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 가면 식량위기 온다

입력 2020.04.04 (07:00) 수정 2020.04.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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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사재기 안해도 된다는 말에 더 불안

산 넘어 산이다. 아직 코로나19도 잡지 못했는데, 전 세계에서 실업 대란과 성장률 추락 등 나쁜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그 중 메가톤급은 '식량 위기'다.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는 거다. 중국 관영매체는 코로나19 이후 식량 수급에 관한 기사를 연일 전하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14억 인민이여! 식량 위기는 없다'로 읽고, '문제가 있구나'로 받아들인다.

중국 국영통신 신화사는 3일 '대국 식량 창고 괜찮은가? ("大国粮仓"靠得住吗)'라는 인터뷰 기사에서 중국의 식량 상황을 진단했다. '쌀과 밀가루를 사재기할 필요가 있을까? (囤米抢面有必要吗)'라는 공격적인 질문에 당국자는 "16년 연속 이어진 풍년과 한 해 6억 5천만 톤이 넘는 곡물 생산량으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한다. 그런데 '사재기(囤)'라는 이 표현에 중국인들이 지금 느끼는 불안이 담겨 있다. 중국에선 쌀 사재기 조짐마저 일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고기가 시장에서 바닥나고, 값도 두 배 넘게 폭등했던 경험이 배경에 있다. 이때도 중국 당국은 "돼지고기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었다.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 치우는 중국인들은 고기 없는 밥을 먹으며 정부를 성토했다. 지금 중국 콩 가격을 보면 이 불안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500g 한 근 중국의 콩 가격은 코로나19 이전 2.4 위안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올라 2020년 4월 3일 현재 두 배인 4.93 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그래프, 중국 진토우망 cngold.org)500g 한 근 중국의 콩 가격은 코로나19 이전 2.4 위안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올라 2020년 4월 3일 현재 두 배인 4.93 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그래프, 중국 진토우망 cngold.org)

이번 코로나19로 중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후베이성을 비롯한 5개 성(광동,저장,허난,후난)의 곡물 생산량은 1억 6,384만 톤이다(중국 국가통계국, 2019년). 중국 전체 곡물 생산량의 20%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후베이성의 경우 농업 생산에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봄 농사에 차질이 없도록 2억 1,000만 위안(우리 돈 363억 원)을 지원할 계획도 밝혔다. 코로나19 여파로 닥칠 식량 수급 차질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국제 쌀 가격 7년만 최고..FAO "4~5월 식량 공급망 붕괴 우려"

국제 식량 가격은 벌써 가파른 오름세를 시작했다. 로이터 통신은 2일 국제 쌀 가격 기준인 태국 백미 1톤 가격이 500~570달러(우리 돈 69만~70만 원)에 거래됐다고 보도했다. 2013년 4월 이후, 7년 만에 최고 가격으로 폭등한 것이다. 외신은 쌀 주요 수출국인 태국과 베트남에 가뭄이 발생해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쌀 사재기와 공급 불안이 발생해 쌀 가격이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카고 밀 선물가격도 3월에만 8% 올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물류 차질로 사료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노동력 부족으로 도축업 생산 여력도 감소하고 있다"며 일부 육류품은 가격 급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FAO 압돌리자 아바시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물자 이동이 어려워져 공급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어서, 예측 불가능하고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FAO는 구체적으로 "4월과 5월에 식량 공급망의 붕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식량 수출국들에 내려진 '주민 이동 금지령'에 따른 생산 차질도 문제다. 미국 CNN은 2일 미국 인구의 95.9%인 3억 1천500만 명을 상대로 자택 대피 명령이 시행되고 있거나 곧 발효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식료품 구매 같은 필수적인 활동을 제외하고는 집 바깥출입이 금지된다. 러시아는 지난달 28일 시행한 자국민 대상 유급 휴무 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돈은 줄 테니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겠는가?


빗장 거는 식량 수출국..한국 곡물 자급률 23%

식량 수출국들은 이미 잇따라 수출문을 닫기 시작했다. 3월 20일부터 열흘간 곡물 수출을 중단했던 러시아는 6월 30일까지 밀과 호밀, 보리, 옥수수 등의 수출량을 700만 톤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다. 카자흐스탄도 15일까지 11가지 농작물의 수출을 제한 중이고, 세계 3대 쌀 수출국인 베트남도 쌀 수출문을 닫았다. 태국은 달걀 수출을 중단했고, 캄보디아도 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한다.

반면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비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밀 120만 톤을 추가 수입해 비축하겠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재기 등을 방지하고, 전략적 식량 비축분을 확보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5~2018년 우리나라의 3년 평균 곡물 자급률은 23%다. 세계 평균 101.5%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쌀은 자급률이 104.7%에 이르지만, 보리와 콩은 각각 24.6%, 옥수수 3.7%에 불과하다. 밀은 전체 소비량 중 99.1%를 수입에 의존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앞다퉈 국경 문을 닫는 많은 나라를 보았다. 상식과 관례보다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던 거다. 산업 소재와 부품 공급이 한순간에 무너져 멀쩡한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전 세계적인 전염병 앞에 얼마나 허약한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 앞에 또 식량 안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참 많은 것을 가르치는 코로나19다. 대한민국은 전방위적인 검역, 그리고 공공과 민간이 어우러진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자발적 참여로 더 빛을 발한 시민 의식 등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전염병 방역을 넘어서서 이제 경제 위기와 식량 위기마저 이겨내는 대한민국으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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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4 07:00:06
    • 수정2020-04-04 07:15:36
    특파원 리포트
中, 사재기 안해도 된다는 말에 더 불안

산 넘어 산이다. 아직 코로나19도 잡지 못했는데, 전 세계에서 실업 대란과 성장률 추락 등 나쁜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그 중 메가톤급은 '식량 위기'다.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는 거다. 중국 관영매체는 코로나19 이후 식량 수급에 관한 기사를 연일 전하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14억 인민이여! 식량 위기는 없다'로 읽고, '문제가 있구나'로 받아들인다.

중국 국영통신 신화사는 3일 '대국 식량 창고 괜찮은가? ("大国粮仓"靠得住吗)'라는 인터뷰 기사에서 중국의 식량 상황을 진단했다. '쌀과 밀가루를 사재기할 필요가 있을까? (囤米抢面有必要吗)'라는 공격적인 질문에 당국자는 "16년 연속 이어진 풍년과 한 해 6억 5천만 톤이 넘는 곡물 생산량으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한다. 그런데 '사재기(囤)'라는 이 표현에 중국인들이 지금 느끼는 불안이 담겨 있다. 중국에선 쌀 사재기 조짐마저 일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고기가 시장에서 바닥나고, 값도 두 배 넘게 폭등했던 경험이 배경에 있다. 이때도 중국 당국은 "돼지고기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었다.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 치우는 중국인들은 고기 없는 밥을 먹으며 정부를 성토했다. 지금 중국 콩 가격을 보면 이 불안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500g 한 근 중국의 콩 가격은 코로나19 이전 2.4 위안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올라 2020년 4월 3일 현재 두 배인 4.93 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그래프, 중국 진토우망 cngold.org)
이번 코로나19로 중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후베이성을 비롯한 5개 성(광동,저장,허난,후난)의 곡물 생산량은 1억 6,384만 톤이다(중국 국가통계국, 2019년). 중국 전체 곡물 생산량의 20%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후베이성의 경우 농업 생산에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봄 농사에 차질이 없도록 2억 1,000만 위안(우리 돈 363억 원)을 지원할 계획도 밝혔다. 코로나19 여파로 닥칠 식량 수급 차질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국제 쌀 가격 7년만 최고..FAO "4~5월 식량 공급망 붕괴 우려"

국제 식량 가격은 벌써 가파른 오름세를 시작했다. 로이터 통신은 2일 국제 쌀 가격 기준인 태국 백미 1톤 가격이 500~570달러(우리 돈 69만~70만 원)에 거래됐다고 보도했다. 2013년 4월 이후, 7년 만에 최고 가격으로 폭등한 것이다. 외신은 쌀 주요 수출국인 태국과 베트남에 가뭄이 발생해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쌀 사재기와 공급 불안이 발생해 쌀 가격이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카고 밀 선물가격도 3월에만 8% 올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물류 차질로 사료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노동력 부족으로 도축업 생산 여력도 감소하고 있다"며 일부 육류품은 가격 급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FAO 압돌리자 아바시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물자 이동이 어려워져 공급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어서, 예측 불가능하고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FAO는 구체적으로 "4월과 5월에 식량 공급망의 붕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식량 수출국들에 내려진 '주민 이동 금지령'에 따른 생산 차질도 문제다. 미국 CNN은 2일 미국 인구의 95.9%인 3억 1천500만 명을 상대로 자택 대피 명령이 시행되고 있거나 곧 발효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식료품 구매 같은 필수적인 활동을 제외하고는 집 바깥출입이 금지된다. 러시아는 지난달 28일 시행한 자국민 대상 유급 휴무 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돈은 줄 테니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겠는가?


빗장 거는 식량 수출국..한국 곡물 자급률 23%

식량 수출국들은 이미 잇따라 수출문을 닫기 시작했다. 3월 20일부터 열흘간 곡물 수출을 중단했던 러시아는 6월 30일까지 밀과 호밀, 보리, 옥수수 등의 수출량을 700만 톤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다. 카자흐스탄도 15일까지 11가지 농작물의 수출을 제한 중이고, 세계 3대 쌀 수출국인 베트남도 쌀 수출문을 닫았다. 태국은 달걀 수출을 중단했고, 캄보디아도 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한다.

반면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비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밀 120만 톤을 추가 수입해 비축하겠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재기 등을 방지하고, 전략적 식량 비축분을 확보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5~2018년 우리나라의 3년 평균 곡물 자급률은 23%다. 세계 평균 101.5%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쌀은 자급률이 104.7%에 이르지만, 보리와 콩은 각각 24.6%, 옥수수 3.7%에 불과하다. 밀은 전체 소비량 중 99.1%를 수입에 의존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앞다퉈 국경 문을 닫는 많은 나라를 보았다. 상식과 관례보다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던 거다. 산업 소재와 부품 공급이 한순간에 무너져 멀쩡한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전 세계적인 전염병 앞에 얼마나 허약한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 앞에 또 식량 안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참 많은 것을 가르치는 코로나19다. 대한민국은 전방위적인 검역, 그리고 공공과 민간이 어우러진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자발적 참여로 더 빛을 발한 시민 의식 등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전염병 방역을 넘어서서 이제 경제 위기와 식량 위기마저 이겨내는 대한민국으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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