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포탈 보고서]② 거액 조세포탈 어떻게?…‘무자료·폭탄업체·차명 거래’

입력 2020.03.11 (07:05) 수정 2020.03.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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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냉장고 등을 수거해가는 고물상들은 폐가전에서 철이나 구리 등을 분해해 팝니다. 고물상들에게서 이 같은 고철·비철을 사서 제련공장 등에 되파는 도소매업자 양 모 씨가 있습니다. 양 씨는 고물상에게서 현금 거래로 고철을 샀습니다.

통상 물건을 살 때 제품가격의 10%인 부가가치세를 같이 내지만, 양 씨는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만을 내고 고철을 구매했습니다. 100만 원어치 물건을 사면 부가세 10만 원을 합쳐 110만 원을 내야 하지만, 부가세를 뺀 100만 원만 주고 거래를 한 겁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않는 이른바 '무자료' 거래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자료 거래는 물론 불법입니다.

'폭탄업체'끼고 허위 세금계산서 작성부가세 120억 포탈

양 씨는 이렇게 '무자료' 거래를 해놓고, 부가세를 공제받으려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거래하지도 않은 업체에서 고철을 산 것처럼 짜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국세청에 제출한 건데요. 2년간 부가세를 낸 것처럼 조작해서 받아 챙긴 금액이 126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양 씨에게 허위로 서류를 꾸며준 업체는 부가세를 내야 할 때 폐업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런 업체들을 해당 업계에선 '폭탄업체'라고 부릅니다.


1심 법원은 이 같은 포탈 행위는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훼손하고, 국가의 조세징수 작용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선고형은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278억 원, 집행유예 3년으로 실제 징역형은 피하게 됐습니다. 판결문상 '선고형의 결정'에는 양 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가담 정도가 아주 중하지는 않으며 직접 얻은 이익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돼 있습니다.

2심 법원 역시 벌금 계산 방식만 조금 바꿔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279억 원, 집행유예 3년형으로 1심과 비슷하게 선고했고, 3심 법원은 상고를 기각해 최종 형량은 2심의 집행유예형으로 확정됐습니다. 백억 원 이상을 포탈하고도 실형은 면제받은 셈입니다.

조세 포탈범 명단에 공개되는 사람들은 양 씨처럼 사기 등의 부정한 행위로 고액의 조세를 포탈해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입니다. 판결문을 보면 범행 수법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이들은 단순히 세금을 체납한 것이 아니라, 갖은 꼼수로 의도적으로 조세를 포탈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허위 세금계산서, 소득은닉, 폭탄업체…수법도 가지가지

포탈 유형을 국세청이 정리해 공개한 판결 요지를 바탕으로 분류해봤습니다. 한 가지 범죄에서 여러 수법을 같이 쓰는 사례가 상당수여서, 이 경우는 중복 집계했습니다.

가장 많은 유형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 발급해서 받은 경우였습니다. 전체 166명 가운데 41%로 10명 중 4명 이상이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다음은 '소득 은닉'으로 34.9%, 3명 중 1명 이상이 이 수법을 썼습니다. 소득, 수입, 매출을 누락하거나 축소 신고하는 등의 수법으로 세금을 포탈한 경우입니다.

또 '폭탄업체'를 이용한 경우는 전체의 1/4, '차명계좌 사용'은 1/5에 해당했습니다. 이어 '무자료 거래', '타인 명의 사업체' 설립 순이었습니다.


10명 중 6명 집행유예양형기준 어떻길래

이렇게 갖가지 부당한 수법으로 고액을 포탈했지만, 집행유예를 받은 건 양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조세를 포탈한 범인 166명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97명은 최종심에서 집행유예형을 받았습니다. 전체의 58.4%로 열 명 중 여섯 명에 달합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런 결정이 내려지는 걸까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조세범죄 양형기준을 만들어 제시하고 있는데요. 양형기준은 기본적으로 포탈세액에 따라 기본 형량이 정해지고, 추가로 가중, 감경 요소가 적용돼 형량이 조정됩니다.

포탈세액이 상대적으로 적을 경우 일반 조세포탈 기준을 따르고, 포탈세액이 연간 5억 원 이상이 되면 가중처벌이 들어간 특가법상 조세포탈기준을 적용합니다.


형법상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징역형이 3년 이하가 될 때입니다. 징역형이 3년 이하로 나와야 판사가 참작사유를 따져 사건에 따라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습니다. 징역형이 3년을 초과하면 아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습니다.

일반 조세포탈은 가중요소가 적용되어도 최대 상한 형이 2년 6개월이라 집행유예 조건인 3년 이하에 들어옵니다. 사건에 참작 사유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집행유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특가법상 조세포탈은 포탈세액이 얼마냐, 가중, 감경 요소 중 어떤 것이 반영되느냐에 따라 집행유예 조건에 해당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조세 포탈범들은 고액을 포탈한 만큼, 전체의 87%(144명)가 특가법상 조세포탈죄에 해당했는데요. 제도가 시행된 2013년 7월 이후 사건들 가운데, 양형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111명이었습니다. 가중처벌 기준이 적용된 경우가 이렇게 많은데, 집행유예 비율이 왜 이렇게 높게 나온 걸까요?

'10~200억 포탈'도 56%가 집행유예대다수가 감경 적용

집행유예 조건에 해당하는지 비교하기 위해, 판결문에 유형분류가 기재가 된 85명을 다시 추려 분석해봤습니다. 포탈세액이 5억 이상~10억 미만으로 1 유형에 속하는 경우는 31명이었는데요. 1 유형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64.5%였고, 징역형을 받은 건 35.5%이었습니다. 1 유형에선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3년 이하로 선고돼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어 포탈세액이 10억 이상~200억 미만으로 2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54명으로, 이 가운데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는 55.6%, 절반을 넘었습니다. 징역형은 44.4%이었습니다. 2 유형은 양형기준상 기본 형량이 4년~6년 사이입니다. 기본 형량이 적용된다면 적게 나와도 4년형을 받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도 절반 이상이 선고형에서 3년 이하가 나왔습니다.


그 열쇠는 감경요소에 있었습니다. 상당수가 감경요소가 적용돼 집행유예를 받은 겁니다.

특히 특가법상 조세포탈 2 유형의 경우 감경 요소를 적용하면 형량 구간이 2년 6월~5년으로 조정될 수 있는데요. 집행유예 비율이 높다는 건 3년 이하로, 기준의 하한에 가깝게 선고한 사례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2 유형의 경우 감경요소가 적용된 사람들 가운데 80.6%가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선고형의 결정' 어떤 단어 많이 나오나전력, 반성, 이익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감경, 가중요소로 작용하는 것일까요? 판결문 중 '선고형의 결정' 부분에서 어떤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들이 형량을 결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1심이 최종심이거나 최종심에서 항소, 상고가 기각되는 경우가 많고, 양형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1심에 나와, 여기서는 1심 판결문 162건을 분석 대상으로 했습니다. 다음은 분석 내용을 '워드 클라우드 방법'으로 표현한 결과입니다. 각 단어가 등장하는 판결문이 많을수록 글자가 크게 나타납니다.


모든 단어를 넣으면 '피고인', '범행' 등 어느 사건에나 자주 나오는 단어들이 상위를 차지해, 양형인자와 관련된 명사들만 한 번 더 추렸습니다. 빨간색 단어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조세포탈죄 양형인자로 지정한 요소들이고, 보라색 단어는 형법 51조에 따라 모든 범죄에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요소들입니다.

분석 결과, '전력'이라는 단어가 '처벌' 등의 표현과 함께 크게 나타납니다. 처벌 전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양형 결정의 중요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전력'이란 단어가 나온 경우만 따로 살펴보니, '전력이 없다'는 경우가 90.8%로 대부분이었고, '전력이 있다'는 경우는 9.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상당수가 전력 없음, 즉 감경요소로 반영됐다는 뜻입니다.

'반성'이라는 단어도 눈에 띄는데요. 진지한 반성이 있으면 감경요소로, 반성이 없으면 가중요소로 반영됩니다. '반성'이란 단어가 나온 경우를 보면 '반성하다'는 경우는 83.7%, '반성하지 않다'는 경우는 16.3%였습니다. '반성'이란 단어 역시 대부분 감경요소로 쓰였습니다.

또 자주 등장하는 '징수', '납부'란 표현 역시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감경요소가 되기도 가중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일정 부분이 징수되면 감경, 상당 부분 납부하면 감경됩니다. '이익'은 주로 '이득액'과 유사어로 쓰이는데, 이득액이 경미하면 감경되는 식입니다.

"재산범죄에 너그러운 문화특가법 적용돼도 집행유예 많아"

판결문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들이 함께 언급되고 있지만, 어떤 정상들이 선고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적시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철기 변호사는 "조세포탈, 재산범죄는 국가의 재정을 해치는 것으로 엄히 다룰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재산범죄에 너그러운 법률 문화가 있어 처벌 강도가 약하다"고 말합니다. 문 변호사는 "조세포탈은 특가법 적용대상이 되더라도 집행유예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을 대상으로 한 재산범죄에 비해 선고형이 가볍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판결에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이 어떻게 작용됐을까요? 선고형은 양형기준을 참고로 감경, 가중 요소를 적용해 '권고형의 범위'를 정한 뒤 결정되는데요. 선고 형량이 권고형의 어디쯤에서 내려지는지 살펴봤더니 처벌이 가벼운 게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조세범 판결의 민낯, 그 분석 결과는 이어지는 기사에서 전해드립니다.

데이터 수집·분석: 정한진,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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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포탈 보고서]② 거액 조세포탈 어떻게?…‘무자료·폭탄업체·차명 거래’
    • 입력 2020-03-11 07:05:59
    • 수정2020-03-12 16: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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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냉장고 등을 수거해가는 고물상들은 폐가전에서 철이나 구리 등을 분해해 팝니다. 고물상들에게서 이 같은 고철·비철을 사서 제련공장 등에 되파는 도소매업자 양 모 씨가 있습니다. 양 씨는 고물상에게서 현금 거래로 고철을 샀습니다. 통상 물건을 살 때 제품가격의 10%인 부가가치세를 같이 내지만, 양 씨는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만을 내고 고철을 구매했습니다. 100만 원어치 물건을 사면 부가세 10만 원을 합쳐 110만 원을 내야 하지만, 부가세를 뺀 100만 원만 주고 거래를 한 겁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않는 이른바 '무자료' 거래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자료 거래는 물론 불법입니다. '폭탄업체'끼고 허위 세금계산서 작성부가세 120억 포탈 양 씨는 이렇게 '무자료' 거래를 해놓고, 부가세를 공제받으려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거래하지도 않은 업체에서 고철을 산 것처럼 짜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국세청에 제출한 건데요. 2년간 부가세를 낸 것처럼 조작해서 받아 챙긴 금액이 126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양 씨에게 허위로 서류를 꾸며준 업체는 부가세를 내야 할 때 폐업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런 업체들을 해당 업계에선 '폭탄업체'라고 부릅니다. 1심 법원은 이 같은 포탈 행위는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훼손하고, 국가의 조세징수 작용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선고형은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278억 원, 집행유예 3년으로 실제 징역형은 피하게 됐습니다. 판결문상 '선고형의 결정'에는 양 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가담 정도가 아주 중하지는 않으며 직접 얻은 이익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돼 있습니다. 2심 법원 역시 벌금 계산 방식만 조금 바꿔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279억 원, 집행유예 3년형으로 1심과 비슷하게 선고했고, 3심 법원은 상고를 기각해 최종 형량은 2심의 집행유예형으로 확정됐습니다. 백억 원 이상을 포탈하고도 실형은 면제받은 셈입니다. 조세 포탈범 명단에 공개되는 사람들은 양 씨처럼 사기 등의 부정한 행위로 고액의 조세를 포탈해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입니다. 판결문을 보면 범행 수법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이들은 단순히 세금을 체납한 것이 아니라, 갖은 꼼수로 의도적으로 조세를 포탈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허위 세금계산서, 소득은닉, 폭탄업체…수법도 가지가지 포탈 유형을 국세청이 정리해 공개한 판결 요지를 바탕으로 분류해봤습니다. 한 가지 범죄에서 여러 수법을 같이 쓰는 사례가 상당수여서, 이 경우는 중복 집계했습니다. 가장 많은 유형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 발급해서 받은 경우였습니다. 전체 166명 가운데 41%로 10명 중 4명 이상이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다음은 '소득 은닉'으로 34.9%, 3명 중 1명 이상이 이 수법을 썼습니다. 소득, 수입, 매출을 누락하거나 축소 신고하는 등의 수법으로 세금을 포탈한 경우입니다. 또 '폭탄업체'를 이용한 경우는 전체의 1/4, '차명계좌 사용'은 1/5에 해당했습니다. 이어 '무자료 거래', '타인 명의 사업체' 설립 순이었습니다. 10명 중 6명 집행유예양형기준 어떻길래 이렇게 갖가지 부당한 수법으로 고액을 포탈했지만, 집행유예를 받은 건 양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조세를 포탈한 범인 166명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97명은 최종심에서 집행유예형을 받았습니다. 전체의 58.4%로 열 명 중 여섯 명에 달합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런 결정이 내려지는 걸까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조세범죄 양형기준을 만들어 제시하고 있는데요. 양형기준은 기본적으로 포탈세액에 따라 기본 형량이 정해지고, 추가로 가중, 감경 요소가 적용돼 형량이 조정됩니다. 포탈세액이 상대적으로 적을 경우 일반 조세포탈 기준을 따르고, 포탈세액이 연간 5억 원 이상이 되면 가중처벌이 들어간 특가법상 조세포탈기준을 적용합니다. 형법상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징역형이 3년 이하가 될 때입니다. 징역형이 3년 이하로 나와야 판사가 참작사유를 따져 사건에 따라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습니다. 징역형이 3년을 초과하면 아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습니다. 일반 조세포탈은 가중요소가 적용되어도 최대 상한 형이 2년 6개월이라 집행유예 조건인 3년 이하에 들어옵니다. 사건에 참작 사유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집행유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특가법상 조세포탈은 포탈세액이 얼마냐, 가중, 감경 요소 중 어떤 것이 반영되느냐에 따라 집행유예 조건에 해당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조세 포탈범들은 고액을 포탈한 만큼, 전체의 87%(144명)가 특가법상 조세포탈죄에 해당했는데요. 제도가 시행된 2013년 7월 이후 사건들 가운데, 양형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111명이었습니다. 가중처벌 기준이 적용된 경우가 이렇게 많은데, 집행유예 비율이 왜 이렇게 높게 나온 걸까요? '10~200억 포탈'도 56%가 집행유예대다수가 감경 적용 집행유예 조건에 해당하는지 비교하기 위해, 판결문에 유형분류가 기재가 된 85명을 다시 추려 분석해봤습니다. 포탈세액이 5억 이상~10억 미만으로 1 유형에 속하는 경우는 31명이었는데요. 1 유형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64.5%였고, 징역형을 받은 건 35.5%이었습니다. 1 유형에선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3년 이하로 선고돼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어 포탈세액이 10억 이상~200억 미만으로 2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54명으로, 이 가운데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는 55.6%, 절반을 넘었습니다. 징역형은 44.4%이었습니다. 2 유형은 양형기준상 기본 형량이 4년~6년 사이입니다. 기본 형량이 적용된다면 적게 나와도 4년형을 받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도 절반 이상이 선고형에서 3년 이하가 나왔습니다. 그 열쇠는 감경요소에 있었습니다. 상당수가 감경요소가 적용돼 집행유예를 받은 겁니다. 특히 특가법상 조세포탈 2 유형의 경우 감경 요소를 적용하면 형량 구간이 2년 6월~5년으로 조정될 수 있는데요. 집행유예 비율이 높다는 건 3년 이하로, 기준의 하한에 가깝게 선고한 사례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2 유형의 경우 감경요소가 적용된 사람들 가운데 80.6%가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선고형의 결정' 어떤 단어 많이 나오나전력, 반성, 이익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감경, 가중요소로 작용하는 것일까요? 판결문 중 '선고형의 결정' 부분에서 어떤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들이 형량을 결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1심이 최종심이거나 최종심에서 항소, 상고가 기각되는 경우가 많고, 양형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1심에 나와, 여기서는 1심 판결문 162건을 분석 대상으로 했습니다. 다음은 분석 내용을 '워드 클라우드 방법'으로 표현한 결과입니다. 각 단어가 등장하는 판결문이 많을수록 글자가 크게 나타납니다. 모든 단어를 넣으면 '피고인', '범행' 등 어느 사건에나 자주 나오는 단어들이 상위를 차지해, 양형인자와 관련된 명사들만 한 번 더 추렸습니다. 빨간색 단어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조세포탈죄 양형인자로 지정한 요소들이고, 보라색 단어는 형법 51조에 따라 모든 범죄에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요소들입니다. 분석 결과, '전력'이라는 단어가 '처벌' 등의 표현과 함께 크게 나타납니다. 처벌 전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양형 결정의 중요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전력'이란 단어가 나온 경우만 따로 살펴보니, '전력이 없다'는 경우가 90.8%로 대부분이었고, '전력이 있다'는 경우는 9.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상당수가 전력 없음, 즉 감경요소로 반영됐다는 뜻입니다. '반성'이라는 단어도 눈에 띄는데요. 진지한 반성이 있으면 감경요소로, 반성이 없으면 가중요소로 반영됩니다. '반성'이란 단어가 나온 경우를 보면 '반성하다'는 경우는 83.7%, '반성하지 않다'는 경우는 16.3%였습니다. '반성'이란 단어 역시 대부분 감경요소로 쓰였습니다. 또 자주 등장하는 '징수', '납부'란 표현 역시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감경요소가 되기도 가중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일정 부분이 징수되면 감경, 상당 부분 납부하면 감경됩니다. '이익'은 주로 '이득액'과 유사어로 쓰이는데, 이득액이 경미하면 감경되는 식입니다. "재산범죄에 너그러운 문화특가법 적용돼도 집행유예 많아" 판결문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들이 함께 언급되고 있지만, 어떤 정상들이 선고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적시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철기 변호사는 "조세포탈, 재산범죄는 국가의 재정을 해치는 것으로 엄히 다룰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재산범죄에 너그러운 법률 문화가 있어 처벌 강도가 약하다"고 말합니다. 문 변호사는 "조세포탈은 특가법 적용대상이 되더라도 집행유예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을 대상으로 한 재산범죄에 비해 선고형이 가볍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판결에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이 어떻게 작용됐을까요? 선고형은 양형기준을 참고로 감경, 가중 요소를 적용해 '권고형의 범위'를 정한 뒤 결정되는데요. 선고 형량이 권고형의 어디쯤에서 내려지는지 살펴봤더니 처벌이 가벼운 게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조세범 판결의 민낯, 그 분석 결과는 이어지는 기사에서 전해드립니다. 데이터 수집·분석: 정한진,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 연관기사 보기 [조세포탈 보고서]① 그들은 법을 두려워할까?…‘포탈세액 평균 29억, 열에 여섯은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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