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찬스’ 부정채용자 징계로 해고한 금감원…법원 “무효”

입력 2020.04.01 (18:22) 수정 2020.04.0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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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청탁으로 부정하게 채용된 직원을 징계로 해고한 금융감독원의 처분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부정채용은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로 인정되지만, 금감원이 해고 과정에서 징계 규정을 잘못 적용했다는 취지입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부는 A 씨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면직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고 낸 소송 항소심에서, "A 씨에 대한 면직처분을 무효로 하고, 미지급 임금 2천4백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A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입니다.

재판부는 다만 금감원이 징계 해고 이후 별도로 취한 근로계약 취소는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A 씨는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이미 금감원과의 근로계약이 취소됐기 때문에 복직할 수 없습니다.

A 씨는 2016년 금융감독원 신입직원으로 채용됐지만, 같은 기간 한국수출입은행 전 부행장이었던 A 씨의 아버지가 자신의 지인을 통해 A 씨 채용을 청탁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A 씨 아버지는 A 씨가 필기시험을 마친 뒤 전직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었던 B 금융지주회장에게 아들의 지원 사실을 알렸고, B 회장의 전화를 받은 당시 금융감독원 총무국장은 필기시험 성적이 합격선에 미치지 못했던 A 씨를 구제하기 위해 채용예정 인원을 늘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감원은 A 씨가 부정합격했고, 이는 금감원 인사관리규정에 따른 징계대상에 해당된다며 2018년 7월 20일 A 씨를 면직처분했습니다. 금감원 인사관리규정 41조는 부정한 행위를 한 자, 취업규칙 또는 서약서에 위반한 자, 원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감독원의 명예를 훼손한 자 등을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A 씨가 이 모두에 해당된다는 이유였습니다.

A 씨는 이에 불복해 2018년 9월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6월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비록 A 씨가 (채용 청탁이라는 부정행위에) 관여했다거나 알고도 방치했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는 없다 하더라도, 불공정한 채용절차의 수혜자가 된 결과에 이르렀다"며 "부정행위가 없었다면, 애초에 A 씨에게 면접시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합격자로 결정됐을 것"이라고 부정 채용이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어 "피고(금감원)는 원고(A 씨)가 공정한 채용절차를 통해 합격했음을 전제로 원고를 채용했지만, 실제로는 원고나 제3자의 부정행위로 A 씨를 채용하게 된 것"이었다며 "그런 착오가 없었더라면 피고가 원고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인정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의한 취소를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습니다. A 씨가 금감원에 부정합격한 사실도, 금감원이 착오를 이유로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점도 모두 인정되지만, 결정적으로 금감원이 '정당한 사유가 없는 징계'를 내려 처분이 무효라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면직 징계의 근거로 든 인사관리규정은 "부정행위, 명예훼손행위 등의 '행위를 한 자'를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 문언은 객관적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행위자'를 징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금감원 인사관리규정이 정한 징계사유는 "해당 근로자가 부정행위 등의 비위행위를 직접 하거나 이를 교사·방조하는 등 해당 근로자 자신이 비위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고 엄격하게 해석함이 상당하다"며, A 씨에게 이같은 징계사유를 적용한 금감원의 처분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가 스스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비위 행위를 직접 했다고 볼 수 없는데도, 다른 사람(아버지 등)의 비위행위로 인한 이익이 A 씨에게 돌아갔다는 결과를 들어 징계처분까지 내리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해당 근로자에 대해 근로계약의 취소 내지 부당이득 반환 등 민법상 조치를 통해 취득한 이익을 박탈하는 것을 넘어 질서벌로서의 제재인 징계처분까지 가한다면, 이는 과잉금지 원칙 등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해고 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27조에 위배되거나 사회통념상 징계사유로서의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면직 처분 이후 정식 해고 통보 시점까지 받지 못한 임금 2천 4백여만 원을 금감원이 지급해야 한다는 A 씨의 청구도 받아들였습니다. 2018년 7월 면직 처분과는 별개로 A 씨가 금감원으로부터 정식 근로계약 취소 통보를 받은 시점이 지난해 1월 24일이기 때문에 그전까지 A 씨의 근로자 지위는 계속되고, 이 기간 동안 A 씨가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금감원에게 귀책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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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찬스’ 부정채용자 징계로 해고한 금감원…법원 “무효”
    • 입력 2020-04-01 18:22:10
    • 수정2020-04-02 20:56:26
    사회
아버지의 청탁으로 부정하게 채용된 직원을 징계로 해고한 금융감독원의 처분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부정채용은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로 인정되지만, 금감원이 해고 과정에서 징계 규정을 잘못 적용했다는 취지입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부는 A 씨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면직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고 낸 소송 항소심에서, "A 씨에 대한 면직처분을 무효로 하고, 미지급 임금 2천4백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A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입니다.

재판부는 다만 금감원이 징계 해고 이후 별도로 취한 근로계약 취소는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A 씨는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이미 금감원과의 근로계약이 취소됐기 때문에 복직할 수 없습니다.

A 씨는 2016년 금융감독원 신입직원으로 채용됐지만, 같은 기간 한국수출입은행 전 부행장이었던 A 씨의 아버지가 자신의 지인을 통해 A 씨 채용을 청탁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A 씨 아버지는 A 씨가 필기시험을 마친 뒤 전직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었던 B 금융지주회장에게 아들의 지원 사실을 알렸고, B 회장의 전화를 받은 당시 금융감독원 총무국장은 필기시험 성적이 합격선에 미치지 못했던 A 씨를 구제하기 위해 채용예정 인원을 늘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감원은 A 씨가 부정합격했고, 이는 금감원 인사관리규정에 따른 징계대상에 해당된다며 2018년 7월 20일 A 씨를 면직처분했습니다. 금감원 인사관리규정 41조는 부정한 행위를 한 자, 취업규칙 또는 서약서에 위반한 자, 원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감독원의 명예를 훼손한 자 등을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A 씨가 이 모두에 해당된다는 이유였습니다.

A 씨는 이에 불복해 2018년 9월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6월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비록 A 씨가 (채용 청탁이라는 부정행위에) 관여했다거나 알고도 방치했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는 없다 하더라도, 불공정한 채용절차의 수혜자가 된 결과에 이르렀다"며 "부정행위가 없었다면, 애초에 A 씨에게 면접시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합격자로 결정됐을 것"이라고 부정 채용이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어 "피고(금감원)는 원고(A 씨)가 공정한 채용절차를 통해 합격했음을 전제로 원고를 채용했지만, 실제로는 원고나 제3자의 부정행위로 A 씨를 채용하게 된 것"이었다며 "그런 착오가 없었더라면 피고가 원고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인정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의한 취소를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습니다. A 씨가 금감원에 부정합격한 사실도, 금감원이 착오를 이유로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점도 모두 인정되지만, 결정적으로 금감원이 '정당한 사유가 없는 징계'를 내려 처분이 무효라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면직 징계의 근거로 든 인사관리규정은 "부정행위, 명예훼손행위 등의 '행위를 한 자'를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 문언은 객관적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행위자'를 징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금감원 인사관리규정이 정한 징계사유는 "해당 근로자가 부정행위 등의 비위행위를 직접 하거나 이를 교사·방조하는 등 해당 근로자 자신이 비위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고 엄격하게 해석함이 상당하다"며, A 씨에게 이같은 징계사유를 적용한 금감원의 처분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가 스스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비위 행위를 직접 했다고 볼 수 없는데도, 다른 사람(아버지 등)의 비위행위로 인한 이익이 A 씨에게 돌아갔다는 결과를 들어 징계처분까지 내리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해당 근로자에 대해 근로계약의 취소 내지 부당이득 반환 등 민법상 조치를 통해 취득한 이익을 박탈하는 것을 넘어 질서벌로서의 제재인 징계처분까지 가한다면, 이는 과잉금지 원칙 등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해고 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27조에 위배되거나 사회통념상 징계사유로서의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면직 처분 이후 정식 해고 통보 시점까지 받지 못한 임금 2천 4백여만 원을 금감원이 지급해야 한다는 A 씨의 청구도 받아들였습니다. 2018년 7월 면직 처분과는 별개로 A 씨가 금감원으로부터 정식 근로계약 취소 통보를 받은 시점이 지난해 1월 24일이기 때문에 그전까지 A 씨의 근로자 지위는 계속되고, 이 기간 동안 A 씨가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금감원에게 귀책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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