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살지마] “조두순은 사이코패스입니다” 그의 출소를 바라보는 프로파일러의 심경

입력 2020.02.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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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출소합니다. 올해 말인 2020년 12월입니다. 여론은 분노합니다. 출소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이 61만 명을 넘습니다.

누구보다 이를 착잡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1호 경찰 프로파일러' 출신인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현역 시절 수사 과정에서 조두순을 직접 면담 조사했던 그로서는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고살지마>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들끓는 비판 여론과 관련해 권일용 교수와 함께 긴급 점검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가 면담했던 연쇄살인범들인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와 관련한 뒷이야기들도 담았습니다. 특히 살인마 강호순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 단서가 됐던 DNA 확보와 관련한 비화도 처음 공개합니다.

"조두순은 사이코패스입니다. 기계적 잣대로 양형을 결정한 건 잘못입니다."

MBC 실화탐사대 화면 캡처MBC 실화탐사대 화면 캡처

조두순(2008년 12월 8세 여아 성폭행) 수사에 경찰 프로파일러로서 직접 참여했던 권일용 교수는 "조두순은 여느 범죄자와 다르다. 법적 잣대도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두순 같은 사람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아요. 반사회적이죠. 이런 사람들은 다른 범죄자들과는 전혀 달라요. 이런 사람들을 피해자와 합의했다, 본인이 반성하고 있다, 이런 잣대로 양형을 결정한다면 잘못된 거죠."

권 교수는 "조두순 같은 범죄자는 전문가들이 투입돼서 평가해야 한다. 재판에서도 판사가 자세히 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면밀하게 해당 범죄자의 심리나 재범 우려 등을 다면적으로 평가해서 판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8살 어린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에게 확정된 형량은 징역 12년. 검찰은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조두순이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서 감형을 해 줬습니다. 법원이 권 교수의 쓴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그 셋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왼쪽부터)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왼쪽부터)

보통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는 표현으로 함께 묶이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권 교수는 자신이 직접 수사했던 이들에 대한 소회도 털어놨습니다. 그는 이들 셋에 대해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 기억했습니다.

끝없이 자기를 포장하고 과시한 유영철

유영철(2003년 9월~2004년 7월 20명 살해)에 대해 권 교수는 "끝없이 자기를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좋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고 기억합니다. 칠레의 혁명가 체 게바라 관련 이야기를 하는 등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고 학식도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했고,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권 교수는 "유영철을 면담하러 갔는데, 대뜸 "당신, 리처드 체이스 사건을 아느냐고 먼저 묻더라. 1977년 미국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흡혈 살인' 사건으로서 당연히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그걸 안다고 하면 유영철 성향상 더는 말을 안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유영철이 그 사건을 막 설명하고서는 '그 사람은 정신질환자이고 나는 멀쩡한 사람이야'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권 교수는 "사건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범죄를 연구하는 사람들만 과거의 범죄를 살펴보는 게 아니라, 이런 자들도 범죄를 공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합니다.

언변이 화려했던 강호순, 만나자마자 "물 한잔도 안 떠와요?"

강호순(2006년 9월~2008년 12월 10명 살해) 또한 언변이 화려했다고, 권 교수는 기억합니다. "말을 굉장히 잘하더라. 아주 유연하고 말로 상대방을 통제하는 타입"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화려한 언변은 권 교수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대로였습니다. 권 교수는 "만나자마자 강호순이 아주 친절한 말투로 '아니, 저하고 대화를 나누시려면 물이라도 한잔 떠오시지 그러셨어요'라고 하더라"고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강호순도 간과한 게 있었습니다. 권 교수가 최고의 범죄심리 전문가라는, 다시 말해 '고수'란 사실이었습니다. 권 교수는 "물 떠오라는 이야기가 뭐냐면,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 친구가 나를 보는 순간 상당히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구나'하고 생각하고 물을 떠다 주면 그게 완벽하게 심부름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권 교수는 "그래서 제가 그 0.5초의 순간에 '나는 너 물 갖다 주러 온 사람이 아니다. 나하고 대화를 나눠야 해'라고 아주 친절하게 얘기를 했다"면서 "그때부터 굉장히 빡빡해졌다. '너도 이제 나를 아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라포(유대감)를 형성하는 중간 과정 없이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방송에서도 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에 어떤 분이 기사 댓글에 '물은 셀프야, 인마'라고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라. 내가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초 공개: 강호순의 DNA는 '여기'서 검출됐다

강호순을 만난 권 프로파일러가 처음 꺼낸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였습니다. 당시 강호순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호순의 답변은 뻔뻔했습니다. "압수물에서 DNA 분석하려면 몇 달 걸릴 걸?"이라고 한 겁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역시 고수였습니다. "나는 이 범죄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아. 그래서 뭐부터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가 있어"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 우선순위대로 압수물 분석을 하도록 해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고, 그 순간 강호순은 무너졌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고급 옷'에서 나온 혈흔이었습니다.

"이건 어디서도 안 밝힌 이야기"라는 권 교수는 "강호순은 고급 승용차와 고급 옷을 입고는 그 후광으로 추운 날 피해자들에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유인하는 수법을 썼다. 그래서 강호순의 그 많은 옷 중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인 옷부터 분석하라'고 했는데, 역시나 거기서 DNA가, 혈흔이 딱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를 죽여달라"던 정남규, '악의 덩어리' 그 자체

정남규(2004년 1월~2006년 4월 14명 살해)의 경우에는 "'악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는 게, 권 교수의 평가입니다. 수감 중이던 정남규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권 교수는 "그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살해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남규는 판사에게 정말 편지를 많이 썼어요. 자기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을 했는지를 경찰에서 말하지 않은 것까지 다 썼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이렇게 잔혹한 놈인데, 왜 안 죽이느냐,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어요. 마지막엔 '사형제도를 함부로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이렇게까지 편지를 보냈어요."

권 교수는 "그 편지를 쓴 목적은 '나 사람 죽이고 싶어서 못 참겠으니, 나를 빨리 죽이든지 내보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달라'는 취지였다"면서 "이 사람은 상식의 선을 갖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남규의 특이한 점도 공개됐습니다. 글을 매우 잘 썼다는 겁니다. 권 교수는 "판사에게 여러 차례 보낸 편지를 입수해서 분석해 봤는데, 글씨를 잘 쓴 것은 물론 문장력이나 전달력이 굉장히 뛰어났다"고 회고했습니다.

살인을 후회하긴커녕 회상한 세 악마

세 살인마에 얽힌 이야기를 듣던 〈속고살지마〉의 '브레인' 양지열 변호사는 "제가 법조인 생활 초기에 국선 변호를 하면서 살인 사건 저지른 사람들도 좀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그때 일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도 않고 피하려고 하더라. 그런데 저 세 명은 그 정반대인 거냐"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권 교수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저도 초창기에 치정이나 원한처럼 목적이나 동기가 있는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만나 봤는데, 전형적으로 자기가 한 행위가 없었더라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보였다"면서 "그런데 이 세 명은 그냥 어떻게든지 자신들이 한 짓을 회상하고 기억을 유지하려는 하는 노력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피해자 가족 생각에 죄책감도 느끼지만…"

권 교수는 "흉악범을 상대하는 일이 이어지다 보니,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 같아서 정년이 남았는데도 명예퇴직을 했다"면서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더 많은 분이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질문하셔서 여전히 벗어나지를 못한다"며 쓴웃음 지었습니다.

권 교수는 "사실 저로선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 범죄자들로 인해 피해 당한 가족들이 또다시 그때 일을 떠올리게 된다면, 제가 정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유인하고 범행을 저지르는지 등을 전파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일상 속 사기와 속임수를 파헤치고 해법도 제시합니다. KBS의 대국민 사기방지 프로젝트 〈속고살지마〉입니다. (유튜브 채널 https://bit.ly/2UG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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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고살지마] “조두순은 사이코패스입니다” 그의 출소를 바라보는 프로파일러의 심경
    • 입력 2020-02-16 14:03:31
    속고살지마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출소합니다. 올해 말인 2020년 12월입니다. 여론은 분노합니다. 출소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이 61만 명을 넘습니다.

누구보다 이를 착잡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1호 경찰 프로파일러' 출신인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현역 시절 수사 과정에서 조두순을 직접 면담 조사했던 그로서는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고살지마>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들끓는 비판 여론과 관련해 권일용 교수와 함께 긴급 점검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가 면담했던 연쇄살인범들인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와 관련한 뒷이야기들도 담았습니다. 특히 살인마 강호순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 단서가 됐던 DNA 확보와 관련한 비화도 처음 공개합니다.

"조두순은 사이코패스입니다. 기계적 잣대로 양형을 결정한 건 잘못입니다."

MBC 실화탐사대 화면 캡처
조두순(2008년 12월 8세 여아 성폭행) 수사에 경찰 프로파일러로서 직접 참여했던 권일용 교수는 "조두순은 여느 범죄자와 다르다. 법적 잣대도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두순 같은 사람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아요. 반사회적이죠. 이런 사람들은 다른 범죄자들과는 전혀 달라요. 이런 사람들을 피해자와 합의했다, 본인이 반성하고 있다, 이런 잣대로 양형을 결정한다면 잘못된 거죠."

권 교수는 "조두순 같은 범죄자는 전문가들이 투입돼서 평가해야 한다. 재판에서도 판사가 자세히 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면밀하게 해당 범죄자의 심리나 재범 우려 등을 다면적으로 평가해서 판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8살 어린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에게 확정된 형량은 징역 12년. 검찰은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조두순이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서 감형을 해 줬습니다. 법원이 권 교수의 쓴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그 셋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왼쪽부터)
보통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는 표현으로 함께 묶이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권 교수는 자신이 직접 수사했던 이들에 대한 소회도 털어놨습니다. 그는 이들 셋에 대해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 기억했습니다.

끝없이 자기를 포장하고 과시한 유영철

유영철(2003년 9월~2004년 7월 20명 살해)에 대해 권 교수는 "끝없이 자기를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좋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고 기억합니다. 칠레의 혁명가 체 게바라 관련 이야기를 하는 등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고 학식도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했고,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권 교수는 "유영철을 면담하러 갔는데, 대뜸 "당신, 리처드 체이스 사건을 아느냐고 먼저 묻더라. 1977년 미국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흡혈 살인' 사건으로서 당연히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그걸 안다고 하면 유영철 성향상 더는 말을 안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유영철이 그 사건을 막 설명하고서는 '그 사람은 정신질환자이고 나는 멀쩡한 사람이야'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권 교수는 "사건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범죄를 연구하는 사람들만 과거의 범죄를 살펴보는 게 아니라, 이런 자들도 범죄를 공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합니다.

언변이 화려했던 강호순, 만나자마자 "물 한잔도 안 떠와요?"

강호순(2006년 9월~2008년 12월 10명 살해) 또한 언변이 화려했다고, 권 교수는 기억합니다. "말을 굉장히 잘하더라. 아주 유연하고 말로 상대방을 통제하는 타입"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화려한 언변은 권 교수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대로였습니다. 권 교수는 "만나자마자 강호순이 아주 친절한 말투로 '아니, 저하고 대화를 나누시려면 물이라도 한잔 떠오시지 그러셨어요'라고 하더라"고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강호순도 간과한 게 있었습니다. 권 교수가 최고의 범죄심리 전문가라는, 다시 말해 '고수'란 사실이었습니다. 권 교수는 "물 떠오라는 이야기가 뭐냐면,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 친구가 나를 보는 순간 상당히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구나'하고 생각하고 물을 떠다 주면 그게 완벽하게 심부름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권 교수는 "그래서 제가 그 0.5초의 순간에 '나는 너 물 갖다 주러 온 사람이 아니다. 나하고 대화를 나눠야 해'라고 아주 친절하게 얘기를 했다"면서 "그때부터 굉장히 빡빡해졌다. '너도 이제 나를 아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라포(유대감)를 형성하는 중간 과정 없이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방송에서도 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에 어떤 분이 기사 댓글에 '물은 셀프야, 인마'라고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라. 내가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초 공개: 강호순의 DNA는 '여기'서 검출됐다

강호순을 만난 권 프로파일러가 처음 꺼낸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였습니다. 당시 강호순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호순의 답변은 뻔뻔했습니다. "압수물에서 DNA 분석하려면 몇 달 걸릴 걸?"이라고 한 겁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역시 고수였습니다. "나는 이 범죄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아. 그래서 뭐부터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가 있어"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 우선순위대로 압수물 분석을 하도록 해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고, 그 순간 강호순은 무너졌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고급 옷'에서 나온 혈흔이었습니다.

"이건 어디서도 안 밝힌 이야기"라는 권 교수는 "강호순은 고급 승용차와 고급 옷을 입고는 그 후광으로 추운 날 피해자들에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유인하는 수법을 썼다. 그래서 강호순의 그 많은 옷 중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인 옷부터 분석하라'고 했는데, 역시나 거기서 DNA가, 혈흔이 딱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를 죽여달라"던 정남규, '악의 덩어리' 그 자체

정남규(2004년 1월~2006년 4월 14명 살해)의 경우에는 "'악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는 게, 권 교수의 평가입니다. 수감 중이던 정남규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권 교수는 "그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살해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남규는 판사에게 정말 편지를 많이 썼어요. 자기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을 했는지를 경찰에서 말하지 않은 것까지 다 썼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이렇게 잔혹한 놈인데, 왜 안 죽이느냐,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어요. 마지막엔 '사형제도를 함부로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이렇게까지 편지를 보냈어요."

권 교수는 "그 편지를 쓴 목적은 '나 사람 죽이고 싶어서 못 참겠으니, 나를 빨리 죽이든지 내보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달라'는 취지였다"면서 "이 사람은 상식의 선을 갖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남규의 특이한 점도 공개됐습니다. 글을 매우 잘 썼다는 겁니다. 권 교수는 "판사에게 여러 차례 보낸 편지를 입수해서 분석해 봤는데, 글씨를 잘 쓴 것은 물론 문장력이나 전달력이 굉장히 뛰어났다"고 회고했습니다.

살인을 후회하긴커녕 회상한 세 악마

세 살인마에 얽힌 이야기를 듣던 〈속고살지마〉의 '브레인' 양지열 변호사는 "제가 법조인 생활 초기에 국선 변호를 하면서 살인 사건 저지른 사람들도 좀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그때 일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도 않고 피하려고 하더라. 그런데 저 세 명은 그 정반대인 거냐"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권 교수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저도 초창기에 치정이나 원한처럼 목적이나 동기가 있는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만나 봤는데, 전형적으로 자기가 한 행위가 없었더라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보였다"면서 "그런데 이 세 명은 그냥 어떻게든지 자신들이 한 짓을 회상하고 기억을 유지하려는 하는 노력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피해자 가족 생각에 죄책감도 느끼지만…"

권 교수는 "흉악범을 상대하는 일이 이어지다 보니,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 같아서 정년이 남았는데도 명예퇴직을 했다"면서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더 많은 분이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질문하셔서 여전히 벗어나지를 못한다"며 쓴웃음 지었습니다.

권 교수는 "사실 저로선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 범죄자들로 인해 피해 당한 가족들이 또다시 그때 일을 떠올리게 된다면, 제가 정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유인하고 범행을 저지르는지 등을 전파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일상 속 사기와 속임수를 파헤치고 해법도 제시합니다. KBS의 대국민 사기방지 프로젝트 〈속고살지마〉입니다. (유튜브 채널 https://bit.ly/2UG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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