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해서 물러난 SPC 3세가 회사에?…“빵 사러 왔다”

입력 2020.03.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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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성 수십 배' 액상 대마…잇단 재벌 3세들의 마약 범죄

'마약'인 액상 대마는 대마의 환각 성분을 고농축해서 일반 대마보다 비싸고, 환각성도 수십 배 강합니다. 그러나 대마 특유의 냄새가 잘 나지 않아, 쉽게 적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재벌가 3세들, 몇 년 사이 이 액상 대마를 밀수하거나 흡입했다가 적발돼 잇따라 처벌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씨가 액상 대마를 밀수하다 적발됐고, 여러 차례 흡연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씨는 1심과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SK그룹 창업주 손자 최 모 씨와 현대그룹 창업주 손자 정 모 씨도 모두 액상 대마를 흡연한 혐의로 지난해 각각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액상 대마 밀수·흡연' SPC 허희수…SPC그룹 "경영에서 영구 배제"

파리바게트,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쉐이크쉑 버거...우리나라의 대표 제과업체인 SPC그룹의 3세도 마약 혐의로 적발됐습니다. SPC 허영인 회장의 둘째 아들인 허희수 부사장입니다.

허 전 부사장은 2018년 8월 6일, 액상 대마를 밀수하고 흡연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허 전 부사장에 대해 검찰은, 대마를 공범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수입했고, 흡연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허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해 풀려났습니다.

당시 SPC 그룹은 허 전 부사장이 구속된 뒤 단 하루 만에, 입장문을 냈습니다.

"허희수 부사장을 그룹 내 모든 보직에서 즉시 물러나도록 하고, 향후 경영에서 영구히 배제하도록 조치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법과 윤리, 사회적 책임을 더욱 엄중하게 준수하는 SPC그룹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한다"

구속되자마자 총수 일가의 경영 배제를 약속한 건데요. 매우 이례적입니다. 아무래도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식품업계의 특성, 또 허 씨를 경영에서 배제할 경우 재판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영배제 약속 석 달 만에 임원 불러놓고 회의?

그런데...SPC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약속한 뒤에도 허희수 전 부사장은 지속적으로 경영에 참여해 왔다는 매우 구체적인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불과 석 달 만에 약속을 어겼다는 겁니다. 제보자는 허 전 부사장이 참여하는 회의의 내용과 장소, 일시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제보 내용을 보면, 허 전 부사장은 서울 한남동에서 일주일에 두 번 SPC 삼립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며 매출현황, 예상 마감 실적뿐만 아니라 에그슬럿, 씨티델리 같은 신사업 진행사항에 대해서도 보고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인수합병 검토나 협업할 프로젝트에 대해 지시하고, 브랜드명·디자인·모델 컨펌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작은 부분까지 지시했다고 합니다. 아주 디테일한 정보도 있었습니다. SPC 그룹웨어에 접속하면 '윤리경영'에 대한 약속 알림창이 뜨고, 이걸 클릭해야 그룹웨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월 30일 서울 한남동에서 취재진과 만난 허희수 SPC 전 부사장.1월 30일 서울 한남동에서 취재진과 만난 허희수 SPC 전 부사장.

예정된 회의 시각에 나타났는데…"빵 사러 왔다"고요?

제보자의 주장은 사실일까?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취재팀은 회의가 예정돼있다는 지난 1월 30일, 오후 2시에 SPC 한남동 건물을 찾았습니다.

예정된 시각이 10분쯤 지나자 운전기사가 모는 회색 제네시스 차량이 도착했고, 허 전 부사장이 내렸습니다. 취재팀이 급히 다가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온 건지 묻자 허 전 부사장은 연신 아니라며, 이 건물 1층에 있는 빵집에 "빵을 사러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답변에 기자가 놀라 재차 물었지만, 답은 똑같았습니다.

"2018년 마약 혐의 이후에 다시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니냐"라고 묻자, "아니다. 그럴 생각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빵 사러 올 때도 수행원 같은 분과 같이 오냐는 질문에는 "혼자 온다"라고 짤막하게 답했습니다.

이날 허 전 부사장은 서울 한남동의 SPC 건물 빵집 이곳저곳을 돌다가 불과 15분 만에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SPC 기사에 '허희수'가 강조되는 이유는?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경영에 '영구히' 배제된 지 1년 반이 넘었는데, 인터넷에는 '허희수 전 부사장'의 실명이 등장하는 기사가 여러 개 나옵니다. 주로 SPC에서 새로 출범하는 브랜드나 사업에 관한 기사로, 내용도 비슷합니다. "허희수 전 부사장이 공들인" 등 허 전 부사장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SPC가 허 전 부사장의 '경영 영구 배제' 방침을 밝힌 지 1년 7개월째. SPC 측은 허 전 부사장의 경영 참여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진실일까요? 허희수 씨는 기자와 만난 날, 임원들과 회의를 하러 온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빵을 사러 온 걸까요? 오늘밤 KBS 9시 뉴스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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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약해서 물러난 SPC 3세가 회사에?…“빵 사러 왔다”
    • 입력 2020-03-25 16:38:03
    취재K
'환각성 수십 배' 액상 대마…잇단 재벌 3세들의 마약 범죄

'마약'인 액상 대마는 대마의 환각 성분을 고농축해서 일반 대마보다 비싸고, 환각성도 수십 배 강합니다. 그러나 대마 특유의 냄새가 잘 나지 않아, 쉽게 적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재벌가 3세들, 몇 년 사이 이 액상 대마를 밀수하거나 흡입했다가 적발돼 잇따라 처벌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씨가 액상 대마를 밀수하다 적발됐고, 여러 차례 흡연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씨는 1심과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SK그룹 창업주 손자 최 모 씨와 현대그룹 창업주 손자 정 모 씨도 모두 액상 대마를 흡연한 혐의로 지난해 각각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액상 대마 밀수·흡연' SPC 허희수…SPC그룹 "경영에서 영구 배제"

파리바게트,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쉐이크쉑 버거...우리나라의 대표 제과업체인 SPC그룹의 3세도 마약 혐의로 적발됐습니다. SPC 허영인 회장의 둘째 아들인 허희수 부사장입니다.

허 전 부사장은 2018년 8월 6일, 액상 대마를 밀수하고 흡연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허 전 부사장에 대해 검찰은, 대마를 공범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수입했고, 흡연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허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해 풀려났습니다.

당시 SPC 그룹은 허 전 부사장이 구속된 뒤 단 하루 만에, 입장문을 냈습니다.

"허희수 부사장을 그룹 내 모든 보직에서 즉시 물러나도록 하고, 향후 경영에서 영구히 배제하도록 조치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법과 윤리, 사회적 책임을 더욱 엄중하게 준수하는 SPC그룹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한다"

구속되자마자 총수 일가의 경영 배제를 약속한 건데요. 매우 이례적입니다. 아무래도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식품업계의 특성, 또 허 씨를 경영에서 배제할 경우 재판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영배제 약속 석 달 만에 임원 불러놓고 회의?

그런데...SPC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약속한 뒤에도 허희수 전 부사장은 지속적으로 경영에 참여해 왔다는 매우 구체적인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불과 석 달 만에 약속을 어겼다는 겁니다. 제보자는 허 전 부사장이 참여하는 회의의 내용과 장소, 일시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제보 내용을 보면, 허 전 부사장은 서울 한남동에서 일주일에 두 번 SPC 삼립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며 매출현황, 예상 마감 실적뿐만 아니라 에그슬럿, 씨티델리 같은 신사업 진행사항에 대해서도 보고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인수합병 검토나 협업할 프로젝트에 대해 지시하고, 브랜드명·디자인·모델 컨펌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작은 부분까지 지시했다고 합니다. 아주 디테일한 정보도 있었습니다. SPC 그룹웨어에 접속하면 '윤리경영'에 대한 약속 알림창이 뜨고, 이걸 클릭해야 그룹웨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월 30일 서울 한남동에서 취재진과 만난 허희수 SPC 전 부사장.
예정된 회의 시각에 나타났는데…"빵 사러 왔다"고요?

제보자의 주장은 사실일까?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취재팀은 회의가 예정돼있다는 지난 1월 30일, 오후 2시에 SPC 한남동 건물을 찾았습니다.

예정된 시각이 10분쯤 지나자 운전기사가 모는 회색 제네시스 차량이 도착했고, 허 전 부사장이 내렸습니다. 취재팀이 급히 다가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온 건지 묻자 허 전 부사장은 연신 아니라며, 이 건물 1층에 있는 빵집에 "빵을 사러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답변에 기자가 놀라 재차 물었지만, 답은 똑같았습니다.

"2018년 마약 혐의 이후에 다시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니냐"라고 묻자, "아니다. 그럴 생각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빵 사러 올 때도 수행원 같은 분과 같이 오냐는 질문에는 "혼자 온다"라고 짤막하게 답했습니다.

이날 허 전 부사장은 서울 한남동의 SPC 건물 빵집 이곳저곳을 돌다가 불과 15분 만에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SPC 기사에 '허희수'가 강조되는 이유는?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경영에 '영구히' 배제된 지 1년 반이 넘었는데, 인터넷에는 '허희수 전 부사장'의 실명이 등장하는 기사가 여러 개 나옵니다. 주로 SPC에서 새로 출범하는 브랜드나 사업에 관한 기사로, 내용도 비슷합니다. "허희수 전 부사장이 공들인" 등 허 전 부사장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SPC가 허 전 부사장의 '경영 영구 배제' 방침을 밝힌 지 1년 7개월째. SPC 측은 허 전 부사장의 경영 참여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진실일까요? 허희수 씨는 기자와 만난 날, 임원들과 회의를 하러 온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빵을 사러 온 걸까요? 오늘밤 KBS 9시 뉴스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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