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대구시민으로 살아가기

입력 2020.04.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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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대구시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지도 두 달이 다 돼 갑니다.

그 사이 코로나19는 모든 대구 시민의 일상이 됐습니다. 코로나19의 포로가 된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너무 오랜 싸움에 지쳤는지 지난 10일 신규 확진자 0명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을 때도, 시민들은 선뜻 기뻐하진 못했습니다.

아직 종식은 먼 미래의 일이겠죠. 하지만 그 중간 어디 즈음일 지금, 50여 일을 되돌아보고 정리해보려 합니다.


위기는 폭풍처럼

대구에 코로나19 첫 환자가 나온 건 2월 18일입니다. 대구 첫 환자인 31번 환자의 동선이 공개됐고, 그 동선에 따라 지역사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확진자 한 명의 충격은 잠시, 확진자 숫자는 바로 다음 날 두 자릿수로 뛰었고, 닷새 만에 세 자릿수를 기록했습니다.

병원 응급실과 다중밀집시설 등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알려진 장소들이 폐쇄됐다 문을 열길 반복했습니다. 혼란 속에 급기야 2월 25일에는 지역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전체 휴업을 결정했습니다. 시장 측에 따르면, 이 시장의 휴업은 조선 중기 시장 개장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어디에 확진자가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퍼져나가며 도시를 잠식했습니다. 시민들은 어딜 가면 안 되는지, 어디가 위험한 곳인지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코로나19는 사람의 몸뿐만 나이라 마음에도 감염을 일으켰고 무지와 혼란은 더 큰 공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코로나19는 쉴 새 없이 대구 지역사회를 몰아쳤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표현이 이런 상황이구나, 느낀 많은 시민. 갑자기 긴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로 향한 발길을 끊어버렸습니다.


언제 끝나? 끝이 있긴 한 거야?

집단 발병의 시작이 된 신천지 대구 교회. 그 신도들을 찾아내고 격리하고, 또 찾아내고 격리하는 숨바꼭질이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확진자 증가 폭도 두 자릿수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첫 환자 발생 이후 꼭 한 달째인 3월 18일, 이번에는 요양병원에서 터졌습니다. 한사랑요양원을 시작으로 몇 군데 요양병원을 돌아가며 확진자가 계속 발생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병원인 제2미주병원에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과연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을까?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닐까?"라며 방역 당국에서도 회의감과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또 다른 고위험군을 찾아내고 그들을 전수검사를 하는 게, 괜한 짓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조금씩 제기됐습니다. 그런데도 또 전수 검사를 했고, 끊임없이 환자를 찾아내고 격리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달 들어 지난 10일 기준 0명, 11일 7명, 12일 다시 2명. 13일 3명. 긴 터널의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이긴 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연대

50일 넘는 코로나19 시대를 견뎌 온 힘은 연대였습니다. 시민 모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의식했든 아니든 서로서로 믿고 조금씩 기대면서 힘을 내 왔다고, 감히 자부하고 있습니다.

발병 초기 하루 이틀 생필품이 동나는가 싶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금세 평상을 되찾았습니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자신의 마스크를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임대료 운동도 시작됐습니다.

화창한 봄이 왔지만, 시민들은 생필품이나 마스크 사러 나가는 길에 마주하는 봄꽃을 보는 것으로 올해 꽃놀이를 기꺼이 대신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연대는 비단 대구 자체만의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에서 온 대형 버스가 연일 대구시청과 여러 병원 앞에 물품을 내려놨습니다. 응원의 손편지도 매일 대구를 찾아왔습니다.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온 의료인들은 시민들에게 큰 힘이 돼 줬습니다. 119구급차가 줄지어 대구로 오는 장면은 시민 모두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계속된 응원 덕분에 시민들은 외롭지 않게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긴급 생계비 지원 등 그동안 대구시 안팎으로 여러 논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논란들 역시 서로에 대한 비난이 아닌, 조금 더 좋은 답을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대구시민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사이, 대구의 봄은 다 지나가 버렸고 악명 높은 '대프리카'의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많은 전문가가 예상하듯 재유행이 언제 또 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오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구시민들은 그 위기에 담담히 맞서 이겨낼 겁니다. 그것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대구시민의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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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 대구시민으로 살아가기
    • 입력 2020-04-13 17:04:06
    취재K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대구시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지도 두 달이 다 돼 갑니다.

그 사이 코로나19는 모든 대구 시민의 일상이 됐습니다. 코로나19의 포로가 된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너무 오랜 싸움에 지쳤는지 지난 10일 신규 확진자 0명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을 때도, 시민들은 선뜻 기뻐하진 못했습니다.

아직 종식은 먼 미래의 일이겠죠. 하지만 그 중간 어디 즈음일 지금, 50여 일을 되돌아보고 정리해보려 합니다.


위기는 폭풍처럼

대구에 코로나19 첫 환자가 나온 건 2월 18일입니다. 대구 첫 환자인 31번 환자의 동선이 공개됐고, 그 동선에 따라 지역사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확진자 한 명의 충격은 잠시, 확진자 숫자는 바로 다음 날 두 자릿수로 뛰었고, 닷새 만에 세 자릿수를 기록했습니다.

병원 응급실과 다중밀집시설 등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알려진 장소들이 폐쇄됐다 문을 열길 반복했습니다. 혼란 속에 급기야 2월 25일에는 지역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전체 휴업을 결정했습니다. 시장 측에 따르면, 이 시장의 휴업은 조선 중기 시장 개장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어디에 확진자가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퍼져나가며 도시를 잠식했습니다. 시민들은 어딜 가면 안 되는지, 어디가 위험한 곳인지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코로나19는 사람의 몸뿐만 나이라 마음에도 감염을 일으켰고 무지와 혼란은 더 큰 공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코로나19는 쉴 새 없이 대구 지역사회를 몰아쳤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표현이 이런 상황이구나, 느낀 많은 시민. 갑자기 긴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로 향한 발길을 끊어버렸습니다.


언제 끝나? 끝이 있긴 한 거야?

집단 발병의 시작이 된 신천지 대구 교회. 그 신도들을 찾아내고 격리하고, 또 찾아내고 격리하는 숨바꼭질이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확진자 증가 폭도 두 자릿수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첫 환자 발생 이후 꼭 한 달째인 3월 18일, 이번에는 요양병원에서 터졌습니다. 한사랑요양원을 시작으로 몇 군데 요양병원을 돌아가며 확진자가 계속 발생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병원인 제2미주병원에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과연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을까?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닐까?"라며 방역 당국에서도 회의감과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또 다른 고위험군을 찾아내고 그들을 전수검사를 하는 게, 괜한 짓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조금씩 제기됐습니다. 그런데도 또 전수 검사를 했고, 끊임없이 환자를 찾아내고 격리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달 들어 지난 10일 기준 0명, 11일 7명, 12일 다시 2명. 13일 3명. 긴 터널의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이긴 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연대

50일 넘는 코로나19 시대를 견뎌 온 힘은 연대였습니다. 시민 모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의식했든 아니든 서로서로 믿고 조금씩 기대면서 힘을 내 왔다고, 감히 자부하고 있습니다.

발병 초기 하루 이틀 생필품이 동나는가 싶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금세 평상을 되찾았습니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자신의 마스크를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임대료 운동도 시작됐습니다.

화창한 봄이 왔지만, 시민들은 생필품이나 마스크 사러 나가는 길에 마주하는 봄꽃을 보는 것으로 올해 꽃놀이를 기꺼이 대신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연대는 비단 대구 자체만의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에서 온 대형 버스가 연일 대구시청과 여러 병원 앞에 물품을 내려놨습니다. 응원의 손편지도 매일 대구를 찾아왔습니다.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온 의료인들은 시민들에게 큰 힘이 돼 줬습니다. 119구급차가 줄지어 대구로 오는 장면은 시민 모두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계속된 응원 덕분에 시민들은 외롭지 않게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긴급 생계비 지원 등 그동안 대구시 안팎으로 여러 논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논란들 역시 서로에 대한 비난이 아닌, 조금 더 좋은 답을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대구시민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사이, 대구의 봄은 다 지나가 버렸고 악명 높은 '대프리카'의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많은 전문가가 예상하듯 재유행이 언제 또 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오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구시민들은 그 위기에 담담히 맞서 이겨낼 겁니다. 그것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대구시민의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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