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의사 자격 없다는 수련생은 왜 아직 병원에 있나요?

입력 2020.03.31 (08:02) 수정 2020.03.3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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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를) 좀 더 만지고 싶어서 여기 서 있겠습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의사를 믿고 진찰과 수술을 받습니다. 하지만 나를 진찰한 의사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여성의 신체를 만지고 싶어서 '휴식을 취하라'는 상급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장을 떠나지 않은 이 사람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수련의입니다. 이 수련의는 의사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말과 행동을 수차례 했지만,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고 여전히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대형병원 산부인과 인턴 수술 중 상습 성희롱 발언…정직 3개월만? (2020.03.30 KBS 뉴스9)

■ "마취 중인 환자 신체 수차례 만져"…인턴의 수상한 행동

A 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동료들은 A 씨의 부적절한 행동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A 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를 하고 대기 중인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져 전공의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동료 간호사에게는 성기를 언급하며 남녀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아청소년과에서 수련을 받는 중엔 어린 환자에게 상처를 입혀 보호자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A 씨의 성희롱 발언취재진이 확보한 A 씨의 성희롱 발언

A 씨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병원 측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A 씨를 불러 직접 해명을 듣는 자리에서, 위원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A 씨는 여성의 신체가 말랑해서 더 만지려고 했고, 성희롱 발언에 대해서도 '간호사'여서라거나 '여자'라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여러 차례 만진 건 신체적 특성을 관찰하려는 이유였다는 게 A 씨의 주장입니다.

병원측은 A씨에 대해 정직 3개월 결정을 내렸고, 이 기간이 끝난 직후 A씨는 병원에 복귀했다. 취재진이 지난달 이 병원을 찾았을 땐 A씨는 여전히 이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병원측은 A씨에 대해 정직 3개월 결정을 내렸고, 이 기간이 끝난 직후 A씨는 병원에 복귀했다. 취재진이 지난달 이 병원을 찾았을 땐 A씨는 여전히 이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 "의사 자격 없다"더니…징계는 '정직 3개월'

교수들은 A 씨에 대해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여성 환자와 관련해 보인 행동은 성격 장애적 측면이 있어 교육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등의 의견을 냈습니다. 병원 측은 "여성 환자와의 대면 진료시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3개월 정직 처분'을 결정했습니다.

A 씨는 징계에 불복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결국 정직 기간을 끝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A 씨는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비임상과에 배치된 상태입니다.

취재진은 A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A 씨는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연락이 더 이상 닿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은 이 같은 징계 수위에 대해 "수련의 과정에서 줄 수 있는 중징계"라면서 "A 씨가 또 문제를 일으킬 경우 중징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직을 받은 A 씨는 동료들보다 3개월 더 수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레지던트로 넘어가는 시기를 놓쳐 사실상 그다음 해까지 1년 유급과 같기 때문에 '중징계'라는 겁니다.

의사 자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수련생이 계속 병원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병원 측은 "수련의 과정이 일종의 교육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수련의 과정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교육 과정이기 때문에, 의사 자격 박탈이 되지 않는 이상 다시 교육할 수밖에 없다는 게 병원 측 입장입니다.

하지만 동료보다 1년 늦더라도 A 씨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A 씨가 지금은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의사로서 환자를 대면할 겁니다. A 씨 같은 생각과 말을 하는 의사를 믿고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병원 측의 해명에도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 611명 중 성범죄를 이유로 면허가 정지된 건 모두 4명뿐이다. (0.7%)최근 5년 동안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 611명 중 성범죄를 이유로 면허가 정지된 건 모두 4명뿐이다. (0.7%)

■ 의료법 개정 20년…성범죄자는 여전히 "정상진료"

A 씨의 사례에서 보듯 한 번 취득한 '의사 면허'는 철밥통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진료 중 여성 환자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원장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여전히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은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의 경우에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의료인이 청소년성보호법을 위반하면 판사의 결정에 따라 최대 10년까지 의료기관 취업을 제한될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의료법 개정 20년…성범죄자는 여전히 “정상진료” (2020.03.30 KBS 뉴스9)

취소가 어렵다면 정지라도 길게 하면 될 텐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의사 면허를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2018년,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면허정지를 1년으로 강화했습니다. 그전까진 1개월에 불과했습니다. 문제는 그나마 늘어난 1년도 강간과 강제추행 등 진료 중에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불법 촬영 등 다른 범죄는 여전히 1개월 면허 정지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모두 611명입니다. 강간과 강제추행이 539명(88.2%)으로 가장 많았고, 타인의 신체에 대한 불법 촬영으로 적발된 의사도 57명(9.3%)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면허가 정지된 건 74명이고 성범죄가 사유인 경우는 고작 4명에 불과합니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는 의료인의 성범죄, 국회에서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습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모두 6건인데 의료단체의 강한 반발 속에 결국 폐기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성범죄 의사는 오늘도 아무런 제지 없이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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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의사 자격 없다는 수련생은 왜 아직 병원에 있나요?
    • 입력 2020-03-31 08:02:57
    • 수정2020-03-31 08:04:07
    취재후·사건후
"(여성의 신체를) 좀 더 만지고 싶어서 여기 서 있겠습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의사를 믿고 진찰과 수술을 받습니다. 하지만 나를 진찰한 의사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여성의 신체를 만지고 싶어서 '휴식을 취하라'는 상급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장을 떠나지 않은 이 사람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수련의입니다. 이 수련의는 의사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말과 행동을 수차례 했지만,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고 여전히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대형병원 산부인과 인턴 수술 중 상습 성희롱 발언…정직 3개월만? (2020.03.30 KBS 뉴스9)

■ "마취 중인 환자 신체 수차례 만져"…인턴의 수상한 행동

A 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동료들은 A 씨의 부적절한 행동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A 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를 하고 대기 중인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져 전공의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동료 간호사에게는 성기를 언급하며 남녀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아청소년과에서 수련을 받는 중엔 어린 환자에게 상처를 입혀 보호자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A 씨의 성희롱 발언
A 씨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병원 측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A 씨를 불러 직접 해명을 듣는 자리에서, 위원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A 씨는 여성의 신체가 말랑해서 더 만지려고 했고, 성희롱 발언에 대해서도 '간호사'여서라거나 '여자'라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여러 차례 만진 건 신체적 특성을 관찰하려는 이유였다는 게 A 씨의 주장입니다.

병원측은 A씨에 대해 정직 3개월 결정을 내렸고, 이 기간이 끝난 직후 A씨는 병원에 복귀했다. 취재진이 지난달 이 병원을 찾았을 땐 A씨는 여전히 이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 "의사 자격 없다"더니…징계는 '정직 3개월'

교수들은 A 씨에 대해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여성 환자와 관련해 보인 행동은 성격 장애적 측면이 있어 교육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등의 의견을 냈습니다. 병원 측은 "여성 환자와의 대면 진료시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3개월 정직 처분'을 결정했습니다.

A 씨는 징계에 불복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결국 정직 기간을 끝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A 씨는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비임상과에 배치된 상태입니다.

취재진은 A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A 씨는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연락이 더 이상 닿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은 이 같은 징계 수위에 대해 "수련의 과정에서 줄 수 있는 중징계"라면서 "A 씨가 또 문제를 일으킬 경우 중징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직을 받은 A 씨는 동료들보다 3개월 더 수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레지던트로 넘어가는 시기를 놓쳐 사실상 그다음 해까지 1년 유급과 같기 때문에 '중징계'라는 겁니다.

의사 자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수련생이 계속 병원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병원 측은 "수련의 과정이 일종의 교육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수련의 과정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교육 과정이기 때문에, 의사 자격 박탈이 되지 않는 이상 다시 교육할 수밖에 없다는 게 병원 측 입장입니다.

하지만 동료보다 1년 늦더라도 A 씨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A 씨가 지금은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의사로서 환자를 대면할 겁니다. A 씨 같은 생각과 말을 하는 의사를 믿고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병원 측의 해명에도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 611명 중 성범죄를 이유로 면허가 정지된 건 모두 4명뿐이다. (0.7%)
■ 의료법 개정 20년…성범죄자는 여전히 "정상진료"

A 씨의 사례에서 보듯 한 번 취득한 '의사 면허'는 철밥통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진료 중 여성 환자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원장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여전히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은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의 경우에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의료인이 청소년성보호법을 위반하면 판사의 결정에 따라 최대 10년까지 의료기관 취업을 제한될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의료법 개정 20년…성범죄자는 여전히 “정상진료” (2020.03.30 KBS 뉴스9)

취소가 어렵다면 정지라도 길게 하면 될 텐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의사 면허를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2018년,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면허정지를 1년으로 강화했습니다. 그전까진 1개월에 불과했습니다. 문제는 그나마 늘어난 1년도 강간과 강제추행 등 진료 중에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불법 촬영 등 다른 범죄는 여전히 1개월 면허 정지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모두 611명입니다. 강간과 강제추행이 539명(88.2%)으로 가장 많았고, 타인의 신체에 대한 불법 촬영으로 적발된 의사도 57명(9.3%)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면허가 정지된 건 74명이고 성범죄가 사유인 경우는 고작 4명에 불과합니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는 의료인의 성범죄, 국회에서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습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모두 6건인데 의료단체의 강한 반발 속에 결국 폐기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성범죄 의사는 오늘도 아무런 제지 없이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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