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검사’도 변호사 등록…일탈 ‘올드보이’ 법조계 속속 복귀

입력 2020.02.1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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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검사' 사건 아직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 사건의 중심인물인 전직 부장검사 A씨가 출소 후 변호사로 등록, 개업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등록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1월 29일 상임위를 열고 A 전 부장검사의 변호사 등록에 문제가 없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A 전 부장검사는 이달 중순 변호사 개업을 신청해 받아들여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한변협은 등록심사위원회에서 결격사유가 없다는 심사판정을 내린 것을 고려해 A 전 부장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변협 관계자는 "현행 변호사법상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은 등록을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제 식구 감싸기' 보여준 '그랜저 검사'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은 2010년대 초반을 뒤흔들었던 법조비리 사건입니다.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던 A 전 부장검사는 지인인 건설업자로부터 청탁을 받았습니다. "100억 원대 아파트 개발사업과 관련해 마찰을 빚고 있던 투자자 4명을 배임죄로 고소했으니, 이들이 처벌받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직이었던 당시 A 전 부장검사는 담당 검사에게 '기록을 잘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고, 담당 검사는 투자자 4명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A 전 부장검사는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를 포함한 수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했습니다.

투자자들은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A 부장검사와 담당 검사 등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사건을 질질 끌다 1년 3개월 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A 전 부장검사가 고발 직후 자동찻값을 건설업자에게 건넨 것을 근거로 A 전 부장검사에게 제공한 금전이 뇌물이 아니고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갚았던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 겁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향응을 받은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이 공개된 스폰서 검사' 사건에 이어 '그랜저 검사'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검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국감에선 '제 식구 감싸기'란 지적이 연이어 나왔고,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한 달여간의 조사를 거쳐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사상 처음으로 특임검사제도를 가동해 재수사에 들어갔고, A 전 부장검사를 구속기소 했습니다. 당시 중앙지검장은 물러났습니다. 더 아픈 건, 검찰의 비위행위 예가 나올 때마다 '그랜저 검사'가 언론에 나오게 된 점입니다.

A 전 부장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형이 확정됐고 형기를 마친 뒤 2013년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변호사 등록을 했습니다.

■부하에 욕설·갑질한 부장검사도, 성희롱 검사도 모두 변호사

법조계에서 물의를 빚었지만 변호사로 변신한 '올드 보이'들은 A 전 부장검사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6년 남부지검 검사 자살사건 원인으로 지목된 B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말 변호사로 등록 간주됐습니다. B 전 부장검사는 사망한 검사의 연수원생 동기들로부터 고발까지 당했지만 등록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의 손을 만지고 성적 수치심을 부른 C 검사도, 지난해 말 변호사로 등록됐습니다.

■변호사 등록결격·거부 사유 한정시킨 변호사법…개정은 언제

이들이 법조계로 '무사 복귀'할 수 있었던 건 현행 변호사법 조항 덕분입니다.

현행 변호사법 제5조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을 받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선고유예기간 중에 있는 경우 △탄핵이나 징계로 파면된 후 5년 또는 해임된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변호사 등록을 거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비위를 저질러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집행이 끝난 후 최대 5년, 파면·해임됐더라도 2년에서 5년의 기간만 지나면 변호사 등록을 신청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라도 결격·거부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대한변호사협회가 함부로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법상 대한변호사협회는 등록신청을 받으면 지체 없이 변호사 명부에 등록하고 그 사실을 신청인에게 통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퇴직한 자로서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고 등록심사위원회가 판단할 경우 최대 2년까지 등록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등록을 해줘야 합니다. 임의로 신청을 미룬다 해도 변호사 등록 신청 3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변호사 등록이 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대한변협이 한 변호사를 등록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결격사유가 없단 결론이 나자, 해당 변호사가 변협에 손해배상청구를 해 승소한 사례도 있어 함부로 등록심사위원회에 회부하기도 부담스럽습니다.

변협은 문제 인물의 변호사 등록을 걸러내기 위해 결격기간을 늘리거나 구체적 사유를 추가하는 등 변호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변호사법 결격사유 조항은 2008년 전문개정 이후 바뀐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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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랜저 검사’도 변호사 등록…일탈 ‘올드보이’ 법조계 속속 복귀
    • 입력 2020-02-18 13:17:00
    취재K
'그랜저 검사' 사건 아직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 사건의 중심인물인 전직 부장검사 A씨가 출소 후 변호사로 등록, 개업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등록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1월 29일 상임위를 열고 A 전 부장검사의 변호사 등록에 문제가 없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A 전 부장검사는 이달 중순 변호사 개업을 신청해 받아들여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한변협은 등록심사위원회에서 결격사유가 없다는 심사판정을 내린 것을 고려해 A 전 부장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변협 관계자는 "현행 변호사법상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은 등록을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제 식구 감싸기' 보여준 '그랜저 검사'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은 2010년대 초반을 뒤흔들었던 법조비리 사건입니다.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던 A 전 부장검사는 지인인 건설업자로부터 청탁을 받았습니다. "100억 원대 아파트 개발사업과 관련해 마찰을 빚고 있던 투자자 4명을 배임죄로 고소했으니, 이들이 처벌받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직이었던 당시 A 전 부장검사는 담당 검사에게 '기록을 잘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고, 담당 검사는 투자자 4명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A 전 부장검사는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를 포함한 수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했습니다.

투자자들은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A 부장검사와 담당 검사 등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사건을 질질 끌다 1년 3개월 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A 전 부장검사가 고발 직후 자동찻값을 건설업자에게 건넨 것을 근거로 A 전 부장검사에게 제공한 금전이 뇌물이 아니고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갚았던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 겁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향응을 받은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이 공개된 스폰서 검사' 사건에 이어 '그랜저 검사'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검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국감에선 '제 식구 감싸기'란 지적이 연이어 나왔고,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한 달여간의 조사를 거쳐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사상 처음으로 특임검사제도를 가동해 재수사에 들어갔고, A 전 부장검사를 구속기소 했습니다. 당시 중앙지검장은 물러났습니다. 더 아픈 건, 검찰의 비위행위 예가 나올 때마다 '그랜저 검사'가 언론에 나오게 된 점입니다.

A 전 부장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형이 확정됐고 형기를 마친 뒤 2013년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변호사 등록을 했습니다.

■부하에 욕설·갑질한 부장검사도, 성희롱 검사도 모두 변호사

법조계에서 물의를 빚었지만 변호사로 변신한 '올드 보이'들은 A 전 부장검사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6년 남부지검 검사 자살사건 원인으로 지목된 B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말 변호사로 등록 간주됐습니다. B 전 부장검사는 사망한 검사의 연수원생 동기들로부터 고발까지 당했지만 등록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의 손을 만지고 성적 수치심을 부른 C 검사도, 지난해 말 변호사로 등록됐습니다.

■변호사 등록결격·거부 사유 한정시킨 변호사법…개정은 언제

이들이 법조계로 '무사 복귀'할 수 있었던 건 현행 변호사법 조항 덕분입니다.

현행 변호사법 제5조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을 받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선고유예기간 중에 있는 경우 △탄핵이나 징계로 파면된 후 5년 또는 해임된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변호사 등록을 거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비위를 저질러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집행이 끝난 후 최대 5년, 파면·해임됐더라도 2년에서 5년의 기간만 지나면 변호사 등록을 신청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라도 결격·거부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대한변호사협회가 함부로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법상 대한변호사협회는 등록신청을 받으면 지체 없이 변호사 명부에 등록하고 그 사실을 신청인에게 통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퇴직한 자로서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고 등록심사위원회가 판단할 경우 최대 2년까지 등록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등록을 해줘야 합니다. 임의로 신청을 미룬다 해도 변호사 등록 신청 3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변호사 등록이 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대한변협이 한 변호사를 등록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결격사유가 없단 결론이 나자, 해당 변호사가 변협에 손해배상청구를 해 승소한 사례도 있어 함부로 등록심사위원회에 회부하기도 부담스럽습니다.

변협은 문제 인물의 변호사 등록을 걸러내기 위해 결격기간을 늘리거나 구체적 사유를 추가하는 등 변호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변호사법 결격사유 조항은 2008년 전문개정 이후 바뀐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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