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코로나19 막는다며…‘독성 소독제’ 공중살포

입력 2020.04.14 (18:56) 수정 2020.04.15 (11: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드론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경남 하동군청으로부터 전화 1통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9,900여㎡ 규모의 벚꽃 군락지에 드론 방역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벚꽃길 위로 드론이 날아다니면서 소독약을 뿌린다는 모습을 상상하니, 호기심이 일어 곧바로 현장 취재에 나서게 됐습니다.

하동군청이 화개장터 벚꽃 군락지 주변에 드론 방역을 하고 있다.하동군청이 화개장터 벚꽃 군락지 주변에 드론 방역을 하고 있다.

드론 방역 '독성 소독제'...가습기 살균제로 쓰여 논란됐던 성분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방역에 쓰고 있는 소독제였습니다. 소독제의 주성분은 '염화벤잘코늄액(BKC)' 인체에 해로운 4급 암모늄화합물로 과거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쓰여 크게 논란이 됐던 성분입니다.

하동군청 드론 방역에 사용된 소독제하동군청 드론 방역에 사용된 소독제

실제로 공기 중의 염화벤잘코늄액을 들이마신 실험 쥐 대부분 심각한 독성 반응을 보이면서 체중이 빠졌다는 연구 논문이 있고, 지난 1월에는 이 소독약으로 드론 방역한 뒤 임진강에 물고기가 줄었다는 어민들의 주장도 나왔습니다. 환경부 또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소독제는 독성이 있어 물체를 닦는 데만 쓰고 공중에는 절대로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동군청은 코로나19 방역 작업을 한다며,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이 포함된 소독제를 공중 살포했던 것입니다. 하동군청이 방역 기간인 10여 일 동안 하루 12차례씩 사용한 소독제 양은 약 900ℓ. 당시 방역 대상지 주변에는 하루 평균 5천 명 안팎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됩니다.

"소독제 성분 조차 몰라"…지자체 곳곳서 무분별한 드론 방역

사실, 방역당국이 권장하는 코로나19 소독 대응 원칙은 소독약을 묻힌 천으로 일일이 물체를 닦는 것입니다. 소독약 공중 살포 방법은 방역 효과가 크게 떨어질 뿐 아니라, 흡입 위험이 커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동군청처럼 잘못된 방역 활동을 하는 지자체는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들어 드론 방역을 하는 지자체는 전국에 확인된 곳만 모두 14곳, 이 가운데 9곳은 공중 분사가 금지된 소독제를, 2곳은 환경부 승인 제품이지만 코로나19와 관련 없는 제품을, 나머지 3곳은 환경부가 승인조차 하지 않은 소독제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이 방역에 사용하는 소독제가 어떤 제품인지도 모른 채, 무분별하게 소독제를 공중 살포하고 있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연구사는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소독제들은 전부 동물이나 농작물과 접촉할 수 있는 조건에서는 사용하지 말라고 제품에 적혀있다"며 "드론으로 공중에 살포하면 당연히 접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지자체는 "드론 방역을 하면 사람들이 안심하는 효과가 있어서 실시하게 됐다"며 "인체에 해롭다거나 방역의 부작용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자체는 "사람이 일일이 닦는 방식으로 하면 방역 인력과 시간이 배로 늘어난다"며 "유해성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염병 예방 위한 '올바른 소독' .."압축 분사 말고 천에 소독제 묻혀 닦아야"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려는 지자체의 '선한 의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염병 확산을 막겠다는 절박함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법은 아닙니다. 특히, 국민 건강과 생명이 달린 문제라면 되돌리기 힘든 수준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8일,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 소독제품에 대한 사용 지침을 내놓았다.지난 8일,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 소독제품에 대한 사용 지침을 내놓았다.

다행히 KBS 보도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방역 소독 방법에 대한 지침을 개정하고 카드뉴스를 만들어 올바른 소독법을 알렸습니다. 지역 사회의 일상 소독법으로 소독제를 압축 분사해서 사용하지 않고, 소독제가 충분히 묻은 천이나 헝겊으로 물체의 표면을 닦으라는 내용입니다. 환경부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쓰이는 소독제 전수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소독제로 인한 2차 피해가 없도록 정부의 전방위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 기사] 코로나19 막는다며…‘독성 소독제’로 드론 방역

▶ ‘ 코로나19 확산 우려’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코로나19 막는다며…‘독성 소독제’ 공중살포
    • 입력 2020-04-14 18:56:01
    • 수정2020-04-15 11:39:05
    취재후·사건후
"저희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드론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경남 하동군청으로부터 전화 1통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9,900여㎡ 규모의 벚꽃 군락지에 드론 방역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벚꽃길 위로 드론이 날아다니면서 소독약을 뿌린다는 모습을 상상하니, 호기심이 일어 곧바로 현장 취재에 나서게 됐습니다.

하동군청이 화개장터 벚꽃 군락지 주변에 드론 방역을 하고 있다.
드론 방역 '독성 소독제'...가습기 살균제로 쓰여 논란됐던 성분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방역에 쓰고 있는 소독제였습니다. 소독제의 주성분은 '염화벤잘코늄액(BKC)' 인체에 해로운 4급 암모늄화합물로 과거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쓰여 크게 논란이 됐던 성분입니다.

하동군청 드론 방역에 사용된 소독제
실제로 공기 중의 염화벤잘코늄액을 들이마신 실험 쥐 대부분 심각한 독성 반응을 보이면서 체중이 빠졌다는 연구 논문이 있고, 지난 1월에는 이 소독약으로 드론 방역한 뒤 임진강에 물고기가 줄었다는 어민들의 주장도 나왔습니다. 환경부 또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소독제는 독성이 있어 물체를 닦는 데만 쓰고 공중에는 절대로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동군청은 코로나19 방역 작업을 한다며,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이 포함된 소독제를 공중 살포했던 것입니다. 하동군청이 방역 기간인 10여 일 동안 하루 12차례씩 사용한 소독제 양은 약 900ℓ. 당시 방역 대상지 주변에는 하루 평균 5천 명 안팎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됩니다.

"소독제 성분 조차 몰라"…지자체 곳곳서 무분별한 드론 방역

사실, 방역당국이 권장하는 코로나19 소독 대응 원칙은 소독약을 묻힌 천으로 일일이 물체를 닦는 것입니다. 소독약 공중 살포 방법은 방역 효과가 크게 떨어질 뿐 아니라, 흡입 위험이 커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동군청처럼 잘못된 방역 활동을 하는 지자체는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들어 드론 방역을 하는 지자체는 전국에 확인된 곳만 모두 14곳, 이 가운데 9곳은 공중 분사가 금지된 소독제를, 2곳은 환경부 승인 제품이지만 코로나19와 관련 없는 제품을, 나머지 3곳은 환경부가 승인조차 하지 않은 소독제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이 방역에 사용하는 소독제가 어떤 제품인지도 모른 채, 무분별하게 소독제를 공중 살포하고 있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연구사는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소독제들은 전부 동물이나 농작물과 접촉할 수 있는 조건에서는 사용하지 말라고 제품에 적혀있다"며 "드론으로 공중에 살포하면 당연히 접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지자체는 "드론 방역을 하면 사람들이 안심하는 효과가 있어서 실시하게 됐다"며 "인체에 해롭다거나 방역의 부작용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자체는 "사람이 일일이 닦는 방식으로 하면 방역 인력과 시간이 배로 늘어난다"며 "유해성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염병 예방 위한 '올바른 소독' .."압축 분사 말고 천에 소독제 묻혀 닦아야"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려는 지자체의 '선한 의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염병 확산을 막겠다는 절박함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법은 아닙니다. 특히, 국민 건강과 생명이 달린 문제라면 되돌리기 힘든 수준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8일,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 소독제품에 대한 사용 지침을 내놓았다.
다행히 KBS 보도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방역 소독 방법에 대한 지침을 개정하고 카드뉴스를 만들어 올바른 소독법을 알렸습니다. 지역 사회의 일상 소독법으로 소독제를 압축 분사해서 사용하지 않고, 소독제가 충분히 묻은 천이나 헝겊으로 물체의 표면을 닦으라는 내용입니다. 환경부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쓰이는 소독제 전수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소독제로 인한 2차 피해가 없도록 정부의 전방위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 기사] 코로나19 막는다며…‘독성 소독제’로 드론 방역

▶ ‘ 코로나19 확산 우려’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