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호 사고 1주일…코로나19에 한국 못 오는 베트남 가족들

입력 2020.03.11 (19:16) 수정 2020.03.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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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왔다가…."
베트남에서 3년 차 어업인으로 일해온 팜 모 씨. 한 달 내내 일해도 그의 손에 떨어지는 한 달 평균 월급은 한국 돈으로 15만 원뿐이었습니다. 팜 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 어선에서 일하기로 하고, 2018년 7월 한국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그의 나이 23살 때입니다.

팜 씨를 고용한 사업주는 "같은 일이어도 한국에서 일하면 최저임금으로 187만 원을 받아서, 베트남에서 버는 것보다 10배 이상 급여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선사들이 숙식이며 옷까지 다 제공하기 때문에 돈 쓸 일이 없다. 돈 벌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던 거다"라며 팜 씨를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팜 씨의 꿈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팜씨가 어선 화재에 이은 침몰로 일주일째 실종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4일 새벽 3시 20분쯤, 팜 씨가 승선한 29톤급 서귀포선적 307해양호가 제주 우도 남동쪽 74km 부근 해상에서 불이 나 침몰했고, 팜 씨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어선의 선장과 갑판장 등 2명은 곧바로 탈출해 구조됐지만, 팜 씨와 함께 일하던 한국인 선원 1명과 베트남 국적 선원 4명 등 6명은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난 현재(11일)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국발 여객기 등이 끊기며 썰렁해진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 [사진 출처 : 연합뉴스]코로나19 여파로 한국발 여객기 등이 끊기며 썰렁해진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국 못 오는 가족…원망스런 '코로나19'
베트남 선원들이 실종된 지 꼬박 1주일이 흘렀지만,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은 여전히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코로나19로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직항 항공편 노선이 모두 끊겼다. 베트남 가족들의 입국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제주도는 당초 제3국을 통한 우회 입국도 고려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주도는 "베트남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을 다녀온 자국민에 대해 2주간 격리한다. 사실상 한국 여행을 금지하고 있어 제3국을 통한 입국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베트남 가족들은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베트남 선원 고용 업체는 "가족들은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시신도 찾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데, 사고 해역에라도 가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도는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는 대로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겠다는 입장입니다.

제주도는 "가족들이 추후에라도 한국에 방문할 것을 대비해 실종 선원들의 유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 가족들이 오는 대로 유품을 돌려주고, 가족들이 원하면 사고 해역에 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장에라도 사고 해역이라도 찾아 자식들의 넋이라도 달래야 할 때, 베트남 선원 가족들에게 코로나19 사태는 가혹하기만 합니다.

불에 타고 있는 307해양호. [사진 출처 : 제주지방해양경찰청]불에 타고 있는 307해양호. [사진 출처 :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수중수색마저 종료…실종 선원 수색 난항
실종 선원 수색이 한창이던 지난 9일.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은 해양호 실종 선원에 대한 '수중수색'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사고 발생 엿새만이자, 수중수색을 시작한 지 나흘만의 결정이었습니다.

해경은 해군 청해진함의 수중무인탐사기(ROV)를 더는 사고해역에 투입하지 않는 대신, 해경 대형함정 1척이 해상수색을 이어가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혹여 바닷속에 가라앉은 실종 선원들에 대한 수색을 끝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지난해 11월, 제주 차귀도 해상에서 발생한 '대성호 화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통영선적 대성호 사고 당시 해경은 수중수색을 훨씬 더 길게 진행했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해군 청해진함의 수중무인탐사기 투입에 노력했고, 그 결과 사고 발생 보름 뒤인 지난해 12월 8일 극적으로 대성호 베트남 국적 실종 선원 시신 2구를 발견했습니다. 시신 발견 이후로도 여섯 차례에 달하는 추가 수중수색을 펼쳤습니다.

이렇듯 같은 선박 화재 사고를 두고 수중수색의 정도가 다른 이유는 뭘까?

해경은 "침몰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해경은 "대성호는 침몰 당시 둘로 쪼개져 사람이 선체 밖으로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침몰한 선체 주변에서 시신 2구도 발견됐다. 그래서 이때는 추가로 수중수색에 들어갈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해양호는 (쪼개지지 않고) 통째로 침몰했고 선실로 진입하는 입구가 화재때 녹아 들면서 더 작아진 상태다.. 선체 인양 전 수중수색으로는 시신이 발견될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고 설명했습니다.

서귀포 수협에 꾸려진 사고수습대책본부.서귀포 수협에 꾸려진 사고수습대책본부.

"선체 안에 시신 있어도, 인양 어려워"
선체 밖으로 시신이 유실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은 곧, 선체 안에 실종 선원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해양호의 선장과 갑판장은 "기관실 아래쪽 선실에서 실종 선원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고 진술했고, 이에 근거해 해경도 "실종자들이 침몰한 배 안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침몰한 어선을 인양하면 실종 선원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해양호 인양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주와 해경 누구도 선체 인양에 뜻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몰 선박에 대한 인양 권한은 기본적으로 배를 소유한 선주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수상구조법에 따라 해경은 수난 구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민간업체를 대상으로 선체 인양을 지시 할 수 있습니다. 해양호 선주가 인양의 뜻을 밝히지 않아도 해경이 민간업체에 인양 지시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해경은 '수난 구호 종사 명령'을 내릴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해경은 "수난 구호 종사 명령은 생존 가능성이 매우 크고, 빨리 사람을 구해야 할 때 내려진다. 하지만 이번 해양호 사고는 그렇지 않다. 선체도 수심 140m로 너무 깊게 가라앉았고, 골든타임도 지나 실종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 선원 가족들이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건 지난 10일. 제주도는 "대사관 등을 통해 '수중수색이 종료됐고, 선박 인양도 어렵다는 소식'을 베트남 선원 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해경은 "(이러한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있진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수색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들었다"고 베트남 선원 가족들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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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호 사고 1주일…코로나19에 한국 못 오는 베트남 가족들
    • 입력 2020-03-11 19:16:11
    • 수정2020-03-11 19:16:29
    취재K
"돈 벌려고 왔다가…."
베트남에서 3년 차 어업인으로 일해온 팜 모 씨. 한 달 내내 일해도 그의 손에 떨어지는 한 달 평균 월급은 한국 돈으로 15만 원뿐이었습니다. 팜 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 어선에서 일하기로 하고, 2018년 7월 한국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그의 나이 23살 때입니다.

팜 씨를 고용한 사업주는 "같은 일이어도 한국에서 일하면 최저임금으로 187만 원을 받아서, 베트남에서 버는 것보다 10배 이상 급여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선사들이 숙식이며 옷까지 다 제공하기 때문에 돈 쓸 일이 없다. 돈 벌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던 거다"라며 팜 씨를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팜 씨의 꿈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팜씨가 어선 화재에 이은 침몰로 일주일째 실종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4일 새벽 3시 20분쯤, 팜 씨가 승선한 29톤급 서귀포선적 307해양호가 제주 우도 남동쪽 74km 부근 해상에서 불이 나 침몰했고, 팜 씨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어선의 선장과 갑판장 등 2명은 곧바로 탈출해 구조됐지만, 팜 씨와 함께 일하던 한국인 선원 1명과 베트남 국적 선원 4명 등 6명은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난 현재(11일)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국발 여객기 등이 끊기며 썰렁해진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국 못 오는 가족…원망스런 '코로나19'
베트남 선원들이 실종된 지 꼬박 1주일이 흘렀지만,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은 여전히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코로나19로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직항 항공편 노선이 모두 끊겼다. 베트남 가족들의 입국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제주도는 당초 제3국을 통한 우회 입국도 고려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주도는 "베트남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을 다녀온 자국민에 대해 2주간 격리한다. 사실상 한국 여행을 금지하고 있어 제3국을 통한 입국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베트남 가족들은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베트남 선원 고용 업체는 "가족들은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시신도 찾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데, 사고 해역에라도 가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도는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는 대로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겠다는 입장입니다.

제주도는 "가족들이 추후에라도 한국에 방문할 것을 대비해 실종 선원들의 유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 가족들이 오는 대로 유품을 돌려주고, 가족들이 원하면 사고 해역에 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장에라도 사고 해역이라도 찾아 자식들의 넋이라도 달래야 할 때, 베트남 선원 가족들에게 코로나19 사태는 가혹하기만 합니다.

불에 타고 있는 307해양호. [사진 출처 :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수중수색마저 종료…실종 선원 수색 난항
실종 선원 수색이 한창이던 지난 9일.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은 해양호 실종 선원에 대한 '수중수색'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사고 발생 엿새만이자, 수중수색을 시작한 지 나흘만의 결정이었습니다.

해경은 해군 청해진함의 수중무인탐사기(ROV)를 더는 사고해역에 투입하지 않는 대신, 해경 대형함정 1척이 해상수색을 이어가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혹여 바닷속에 가라앉은 실종 선원들에 대한 수색을 끝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지난해 11월, 제주 차귀도 해상에서 발생한 '대성호 화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통영선적 대성호 사고 당시 해경은 수중수색을 훨씬 더 길게 진행했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해군 청해진함의 수중무인탐사기 투입에 노력했고, 그 결과 사고 발생 보름 뒤인 지난해 12월 8일 극적으로 대성호 베트남 국적 실종 선원 시신 2구를 발견했습니다. 시신 발견 이후로도 여섯 차례에 달하는 추가 수중수색을 펼쳤습니다.

이렇듯 같은 선박 화재 사고를 두고 수중수색의 정도가 다른 이유는 뭘까?

해경은 "침몰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해경은 "대성호는 침몰 당시 둘로 쪼개져 사람이 선체 밖으로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침몰한 선체 주변에서 시신 2구도 발견됐다. 그래서 이때는 추가로 수중수색에 들어갈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해양호는 (쪼개지지 않고) 통째로 침몰했고 선실로 진입하는 입구가 화재때 녹아 들면서 더 작아진 상태다.. 선체 인양 전 수중수색으로는 시신이 발견될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고 설명했습니다.

서귀포 수협에 꾸려진 사고수습대책본부.
"선체 안에 시신 있어도, 인양 어려워"
선체 밖으로 시신이 유실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은 곧, 선체 안에 실종 선원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해양호의 선장과 갑판장은 "기관실 아래쪽 선실에서 실종 선원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고 진술했고, 이에 근거해 해경도 "실종자들이 침몰한 배 안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침몰한 어선을 인양하면 실종 선원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해양호 인양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주와 해경 누구도 선체 인양에 뜻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몰 선박에 대한 인양 권한은 기본적으로 배를 소유한 선주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수상구조법에 따라 해경은 수난 구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민간업체를 대상으로 선체 인양을 지시 할 수 있습니다. 해양호 선주가 인양의 뜻을 밝히지 않아도 해경이 민간업체에 인양 지시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해경은 '수난 구호 종사 명령'을 내릴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해경은 "수난 구호 종사 명령은 생존 가능성이 매우 크고, 빨리 사람을 구해야 할 때 내려진다. 하지만 이번 해양호 사고는 그렇지 않다. 선체도 수심 140m로 너무 깊게 가라앉았고, 골든타임도 지나 실종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 선원 가족들이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건 지난 10일. 제주도는 "대사관 등을 통해 '수중수색이 종료됐고, 선박 인양도 어렵다는 소식'을 베트남 선원 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해경은 "(이러한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있진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수색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들었다"고 베트남 선원 가족들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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