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보험사기 ‘기소유예’ 환자들, 고의 없어…검찰 처분 취소하라”

입력 2020.03.15 (09:01) 수정 2020.03.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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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를 과다 청구했다며 검찰에서 '보험사기'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들이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며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기소유예 처분이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나이·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재판에 넘길 필요가 없다 판단되는 경우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미루는 처분을 말합니다.

헌법재판소는 검찰이 강모씨 등 9명에게 내린 기소유예처분이 이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서 강모씨 등은 각각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사이에 보험사와 의료비를 지급해주는 보험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에 따르면 통원의료비는 20만 원을 한도로 보상해주는 반면, 입원의료비는 비용의 90%에 해당하는 금액을 5천만 원 한도에서 보상해줘 비용이 많이 들어갈수록 '입원의료비'로 처리하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부산의 한 안과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이 병원은 청구인들이 통원하며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초음파 검사 등을 받았음에도 진료기록에는 입원치료 시점에서 검사를 받은 것처럼 기재했습니다. 강씨 등은 진료기록을 토대로 위 보험회사에 보험금지급을 청구했고 보험금을 지급받았습니다.

검찰은 강씨 등을 수사해 보험사기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하고, 병원 의사에 대해선 의료법위반(진료기록 허위 기재)과 허위 진료기록에 기한 보험금 편취 사기방조죄로 벌금형을 청구했습니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강씨 등은 "진료기록 기재에 관여한 사실이 없고 더 많은 보험금을 받아내려는 고의도 없어 보험사기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주장하며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관련자들의 진술과 관련 정황에 비춰 보험금을 받은 청구인들의 사기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단 것이었습니다.

헌재는 "실제의 검사시기와 다른 진료기록 기재는 허위인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기재가 허위라 하 더라도 청구인들의 사기 혐의가 인정되려면 청구인들에게 위와 같은 허위 기재를 이용하여 보험사 직원을 착오에 빠뜨리고 이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려는 의사, 즉 사기의 고의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그 고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헌재는 "우선 청구인들은 진료기록의 검사 실시 시기를 입원치료시로 기재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거나 그와 같은 기재를 이용하여 더 많은 보험금을 받으려 했다고 진술한 바가 없고, 병원 의사들 또한 문제된 진료기록 기재와 청구인들의 보험금 수령은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헌재는 이어 "청구인들이 진료기록 기재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고, 의사가 아닌 청구인들로서는 위와 같은 방식의 진료기록 기재가 허위로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청구인들이 최소 3년 이상 보험계약을 유지하여 오면서 부정한 수단으로 보험금을 받아내려 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은 사정을 종합하면 사기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헌재는 "검찰은 청구인들에게 사기의 고의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함에도 이들의 사기 혐의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했다"며 "처분에 자의적인 증거판단, 수사미진,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고,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면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진료기록에 문제가 있어 이에 기한 보험금 수령이 사기로 의심받는 경우, 그 보험금 수령자들이 문제 있는 진료기록에 의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인지, 수령자들이 진료기록 기재 행위에 관여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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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5 09:01:54
    • 수정2020-03-15 09:15:50
    사회
병원비를 과다 청구했다며 검찰에서 '보험사기'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들이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며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기소유예 처분이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나이·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재판에 넘길 필요가 없다 판단되는 경우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미루는 처분을 말합니다.

헌법재판소는 검찰이 강모씨 등 9명에게 내린 기소유예처분이 이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서 강모씨 등은 각각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사이에 보험사와 의료비를 지급해주는 보험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에 따르면 통원의료비는 20만 원을 한도로 보상해주는 반면, 입원의료비는 비용의 90%에 해당하는 금액을 5천만 원 한도에서 보상해줘 비용이 많이 들어갈수록 '입원의료비'로 처리하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부산의 한 안과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이 병원은 청구인들이 통원하며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초음파 검사 등을 받았음에도 진료기록에는 입원치료 시점에서 검사를 받은 것처럼 기재했습니다. 강씨 등은 진료기록을 토대로 위 보험회사에 보험금지급을 청구했고 보험금을 지급받았습니다.

검찰은 강씨 등을 수사해 보험사기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하고, 병원 의사에 대해선 의료법위반(진료기록 허위 기재)과 허위 진료기록에 기한 보험금 편취 사기방조죄로 벌금형을 청구했습니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강씨 등은 "진료기록 기재에 관여한 사실이 없고 더 많은 보험금을 받아내려는 고의도 없어 보험사기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주장하며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관련자들의 진술과 관련 정황에 비춰 보험금을 받은 청구인들의 사기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단 것이었습니다.

헌재는 "실제의 검사시기와 다른 진료기록 기재는 허위인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기재가 허위라 하 더라도 청구인들의 사기 혐의가 인정되려면 청구인들에게 위와 같은 허위 기재를 이용하여 보험사 직원을 착오에 빠뜨리고 이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려는 의사, 즉 사기의 고의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그 고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헌재는 "우선 청구인들은 진료기록의 검사 실시 시기를 입원치료시로 기재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거나 그와 같은 기재를 이용하여 더 많은 보험금을 받으려 했다고 진술한 바가 없고, 병원 의사들 또한 문제된 진료기록 기재와 청구인들의 보험금 수령은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헌재는 이어 "청구인들이 진료기록 기재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고, 의사가 아닌 청구인들로서는 위와 같은 방식의 진료기록 기재가 허위로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청구인들이 최소 3년 이상 보험계약을 유지하여 오면서 부정한 수단으로 보험금을 받아내려 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은 사정을 종합하면 사기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헌재는 "검찰은 청구인들에게 사기의 고의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함에도 이들의 사기 혐의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했다"며 "처분에 자의적인 증거판단, 수사미진,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고,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면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진료기록에 문제가 있어 이에 기한 보험금 수령이 사기로 의심받는 경우, 그 보험금 수령자들이 문제 있는 진료기록에 의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인지, 수령자들이 진료기록 기재 행위에 관여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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