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신중동정책]② 새로운 중동평화구상 :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다?”

입력 2020.03.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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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팔레스타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담은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습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사위 제러드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임명해 ‘중동평화임무’를 맡겼습니다. 백악관은 올해 1월 28일 큐슈너가 중동지역전문가들과 함께 3년간 연구해 완성한 “번영으로 가는 평화”라는 제목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정책은 말 그대로 평화를 통해 번영까지 일궈낼 수 있을까요? 미국의 새로운 중동평화정책의 내용과 이스라엘의 정치 혼란, 그리고 팔레스타인 평화 정착 문제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를 3차례 연재합니다.

① 이스라엘 '코로나 총선' : 네타냐후,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다?
② 새로운 중동평화구상: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다?"
③ 팔레스타인 해법: 2국가 해법 VS 1국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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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으로 가는 평화(Peace to Prosperity)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8일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발표장 무대의 전면에 내세워 ‘중동 평화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백악관에서 3년을 공들여 마련했다는 새로운 중동평화구상.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중동평화구상의 요약보고서는 제목이 <번영으로 가는 평화: Peace to Prosperity>라고 달려 있습니다.

부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삶을 향상시키는 비전: A Vision to Improve the Lives of the Palestinian and Israeli People’. (※출처: https://www.whitehouse.gov/peacetoprosperity). 181페이지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봐도 “획기적이다”, “창의적이다”, “바로 이거야!”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은 없습니다.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이 글자 그대로 현실화된다면 이스라엘은 웃고 팔레스타인은 울 것입니다. 이스라엘 보수파의 미래 국가 구상을 담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 측에 치우친 구상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 즉 영토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동서 예루살렘 전체의 관할권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바라던 대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겠다는 정책 구상입니다. 팔레스타인에게는 무엇을 줄까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구체적인 조건을 협상하는 앞으로 4년 동안 새로운 정착촌을 짓지 않도록 확장을 금지한다는 것. 또, 이스라엘에 넘겨주는 정착촌 면적보다 더 큰 땅을 남쪽 사막에서 가져가 영토로 삼아 개발하라는 조건.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짓밟는 구상입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들어선 요르단강 서안 지역은 본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이 구상대로라면 팔레스타인 땅주인들은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땅을 영원히 되찾지 못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의 대가로 미국은 “독립국가 건설을 보장하겠다”라고 확약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보장한다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중동평화구상 보고서의 2장 8페이지, ‘영토, 민족자결, 주권의 문제(Question of Territory, Self-Determination, and Sovereignty)’라는 문단을 보면,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주권이 상대 국가와의 협정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아야 한다.’ 조건도 붙어 있습니다.

국가는 만들되, 군대와 무기는 갖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트럼ㅍ 대통령은 이번 평화구상이 양측이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상생(win-win)"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이번 구상을 ”100년만에 나온 중재안(deal of the century)"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조건은 앞으로 4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협상을 통해 합의하라고 하니까 더 지켜보겠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은 현실인정→ 조건 협상→ 합의안 마련→ 공동 번영, 4단계로 완성됩니다. 미국이 중동평화구상에서 제안한 양측의 조건을 보면, 평화와 영토를 교환한 과거 평화 협상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주고받을지 미국이 협상에 앞서 자세히 정해놓았다는 것. 그것도 이스라엘이 바라는 방향으로. 그래서 시작부터 평화구상안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주는 건가요? 이스라엘이 얻을 것은 확실합니다.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후 50년 넘게 공들인 요르단강 서안의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중동평화구상안에서 현대사의 우여곡절을 겪고 요르단강 서안에 들어선 정착촌을 강제로 퇴거시킬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자고 제안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하도록 관할권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단, 앞으로 4년간 양측이 평화협상을 벌이는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정착촌을 짓지 못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불법으로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을 왜 이제야 인정해야 하는지 국제법적 근거와 맥락은 적시하지 않고 “평화는 주민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지 않아야 합니다(Peace should not demand uproot of people of Homes – Arab and Jew – from homes)”라고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의 입장에 선 평화구상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이 땅을 포기해야 실현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상대적으로 큰 희생을 강요받는 팔레스타인은 무엇을 얻을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심 쓰듯이 “팔레스타인이 꿈에 그리던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포기함에 따라 줄어드는 영토는 이스라엘 관할의 네게브 사막 남쪽 땅을 넘겨받아 메꾸라는 내용의 땅의 맞교환 제안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경선이 그려진 팔레스타인의 지도를 보면, 영토가 여기저기 조각조각 떨어져 있습니다. 조각난 주요 지역과 거점은 터널과 교량, 다리로 이어서 붙여보면 누더기 헝겊처럼 보입니다. 수도는 동예루살렘 일부지역, 영토는 ‘점’의 형태로 파고든 정착촌을 제외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 가자 지구, 그리고 정착촌과 맞교환한 네게브 사막 일부를 합친 땅이 ‘독립국가’ 팔레스타인입니다. 생김새만 봐도 온전한 국가로 보이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미국도 거부와 반발을 의식해 500억 달러(한화 약 59조 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당근을 제시했습니다. 서독을 부흥시킨 마샬플랜을 벤치마킹한 듯합니다. 이른바 트럼프 경제 계획(Trump Economic Plan)을 자세히 보면, 국가 건립에 쓰일 종잣돈은 ①시장경제기반 조성(Economy), ②인적 자본 개발(People), ③정부 구성(Government) 등 세 분야에 집중 투자됩니다.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프로젝트에 향후 10년간 500억 달러가 투자된다는 트럼프 경제 계획은 자금 조달 주체와 방법에 대해 막연한 한 문장만 쓰여 있습니다. “자본은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모금할 것이고 기존의 다국적 국제금융기관이 새로 조성할 기금과 통합될 것입니다”. 이 문장만 읽어봐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조달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또한 팔레스타인이 정착촌 인정으로 부족한 땅만큼 이스라엘 관할의 네게브 사막 일부를 떼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땅을 맞교환해 얻은 사막에 산업단지와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면 거기서 생산한 상품을 수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출입과 교통, 해외 투자를 위해 가자 지구에 무역항을 새로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항구가 완공되기 전까지 이스라엘 항구, 하이파와 아쉬도드를 자유롭게 쓰라고 제안합니다.

역사적인 중동평화협정과 비교하면?

이스라엘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을 치르고 국가전략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과거 재래식 무기로 싸운 1,2,3차 중동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현대 전쟁에서 엄청난 전비와 희생을 치른 결과,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4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주변국들과 관계 정상화에 나섭니다. 불가침을 보장하는 평화조약을 맺고 국교를 수립하는 길을 찾습니다. 그 결과 역사적인 평화조약 2건을 맺게 됩니다.

첫번째 평화협정이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입니다. 당시 카터 미국 대통령은 1978년 9월 17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대통령 별장인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평화 교섭을 타결짓도록 중재했습니다. 이때 두 나라대표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합의안에 서명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평화 협정은 이스라엘 측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고 옛날부터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가 맺은 최초의 평화 협정입니다.

사상 첫 평화협정을 체결한 덕분에 1978년 말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9년 3월 26일 마침내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평화조약에 따라 이스라엘은 1982년 시나이 반도 점령지를 이집트에 돌려줬습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타결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타결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와 맺은 두 번째 중동평화협정이 오슬로 협정입니다. 미국, 소련, 이스라엘, 아랍 국가들은 1991년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때 팔레스타인 분쟁의 두 당사국 대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에 마주 앉아 직접 대화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아라파트 의장은 극비 회동을 통해 평화협정을 마련해 1993년 9월 13일 중동평화 초석이 되는 오슬로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와 이스라엘 존재를 인정한 '팔레스타인 자치 협정 선언'이 핵심입니다. 주요 내용은 팔레스타인 자치와 선거, 과도기 협정, 이스라엘군의 재배치와 철수, 유대인 정착촌, 난민 문제 해결 등을 담고 있습니다.

오슬로 합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와 이스라엘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협정을 바탕으로 1994년 7월 팔레스타인은 아라파트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 자치정부를 수립했다고 선언했습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

오슬로 협정은 1995년 9월 2차 협정으로 완성됩니다. 그 유명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라는 원칙을 기초로 평화 정착의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의 자치 국가를 설립하도록 지원한다, 그 대가로 ▶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국가 존립을 보장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슬로 협정을 성립시킨 아라파트 수반과 라빈 총리도 199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오슬로 협정 체결의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자치구역은 점차 늘어납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늘어난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을 표시하면 아래 지도와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평화구상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극우파가 이 협정에 반발하면서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5년 11월 암살됐습니다. 뒤이어 집권한 우파연합의 젊은 지도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하면서 오슬로 협정은 지금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영역 확대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영역 확대

트럼프는 다 계획이 있었다?

중동평화구상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착촌 고수 정책을 현실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 정계에서는 백악관 발표가 ‘네타냐후 구하기 이벤트’가 아니냐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진보 언론인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정착촌을 사실상 영토로 인정하는 내용의 중동평화구상을 1월말 발표한 것은 다가오는 3월 2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외교 쇼’를 벌인 것 아닌가라고 의심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지난 2월 6일 게재한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모두 정치이다. 정책은 없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의 2020년 외교정책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국내정치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특별한 기념일도 없고 아랍세계와 외교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1월 28일 갑자기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한 것은 상원 탄핵 표결을 앞두고 미국 국내 정치에서 자신의 입지를 튼튼하게 다지는 정치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동시에 이스라엘에도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다가오는 3월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확실히 밀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 네타냐후 총리가 어렵게 승리했지만 절반의 승리에 그쳤습니다. 의회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총리직을 지킬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 시리즈③으로 이어집니다.
<팔레스타인 해법: 2국가 해법 vs 1국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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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신중동정책]② 새로운 중동평화구상 :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다?”
    • 입력 2020-03-14 12:06:02
    취재K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팔레스타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담은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습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사위 제러드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임명해 ‘중동평화임무’를 맡겼습니다. 백악관은 올해 1월 28일 큐슈너가 중동지역전문가들과 함께 3년간 연구해 완성한 “번영으로 가는 평화”라는 제목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정책은 말 그대로 평화를 통해 번영까지 일궈낼 수 있을까요? 미국의 새로운 중동평화정책의 내용과 이스라엘의 정치 혼란, 그리고 팔레스타인 평화 정착 문제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를 3차례 연재합니다.

① 이스라엘 '코로나 총선' : 네타냐후,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다?
② 새로운 중동평화구상: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다?"
③ 팔레스타인 해법: 2국가 해법 VS 1국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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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으로 가는 평화(Peace to Prosperity)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8일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발표장 무대의 전면에 내세워 ‘중동 평화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백악관에서 3년을 공들여 마련했다는 새로운 중동평화구상.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중동평화구상의 요약보고서는 제목이 <번영으로 가는 평화: Peace to Prosperity>라고 달려 있습니다.

부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삶을 향상시키는 비전: A Vision to Improve the Lives of the Palestinian and Israeli People’. (※출처: https://www.whitehouse.gov/peacetoprosperity). 181페이지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봐도 “획기적이다”, “창의적이다”, “바로 이거야!”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은 없습니다.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이 글자 그대로 현실화된다면 이스라엘은 웃고 팔레스타인은 울 것입니다. 이스라엘 보수파의 미래 국가 구상을 담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 측에 치우친 구상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 즉 영토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동서 예루살렘 전체의 관할권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바라던 대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겠다는 정책 구상입니다. 팔레스타인에게는 무엇을 줄까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구체적인 조건을 협상하는 앞으로 4년 동안 새로운 정착촌을 짓지 않도록 확장을 금지한다는 것. 또, 이스라엘에 넘겨주는 정착촌 면적보다 더 큰 땅을 남쪽 사막에서 가져가 영토로 삼아 개발하라는 조건.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짓밟는 구상입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들어선 요르단강 서안 지역은 본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이 구상대로라면 팔레스타인 땅주인들은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땅을 영원히 되찾지 못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의 대가로 미국은 “독립국가 건설을 보장하겠다”라고 확약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보장한다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중동평화구상 보고서의 2장 8페이지, ‘영토, 민족자결, 주권의 문제(Question of Territory, Self-Determination, and Sovereignty)’라는 문단을 보면,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주권이 상대 국가와의 협정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아야 한다.’ 조건도 붙어 있습니다.

국가는 만들되, 군대와 무기는 갖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트럼ㅍ 대통령은 이번 평화구상이 양측이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상생(win-win)"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이번 구상을 ”100년만에 나온 중재안(deal of the century)"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조건은 앞으로 4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협상을 통해 합의하라고 하니까 더 지켜보겠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은 현실인정→ 조건 협상→ 합의안 마련→ 공동 번영, 4단계로 완성됩니다. 미국이 중동평화구상에서 제안한 양측의 조건을 보면, 평화와 영토를 교환한 과거 평화 협상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주고받을지 미국이 협상에 앞서 자세히 정해놓았다는 것. 그것도 이스라엘이 바라는 방향으로. 그래서 시작부터 평화구상안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주는 건가요? 이스라엘이 얻을 것은 확실합니다.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후 50년 넘게 공들인 요르단강 서안의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공식적으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중동평화구상안에서 현대사의 우여곡절을 겪고 요르단강 서안에 들어선 정착촌을 강제로 퇴거시킬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자고 제안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하도록 관할권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단, 앞으로 4년간 양측이 평화협상을 벌이는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정착촌을 짓지 못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불법으로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을 왜 이제야 인정해야 하는지 국제법적 근거와 맥락은 적시하지 않고 “평화는 주민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지 않아야 합니다(Peace should not demand uproot of people of Homes – Arab and Jew – from homes)”라고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의 입장에 선 평화구상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이 땅을 포기해야 실현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상대적으로 큰 희생을 강요받는 팔레스타인은 무엇을 얻을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심 쓰듯이 “팔레스타인이 꿈에 그리던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포기함에 따라 줄어드는 영토는 이스라엘 관할의 네게브 사막 남쪽 땅을 넘겨받아 메꾸라는 내용의 땅의 맞교환 제안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경선이 그려진 팔레스타인의 지도를 보면, 영토가 여기저기 조각조각 떨어져 있습니다. 조각난 주요 지역과 거점은 터널과 교량, 다리로 이어서 붙여보면 누더기 헝겊처럼 보입니다. 수도는 동예루살렘 일부지역, 영토는 ‘점’의 형태로 파고든 정착촌을 제외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 가자 지구, 그리고 정착촌과 맞교환한 네게브 사막 일부를 합친 땅이 ‘독립국가’ 팔레스타인입니다. 생김새만 봐도 온전한 국가로 보이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미국도 거부와 반발을 의식해 500억 달러(한화 약 59조 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당근을 제시했습니다. 서독을 부흥시킨 마샬플랜을 벤치마킹한 듯합니다. 이른바 트럼프 경제 계획(Trump Economic Plan)을 자세히 보면, 국가 건립에 쓰일 종잣돈은 ①시장경제기반 조성(Economy), ②인적 자본 개발(People), ③정부 구성(Government) 등 세 분야에 집중 투자됩니다.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프로젝트에 향후 10년간 500억 달러가 투자된다는 트럼프 경제 계획은 자금 조달 주체와 방법에 대해 막연한 한 문장만 쓰여 있습니다. “자본은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모금할 것이고 기존의 다국적 국제금융기관이 새로 조성할 기금과 통합될 것입니다”. 이 문장만 읽어봐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조달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또한 팔레스타인이 정착촌 인정으로 부족한 땅만큼 이스라엘 관할의 네게브 사막 일부를 떼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땅을 맞교환해 얻은 사막에 산업단지와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면 거기서 생산한 상품을 수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출입과 교통, 해외 투자를 위해 가자 지구에 무역항을 새로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항구가 완공되기 전까지 이스라엘 항구, 하이파와 아쉬도드를 자유롭게 쓰라고 제안합니다.

역사적인 중동평화협정과 비교하면?

이스라엘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을 치르고 국가전략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과거 재래식 무기로 싸운 1,2,3차 중동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현대 전쟁에서 엄청난 전비와 희생을 치른 결과,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4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주변국들과 관계 정상화에 나섭니다. 불가침을 보장하는 평화조약을 맺고 국교를 수립하는 길을 찾습니다. 그 결과 역사적인 평화조약 2건을 맺게 됩니다.

첫번째 평화협정이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입니다. 당시 카터 미국 대통령은 1978년 9월 17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대통령 별장인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평화 교섭을 타결짓도록 중재했습니다. 이때 두 나라대표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합의안에 서명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평화 협정은 이스라엘 측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고 옛날부터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가 맺은 최초의 평화 협정입니다.

사상 첫 평화협정을 체결한 덕분에 1978년 말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9년 3월 26일 마침내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평화조약에 따라 이스라엘은 1982년 시나이 반도 점령지를 이집트에 돌려줬습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타결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와 맺은 두 번째 중동평화협정이 오슬로 협정입니다. 미국, 소련, 이스라엘, 아랍 국가들은 1991년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때 팔레스타인 분쟁의 두 당사국 대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에 마주 앉아 직접 대화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아라파트 의장은 극비 회동을 통해 평화협정을 마련해 1993년 9월 13일 중동평화 초석이 되는 오슬로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와 이스라엘 존재를 인정한 '팔레스타인 자치 협정 선언'이 핵심입니다. 주요 내용은 팔레스타인 자치와 선거, 과도기 협정, 이스라엘군의 재배치와 철수, 유대인 정착촌, 난민 문제 해결 등을 담고 있습니다.

오슬로 합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와 이스라엘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협정을 바탕으로 1994년 7월 팔레스타인은 아라파트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 자치정부를 수립했다고 선언했습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
오슬로 협정은 1995년 9월 2차 협정으로 완성됩니다. 그 유명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라는 원칙을 기초로 평화 정착의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의 자치 국가를 설립하도록 지원한다, 그 대가로 ▶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국가 존립을 보장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슬로 협정을 성립시킨 아라파트 수반과 라빈 총리도 199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오슬로 협정 체결의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자치구역은 점차 늘어납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늘어난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을 표시하면 아래 지도와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평화구상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극우파가 이 협정에 반발하면서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5년 11월 암살됐습니다. 뒤이어 집권한 우파연합의 젊은 지도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하면서 오슬로 협정은 지금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영역 확대
트럼프는 다 계획이 있었다?

중동평화구상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착촌 고수 정책을 현실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 정계에서는 백악관 발표가 ‘네타냐후 구하기 이벤트’가 아니냐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진보 언론인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정착촌을 사실상 영토로 인정하는 내용의 중동평화구상을 1월말 발표한 것은 다가오는 3월 2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외교 쇼’를 벌인 것 아닌가라고 의심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지난 2월 6일 게재한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모두 정치이다. 정책은 없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의 2020년 외교정책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국내정치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특별한 기념일도 없고 아랍세계와 외교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1월 28일 갑자기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한 것은 상원 탄핵 표결을 앞두고 미국 국내 정치에서 자신의 입지를 튼튼하게 다지는 정치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동시에 이스라엘에도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다가오는 3월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확실히 밀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 네타냐후 총리가 어렵게 승리했지만 절반의 승리에 그쳤습니다. 의회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총리직을 지킬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 시리즈③으로 이어집니다.
<팔레스타인 해법: 2국가 해법 vs 1국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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