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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
입력 2020.03.08 (21:51) 수정 2020.03.08 (22:58) 저널리즘 토크쇼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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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안녕하세요? <저널리즘 토크쇼 J>입니다. 오늘 함께해 주실 분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상호] 먼저 비평 끝판왕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강유정] 안녕하세요? 강유정입니다.

[이상호] 팟캐스트 황태자 최욱 씨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최욱] 반갑습니다. 최욱입니다.

[이상호] 깊은 보조개만큼이나 깊은 시각을 가진 분이죠. 임자운 변호사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임자운] 안녕하세요? 임자운입니다.

[이상호] 아 머리를 자르셨네요. 달라보여요?

[이상호] KBS 이지은 기자도 오늘 함께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상호] 네, 이지은입니다.

[이상호] 오늘 주제가 창간 10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역사입니다. 관련해서 함께 말씀 나눌 두 분 또 모셨는데요. 먼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김종철 위원장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종철] 네, 안녕하세요?

[이상호] 그리고 눈높이 맞춤 역사 강의로 유명한 분이죠.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님도 오늘 함께하십니다. 어서 오세요.

[심용환] 안녕하세요?

[이상호] 먼저 본격적인 비평에 앞서서 코로나19와 관련한 기사를 잠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지난 3월 1일자 국민일보 기사인데요. <코로나19 걸리기 싫어, 전담 병원 간호사 16명 무단 결근>이라는 제목으로 “포항의료원 간호사들이 코로나19에 걸리기 싫다며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한 뒤 무단결근하는 사태가 벌어져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힘 빼는 기사 좀 안 쓰면 좋겠다고 임자운 변호사가 말씀하셨거든요. 이 기사는 어떻게 보셨어요?

[임자운] 만약에 코로나19에게 인격이 있다면 이런 기사 보면 정말 박수 치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인류가 어떻게 보면 힘을 합쳐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랑 싸우고 있는데 사람 안에서 내부 총질을 하는 느낌이 있고요. 바이러스와 함께 이런 기사와 함께 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지은] 성명과 브리핑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통해서 해명을 했었는데 이 간호사 16명이 원래 사직이 예정이 돼 있었다, 그러니까 근무 계약 기간인 거죠. 기간이 종료가 되어 있었고 그 시점에 사직을 해도 무방했지만 이분들이 오히려 바쁜 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일을 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었고 그러던 와중에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사직을 해야 할 시점이 왔기 때문에 사직을 한 것이지, 이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싫어서라는 말은 정말 완전히 사실에 반하는 얘기라는 거죠.

[최욱] 그리고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지 않았습니까?

[이지은] 그렇죠.

[강유정] 이런 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들이 있고, 왜 하느냐? 클릭 수를 높이고 누군가의 도덕적인 부재를 가지고서 비난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는 장사가 되기 때문인데요. 악의적 보도와 과장 보도, 그것이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기사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건요. 정정 보도를 하지 않았어요. 정정 보도나 사과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호] 아직까지도.

[강유정]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최욱] 요즘 보면요. 뉴스 시청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불안하고 관심도가 높다는 거거든요. 이런 걸 가지고 최소한 장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힘 빼는 기사 쓰지 말라고 했는 그거 고치기는 어려울 거예요. 사실에 기반해서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상호] 코로나19를 둘러싼 가짜 뉴스 바이러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끝까지 찾아내서 퇴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송은 KBS 1TV, myK, 웨이브,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호] 지난 3월 5일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동아일보 또한 다음 달 4월 1일 100주년을 앞두고 있죠.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지난 한 달 동안 이들 100년 신문의 반성 없는 과거를 찾아내서 기억해 왔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3월 4일 지면 1면에 <과거의 오류, 사과드리고 바로잡습니다>라는 정정 기사를 실었습니다. 어떻게들 보셨습니까?

[강유정] 오류는 그릇되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조선일보의 오류가 아니라 아주 명확한 오보에 대해서만 몇 가지 해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알고 있었던 오류 같은 경우는 가령 5.18 민주항쟁 같은 경우를 일종의 광란의 사태처럼 묘사했었던 것들은 분명히 오류이거든요. 그런데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면피성이죠. 굉장히 많은 오류들을 다 이 작은 오보 기사 안에 응축함으로써 마치 모든 오류를 자신이 사죄하고 바로 잡는 것 같은 착각을 주고 있는데 사실은 이게 조선일보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언어유희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임자운] 이번 조선일보의 사과 내용을 보면 제작상 실수, 교차 확인을 게을리해서 아니면 기자의 판단 실수, 과욕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가장 크게 해악을 끼치는 기사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거짓된 기사를 쓰는 경우라고 보거든요. 가령 과거에 이제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검찰 관련 발언이라든가 아니면 고급 요트 탄 귀족처럼 당시 노무현 후보를 비방한 것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그런 기사를 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사과 내용은 거기에 대한 사과는 빠져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지금 조선일보가 직접 밝힌 기사 외에도 굉장히 많고 앞으로도 계속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최욱] 확실히 두 분은 참 차가워요, 보면. 냉정합니다. 두 분. 이 사과의 싹이 이제 막 트기 시작하는데 그거를 짓밟습니까? 그래도 저는 이들이 느낌적으로 우리가 뭔가 좀 잘못해왔구나 하는 인식 정도는 있지 않는가, 그런 희망을 갖습니다.

[김종철] 조선일보에 이제 속성이라는 게 있죠.

[최욱] 선생님이 나서시는군요, 이제.

[김종철] 올해를 조선, 동아일보가 100주년이라고 하죠. 사람으로 하면 100살이면 대단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조선일보는 지금 1등 신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권력에 아부하고 돈벌이 하고 장자연 사건 보도 같은 거 다 속이고 눈가림 하고 사주일가의 비리 감추는 데 앞장선 이런 신문은 1등이라는 말은 제발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호] 김종철 위원장께서 67년에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를 하셨잖아요. 입사하신 뒤에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8년 만에 강제 해직을 당하셨고 그 후에 이제 45년 동안 언론 자유를 위해서 계속 지금 투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종철] 요새는 2, 30대는 거의 종이 신문을 안 보거든요. 그리고 뭐 인터넷 문화, 유튜브 가능하면 저희는 젊은 세대가 이런 일을 좀 알아야 한다. 이 신문이 100년 동안 얼마나 국민을 속여 왔는지.

[최욱] 오늘 좀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최욱] 젊은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 젊은이 한 명 나와 있거든요. 역사학자. 어떻게, 잘 알아요? 어때요?

[심용환] 조선, 동아 100주년을 갖고 저를 불렀다는 얘기는 오늘 총력을 다해서 그 100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사실 관계 위주로 적나라하게, 감정을 넣지는 않겠습니다.

[이상호] 지난해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자축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거든요. 그중에서 눈에 띄는 특집들이 있습니다. 대기업 관련 기사들이 그 내용들인데 동아일보는 <한국 기업 100년, 퀀텀 점프의 순간들>. <다음 100년 키우는 재계 뉴 리더> 기획 등을 싣고 있고 조선일보도 창간 100주년 당일인 3월 5일 기업 관련 특집 섹션을 대대적으로 선보였습니다. 특집 기사들을 좀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강유정] 퀀텀 점프라는 말을 써서 지금 혁신을 통한 비약적 점프를 하는 기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이를테면 이거 예전에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에 대한 결심을 했다든가 이런 기사는 정말 몇십 번 내지 몇백 번은 본 듯한 기사를 다시 정리하고 있으면서 다만 제가 보기에는 일종의 삥 뜯기라고 할 수 있을, 이렇게 우리 100주년 기념 행사하는데 돌잔치라든가 뭔가 100주년 기념 행사 하는 데 협찬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이렇게 돌려서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새롭지도 않고 기시감이 있는 그런 기사들이었습니다.

[이상호] 이지은 기자가 특집 기사에 소개된 업체들을 상대로 직접 취재를 하셨다면서요?

[이지은] 이 두 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실 지난해부터 100주년을 앞두고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협찬을 요청을 해왔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창간일인 3월 5일자에 특집 섹션을 마련해서 여기에 미래의 100년을 여는 기업이라는 특집 기사를 쓸 계획이라면서 A 기업에게 억대 협찬금을 요청을 했고요. 또 같은 이유로 B 기업에게도 협찬을 요구했는데 이 B 기업 같은 경우는 이런 월 예산의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협찬금 집행을 다음 달이나 달을 좀 조율을 해달라, 조정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도 무조건 3월에 좀 맞춰달라, 이렇게 고집을 했다고 해요. 동아일보 같은 경우는 창간일이 다음 달인 4월 1일이거든요. 그래서 기업들은 아마 이달부터 본격적인 협찬 요청이 들어올 것 같다 이렇게 예상을 하고 있더라고요.

[최욱] 사실상 기업 홍보도 아니에요. 재벌 총수 홍보예요.

[심용환] 그렇죠, 그렇죠.

[임자운] 데 이러한 총수 체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재벌 시스템이 정말 혁신적인 것이냐? 굉장히 고루한 거잖아요. 그럼 거기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거를 고착화시킨다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고마웠는데 앞으로 더 잘해보자라는 메시지를 기업한테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욱] 그래도 100주년을 맞았는데 너무 안 좋은 이야기들만 하시니까 훈훈한 이야기도 하나 해보겠습니다. 조선일보가 그래도 굉장히 따뜻함이 있습니다. 100주년을 맞아서.

[김종철] 그래요?

[최욱] 퀴즈 이벤트를 했어요. 2등이, 웃을 일이 아닙니다. 크루즈 여행권이에요. 1등은 고급 세단.

[심용환] 차를 준다고요?

[최욱] 차를 줘요, 고급 세단. 그래도 역시 이제 독자들과 국민들을 생각하는 부분,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김종철] 조선일보가 대는 겁니까? 누가 대는 겁니까?

[이지은] 그래서 저희가 그게 궁금해서 제작진이 문의를 해봤는데.

[심용환] 그것도 협찬?

[이지은] 지면광고 계약을 할 때 사내외 행사, 그러니까 언론사가 주최하는 사내외 행사의 사은품으로 기업체 상품을 현물로 제공한다는 조항을 단 뒤, 지면광고비 대신 현물 상품으로 대체하는 형태로 협찬했다, 이렇게 답변을 해왔습니다.

[최욱] 그러면 저 응모 안 하겠습니다.

[이상호]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역시 100주년 특집 사이트를 열고 자신들의 100년사를 대대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두 신문사가 정리한 그들의 100년 역사 맞는 기사들인지 저희가 준비한 코너가 있습니다. 뉴스 강제 소환, 오늘은 무려 조선, 동아일보의 지난 100년간의 보도를 좀 소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호] 먼저 친일·반민족 역사부터 저희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민족정론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조선일보 1월 6일자 기사에, <창간 첫 해 기사에 ‘아이고 왜놈’… 총독부를 경악시키다>, 2월 3일자 기사 <일제에 저항한 ‘좌우 합작’… 신간회 운동을 주도하다>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또한 100주년 특집 사이트에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시상대 위에 서 있는 사진을 게재하면서 “가슴 부문의 일장기를 지워버려 총독부로부터 네 번째 무기 정지를 당했다.” 라고 기록을 해놨습니다.

[김종철] 2월 29일에 한 기자가 쓴 겁니다. 조선일보 <3·1운동으로 태어나, 불의한 시대에 저항했다>. 헌병 정치를 없애고 문화 정책을 펼치면서 태어난 게 조선일보, 동아입니다. 1920년 3월 5일에 조선일보가 창간됐고, 4월 1일에 동아일보인데 이런 걸 3.1운동으로 태어났다고 자랑하는 건 참 파렴치한 짓입니다.

[심용환] 진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뭐가 있냐면 학교 가면 외우거든요. 40년 폐간, 이렇게 외우는데 그래도 40년이 되면 저항을 하고 탄압받아 와서 망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최욱]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심용환] 다 그렇게 알고 있죠? 아닙니다. 일간지는 폐간을 시켰잖아요. 월간지는 발행 허용해 줍니다. 그게 그 유명한 조광이라는 잡지에 발행을 허용해 줬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어떤 활동들을 계속 해 나갔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그냥 겉으로 폐간당하고 할 일은 다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보는 게 적합한 사실 같아요.

[최욱] 그래도 동아일보는 조금 인정해 줄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손기정 선수 일장기도.

[이상호] 일장기 말소 사건.

[이상호] 그런데 사실 이 뒷이야기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김종철] 일장기 말소 사건은 지금 동아일보가 창간 기념일마다 자기들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거든요. 저도 물론 동아일보 출신인데 그거 거짓말입니다.

[심용환] 좀 정확히 말씀드리면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가 성냥불로 고루거각 공장을 태웠다. 그리고 이제 김성수, 사주죠. 사주는 이제 일장기 말소(히노마루)는 아주 몰지각한 행동이었다. 그 당시 사회부장이 잘 알고 있는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선생님이 이 일 때문에 해고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요. 1924년부터 총독부에서 동아일보가 아니라 동아일보의 운영 자금을 대던 김성수의 또 다른 회사인 경성방직, 그러니까 계속 사업 장려금을 줬어요. 그러니까 이때 이미 소위 말하는 권언유착 같은 관행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거죠.

[이상호] 친일 행적을 봤을 때 조선이나 동아나 오십보백보인 듯한데 지난 1985년에 조선, 동아가 서로를 친일 언론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저격을 주고받으면서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지은 기자, 이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이지은] 시작은 동아일보였는데요. 동아일보가 1985년 4월 1일에 창간 65주년 되는 기념 사설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탄생 과정을 밝히는 글을 올리면서 이 논쟁이 시작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제가 심용환 소장님과 함께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일보가 첫 번째 사설에서 조선일보에 대해서 “민중들은 내용으로 친일 신문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독자들은 자꾸 떨어져가서 발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경영난에 허덕이고 기회주의 신문으로 전락했다”라고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심용환] 여기에 가만있을 저희가 아닙니다.

[최욱] 조선일보입니까? 조선일보.

[심용환] 4월 14일자 보도 보겠습니다. “동아일보가 살아있는 증인이 많은데 전에 앞장서서 친일을 했으면서 자꾸 자기만은 반일 투쟁을 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이지은] 그래서 4월 17일 동아일보가 다시 한 번 받아칩니다.

[최욱] 동아일보.

[이지은] “조선일보는 친일 단체 기관지임을 세상이 다 알고 있음으로 신문이 팔리지 않고 인기가 없어서 경영 곤란에 빠졌다.”

[최욱] 조선일보 참을 거예요?

[심용환] 못 참아요.

[최욱] 못 참아.

[심용환] 4월 19일 “동아일보 본지 비방에 붙여. 우리 현대 사는 항용 특정 계파의 일방적 자기 미화의 논리로 이 항용 특정 계파”, 김성수 계파 얘기하는 겁니다. 너무 흥분했다. “일방적 자기 미화의 논리로 잘못 기술되고는 했습니다.” 이렇게 강변했습니다.

[이상호] 교실에서 정말 아이들이 싸우는 거랑 비슷하네요. 진짜.

[최욱] 이런 싸움만 계속되면 사실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은 필요 없을 거 같아요.

[임자운] 저는 뭐 다른 것보다도 그냥 이 조선일보 85년 4월 14일자 이 글을 그냥 두 회사 사장단에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뻔히 살아있는 증인도 많은데 전에 앞장서서 친일 행동을 했음에도 자꾸 자기 반일 투쟁을 했노라고 강변한다. 왜 그 시대를 살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지 못할까, 그러면 동정이나 받지요.”

[최욱] 그런데 저는 과거의 친일까지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거 진짜 너무 놀랐습니다. 11월 18일 조선일보 칼럼인데 라는 제목의 글인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BBC가 일본을 봤을 때는 너무 착하고 규칙도 잘 지키고 그래서 외교적으로 아주 호감도가 높은데 우리나라는 비호감이라는 거예요.

[이상호] 내용을 좀 소개해 드릴까요? 내용이 “외교를 잘하는 국가는 평소 부단한 노력으로 여러 나라와 우호 관계를 쌓는다. 이와는 반대로 잇따라 적대 관계를 만들거나 냉랭한 관계를 방치하는 나라도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한국의 친구는 얼마나 늘었는지 한국의 이미지는 국제 사회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 어쩌면 한·일 과거사 갈등 해결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최욱] 선생님, 놀랍지 않습니까?

[김종철] 별로 저는 놀랍지 않은데.

[최욱] 그렇습니까?

[이상호] 하도 많이 봐 오셔서. 김종철 위원장님, 한마디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최욱] 저 좀 달래주세요.

[김종철] 속성이고 장기거든요. 12월 21일자에 방상훈 조선일보 사보 1면에 이렇게 썼어요. “조선일보는 정통 보수 언론으로써 사명감을 갖고 앞으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라는 대한민국의 두 기둥을 굳건히 지켜나가겠습니다. 이 네 줄짜리 문장에 정통을 비정통 이런 식으로 바꾸면 이게 조선일보의 실체가 되는데 독자와 국민을 속이는 방법이나 그 수단이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니까.

[최욱] 그런데 풀리지 않는 게 지금 이 시기에 일본 편을 드는 것, 이거는 풀리지가 않아요. 보수 언론이면 더 우리나라 편 들어야죠.

[심용환] 제가 아까 연기를 했지, 정말 조선일보는 아닙니다.

[최욱] 죄송합니다.

[심용환] 눈빛이 바뀌셨어요.

[김종철] 말하다 보니까 조선일보에 너무 집중했네요. 동아일보는 상당히 잘한 것처럼.

[이상호]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민주화 운동 당시의 기사들도 소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월 29일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100년은 불의한 시대와의 투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대에 저항하고 권력과 맞선 세월이었다. 권력에 찍혀도 할 말은 다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J에서 확인한 내용은 달랐거든요. 1961년 5월 19일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혁명의 공약과 국내외의 기대>라는 제목의 내용을 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군사 혁명이 완전히 성공함에 즈음하여 우리는 세 가지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민족 사상의 분열과 혼란 그리고 민생고가 극심하였던 만큼 어떤 형태의 구국 운동이 절감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군사적인 단결과 함께 국내외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게 된 소인은 실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사망 후 1979년 10월 28일자에 <박 대통령 서거>, <민족 중흥의 찬란한 금자탑 쌓고 비운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지면 7 페이지를 할애해서 추모 기사를 썼습니다.

[강유정] 저는 72년 12월 28일 조선일보 사설을 좀 다시 찾아봤는데요. <새 역사의 전개, 제8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을 경하>한다는 제목이에요. 그런데 내용을 좀 볼게요. “무엇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5, 6, 7대나 대통령을 역임한 그를 또다시 환영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그의 영도력 때문입니다”라고 해서 저는 북한 신문인지 알았어요. 어디 권력 감시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그리고 그 당시에 했어야 할 언론의 역사를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볼 수 없는, 이게 게다가 사설입니다, 사설. 그러니까 그 신문의 정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1972년 그리고 여전히 쿠테타 지지 이후부터 80년대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어떤 공과 과를 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종철] 조선일보가 아주 겁에 질린 사건이 있죠.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총으로 쏴서 목숨을 빼앗았는데 그때 제가 속해 있던 동아투위 사람들이 10명이 감옥에 있었어요. 78년 10.24에 민권 일지를 발표해서 10명이 구속돼서 저도 성동구치소에 있었는데 이렇게 면회 갔다 오다가 구치소 벽을 보니까 조선일보가 붙어 있는데 이건 뭐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왜 그러냐 하면 박정희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 체제로 바뀌면 조선일보는 문 닫아야 하거든요.

[최욱] 제가 조선일보의 특종 50선을 봤습니다. 봤는데 좀 많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격동의 시대, 격변기였는데 72년, 73년 특종이, 물론 이거 중요합니다만 고려 금속활자 세계 최초 공인, 천마도 발굴. 중요하죠. 역사학자도 나와 계신데 그런데 이 격동의 시대에 이거를 꼽았다는 건 조금 의아하긴 하더라고요.

[임자운] 그러니까 그 시기에 정말 그러면 보도해야 할 사건이 없었느냐. 그렇지 않았다는 우리나라의 어떻게 보면 아프기도 하고 뜨거웠던 역사들이 분명히 존재했던 거죠. 특히 조선일보는 77년부터 78년까지 반유신민주화 사건들을 모조리 묵살한, 사실 역사가 있는 거예요. 관련 기사를 전혀 쓰지 않거나 지면에 내보내지 않는 관행을 완벽하게 유지했던 상황이었는데 이를테면 1976년 12월 8일 졸업을 앞둔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유신 헌법 철폐, 긴급조치 해제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수백 장 뿌리면서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고 77년 7월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신 고 이소선 님이 법정 모독으로 구속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분이 구속됐던 이유가 장기표 씨를 사건에서 재판장이 노동자들 임금 투쟁 지원한 게 북한 지령받은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방청석에 있던 어머니께서 항의를 한 거죠. 그랬다가 구속된 사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침묵했던 되게 흑역사를 조선일보는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거죠.

[심용환]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이해가 되는 부분은 솔직히 있다고 생각해요. 박정희 정권이 워낙 강력했고 특히 유신체제라는 건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정말 가장 높은 단계의 독재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 프레스 카드, 보도 지침 다 이해는 하는데 문제는 반성을 왜 안 하냐는 거죠.

[이상호] 유신 독재 시절의 기자와 개는 출입 금지, 이런 팻말이 나붙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이 또 권력에 굴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거든요.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 언론 자유를 위한 치열한 투쟁도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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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KBS <인물현대사> 안종필 편 2003.07.18.

1974.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동아일보 기자들

1975년 3월 조선일보 기자들 언론 자유 운동 동참

조선·동아 사측 기자 170명 해고
해직 기자들을 응원했던 시민들

1978년 10월 동아투위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 사건일지] 발행

발행 주도한 기자 10명 구속 기소

[김종철 / 전 동아일보 기자 (법정 최후 진술 中)] 도저히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런 걸레 같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지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언론 자유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따라서 독재 정치가 싹틀 수 있는 온상이 생기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방관할 때 우리는 엄연히 언론인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일을 안 할 수가 있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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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 우리 선생님. 맞죠, 선생님?

[김종철] 맞죠.

[이상호] 그 당시에도 정말 쓴소리를 아주 거침없이 하셨네요.

[김종철] 내가 31살 때인데 저게 우리가 한 일이긴 한데 박정희한테는 상상도 못 한 정면 도전이었죠. 그때는 기사 한 줄이라도 이상한 거 쓰면 남산이라고 정보부 있죠. 거기 잡아가서 고문하고 치안본부에 데려가고, 매일 아침에 출근해 보면 그때 방가 성을 가진 사람들, 중앙정보부의 과장급이면 높은데 상주했어요.

[최욱] 무서웠겠다.

[김종철] 중앙정보부 과장이 편집국장 앞에 가서 “이거는 빼라, 줄여라”. 이건 매일 보고 살아야 하거든. 10월 24일에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그때부터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기사 같은 게 조금씩 나가는 게 자극을 받은 게 74년 10월 2일날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학생 기념탑 앞에서 무릎 꿇고 단식한 거, 이런 게 1단씩 나가기 시작했어요, 물꼬가 터지니까 막 1면으로도 가고 박정희가 못 견딘 거죠. 광고 탄압을 시작한 거예요. 광고주들한테 동아일보, 동아방송, 신동아, 여성동아에 광고 주지 말라. 여러분이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심용환] 안 태어났는데요.

[강유정] 아무도...

[김종철] 46년인가?

[이상호] 저도 안 태어났어요.

[김종철] 안 태어났어요? 우리는 자기 일이니까 너무 자화자찬 같은데 그것이 어떤 역사를 바꾸는 큰 단초가 된 건 사실이라고 보죠.

[최욱] 훌륭하십니다. 정말.

[임자운] 과거의 동일한 시기에 같은 사건을 바라볼 때도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령 역사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보느냐, 민중의 관점에서 보느냐. 대부분 선생님의 말씀은 당시의 일을 평기자로서 어쩌면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또 그 기자를 바라보는 당시 동아일보 사주들의 관점이 있었을 텐데 동아일보 100년 아카이브를 보면 1974년 <유신 저항과 광고 탄압>이라는 제목의 페이지가 있는데 당시 동아 기자들이 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한 역사가 되게 자랑스럽게 서술되어 있을 뿐, 회사가 그 기자들을 탄압한 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거든요. 어쩌면 이거를 민중의 역사를 지배자가 가로챈 것이죠. 제가 이거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그런 식의 가로채기가 있는 상황인데요. 아예 안 써 버리는 것이 좋은 건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종철] 당사자로 보자면 그 사람들이 교활한데 동아일보가 그래도 조선일보보다는 조금 나은 모양이에요. 비교 우위에 있다고 봐요.

[임자운] 비교 우위.

[이상호] 동아일보 같은 경우는 그럼에도 계속 우리는 독재와 맞섰다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는데 심 소장님, 이 주장과 반대되는 역사적인 증거들을 찾아볼 수가 있죠?

[심용환] 있죠. 이거는 한번 방송이 됐던 적이 있는데요. 80년 8월 21일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하고 그리고 그 당시 이광표 문화공보부 장관의 면담 기록이 있습니다. 이광표 장관이 “동아일보가 새 시대와 어떤 새로운 국가에 부응하는 데 좀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달라”, 이 얘기를 하니까 김상만 회장이 “국가 안정의 바탕 위에서 발전, 융성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소신이며 우리 동아일보의 소신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광표가 누구냐 하면 언론 통폐합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면서 언론사들을 대거 숙청했었던 바로 그 작업을 했었던 바로 그 장관입니다. 그런데 약속했던 것을 동아일보는 이행을 합니다. 실제로 전두환 장군, 그 때는 전두환 장군의 리더십을 부각한 기사가 있는데 동아일보 기사를 읽어드리면 제목부터 인상적입니다.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이 제목이고요. “전 대통령을 아는 많은 사람은 그를 신념과 의지의 인물이라고 부른다. 가장 평범한 진리를 가장 철저히 지킴으로써 평범 속에 비범을 지켜왔다.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성품으로 도덕적인 엄격성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손대 본 포커 카드놀이나 고스톱 화투 놀이도 모른다는 것이다. 청렴결백의 성품은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특성이다. 사치를 모르는 물욕을 초월한 그의 성격 때문이다.”

[최욱] “물욕을 초월한” 이거는 빵 터집니다. 이거 빵 터져요. 물욕을 초월한.

[임자운] 평범 속의 비범이 되게 키 포인트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이상호]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1980년 6월 5일 김대중 기자의 르포를 실었는데 내용을 소개해드리면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트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같은 해 8월 23일자에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비리를 보고서는 잠시도 참지만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등 그의 인간적 면모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조선일보 보도도 동아일보 보도와 별반 다르지 않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강유정] 김대중 기자, 지금 우리 몇 번 언급했었던 김대중 칼럼의 그 김대중입니다. 그러니까 80년 5월에 일약 조선일보에서 되게 중심적 기자로 떠오르게 된 게 이 르포 기사인데요. 르포라는 말 자체가 기자가 직접 가서 현장을 체험하고 사실적 기록을 담는다는 게 르포르타주(reportage,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 의 일종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주 심각한 왜곡과 훼손을 가져왔죠, 사실에 대해서. <무정부 상태 광주 1주>라는 이런 왜곡 기사를 실었고 잠깐 우리 처음에 얘기했던, 만약에 오보를 수정한다거나 그리고 오류에 대해서 반성을 한다면 이 지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의도적으로 빼놨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최욱] 이거는 전두환 씨도 민망할 것 같은, 거의 저한테 훤칠한 체형, 이런 느낌이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해서 어떻게 콩고물 좀 떨어졌나 모르겠네요. 부끄럽네요, 진짜.

[심용환] 그때만 해도 사실은 동아 다음 조선이 아니라 동아, 한국, 조선이었거든요. 확 크게 되는데, 매출액으로 보더라도 80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동아일보가 265억 조선일보가 161억인데 1988년,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나서는 어떻게 되냐면 동아일보도 많이 오릅니다. 885억 원인데 조선이 914억 원까지 올라갑니다. 굉장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고요. 그리고 지금 되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는데 아닌 게 뭐냐 하면 원래는 상업 인쇄라든지 혹은 문화 사업이나 스포츠 사업 혹은 부동산 임대 사업 같은 것들에 대한 보도 역할을 하는 것들이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들이 다 살아남은 언론사에게 혜택을 주게 되는 거로 바뀌게 됐고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선생님같이 투쟁하셨던 분들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역사이지만 살아남은 사람들한테는 계속 이렇게 가면 되겠네, 이런 시기의 역사가 시작이 된다고 보시면 되고 거기서 가장 큰 혜택을 본 회사는 객관적 지표로 보더라도 조선일보였고 그렇다고 동아일보는 혜택을 안 봤다? 이거는 전혀 아니고요.

[최욱] 콩고물 정도가 아니군요.

[심용환] 그렇죠.

[임자운] 전쟁을 통해서 성장한 기업이나 전쟁의 발발이나 유지하는 데 책임 있는 기업을 우리가 전범 기업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80년 5월 광주는 당시에 광주에 계셨던 시민들,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전쟁 상황일 수 있었고 분명. 그러한 상황을 눈을 감거나 심지어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가 80년 8월이니까 80년 5월 광주 발발 직후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때 이런 기사를 씀으로 인해서 성장을 했다면 사실 조선은 전범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광주 시민들한테는. 저희가 정말 사과해야 한다는 말 많이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지워서 없앨 게 아니라 깨끗이 사과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최욱] 그런데 아직도 보면 이 논조가 어느 정도 이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게 좀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네요.

[강유정] 그러니까 이걸 아예 사실과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정파성의 문제로 위치를 이동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종편에서 그리고 보수 언론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가령 TV조선이나 채널A에서 5.18 북한군 침투설 같은 것들을 허위 조작 방송을 했거든요.

[최욱] 맞습니다.

[강유정] 뭐냐 하면 출발은 사실 정치권에서 먼저 출발을 했었죠. 정치권에서 출발을 했고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언론이 확대 재생산을 하면서 마치 이 진실 자체가 다시 이야기해봐야 할 만한 그런 정파적이고 당파적인 문제인 것처럼 프레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심용환] 이게 지금 북한군 침투설 같은 경우는 그러니까 예전에 오공 청문회 때도 밝혀진 일이지만 실제로 2006년에 국방부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다시 다 파헤쳐봤습니다. 이 북한군 침투설 보도가 2013년이면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에서 발표했던 게 약 10년 전이에요. 그러면 10년 전에 국가에서 공적인 조사를 걸쳐서 이거 유언비어였다라는 게 이미 밝혀진 이야기를 이걸 알고도 했다면 이건 기자 윤리의 문제가 있는 거고 몰랐다는 것도 심각한 것 아닌가요?

[강유정] 그래서 정정보도가 사실 더 중요해요. 왜냐하면 TV조선의 13년 5월 13일자 장성민의 시사탱크를 보자면 “내려오는 사람마다 북한에서는 다 알고 하는 것인데 북한군이 개입했다더라 라는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든가 채널A에서도 “우리 나이 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광주 폭동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 그런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근거로 삼고 있는 기사들이 바로 당시에 자신들이 80년대의 지면을 실었던 기사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 인용을 하고 있는 거죠.

[심용환] 자기 복제를 하고 있는 거네.

[강유정] 자기 복제를 하고 있고 정말로 오보에 대해 사죄를 하고 정정을 하려고 한다면, 이 5.18 문제에 대한 언론사들의 정정 보도가 정말 있어야 하는데 이게 사라지는 건 이런 식으로 악용할 개제들을 여전히 남겨놓고 있는 거죠.

[이상호] 설령 정권의 폭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펜대가 꺾였다고 하더라도 사실 휘두른 펜에 누군가는 피해를 입지 않겠습니까? 조선과 동아일보가 과거 보도에 대해서 사과해야 할 피해자가 정말 많을 것 같거든요. 김종철 위원장님 어떤 분들이 떠오르세요?

[김종철] 내가 이거를 좀 오늘 뽑아왔는데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다, 이렇게 돼 있네요. 강기훈이 대필해줬다는 식으로 제일 몰아붙인 데 앞장선 게 조선일보였죠.

[심용환] 시대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려야 할 텐데 91년이죠.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군이 경찰에 집단 구타에 의해서 사망을 하게 되니까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정권 타도도 외치게 되고요. 어버이날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이 서강대 옥상에서 투신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원인 자체는 정권의 어떤 가혹한 탄압과 억울한 죽음 때문에 시작한 건데 그와 상관없이 공안 당국에서 언론에서 자살을 부추기는 조직적 사건이다. 일종의 어떤 그런 분신 정국, 이런 식의 용어들을 막 쓰고.

[김종철] 김지하 시인이 그 당시에 망언을 해서 유명했었죠.

[심용환] 그렇죠.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하면서 굉장히 얘기가 안 좋아졌고요. 그 결과로 유서 대필 조작 혐의에 강기훈 씨가 몰리게 되고 유서대필 및 자살방조 혐의로 징역 3년을 다 사시고 만기로 출소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2015년에 무죄를 재심을 통해서 받으셨으니까 시기로 따지면 정말 너무나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게 된 거죠.

[이상호] 김기설 씨 분신 자살 다음 날이죠. 91년 5월 9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2, 3일 간격 연쇄 발생 계획 의혹>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검찰의 의혹을 전하고 있고요. 같은 날 중앙일보 <분신에 협력자 있었을까>라는 기사를 게재를 하면서 당시의 사건에 의혹이 또 증폭됐습니다. 시민사회가 그런데 특히 조선일보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강유정] 어떻게 말을 하고있냐면, “죽음의 블랙리스트가 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배후에 분명히 죽음을 조종하는 선동 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이 모든 말은 다 추측성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추측이라는 것에 대한 수사적인 표현이고요. 그리고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자살 소동에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의문점이 게재한다는 점을 강하게 느낀다라고 돼 있어요. 이 느낌을 사설에 써도 되는 겁니까? 추측성 보도를 통한 한 사람을 겨냥하는 것이 자체가 말 그대로 마녀사냥이고 악마화라는 것입니다.

[임자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취했느냐를 우리가 조금 달리 볼 필요가 있는 게 방조만 했느냐 아니면 공모했느냐. 유서대필 사건에서 조선일보의 역할은 분명히 공모자였다고 저는 보거든요. 검찰이 아무리 칼춤을 추고 법원이 돕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안되는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그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했다고 봐요.

[이상호] 강기훈 선생님의 생각을 저희가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지금 전화 연결이 돼 있다고 하는데요. 잠시 말씀을 좀 나눠보겠습니다. 강기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강기훈] 안녕하세요?

[이상호] 조선일보 보도 가운데 가장 억울하고 화났던 부분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강기훈] 예를 들면 김지하 씨의 발언이라든가 박홍 총장의 그 발언. 이런 것들을 통해서 사실은 전체 정국을 주도한 신문이 조선일보였고 나머지 신문이나 방송들은 그것을 따라가는 어떤 그런 형태였어요. 그러니까 뭐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일보는 이 사건과 같이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화나는 이유야 한 두 가지겠습니까?

[강기훈] 유서대필, 자살 방조 이런 단어들이 갖고 있는 어감은 제가 느끼기에는 살인마, 이런 정도 급의 어떤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검찰발 속보로 계속 속보 형식, 그러니까 경쟁을 하듯이 보도가 되고 있었어요. 한쪽에서 검찰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면 이 자가 범인이 틀림없다고 하면 그걸 그대로 받아내는 형식이 되었기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 이런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단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의미라든가 이런 거를 생각을 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죠.

[임자운] 당사자로서 앞으로 이 사건을 언론이 어떻게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좀 듣고 싶습니다.

[강기훈] 그런 말을 쓰고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몇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거기에 시달리게 하고 이래왔던 일들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고 생각을 하고요. 제 사건 이후로도 수많은 이런 비슷한 케이스들이 있었어요. 특히 검찰과 언론의 어떤 유착에 의한 권력의 편에 선 거죠. 그래서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조작을 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고 그러면서 권력을 유지해 왔던 그런 통한의 역사, 이런 것들이 어느 하나 청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호] 2015년 무죄 확정 판결 이후에 나왔던 조선일보 사설, 기사를 아마 보셨을 겁니다. 어떠셨어요, 당시에?

[강기훈] 자기들 책임 없는 거죠. 그리고 심지어는 그 문장이 아주 참 저를 많이 화나게 했는데 유서를 대신 썼는지 안썼는지에 대한 진실은 강기훈만 알 것이다라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지 그러니까 이 모든 사건을 조작했던 당사자거든요, 조선일보. 특히 조선일보인데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는, 이게 언론 맞습니까? 과거에 제 사건을 조작했던 검사들과 국립과학처 연구소 실장에 대해서 민사소송 중인데 방송 3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신문들, 당시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젠가는 이 문제로 인해서 한 번 발언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참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의문이 좀 듭니다.

[이상호] 어렵게 오늘 시간 내주시고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기훈] 감사합니다.

[강유정] 저는 강기훈 씨 인터뷰 중 서울신문과 한 18년도 2월 2일자 인터뷰가 굉장히 좀 기억에 남는데요. 왜냐하면 “얼마나 재미있어요, 연쇄된 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둥, 자살할 사람을 뽑는다는 둥, 검찰이 흘리면 언론은 사실인 양 보도해요. 보도가 나가면 또 검찰은 보도대로 수사하죠.” 그다음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너무 가슴에 남습니다. 저는 현재 언론의 형태라든가 그리고 언론과 정치 그리고 검찰의 유착 관계라는 게 끊어지지 않는 이상 새로운 강기훈 씨가 계속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이상호] 김종철 위원장께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 기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고 하는데 이지은 기자가 소개해 주신다고요?

[이지은] 김종철 위원장님께 제가 특별한 부탁을 드렸던 게 기자 시절에 혹시라도 서슬퍼런 정권 때문에 또는 데스크의 압력 때문에 쓰지 못했던 기사가 있으시다면 한 편, 지금 다시 한 번 기사로, 사건이 있다면 그걸 한 편의 기사로 써주실 수 있으신가 부탁을 드렸더니 오늘 현장에 써서 오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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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J 다시 쓰기
[김종철 /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 주권자들이 꼭 알고 싶어 하는 권력의 내막이라든지 박정희 정권이 뭘 잘못하고 있다는지 이런 건 단 한 줄도 못 쓰던 그런 때죠.

40여 년간 마음에 묻어둔 채 기사로 쓰지 못했던 그 사건

[김종철 /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 쓰지 못했던 기사를 얘기하자면 1974년 8월 15일 그 때…

육영수 여사 총격 사건, 객석에 있던 재일동포 문세광이 총을 쐈다는 당국의 발표, 그러나 풀리지 않은 의혹이 많았는데

[김종철 /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 문세광이 쐈으면 이마 아니면 턱에 맞았어야 했는데 내가 현장에 가보니까 피도 이쪽(왼쪽)으로 흘러있고 데스크에 얘기했더니 뭐 기사를 쓰라는 말은커녕 그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 하는 그게 내 기억에 제일 남는 기사도 쓸 수 없고 의문도 제기하지 못했던….

J 다시 쓰기, 김종철의 취재수첩 < ‘육영수 피살사건’에 얽히고 설킨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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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조선, 동아의 지난 100년 역사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현재 두 언론사, 한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사실 이 타이틀이 그냥 얻어진 건 아닐 겁니다. 어떻게 이룬 성과라고 보십니까?

[강유정] 80년대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손해를 보고 없어진 그런 언론사도 많지만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대단한 혜택을 본 것도 사실입니다. 2007년 미디어악법을 통해서 종편까지 가져가게 됨으로써, 사실은 고사 위기에 좀 있었거든요. 이 두 언론사는 그렇게 내부적인 강화 방침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외부적 수요를 통해서 다시 생존하게 되고 더 급성장하게 되는, 정치권과의 밀월 관계를 통해서 성장을 거듭해왔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호] 최근 몇 년간 조선일보, 동아일보 사주의 공통된 발언이 있어요. 저널리즘은 놓치지 않겠다. 조선 방상훈 사장은 ‘저널리즘 퍼스트’ 그리고 동아 김재호 사장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공공연하게 공식석상에서 자주 표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선언에 비추어봤을 때 얘기하고 있는 원칙에 이번 코로나19 보도를 좀 적용을 해본다면 부합을 한다고 보십니까?

[임자운] 조선, 동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고 한다면 아무래도 정파성을 꼽을 것 같아요. 정치적인 정파적 이해관계를 너무 추구하다 보니까 사안을 가리지 않고 상황을 가리지 않고 그런다. 이제 저희가 앞서 코로나19 관련한 프로그램을 할 때 사실 정말 간절하게 얘기한 게 그거였잖아요. 이 사안만큼은 좀 다르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생명, 건강의 문제니까. 하지만 지금 조선과 동아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 상황이야말로 우리에게 원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정파성에 부합하는 이익을 챙겨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런 느낌이 좀 오거든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위험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호] 김종철 위원장께서는 종편 채널 뉴스 자주 보십니까?

[김종철] 자주 보죠. TV조선도 보고 채널A도 보고 TV조선이 제일 좀 선정적이죠. 선동적으로. 채널A는 아마 그런 점에서 TV조선을 좀 못 따라가는 거 같아요. 밋밋해요.

[최욱] 밋밋해.

[임자운] 사실은 이게 종편 채널에서 특히 정치 콘텐츠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되게 오락 콘텐츠하고 비슷하게 이렇게 약간 섞는 느낌이 있어요. 다루고 있는 주제가 굉장히 나의 삶과 밀접한 주제일 수 있는데 가령 선거제 같은 경우.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오락 콘텐츠처럼 다루고 거기에 막말을 투여하면서 비평이라는 걸 함으로써 저것들은 그냥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치 혐오가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정치 기득권들이 가장 흔하게 취하는 수법을 지금 종편 채널들이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이상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부친이죠. 방일영 전 회장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언론이 정치 권력화 되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심용환 소장님, 어떻게 보세요?

[심용환] 그러니까 이게 일화죠. 사실 일화라는 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확인하기 힘든, 그런데 이제 하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생기니까 이제 카더라가 관행처럼 붙는 말인데 무슨 말이 있었냐면 일화죠. 박정희 대통령이 방 전 회장한테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임자가 대통령이구먼, 이 정도로 사실 비공식적인, 언론 권력이 커 가는 걸 권력자들도 아마 느꼈던 것 같아요.

[임자운] 저는 정치 권력 문제가 나오면 생각나는 게 조선일보의 그 2002년 12월 19일 사설인데요. 그때 상황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그 전 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 철회를 갑자기 선언하면서 그게 깨지고 그 다음 날 바로 대선 날이 된 거죠.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급격한 상황 변화 앞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도 함께 다니면서 노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 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저는 이 사설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던 게 그때 제가 처음 대선을 하던 때였거든요. 되게 어리고 순수하고.

[심용환] 투표하시는?

[최욱] 너무 어리시네, 생각보다.

[임자운] 저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라운드에서 심판을 보거나 그거를 중계하는 척을 했지 플레이어를 대놓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본인들이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심판복을 벗어 던지고 라운드로 들어 가버린 거예요. 우리나라 선거법에는 언론이 그렇게 특정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해도 된다는 법이 아니잖아요. 그거는 위법 행위잖아요. 선거법 위반이고 그런데 그런 사설은 낸 거고 분명히 흑역사고 잘못된 것인데 거기에서조차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거예요.

[이상호] 조선·동아 100주년 맞아서 시민사회에서는 철저한 과거 반성, 족벌 언론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지은 기자, 여기에 대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측 입장은 어떤 겁니까?

[이지은] 조선일보 측은 안타깝게도 저희 방송이 편향된 방송으로 일관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답변도 해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해왔고요. 동아일보는 지금까지도 답변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호]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게 한 말씀씩 해주신다면요?

[강유정] 저는 좀 유명한 말을 패러디 하고 싶어요. 국민은 국민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이제는 언론을 도저히 맞춰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언론의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욱] 모 언론사에서 우리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없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키는 조선, 동아가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방송에게 더 이상 소재를 제공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상호] 저널리즘 토크쇼 J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방송은 KBS 1TV, myK, 웨이브,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언론 개혁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곧이어 1974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당시 격려 광고로 언론 자유 운동에 동참했던 시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시고요. 저희는 다음 주 일요일 밤 9시 40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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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에필로그 – 1974년 동아 격려광고 깨시민의 이야기

“언론 자유 시대를 열다”

1974년 탄압으로 빈칸이 된 광고 지면 시민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기범 / 광고 후원 당시 고등학생] 저희가 고등학교 2학년을 거의 다 마치고 3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는 2월 달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우리도 뭔가 작은 힘을 보태야겠다. 그래서 (동아일보 광고 후원) 모금을 시작하게 된 거죠. 혼자 했으면 못했을 거에요.

[정진우 / 광고 후원 당시 고등학생] 저희가 고등학교 2학년 때라고 생각이 들어요. 저희들 모두가 분노하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서 야 우리도 뭔가 해야한다. 같이 참여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쉽게 친구들 사이에서 이심전심으로 되었고.

[김철회 / 광고 후원 당시 5살] 아버지(아들의 이름으로 후원한 김재헌 님)가 제이름으로 후원했던 영수증을 보게 됐어요. 평소에 하시던 말씀하고 가장 맞는 유품인 것 같더라고요. 언론에 대해서 30%만 믿어라. 이런 얘기까지도 가혹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언론에 대해서 100% 믿을 수 있는 건 아닐 수 있겠다 판단을 하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4개월 동안 약 1만 건의 광고를 시민이 채웠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야기 J가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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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널리즘토크쇼J]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
    • 입력 2020-03-08 22:15:58
    • 수정2020-03-08 22:58:15
    저널리즘 토크쇼 J
[이상호] 안녕하세요? <저널리즘 토크쇼 J>입니다. 오늘 함께해 주실 분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상호] 먼저 비평 끝판왕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강유정] 안녕하세요? 강유정입니다.

[이상호] 팟캐스트 황태자 최욱 씨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최욱] 반갑습니다. 최욱입니다.

[이상호] 깊은 보조개만큼이나 깊은 시각을 가진 분이죠. 임자운 변호사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임자운] 안녕하세요? 임자운입니다.

[이상호] 아 머리를 자르셨네요. 달라보여요?

[이상호] KBS 이지은 기자도 오늘 함께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상호] 네, 이지은입니다.

[이상호] 오늘 주제가 창간 10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역사입니다. 관련해서 함께 말씀 나눌 두 분 또 모셨는데요. 먼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김종철 위원장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종철] 네, 안녕하세요?

[이상호] 그리고 눈높이 맞춤 역사 강의로 유명한 분이죠.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님도 오늘 함께하십니다. 어서 오세요.

[심용환] 안녕하세요?

[이상호] 먼저 본격적인 비평에 앞서서 코로나19와 관련한 기사를 잠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지난 3월 1일자 국민일보 기사인데요. <코로나19 걸리기 싫어, 전담 병원 간호사 16명 무단 결근>이라는 제목으로 “포항의료원 간호사들이 코로나19에 걸리기 싫다며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한 뒤 무단결근하는 사태가 벌어져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힘 빼는 기사 좀 안 쓰면 좋겠다고 임자운 변호사가 말씀하셨거든요. 이 기사는 어떻게 보셨어요?

[임자운] 만약에 코로나19에게 인격이 있다면 이런 기사 보면 정말 박수 치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인류가 어떻게 보면 힘을 합쳐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랑 싸우고 있는데 사람 안에서 내부 총질을 하는 느낌이 있고요. 바이러스와 함께 이런 기사와 함께 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지은] 성명과 브리핑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통해서 해명을 했었는데 이 간호사 16명이 원래 사직이 예정이 돼 있었다, 그러니까 근무 계약 기간인 거죠. 기간이 종료가 되어 있었고 그 시점에 사직을 해도 무방했지만 이분들이 오히려 바쁜 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일을 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었고 그러던 와중에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사직을 해야 할 시점이 왔기 때문에 사직을 한 것이지, 이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싫어서라는 말은 정말 완전히 사실에 반하는 얘기라는 거죠.

[최욱] 그리고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지 않았습니까?

[이지은] 그렇죠.

[강유정] 이런 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들이 있고, 왜 하느냐? 클릭 수를 높이고 누군가의 도덕적인 부재를 가지고서 비난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는 장사가 되기 때문인데요. 악의적 보도와 과장 보도, 그것이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기사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건요. 정정 보도를 하지 않았어요. 정정 보도나 사과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호] 아직까지도.

[강유정]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최욱] 요즘 보면요. 뉴스 시청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불안하고 관심도가 높다는 거거든요. 이런 걸 가지고 최소한 장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힘 빼는 기사 쓰지 말라고 했는 그거 고치기는 어려울 거예요. 사실에 기반해서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상호] 코로나19를 둘러싼 가짜 뉴스 바이러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끝까지 찾아내서 퇴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송은 KBS 1TV, myK, 웨이브,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호] 지난 3월 5일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동아일보 또한 다음 달 4월 1일 100주년을 앞두고 있죠.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지난 한 달 동안 이들 100년 신문의 반성 없는 과거를 찾아내서 기억해 왔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3월 4일 지면 1면에 <과거의 오류, 사과드리고 바로잡습니다>라는 정정 기사를 실었습니다. 어떻게들 보셨습니까?

[강유정] 오류는 그릇되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조선일보의 오류가 아니라 아주 명확한 오보에 대해서만 몇 가지 해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알고 있었던 오류 같은 경우는 가령 5.18 민주항쟁 같은 경우를 일종의 광란의 사태처럼 묘사했었던 것들은 분명히 오류이거든요. 그런데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면피성이죠. 굉장히 많은 오류들을 다 이 작은 오보 기사 안에 응축함으로써 마치 모든 오류를 자신이 사죄하고 바로 잡는 것 같은 착각을 주고 있는데 사실은 이게 조선일보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언어유희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임자운] 이번 조선일보의 사과 내용을 보면 제작상 실수, 교차 확인을 게을리해서 아니면 기자의 판단 실수, 과욕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가장 크게 해악을 끼치는 기사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거짓된 기사를 쓰는 경우라고 보거든요. 가령 과거에 이제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검찰 관련 발언이라든가 아니면 고급 요트 탄 귀족처럼 당시 노무현 후보를 비방한 것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그런 기사를 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사과 내용은 거기에 대한 사과는 빠져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지금 조선일보가 직접 밝힌 기사 외에도 굉장히 많고 앞으로도 계속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최욱] 확실히 두 분은 참 차가워요, 보면. 냉정합니다. 두 분. 이 사과의 싹이 이제 막 트기 시작하는데 그거를 짓밟습니까? 그래도 저는 이들이 느낌적으로 우리가 뭔가 좀 잘못해왔구나 하는 인식 정도는 있지 않는가, 그런 희망을 갖습니다.

[김종철] 조선일보에 이제 속성이라는 게 있죠.

[최욱] 선생님이 나서시는군요, 이제.

[김종철] 올해를 조선, 동아일보가 100주년이라고 하죠. 사람으로 하면 100살이면 대단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조선일보는 지금 1등 신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권력에 아부하고 돈벌이 하고 장자연 사건 보도 같은 거 다 속이고 눈가림 하고 사주일가의 비리 감추는 데 앞장선 이런 신문은 1등이라는 말은 제발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호] 김종철 위원장께서 67년에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를 하셨잖아요. 입사하신 뒤에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8년 만에 강제 해직을 당하셨고 그 후에 이제 45년 동안 언론 자유를 위해서 계속 지금 투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종철] 요새는 2, 30대는 거의 종이 신문을 안 보거든요. 그리고 뭐 인터넷 문화, 유튜브 가능하면 저희는 젊은 세대가 이런 일을 좀 알아야 한다. 이 신문이 100년 동안 얼마나 국민을 속여 왔는지.

[최욱] 오늘 좀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최욱] 젊은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 젊은이 한 명 나와 있거든요. 역사학자. 어떻게, 잘 알아요? 어때요?

[심용환] 조선, 동아 100주년을 갖고 저를 불렀다는 얘기는 오늘 총력을 다해서 그 100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사실 관계 위주로 적나라하게, 감정을 넣지는 않겠습니다.

[이상호] 지난해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자축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거든요. 그중에서 눈에 띄는 특집들이 있습니다. 대기업 관련 기사들이 그 내용들인데 동아일보는 <한국 기업 100년, 퀀텀 점프의 순간들>. <다음 100년 키우는 재계 뉴 리더> 기획 등을 싣고 있고 조선일보도 창간 100주년 당일인 3월 5일 기업 관련 특집 섹션을 대대적으로 선보였습니다. 특집 기사들을 좀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강유정] 퀀텀 점프라는 말을 써서 지금 혁신을 통한 비약적 점프를 하는 기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이를테면 이거 예전에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에 대한 결심을 했다든가 이런 기사는 정말 몇십 번 내지 몇백 번은 본 듯한 기사를 다시 정리하고 있으면서 다만 제가 보기에는 일종의 삥 뜯기라고 할 수 있을, 이렇게 우리 100주년 기념 행사하는데 돌잔치라든가 뭔가 100주년 기념 행사 하는 데 협찬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이렇게 돌려서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새롭지도 않고 기시감이 있는 그런 기사들이었습니다.

[이상호] 이지은 기자가 특집 기사에 소개된 업체들을 상대로 직접 취재를 하셨다면서요?

[이지은] 이 두 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실 지난해부터 100주년을 앞두고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협찬을 요청을 해왔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창간일인 3월 5일자에 특집 섹션을 마련해서 여기에 미래의 100년을 여는 기업이라는 특집 기사를 쓸 계획이라면서 A 기업에게 억대 협찬금을 요청을 했고요. 또 같은 이유로 B 기업에게도 협찬을 요구했는데 이 B 기업 같은 경우는 이런 월 예산의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협찬금 집행을 다음 달이나 달을 좀 조율을 해달라, 조정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도 무조건 3월에 좀 맞춰달라, 이렇게 고집을 했다고 해요. 동아일보 같은 경우는 창간일이 다음 달인 4월 1일이거든요. 그래서 기업들은 아마 이달부터 본격적인 협찬 요청이 들어올 것 같다 이렇게 예상을 하고 있더라고요.

[최욱] 사실상 기업 홍보도 아니에요. 재벌 총수 홍보예요.

[심용환] 그렇죠, 그렇죠.

[임자운] 데 이러한 총수 체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재벌 시스템이 정말 혁신적인 것이냐? 굉장히 고루한 거잖아요. 그럼 거기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거를 고착화시킨다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고마웠는데 앞으로 더 잘해보자라는 메시지를 기업한테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욱] 그래도 100주년을 맞았는데 너무 안 좋은 이야기들만 하시니까 훈훈한 이야기도 하나 해보겠습니다. 조선일보가 그래도 굉장히 따뜻함이 있습니다. 100주년을 맞아서.

[김종철] 그래요?

[최욱] 퀴즈 이벤트를 했어요. 2등이, 웃을 일이 아닙니다. 크루즈 여행권이에요. 1등은 고급 세단.

[심용환] 차를 준다고요?

[최욱] 차를 줘요, 고급 세단. 그래도 역시 이제 독자들과 국민들을 생각하는 부분,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김종철] 조선일보가 대는 겁니까? 누가 대는 겁니까?

[이지은] 그래서 저희가 그게 궁금해서 제작진이 문의를 해봤는데.

[심용환] 그것도 협찬?

[이지은] 지면광고 계약을 할 때 사내외 행사, 그러니까 언론사가 주최하는 사내외 행사의 사은품으로 기업체 상품을 현물로 제공한다는 조항을 단 뒤, 지면광고비 대신 현물 상품으로 대체하는 형태로 협찬했다, 이렇게 답변을 해왔습니다.

[최욱] 그러면 저 응모 안 하겠습니다.

[이상호]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역시 100주년 특집 사이트를 열고 자신들의 100년사를 대대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두 신문사가 정리한 그들의 100년 역사 맞는 기사들인지 저희가 준비한 코너가 있습니다. 뉴스 강제 소환, 오늘은 무려 조선, 동아일보의 지난 100년간의 보도를 좀 소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호] 먼저 친일·반민족 역사부터 저희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민족정론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조선일보 1월 6일자 기사에, <창간 첫 해 기사에 ‘아이고 왜놈’… 총독부를 경악시키다>, 2월 3일자 기사 <일제에 저항한 ‘좌우 합작’… 신간회 운동을 주도하다>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또한 100주년 특집 사이트에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시상대 위에 서 있는 사진을 게재하면서 “가슴 부문의 일장기를 지워버려 총독부로부터 네 번째 무기 정지를 당했다.” 라고 기록을 해놨습니다.

[김종철] 2월 29일에 한 기자가 쓴 겁니다. 조선일보 <3·1운동으로 태어나, 불의한 시대에 저항했다>. 헌병 정치를 없애고 문화 정책을 펼치면서 태어난 게 조선일보, 동아입니다. 1920년 3월 5일에 조선일보가 창간됐고, 4월 1일에 동아일보인데 이런 걸 3.1운동으로 태어났다고 자랑하는 건 참 파렴치한 짓입니다.

[심용환] 진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뭐가 있냐면 학교 가면 외우거든요. 40년 폐간, 이렇게 외우는데 그래도 40년이 되면 저항을 하고 탄압받아 와서 망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최욱]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심용환] 다 그렇게 알고 있죠? 아닙니다. 일간지는 폐간을 시켰잖아요. 월간지는 발행 허용해 줍니다. 그게 그 유명한 조광이라는 잡지에 발행을 허용해 줬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어떤 활동들을 계속 해 나갔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그냥 겉으로 폐간당하고 할 일은 다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보는 게 적합한 사실 같아요.

[최욱] 그래도 동아일보는 조금 인정해 줄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손기정 선수 일장기도.

[이상호] 일장기 말소 사건.

[이상호] 그런데 사실 이 뒷이야기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김종철] 일장기 말소 사건은 지금 동아일보가 창간 기념일마다 자기들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거든요. 저도 물론 동아일보 출신인데 그거 거짓말입니다.

[심용환] 좀 정확히 말씀드리면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가 성냥불로 고루거각 공장을 태웠다. 그리고 이제 김성수, 사주죠. 사주는 이제 일장기 말소(히노마루)는 아주 몰지각한 행동이었다. 그 당시 사회부장이 잘 알고 있는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선생님이 이 일 때문에 해고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요. 1924년부터 총독부에서 동아일보가 아니라 동아일보의 운영 자금을 대던 김성수의 또 다른 회사인 경성방직, 그러니까 계속 사업 장려금을 줬어요. 그러니까 이때 이미 소위 말하는 권언유착 같은 관행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거죠.

[이상호] 친일 행적을 봤을 때 조선이나 동아나 오십보백보인 듯한데 지난 1985년에 조선, 동아가 서로를 친일 언론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저격을 주고받으면서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지은 기자, 이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이지은] 시작은 동아일보였는데요. 동아일보가 1985년 4월 1일에 창간 65주년 되는 기념 사설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탄생 과정을 밝히는 글을 올리면서 이 논쟁이 시작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제가 심용환 소장님과 함께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일보가 첫 번째 사설에서 조선일보에 대해서 “민중들은 내용으로 친일 신문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독자들은 자꾸 떨어져가서 발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경영난에 허덕이고 기회주의 신문으로 전락했다”라고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심용환] 여기에 가만있을 저희가 아닙니다.

[최욱] 조선일보입니까? 조선일보.

[심용환] 4월 14일자 보도 보겠습니다. “동아일보가 살아있는 증인이 많은데 전에 앞장서서 친일을 했으면서 자꾸 자기만은 반일 투쟁을 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이지은] 그래서 4월 17일 동아일보가 다시 한 번 받아칩니다.

[최욱] 동아일보.

[이지은] “조선일보는 친일 단체 기관지임을 세상이 다 알고 있음으로 신문이 팔리지 않고 인기가 없어서 경영 곤란에 빠졌다.”

[최욱] 조선일보 참을 거예요?

[심용환] 못 참아요.

[최욱] 못 참아.

[심용환] 4월 19일 “동아일보 본지 비방에 붙여. 우리 현대 사는 항용 특정 계파의 일방적 자기 미화의 논리로 이 항용 특정 계파”, 김성수 계파 얘기하는 겁니다. 너무 흥분했다. “일방적 자기 미화의 논리로 잘못 기술되고는 했습니다.” 이렇게 강변했습니다.

[이상호] 교실에서 정말 아이들이 싸우는 거랑 비슷하네요. 진짜.

[최욱] 이런 싸움만 계속되면 사실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은 필요 없을 거 같아요.

[임자운] 저는 뭐 다른 것보다도 그냥 이 조선일보 85년 4월 14일자 이 글을 그냥 두 회사 사장단에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뻔히 살아있는 증인도 많은데 전에 앞장서서 친일 행동을 했음에도 자꾸 자기 반일 투쟁을 했노라고 강변한다. 왜 그 시대를 살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지 못할까, 그러면 동정이나 받지요.”

[최욱] 그런데 저는 과거의 친일까지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거 진짜 너무 놀랐습니다. 11월 18일 조선일보 칼럼인데 라는 제목의 글인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BBC가 일본을 봤을 때는 너무 착하고 규칙도 잘 지키고 그래서 외교적으로 아주 호감도가 높은데 우리나라는 비호감이라는 거예요.

[이상호] 내용을 좀 소개해 드릴까요? 내용이 “외교를 잘하는 국가는 평소 부단한 노력으로 여러 나라와 우호 관계를 쌓는다. 이와는 반대로 잇따라 적대 관계를 만들거나 냉랭한 관계를 방치하는 나라도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한국의 친구는 얼마나 늘었는지 한국의 이미지는 국제 사회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 어쩌면 한·일 과거사 갈등 해결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최욱] 선생님, 놀랍지 않습니까?

[김종철] 별로 저는 놀랍지 않은데.

[최욱] 그렇습니까?

[이상호] 하도 많이 봐 오셔서. 김종철 위원장님, 한마디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최욱] 저 좀 달래주세요.

[김종철] 속성이고 장기거든요. 12월 21일자에 방상훈 조선일보 사보 1면에 이렇게 썼어요. “조선일보는 정통 보수 언론으로써 사명감을 갖고 앞으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라는 대한민국의 두 기둥을 굳건히 지켜나가겠습니다. 이 네 줄짜리 문장에 정통을 비정통 이런 식으로 바꾸면 이게 조선일보의 실체가 되는데 독자와 국민을 속이는 방법이나 그 수단이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니까.

[최욱] 그런데 풀리지 않는 게 지금 이 시기에 일본 편을 드는 것, 이거는 풀리지가 않아요. 보수 언론이면 더 우리나라 편 들어야죠.

[심용환] 제가 아까 연기를 했지, 정말 조선일보는 아닙니다.

[최욱] 죄송합니다.

[심용환] 눈빛이 바뀌셨어요.

[김종철] 말하다 보니까 조선일보에 너무 집중했네요. 동아일보는 상당히 잘한 것처럼.

[이상호]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민주화 운동 당시의 기사들도 소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월 29일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100년은 불의한 시대와의 투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대에 저항하고 권력과 맞선 세월이었다. 권력에 찍혀도 할 말은 다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J에서 확인한 내용은 달랐거든요. 1961년 5월 19일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혁명의 공약과 국내외의 기대>라는 제목의 내용을 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군사 혁명이 완전히 성공함에 즈음하여 우리는 세 가지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민족 사상의 분열과 혼란 그리고 민생고가 극심하였던 만큼 어떤 형태의 구국 운동이 절감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군사적인 단결과 함께 국내외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게 된 소인은 실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사망 후 1979년 10월 28일자에 <박 대통령 서거>, <민족 중흥의 찬란한 금자탑 쌓고 비운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지면 7 페이지를 할애해서 추모 기사를 썼습니다.

[강유정] 저는 72년 12월 28일 조선일보 사설을 좀 다시 찾아봤는데요. <새 역사의 전개, 제8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을 경하>한다는 제목이에요. 그런데 내용을 좀 볼게요. “무엇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5, 6, 7대나 대통령을 역임한 그를 또다시 환영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그의 영도력 때문입니다”라고 해서 저는 북한 신문인지 알았어요. 어디 권력 감시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그리고 그 당시에 했어야 할 언론의 역사를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볼 수 없는, 이게 게다가 사설입니다, 사설. 그러니까 그 신문의 정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1972년 그리고 여전히 쿠테타 지지 이후부터 80년대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어떤 공과 과를 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종철] 조선일보가 아주 겁에 질린 사건이 있죠.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총으로 쏴서 목숨을 빼앗았는데 그때 제가 속해 있던 동아투위 사람들이 10명이 감옥에 있었어요. 78년 10.24에 민권 일지를 발표해서 10명이 구속돼서 저도 성동구치소에 있었는데 이렇게 면회 갔다 오다가 구치소 벽을 보니까 조선일보가 붙어 있는데 이건 뭐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왜 그러냐 하면 박정희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 체제로 바뀌면 조선일보는 문 닫아야 하거든요.

[최욱] 제가 조선일보의 특종 50선을 봤습니다. 봤는데 좀 많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격동의 시대, 격변기였는데 72년, 73년 특종이, 물론 이거 중요합니다만 고려 금속활자 세계 최초 공인, 천마도 발굴. 중요하죠. 역사학자도 나와 계신데 그런데 이 격동의 시대에 이거를 꼽았다는 건 조금 의아하긴 하더라고요.

[임자운] 그러니까 그 시기에 정말 그러면 보도해야 할 사건이 없었느냐. 그렇지 않았다는 우리나라의 어떻게 보면 아프기도 하고 뜨거웠던 역사들이 분명히 존재했던 거죠. 특히 조선일보는 77년부터 78년까지 반유신민주화 사건들을 모조리 묵살한, 사실 역사가 있는 거예요. 관련 기사를 전혀 쓰지 않거나 지면에 내보내지 않는 관행을 완벽하게 유지했던 상황이었는데 이를테면 1976년 12월 8일 졸업을 앞둔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유신 헌법 철폐, 긴급조치 해제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수백 장 뿌리면서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고 77년 7월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신 고 이소선 님이 법정 모독으로 구속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분이 구속됐던 이유가 장기표 씨를 사건에서 재판장이 노동자들 임금 투쟁 지원한 게 북한 지령받은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방청석에 있던 어머니께서 항의를 한 거죠. 그랬다가 구속된 사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침묵했던 되게 흑역사를 조선일보는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거죠.

[심용환]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이해가 되는 부분은 솔직히 있다고 생각해요. 박정희 정권이 워낙 강력했고 특히 유신체제라는 건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정말 가장 높은 단계의 독재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 프레스 카드, 보도 지침 다 이해는 하는데 문제는 반성을 왜 안 하냐는 거죠.

[이상호] 유신 독재 시절의 기자와 개는 출입 금지, 이런 팻말이 나붙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이 또 권력에 굴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거든요.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 언론 자유를 위한 치열한 투쟁도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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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KBS <인물현대사> 안종필 편 2003.07.18.

1974.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동아일보 기자들

1975년 3월 조선일보 기자들 언론 자유 운동 동참

조선·동아 사측 기자 170명 해고
해직 기자들을 응원했던 시민들

1978년 10월 동아투위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 사건일지] 발행

발행 주도한 기자 10명 구속 기소

[김종철 / 전 동아일보 기자 (법정 최후 진술 中)] 도저히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런 걸레 같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지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언론 자유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따라서 독재 정치가 싹틀 수 있는 온상이 생기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방관할 때 우리는 엄연히 언론인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일을 안 할 수가 있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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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 우리 선생님. 맞죠, 선생님?

[김종철] 맞죠.

[이상호] 그 당시에도 정말 쓴소리를 아주 거침없이 하셨네요.

[김종철] 내가 31살 때인데 저게 우리가 한 일이긴 한데 박정희한테는 상상도 못 한 정면 도전이었죠. 그때는 기사 한 줄이라도 이상한 거 쓰면 남산이라고 정보부 있죠. 거기 잡아가서 고문하고 치안본부에 데려가고, 매일 아침에 출근해 보면 그때 방가 성을 가진 사람들, 중앙정보부의 과장급이면 높은데 상주했어요.

[최욱] 무서웠겠다.

[김종철] 중앙정보부 과장이 편집국장 앞에 가서 “이거는 빼라, 줄여라”. 이건 매일 보고 살아야 하거든. 10월 24일에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그때부터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기사 같은 게 조금씩 나가는 게 자극을 받은 게 74년 10월 2일날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학생 기념탑 앞에서 무릎 꿇고 단식한 거, 이런 게 1단씩 나가기 시작했어요, 물꼬가 터지니까 막 1면으로도 가고 박정희가 못 견딘 거죠. 광고 탄압을 시작한 거예요. 광고주들한테 동아일보, 동아방송, 신동아, 여성동아에 광고 주지 말라. 여러분이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심용환] 안 태어났는데요.

[강유정] 아무도...

[김종철] 46년인가?

[이상호] 저도 안 태어났어요.

[김종철] 안 태어났어요? 우리는 자기 일이니까 너무 자화자찬 같은데 그것이 어떤 역사를 바꾸는 큰 단초가 된 건 사실이라고 보죠.

[최욱] 훌륭하십니다. 정말.

[임자운] 과거의 동일한 시기에 같은 사건을 바라볼 때도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령 역사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보느냐, 민중의 관점에서 보느냐. 대부분 선생님의 말씀은 당시의 일을 평기자로서 어쩌면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또 그 기자를 바라보는 당시 동아일보 사주들의 관점이 있었을 텐데 동아일보 100년 아카이브를 보면 1974년 <유신 저항과 광고 탄압>이라는 제목의 페이지가 있는데 당시 동아 기자들이 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한 역사가 되게 자랑스럽게 서술되어 있을 뿐, 회사가 그 기자들을 탄압한 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거든요. 어쩌면 이거를 민중의 역사를 지배자가 가로챈 것이죠. 제가 이거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그런 식의 가로채기가 있는 상황인데요. 아예 안 써 버리는 것이 좋은 건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종철] 당사자로 보자면 그 사람들이 교활한데 동아일보가 그래도 조선일보보다는 조금 나은 모양이에요. 비교 우위에 있다고 봐요.

[임자운] 비교 우위.

[이상호] 동아일보 같은 경우는 그럼에도 계속 우리는 독재와 맞섰다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는데 심 소장님, 이 주장과 반대되는 역사적인 증거들을 찾아볼 수가 있죠?

[심용환] 있죠. 이거는 한번 방송이 됐던 적이 있는데요. 80년 8월 21일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하고 그리고 그 당시 이광표 문화공보부 장관의 면담 기록이 있습니다. 이광표 장관이 “동아일보가 새 시대와 어떤 새로운 국가에 부응하는 데 좀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달라”, 이 얘기를 하니까 김상만 회장이 “국가 안정의 바탕 위에서 발전, 융성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소신이며 우리 동아일보의 소신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광표가 누구냐 하면 언론 통폐합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면서 언론사들을 대거 숙청했었던 바로 그 작업을 했었던 바로 그 장관입니다. 그런데 약속했던 것을 동아일보는 이행을 합니다. 실제로 전두환 장군, 그 때는 전두환 장군의 리더십을 부각한 기사가 있는데 동아일보 기사를 읽어드리면 제목부터 인상적입니다.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이 제목이고요. “전 대통령을 아는 많은 사람은 그를 신념과 의지의 인물이라고 부른다. 가장 평범한 진리를 가장 철저히 지킴으로써 평범 속에 비범을 지켜왔다.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성품으로 도덕적인 엄격성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손대 본 포커 카드놀이나 고스톱 화투 놀이도 모른다는 것이다. 청렴결백의 성품은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특성이다. 사치를 모르는 물욕을 초월한 그의 성격 때문이다.”

[최욱] “물욕을 초월한” 이거는 빵 터집니다. 이거 빵 터져요. 물욕을 초월한.

[임자운] 평범 속의 비범이 되게 키 포인트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이상호]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1980년 6월 5일 김대중 기자의 르포를 실었는데 내용을 소개해드리면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트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같은 해 8월 23일자에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비리를 보고서는 잠시도 참지만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등 그의 인간적 면모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조선일보 보도도 동아일보 보도와 별반 다르지 않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강유정] 김대중 기자, 지금 우리 몇 번 언급했었던 김대중 칼럼의 그 김대중입니다. 그러니까 80년 5월에 일약 조선일보에서 되게 중심적 기자로 떠오르게 된 게 이 르포 기사인데요. 르포라는 말 자체가 기자가 직접 가서 현장을 체험하고 사실적 기록을 담는다는 게 르포르타주(reportage,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 의 일종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주 심각한 왜곡과 훼손을 가져왔죠, 사실에 대해서. <무정부 상태 광주 1주>라는 이런 왜곡 기사를 실었고 잠깐 우리 처음에 얘기했던, 만약에 오보를 수정한다거나 그리고 오류에 대해서 반성을 한다면 이 지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의도적으로 빼놨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최욱] 이거는 전두환 씨도 민망할 것 같은, 거의 저한테 훤칠한 체형, 이런 느낌이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해서 어떻게 콩고물 좀 떨어졌나 모르겠네요. 부끄럽네요, 진짜.

[심용환] 그때만 해도 사실은 동아 다음 조선이 아니라 동아, 한국, 조선이었거든요. 확 크게 되는데, 매출액으로 보더라도 80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동아일보가 265억 조선일보가 161억인데 1988년,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나서는 어떻게 되냐면 동아일보도 많이 오릅니다. 885억 원인데 조선이 914억 원까지 올라갑니다. 굉장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고요. 그리고 지금 되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는데 아닌 게 뭐냐 하면 원래는 상업 인쇄라든지 혹은 문화 사업이나 스포츠 사업 혹은 부동산 임대 사업 같은 것들에 대한 보도 역할을 하는 것들이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들이 다 살아남은 언론사에게 혜택을 주게 되는 거로 바뀌게 됐고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선생님같이 투쟁하셨던 분들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역사이지만 살아남은 사람들한테는 계속 이렇게 가면 되겠네, 이런 시기의 역사가 시작이 된다고 보시면 되고 거기서 가장 큰 혜택을 본 회사는 객관적 지표로 보더라도 조선일보였고 그렇다고 동아일보는 혜택을 안 봤다? 이거는 전혀 아니고요.

[최욱] 콩고물 정도가 아니군요.

[심용환] 그렇죠.

[임자운] 전쟁을 통해서 성장한 기업이나 전쟁의 발발이나 유지하는 데 책임 있는 기업을 우리가 전범 기업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80년 5월 광주는 당시에 광주에 계셨던 시민들,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전쟁 상황일 수 있었고 분명. 그러한 상황을 눈을 감거나 심지어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가 80년 8월이니까 80년 5월 광주 발발 직후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때 이런 기사를 씀으로 인해서 성장을 했다면 사실 조선은 전범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광주 시민들한테는. 저희가 정말 사과해야 한다는 말 많이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지워서 없앨 게 아니라 깨끗이 사과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최욱] 그런데 아직도 보면 이 논조가 어느 정도 이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게 좀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네요.

[강유정] 그러니까 이걸 아예 사실과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정파성의 문제로 위치를 이동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종편에서 그리고 보수 언론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가령 TV조선이나 채널A에서 5.18 북한군 침투설 같은 것들을 허위 조작 방송을 했거든요.

[최욱] 맞습니다.

[강유정] 뭐냐 하면 출발은 사실 정치권에서 먼저 출발을 했었죠. 정치권에서 출발을 했고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언론이 확대 재생산을 하면서 마치 이 진실 자체가 다시 이야기해봐야 할 만한 그런 정파적이고 당파적인 문제인 것처럼 프레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심용환] 이게 지금 북한군 침투설 같은 경우는 그러니까 예전에 오공 청문회 때도 밝혀진 일이지만 실제로 2006년에 국방부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다시 다 파헤쳐봤습니다. 이 북한군 침투설 보도가 2013년이면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에서 발표했던 게 약 10년 전이에요. 그러면 10년 전에 국가에서 공적인 조사를 걸쳐서 이거 유언비어였다라는 게 이미 밝혀진 이야기를 이걸 알고도 했다면 이건 기자 윤리의 문제가 있는 거고 몰랐다는 것도 심각한 것 아닌가요?

[강유정] 그래서 정정보도가 사실 더 중요해요. 왜냐하면 TV조선의 13년 5월 13일자 장성민의 시사탱크를 보자면 “내려오는 사람마다 북한에서는 다 알고 하는 것인데 북한군이 개입했다더라 라는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든가 채널A에서도 “우리 나이 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광주 폭동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 그런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근거로 삼고 있는 기사들이 바로 당시에 자신들이 80년대의 지면을 실었던 기사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 인용을 하고 있는 거죠.

[심용환] 자기 복제를 하고 있는 거네.

[강유정] 자기 복제를 하고 있고 정말로 오보에 대해 사죄를 하고 정정을 하려고 한다면, 이 5.18 문제에 대한 언론사들의 정정 보도가 정말 있어야 하는데 이게 사라지는 건 이런 식으로 악용할 개제들을 여전히 남겨놓고 있는 거죠.

[이상호] 설령 정권의 폭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펜대가 꺾였다고 하더라도 사실 휘두른 펜에 누군가는 피해를 입지 않겠습니까? 조선과 동아일보가 과거 보도에 대해서 사과해야 할 피해자가 정말 많을 것 같거든요. 김종철 위원장님 어떤 분들이 떠오르세요?

[김종철] 내가 이거를 좀 오늘 뽑아왔는데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다, 이렇게 돼 있네요. 강기훈이 대필해줬다는 식으로 제일 몰아붙인 데 앞장선 게 조선일보였죠.

[심용환] 시대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려야 할 텐데 91년이죠.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군이 경찰에 집단 구타에 의해서 사망을 하게 되니까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정권 타도도 외치게 되고요. 어버이날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이 서강대 옥상에서 투신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원인 자체는 정권의 어떤 가혹한 탄압과 억울한 죽음 때문에 시작한 건데 그와 상관없이 공안 당국에서 언론에서 자살을 부추기는 조직적 사건이다. 일종의 어떤 그런 분신 정국, 이런 식의 용어들을 막 쓰고.

[김종철] 김지하 시인이 그 당시에 망언을 해서 유명했었죠.

[심용환] 그렇죠.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하면서 굉장히 얘기가 안 좋아졌고요. 그 결과로 유서 대필 조작 혐의에 강기훈 씨가 몰리게 되고 유서대필 및 자살방조 혐의로 징역 3년을 다 사시고 만기로 출소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2015년에 무죄를 재심을 통해서 받으셨으니까 시기로 따지면 정말 너무나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게 된 거죠.

[이상호] 김기설 씨 분신 자살 다음 날이죠. 91년 5월 9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2, 3일 간격 연쇄 발생 계획 의혹>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검찰의 의혹을 전하고 있고요. 같은 날 중앙일보 <분신에 협력자 있었을까>라는 기사를 게재를 하면서 당시의 사건에 의혹이 또 증폭됐습니다. 시민사회가 그런데 특히 조선일보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강유정] 어떻게 말을 하고있냐면, “죽음의 블랙리스트가 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배후에 분명히 죽음을 조종하는 선동 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이 모든 말은 다 추측성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추측이라는 것에 대한 수사적인 표현이고요. 그리고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자살 소동에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의문점이 게재한다는 점을 강하게 느낀다라고 돼 있어요. 이 느낌을 사설에 써도 되는 겁니까? 추측성 보도를 통한 한 사람을 겨냥하는 것이 자체가 말 그대로 마녀사냥이고 악마화라는 것입니다.

[임자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취했느냐를 우리가 조금 달리 볼 필요가 있는 게 방조만 했느냐 아니면 공모했느냐. 유서대필 사건에서 조선일보의 역할은 분명히 공모자였다고 저는 보거든요. 검찰이 아무리 칼춤을 추고 법원이 돕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안되는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그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했다고 봐요.

[이상호] 강기훈 선생님의 생각을 저희가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지금 전화 연결이 돼 있다고 하는데요. 잠시 말씀을 좀 나눠보겠습니다. 강기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강기훈] 안녕하세요?

[이상호] 조선일보 보도 가운데 가장 억울하고 화났던 부분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강기훈] 예를 들면 김지하 씨의 발언이라든가 박홍 총장의 그 발언. 이런 것들을 통해서 사실은 전체 정국을 주도한 신문이 조선일보였고 나머지 신문이나 방송들은 그것을 따라가는 어떤 그런 형태였어요. 그러니까 뭐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일보는 이 사건과 같이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화나는 이유야 한 두 가지겠습니까?

[강기훈] 유서대필, 자살 방조 이런 단어들이 갖고 있는 어감은 제가 느끼기에는 살인마, 이런 정도 급의 어떤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검찰발 속보로 계속 속보 형식, 그러니까 경쟁을 하듯이 보도가 되고 있었어요. 한쪽에서 검찰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면 이 자가 범인이 틀림없다고 하면 그걸 그대로 받아내는 형식이 되었기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 이런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단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의미라든가 이런 거를 생각을 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죠.

[임자운] 당사자로서 앞으로 이 사건을 언론이 어떻게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좀 듣고 싶습니다.

[강기훈] 그런 말을 쓰고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몇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거기에 시달리게 하고 이래왔던 일들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고 생각을 하고요. 제 사건 이후로도 수많은 이런 비슷한 케이스들이 있었어요. 특히 검찰과 언론의 어떤 유착에 의한 권력의 편에 선 거죠. 그래서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조작을 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고 그러면서 권력을 유지해 왔던 그런 통한의 역사, 이런 것들이 어느 하나 청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호] 2015년 무죄 확정 판결 이후에 나왔던 조선일보 사설, 기사를 아마 보셨을 겁니다. 어떠셨어요, 당시에?

[강기훈] 자기들 책임 없는 거죠. 그리고 심지어는 그 문장이 아주 참 저를 많이 화나게 했는데 유서를 대신 썼는지 안썼는지에 대한 진실은 강기훈만 알 것이다라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지 그러니까 이 모든 사건을 조작했던 당사자거든요, 조선일보. 특히 조선일보인데 이런 말을 쓸 수 있다는, 이게 언론 맞습니까? 과거에 제 사건을 조작했던 검사들과 국립과학처 연구소 실장에 대해서 민사소송 중인데 방송 3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신문들, 당시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젠가는 이 문제로 인해서 한 번 발언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참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의문이 좀 듭니다.

[이상호] 어렵게 오늘 시간 내주시고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기훈] 감사합니다.

[강유정] 저는 강기훈 씨 인터뷰 중 서울신문과 한 18년도 2월 2일자 인터뷰가 굉장히 좀 기억에 남는데요. 왜냐하면 “얼마나 재미있어요, 연쇄된 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둥, 자살할 사람을 뽑는다는 둥, 검찰이 흘리면 언론은 사실인 양 보도해요. 보도가 나가면 또 검찰은 보도대로 수사하죠.” 그다음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너무 가슴에 남습니다. 저는 현재 언론의 형태라든가 그리고 언론과 정치 그리고 검찰의 유착 관계라는 게 끊어지지 않는 이상 새로운 강기훈 씨가 계속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이상호] 김종철 위원장께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 기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고 하는데 이지은 기자가 소개해 주신다고요?

[이지은] 김종철 위원장님께 제가 특별한 부탁을 드렸던 게 기자 시절에 혹시라도 서슬퍼런 정권 때문에 또는 데스크의 압력 때문에 쓰지 못했던 기사가 있으시다면 한 편, 지금 다시 한 번 기사로, 사건이 있다면 그걸 한 편의 기사로 써주실 수 있으신가 부탁을 드렸더니 오늘 현장에 써서 오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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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J 다시 쓰기
[김종철 /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 주권자들이 꼭 알고 싶어 하는 권력의 내막이라든지 박정희 정권이 뭘 잘못하고 있다는지 이런 건 단 한 줄도 못 쓰던 그런 때죠.

40여 년간 마음에 묻어둔 채 기사로 쓰지 못했던 그 사건

[김종철 /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 쓰지 못했던 기사를 얘기하자면 1974년 8월 15일 그 때…

육영수 여사 총격 사건, 객석에 있던 재일동포 문세광이 총을 쐈다는 당국의 발표, 그러나 풀리지 않은 의혹이 많았는데

[김종철 / 1975년 동아일보 해직 기자] 문세광이 쐈으면 이마 아니면 턱에 맞았어야 했는데 내가 현장에 가보니까 피도 이쪽(왼쪽)으로 흘러있고 데스크에 얘기했더니 뭐 기사를 쓰라는 말은커녕 그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 하는 그게 내 기억에 제일 남는 기사도 쓸 수 없고 의문도 제기하지 못했던….

J 다시 쓰기, 김종철의 취재수첩 < ‘육영수 피살사건’에 얽히고 설킨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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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조선, 동아의 지난 100년 역사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현재 두 언론사, 한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사실 이 타이틀이 그냥 얻어진 건 아닐 겁니다. 어떻게 이룬 성과라고 보십니까?

[강유정] 80년대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손해를 보고 없어진 그런 언론사도 많지만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대단한 혜택을 본 것도 사실입니다. 2007년 미디어악법을 통해서 종편까지 가져가게 됨으로써, 사실은 고사 위기에 좀 있었거든요. 이 두 언론사는 그렇게 내부적인 강화 방침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외부적 수요를 통해서 다시 생존하게 되고 더 급성장하게 되는, 정치권과의 밀월 관계를 통해서 성장을 거듭해왔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호] 최근 몇 년간 조선일보, 동아일보 사주의 공통된 발언이 있어요. 저널리즘은 놓치지 않겠다. 조선 방상훈 사장은 ‘저널리즘 퍼스트’ 그리고 동아 김재호 사장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공공연하게 공식석상에서 자주 표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선언에 비추어봤을 때 얘기하고 있는 원칙에 이번 코로나19 보도를 좀 적용을 해본다면 부합을 한다고 보십니까?

[임자운] 조선, 동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고 한다면 아무래도 정파성을 꼽을 것 같아요. 정치적인 정파적 이해관계를 너무 추구하다 보니까 사안을 가리지 않고 상황을 가리지 않고 그런다. 이제 저희가 앞서 코로나19 관련한 프로그램을 할 때 사실 정말 간절하게 얘기한 게 그거였잖아요. 이 사안만큼은 좀 다르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생명, 건강의 문제니까. 하지만 지금 조선과 동아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 상황이야말로 우리에게 원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정파성에 부합하는 이익을 챙겨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런 느낌이 좀 오거든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위험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호] 김종철 위원장께서는 종편 채널 뉴스 자주 보십니까?

[김종철] 자주 보죠. TV조선도 보고 채널A도 보고 TV조선이 제일 좀 선정적이죠. 선동적으로. 채널A는 아마 그런 점에서 TV조선을 좀 못 따라가는 거 같아요. 밋밋해요.

[최욱] 밋밋해.

[임자운] 사실은 이게 종편 채널에서 특히 정치 콘텐츠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되게 오락 콘텐츠하고 비슷하게 이렇게 약간 섞는 느낌이 있어요. 다루고 있는 주제가 굉장히 나의 삶과 밀접한 주제일 수 있는데 가령 선거제 같은 경우.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오락 콘텐츠처럼 다루고 거기에 막말을 투여하면서 비평이라는 걸 함으로써 저것들은 그냥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치 혐오가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정치 기득권들이 가장 흔하게 취하는 수법을 지금 종편 채널들이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이상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부친이죠. 방일영 전 회장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언론이 정치 권력화 되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심용환 소장님, 어떻게 보세요?

[심용환] 그러니까 이게 일화죠. 사실 일화라는 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확인하기 힘든, 그런데 이제 하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생기니까 이제 카더라가 관행처럼 붙는 말인데 무슨 말이 있었냐면 일화죠. 박정희 대통령이 방 전 회장한테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임자가 대통령이구먼, 이 정도로 사실 비공식적인, 언론 권력이 커 가는 걸 권력자들도 아마 느꼈던 것 같아요.

[임자운] 저는 정치 권력 문제가 나오면 생각나는 게 조선일보의 그 2002년 12월 19일 사설인데요. 그때 상황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그 전 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 철회를 갑자기 선언하면서 그게 깨지고 그 다음 날 바로 대선 날이 된 거죠.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급격한 상황 변화 앞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도 함께 다니면서 노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 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저는 이 사설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던 게 그때 제가 처음 대선을 하던 때였거든요. 되게 어리고 순수하고.

[심용환] 투표하시는?

[최욱] 너무 어리시네, 생각보다.

[임자운] 저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라운드에서 심판을 보거나 그거를 중계하는 척을 했지 플레이어를 대놓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본인들이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심판복을 벗어 던지고 라운드로 들어 가버린 거예요. 우리나라 선거법에는 언론이 그렇게 특정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해도 된다는 법이 아니잖아요. 그거는 위법 행위잖아요. 선거법 위반이고 그런데 그런 사설은 낸 거고 분명히 흑역사고 잘못된 것인데 거기에서조차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거예요.

[이상호] 조선·동아 100주년 맞아서 시민사회에서는 철저한 과거 반성, 족벌 언론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지은 기자, 여기에 대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측 입장은 어떤 겁니까?

[이지은] 조선일보 측은 안타깝게도 저희 방송이 편향된 방송으로 일관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답변도 해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해왔고요. 동아일보는 지금까지도 답변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호]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게 한 말씀씩 해주신다면요?

[강유정] 저는 좀 유명한 말을 패러디 하고 싶어요. 국민은 국민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이제는 언론을 도저히 맞춰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언론의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욱] 모 언론사에서 우리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없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키는 조선, 동아가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방송에게 더 이상 소재를 제공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상호] 저널리즘 토크쇼 J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방송은 KBS 1TV, myK, 웨이브,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언론 개혁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곧이어 1974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당시 격려 광고로 언론 자유 운동에 동참했던 시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시고요. 저희는 다음 주 일요일 밤 9시 40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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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에필로그 – 1974년 동아 격려광고 깨시민의 이야기

“언론 자유 시대를 열다”

1974년 탄압으로 빈칸이 된 광고 지면 시민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기범 / 광고 후원 당시 고등학생] 저희가 고등학교 2학년을 거의 다 마치고 3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는 2월 달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우리도 뭔가 작은 힘을 보태야겠다. 그래서 (동아일보 광고 후원) 모금을 시작하게 된 거죠. 혼자 했으면 못했을 거에요.

[정진우 / 광고 후원 당시 고등학생] 저희가 고등학교 2학년 때라고 생각이 들어요. 저희들 모두가 분노하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서 야 우리도 뭔가 해야한다. 같이 참여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쉽게 친구들 사이에서 이심전심으로 되었고.

[김철회 / 광고 후원 당시 5살] 아버지(아들의 이름으로 후원한 김재헌 님)가 제이름으로 후원했던 영수증을 보게 됐어요. 평소에 하시던 말씀하고 가장 맞는 유품인 것 같더라고요. 언론에 대해서 30%만 믿어라. 이런 얘기까지도 가혹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언론에 대해서 100% 믿을 수 있는 건 아닐 수 있겠다 판단을 하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4개월 동안 약 1만 건의 광고를 시민이 채웠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야기 J가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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