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확진자 어디 다녀갔나?”…日의 ‘동선 비공개’ 왜?

입력 2020.02.26 (19:47) 수정 2020.02.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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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1시 45분~오후 3시 반
▽ 16일 오후 0시 반~오후 4시
▽ 18일 오후 1시 반~오후 5시


일본 도쿄(東京) 인근 지바(千葉) 현이 25일 오후 긴급 회견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지역 주민 10명 가운데 3명 모두가 이치카와(市川) 시에 있는 헬스클럽 '에이스 엑시코어'(Ace Axiscore)를 이용했다며 구체적인 이용 시간을 공개했습니다. 지바 현은 "이 시간대 헬스클럽 이용자와 종업원 등 밀접 접촉자 6백여 명 관찰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이 헬스클럽 회원은 2천여 명, 하루 이용자만 450~500명에 이릅니다. 회견 직후, 헬스클럽 측은 문을 닫고, 다음 달 3일까지 운동기구 소독 등을 위해 자발적인 영업 중지에 들어갔습니다. 일본에서 확진자가 다녀간 특정 매장 이름이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이례적인 '이름 공개'는 헬스클럽 측과 협의 아래 이뤄졌다고 합니다.

일본 지바현에서 25일 코로나19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일본 지바현에서 25일 코로나19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0여 일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같은 지바 현의 14일 회견. 20대 남성이 발열·기침 증세가 있는 상태에서 약 2주 동안 전철을 타고 도쿄까지 출·퇴근했다는 내용이 발표됐습니다. 도쿄행 만원 지하철은 몸을 실으려는 눈물겨운 장면으로 우리에게도 유명합니다. '뛰어들기(가케고미) 승차'를 줄이려고 발차 멜로디까지 없앨 정도입니다. 충격이 상당했지만, 알려진 건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기자 : 전철은 어떤 노선을 탔나요?
지바 현 :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 : 도쿄 어느 쪽으로 통근했나요?
지바 현 :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일본 스모 선수들이 오사카에서 열리는 대(大)스모 3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3일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신오사카 철도역에 도착하고 있다. (오사카=AP·연합뉴스)일본 스모 선수들이 오사카에서 열리는 대(大)스모 3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3일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신오사카 철도역에 도착하고 있다. (오사카=AP·연합뉴스)

질문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태도가 불과 열흘 사이에 많이 달려진 겁니다. 일본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어떨까요. 지바 현 회견 다음날인 15일, 나고야(名古屋) 시도 회견을 열었습니다. 60대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하와이 여행 후 전날 양성 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의 부인이었습니다. 이번엔 전철이 아닌 기차입니다.

"확진자는 2월 7일 오후 8시 7분, 주부(中部)국제공항에서 출발한 특급 철도 '뮤스카이'(ミュースカイ) 2호 차에 탔습니다. 철도는 누가 탔는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달라는 취지로 공개합니다." (나고야 시 관계자)

같은 대중 교통수단인데 설명은 천양지차였습니다. 급기야 며칠 후 오카야마(和歌山) 현에선 30대 남성 확진자 발생 사실을 전하면서 이 남성이 탄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좌석 번호까지 공개됐습니다. 니시카 요시노부(仁坂吉伸) 오카야마 현 지사는 19일 회견에서 "나고야 시 발표를 보고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정보 공개 범위 논란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일본TV 화면 갈무리)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정보 공개 범위 논란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일본TV 화면 갈무리)

일본 내 확진자는 869명(사망자 5명 포함·26일 18시 현재)으로 늘었습니다. 위기감이 커진 만큼 확진자 정보 공개 범위도 동시에 완화된 걸까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20일 요코하마(橫浜) 시에서는 예정된 회견이 갑자기 취소되는 소동이 일었습니다. "확진자 본인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고, 정보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나이나 성별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망자의 경우 유족 뜻에 따라 '비공개'가 이뤄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왜 이런 걸까요. 일본 감염증 법(16조)은 정부와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의 역할에 대해 "감염증 발생 상황과 예방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표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돼 있습니다. 정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은 대체로 코로나19 감염자 성별과 거주하는 도도부현 이름, 나잇대(20대) 정도를 밝힙니다.


확진자의 나머지 신상과 행적·동선 등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판단은 순전히 각 지자체 몫입니다. 여기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기준이 충돌합니다. 바로 '감염 확산 방지'와 '프라이버시 보호'입니다.

"확진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줘야 한다"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


"업체가 '풍평피해'(風評被害ㆍ뜬 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된다"
"너무 자세한 정보 공개는 더 큰 불안감을 자극한다"


정보 공개 범위를 두고 일본 내 여론은 대체로 이렇게 갈립니다. 둘 다 나름의 이유가 있죠. 그래서 지자체마다, 심지어 같은 지자체라도 사안의 심각성이나 발표 시점에 따라 공개 범위가 또 다릅니다. 지자체들은 "국가가 나서 공표 기준을 통일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후생노동성은 "지역 특성과 감염자 상황이 다 달라 일률적 기준은 맞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코로나19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교도=연합)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코로나19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교도=연합)

일본과 달리 한국은 확진 환자의 동선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며 접촉자 파악에 주력합니다. 이를 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속한 동선 공개로 감염 확산은 물론 공포감을 줄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서방 국가들이 한국과 같은 조처를 한다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습니다.

"확진자가 여기 여기를 다녀갔다"고 꼼꼼히 밝히는 한국, "어딜 다녀갔는지 알려줄 수 없다"는 일본. 어느 쪽이 효율적으로 감염 확산을 막고, 코로나19 이후 부작용도 최소화할 방식인지 당장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산케이(産經)신문의 25일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부의 정보 제공이 충분하고 적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8.6%나 됐습니다. '깜깜이 정보'에 불만이 커질수록 일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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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6 19:47:58
    • 수정2020-02-26 19: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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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東京) 인근 지바(千葉) 현이 25일 오후 긴급 회견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지역 주민 10명 가운데 3명 모두가 이치카와(市川) 시에 있는 헬스클럽 '에이스 엑시코어'(Ace Axiscore)를 이용했다며 구체적인 이용 시간을 공개했습니다. 지바 현은 "이 시간대 헬스클럽 이용자와 종업원 등 밀접 접촉자 6백여 명 관찰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이 헬스클럽 회원은 2천여 명, 하루 이용자만 450~500명에 이릅니다. 회견 직후, 헬스클럽 측은 문을 닫고, 다음 달 3일까지 운동기구 소독 등을 위해 자발적인 영업 중지에 들어갔습니다. 일본에서 확진자가 다녀간 특정 매장 이름이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이례적인 '이름 공개'는 헬스클럽 측과 협의 아래 이뤄졌다고 합니다.

일본 지바현에서 25일 코로나19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0여 일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같은 지바 현의 14일 회견. 20대 남성이 발열·기침 증세가 있는 상태에서 약 2주 동안 전철을 타고 도쿄까지 출·퇴근했다는 내용이 발표됐습니다. 도쿄행 만원 지하철은 몸을 실으려는 눈물겨운 장면으로 우리에게도 유명합니다. '뛰어들기(가케고미) 승차'를 줄이려고 발차 멜로디까지 없앨 정도입니다. 충격이 상당했지만, 알려진 건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기자 : 전철은 어떤 노선을 탔나요?
지바 현 :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 : 도쿄 어느 쪽으로 통근했나요?
지바 현 :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일본 스모 선수들이 오사카에서 열리는 대(大)스모 3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3일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신오사카 철도역에 도착하고 있다. (오사카=AP·연합뉴스)
질문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태도가 불과 열흘 사이에 많이 달려진 겁니다. 일본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어떨까요. 지바 현 회견 다음날인 15일, 나고야(名古屋) 시도 회견을 열었습니다. 60대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하와이 여행 후 전날 양성 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의 부인이었습니다. 이번엔 전철이 아닌 기차입니다.

"확진자는 2월 7일 오후 8시 7분, 주부(中部)국제공항에서 출발한 특급 철도 '뮤스카이'(ミュースカイ) 2호 차에 탔습니다. 철도는 누가 탔는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달라는 취지로 공개합니다." (나고야 시 관계자)

같은 대중 교통수단인데 설명은 천양지차였습니다. 급기야 며칠 후 오카야마(和歌山) 현에선 30대 남성 확진자 발생 사실을 전하면서 이 남성이 탄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좌석 번호까지 공개됐습니다. 니시카 요시노부(仁坂吉伸) 오카야마 현 지사는 19일 회견에서 "나고야 시 발표를 보고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정보 공개 범위 논란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일본TV 화면 갈무리)
일본 내 확진자는 869명(사망자 5명 포함·26일 18시 현재)으로 늘었습니다. 위기감이 커진 만큼 확진자 정보 공개 범위도 동시에 완화된 걸까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20일 요코하마(橫浜) 시에서는 예정된 회견이 갑자기 취소되는 소동이 일었습니다. "확진자 본인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고, 정보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나이나 성별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망자의 경우 유족 뜻에 따라 '비공개'가 이뤄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왜 이런 걸까요. 일본 감염증 법(16조)은 정부와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의 역할에 대해 "감염증 발생 상황과 예방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표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돼 있습니다. 정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은 대체로 코로나19 감염자 성별과 거주하는 도도부현 이름, 나잇대(20대) 정도를 밝힙니다.


확진자의 나머지 신상과 행적·동선 등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판단은 순전히 각 지자체 몫입니다. 여기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기준이 충돌합니다. 바로 '감염 확산 방지'와 '프라이버시 보호'입니다.

"확진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줘야 한다"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


"업체가 '풍평피해'(風評被害ㆍ뜬 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된다"
"너무 자세한 정보 공개는 더 큰 불안감을 자극한다"


정보 공개 범위를 두고 일본 내 여론은 대체로 이렇게 갈립니다. 둘 다 나름의 이유가 있죠. 그래서 지자체마다, 심지어 같은 지자체라도 사안의 심각성이나 발표 시점에 따라 공개 범위가 또 다릅니다. 지자체들은 "국가가 나서 공표 기준을 통일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후생노동성은 "지역 특성과 감염자 상황이 다 달라 일률적 기준은 맞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코로나19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교도=연합)
일본과 달리 한국은 확진 환자의 동선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며 접촉자 파악에 주력합니다. 이를 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속한 동선 공개로 감염 확산은 물론 공포감을 줄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서방 국가들이 한국과 같은 조처를 한다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습니다.

"확진자가 여기 여기를 다녀갔다"고 꼼꼼히 밝히는 한국, "어딜 다녀갔는지 알려줄 수 없다"는 일본. 어느 쪽이 효율적으로 감염 확산을 막고, 코로나19 이후 부작용도 최소화할 방식인지 당장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산케이(産經)신문의 25일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부의 정보 제공이 충분하고 적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8.6%나 됐습니다. '깜깜이 정보'에 불만이 커질수록 일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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