 등 충무공의 편지로 보기 어려운 곳이
한두 곳이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진위가 의심스런 서한의 갯수도
처음 등장한 1934년엔 7편이던 것이
역사가 이은상 씨가 번역서를 낸 1960년엔
6편으로,



국보지정 때는 8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서한이 전시된 현충사의 진열대와
인터넷 홈페이진 6편으로 
대외 홍보 설명서엔 8편으로 돼 있습니다.

또,국보로 지정된 날짜도 지정서에는
1959년 1월 23일로,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엔 
1962년 12월 20일로 적혀 있는 것도 
의아하다고 주장합니다. 

임종기 전라남도의회 의원

"이순신 장군이 활동할 때 쓴 편지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편지지가 임진왜란 당시의 종이인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결정적인 친필 판단의 근거가 될

종이제작연대 규명 등의 요청을 받았던 
문화재청은 알 수 없다고 회신했고,
현재로선 진실 규명도 어렵다고 말합니다. 

황정연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보물)지정과 관련된 사안을 판단할 때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공식화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인터넷 상에서 폄하되고 있는

 
충무공의 말을 명확히 알고 싶었다는
한 지방의원의 연구에서 시작된 일이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로 이어지면서
문화재의 진위 논란은 더 커지게 됐습니다.
KBS news 김광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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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76호에 위작이?'...감사 청구
    • 입력 2020-02-14 20:42:20
    • 수정2020-02-19 15:56:40
    뉴스9(목포)

  충무공 이순신 장군 관련 문헌 3가지로 된  국보 76호에 위조된 편지가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라남도의회가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하기로 만장일치로 의결까지 했다는데...   이런 주장의 내용과 배경은 무엇인지 김광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전라남도의회가 국보 제76호 서간첩의 친필 여부를 감사원이 밝혀주라고 요청하기로 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서간첩이 진짜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섭니다.  이 일의 시작은 이순신 장군이 말한 ‘약무호남 시무국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나라를 구한 호남의 역할을 인정한 충 무공의 말의 의미가 일제 강점기에 갑자기 등장한 편지 이후  축소 또는 왜곡됐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임진왜란 직후와 정조 때 등 조선시대에 만든 문헌 세 가지와는 달리 이 문헌은 진위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애깁니다. 임종기 전라남도의회 의원 "서간첩은 이충무공 전서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1934년 서장석 본에 속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충무공 전서는 정조 때 1795년에 만들어진 건데..' 2년 가까이 문헌을 연구해 본 결과 수신인의 직위도 당대의 직위가 아니고 상식적 단어를 거꾸로 썼거나 추가되는 등 충무공의 편지로 보기 어려운 곳이 한두 곳이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진위가 의심스런 서한의 갯수도 처음 등장한 1934년엔 7편이던 것이 역사가 이은상 씨가 번역서를 낸 1960년엔 6편으로,

국보지정 때는 8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서한이 전시된 현충사의 진열대와 인터넷 홈페이진 6편으로  대외 홍보 설명서엔 8편으로 돼 있습니다. 또,국보로 지정된 날짜도 지정서에는 1959년 1월 23일로,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엔  1962년 12월 20일로 적혀 있는 것도  의아하다고 주장합니다.  임종기 전라남도의회 의원 "이순신 장군이 활동할 때 쓴 편지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편지지가 임진왜란 당시의 종이인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결정적인 친필 판단의 근거가 될 종이제작연대 규명 등의 요청을 받았던  문화재청은 알 수 없다고 회신했고, 현재로선 진실 규명도 어렵다고 말합니다.  황정연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보물)지정과 관련된 사안을 판단할 때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공식화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인터넷 상에서 폄하되고 있는  충무공의 말을 명확히 알고 싶었다는 한 지방의원의 연구에서 시작된 일이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로 이어지면서 문화재의 진위 논란은 더 커지게 됐습니다. KBS news 김광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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