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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생활 시설에서 동고동락 했던 2주일
입력 2020.02.17 (19:40) 수정 2020.02.18 (05:27) 뉴스9(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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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2주간 진천에 머물렀던
우한 교민들이 무사히 퇴소했습니다.
교민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의료와 소방, 치안 등을 책임진
많은 분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는데요.
오늘은, 우한 교민들과
최전선에서 생활해온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충북 진천소방서 119안전센터
남상미 소방위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리포트]
[질문1]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우한 교민들과 함께 생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특별한 선발 과정이 있었나요?

[답변1]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제가 충북소방본부에서 구급행정을 담당했었고, 그 경험을 살려 체계적인 감염대처 방안을 익히고자 자원했습니다. 마침 환자 이송을 주 임무로 하고 있어, 응급의료체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업무 숙련도를 인정받아 최종 선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2][질문2]
생활하시면서 어떠셨는지요? 처음에 인근 주민들이 반발도 하고 감염에 대해 걱정도 하셨을 텐데요?

[답변2] 사실 저도 지역 사람인데요. 인재개발원 입소 전, 지역 사우나를 방문했을 때, 많은 분이 ‘코로나 19’가 지역사회 전염으로 퍼질 것을 염려하고 있었고, 저도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재개발원의 감염관리대책은 지침보다 철저했고 완벽했기에 곧 안심하며 지낼 수 있었고요, 뉴스를 통해 지역주민도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질문3]그렇군요. 인재개발원 안에서의 생활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생활하신 건지 간략하게 일정 또는 주요 업무 등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3]감염 차단과 교민에게 안정된 생활 환경을 제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합동지원단도 교민처럼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고 같은 도시락으로 식사하며, 2주 남짓의 기간을 바쁘게 보냈습니다. 우리 소방에서는 지정병원으로의 이송과 “코로나 19” 진단을 위한 검체 후송 업무를 했습니다.

[질문4] 어떻게 보면 우한 교민들과 한 몸처럼 생활을 하신 건데. 직접 접촉도 하셨나요? 중간에 교민들을 119 차량으로 이송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답변4] 119 이송지원을 위해 2명의 교민과 직접 접촉했는데요, 감염방지를 위한 방호복을 착용하고 활동하여 안전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두 분을 이송했습니다. 한 분은 일반 치주질환으로 병원 치료가 필요해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했고, 다른 한 분은 이미 언론에도 보도되었듯, 위독하신 부친을 위해 간절한 맘으로 면회를 요청 하셔서, 부친이 계신 병원으로 이송하고, 부친을 뵐 수 있도록 한 후 다시 인재개발원에 입소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질문5]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다 보니, 그 안에 많은 사연이 있었군요. 옆에서 직접 보실 때 우한 교민들은 주로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답해하진 않으셨는지요.

[답변5] 1인 1실 격리로 외롭고 답답한 생활을 하게 되어, 혹시 적응을 못 하는 분이 계실까 염려했는데, 비교적 평온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 수칙을 잘 지켜주셨기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질문6] 격리된 생활이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각자 1인실 생활을 했지만, 서로 교감이 됐나요?

[답변6] 교민들께서 포스트잇에 안부와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각 호실 문밖에 붙여주셨고, 그걸 보면서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등을 제공할 때 사용하는 끌차의 소리가 요란한데,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면 방안에서 어린아이가 “아저씨~”하며 반갑게 인사하고“잘 지내니?”하며 화답하는 등,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소한 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질문7] 교민들도 다 건강하게 돌아가시고, 소방위님도 음성으로 판정받아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답변7]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힘든 격리 생활을 잘 이겨낸 교민과 지원단 모두가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교민들이 격리생활을 잘 마치고 퇴소할 때, “밖에 나와서 좋아?”라는 제 물음에 “네 좋아요” 라고 답하던 어린아이의 환한 웃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질문8] 네, 교민들을 비롯한 많은 분이 건강히 퇴소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답변8] 우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교민을 따뜻하게 안아준 진천군민에게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위생과 기본 수칙을 잘 지키면 감염의 위험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앞으로 구급대원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도 국민을 위한
많은 활약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우한 교민들과 함께
보름 동안 생활한
남상미 소방위와 만나봤습니다.
  • 임시 생활 시설에서 동고동락 했던 2주일
    • 입력 2020-02-18 03:11:36
    • 수정2020-02-18 05:27:41
    뉴스9(청주)
[앵커멘트]
2주간 진천에 머물렀던
우한 교민들이 무사히 퇴소했습니다.
교민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의료와 소방, 치안 등을 책임진
많은 분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는데요.
오늘은, 우한 교민들과
최전선에서 생활해온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충북 진천소방서 119안전센터
남상미 소방위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리포트]
[질문1]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우한 교민들과 함께 생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특별한 선발 과정이 있었나요?

[답변1]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제가 충북소방본부에서 구급행정을 담당했었고, 그 경험을 살려 체계적인 감염대처 방안을 익히고자 자원했습니다. 마침 환자 이송을 주 임무로 하고 있어, 응급의료체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업무 숙련도를 인정받아 최종 선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2][질문2]
생활하시면서 어떠셨는지요? 처음에 인근 주민들이 반발도 하고 감염에 대해 걱정도 하셨을 텐데요?

[답변2] 사실 저도 지역 사람인데요. 인재개발원 입소 전, 지역 사우나를 방문했을 때, 많은 분이 ‘코로나 19’가 지역사회 전염으로 퍼질 것을 염려하고 있었고, 저도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재개발원의 감염관리대책은 지침보다 철저했고 완벽했기에 곧 안심하며 지낼 수 있었고요, 뉴스를 통해 지역주민도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질문3]그렇군요. 인재개발원 안에서의 생활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생활하신 건지 간략하게 일정 또는 주요 업무 등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3]감염 차단과 교민에게 안정된 생활 환경을 제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합동지원단도 교민처럼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고 같은 도시락으로 식사하며, 2주 남짓의 기간을 바쁘게 보냈습니다. 우리 소방에서는 지정병원으로의 이송과 “코로나 19” 진단을 위한 검체 후송 업무를 했습니다.

[질문4] 어떻게 보면 우한 교민들과 한 몸처럼 생활을 하신 건데. 직접 접촉도 하셨나요? 중간에 교민들을 119 차량으로 이송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답변4] 119 이송지원을 위해 2명의 교민과 직접 접촉했는데요, 감염방지를 위한 방호복을 착용하고 활동하여 안전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두 분을 이송했습니다. 한 분은 일반 치주질환으로 병원 치료가 필요해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했고, 다른 한 분은 이미 언론에도 보도되었듯, 위독하신 부친을 위해 간절한 맘으로 면회를 요청 하셔서, 부친이 계신 병원으로 이송하고, 부친을 뵐 수 있도록 한 후 다시 인재개발원에 입소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질문5]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다 보니, 그 안에 많은 사연이 있었군요. 옆에서 직접 보실 때 우한 교민들은 주로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답해하진 않으셨는지요.

[답변5] 1인 1실 격리로 외롭고 답답한 생활을 하게 되어, 혹시 적응을 못 하는 분이 계실까 염려했는데, 비교적 평온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 수칙을 잘 지켜주셨기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질문6] 격리된 생활이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각자 1인실 생활을 했지만, 서로 교감이 됐나요?

[답변6] 교민들께서 포스트잇에 안부와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각 호실 문밖에 붙여주셨고, 그걸 보면서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등을 제공할 때 사용하는 끌차의 소리가 요란한데,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면 방안에서 어린아이가 “아저씨~”하며 반갑게 인사하고“잘 지내니?”하며 화답하는 등,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소한 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질문7] 교민들도 다 건강하게 돌아가시고, 소방위님도 음성으로 판정받아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답변7]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힘든 격리 생활을 잘 이겨낸 교민과 지원단 모두가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교민들이 격리생활을 잘 마치고 퇴소할 때, “밖에 나와서 좋아?”라는 제 물음에 “네 좋아요” 라고 답하던 어린아이의 환한 웃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질문8] 네, 교민들을 비롯한 많은 분이 건강히 퇴소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답변8] 우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교민을 따뜻하게 안아준 진천군민에게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위생과 기본 수칙을 잘 지키면 감염의 위험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앞으로 구급대원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도 국민을 위한
많은 활약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우한 교민들과 함께
보름 동안 생활한
남상미 소방위와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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