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K] 세월호 6주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입력 2020.04.16 (20:51) 수정 2020.04.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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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바다를 하얗게 가로지르며 길게 뻗은 방파제, 오롯이 솟은 빨간 등대 앞으로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

["서울이요."]

["순천에서 왔어요.“]

["광주에서 왔어요.“]

진도 팽목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종일 발길이 이어집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6년이 흘렀지만 오늘도 이곳에는 여전히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마다 숙연함 속에 고개 숙여 묵념에 동참합니다.

나이도 성별도 지역도 다르지만, 세월호에 대한 마음은 한 마음 한 뜻입니다.

[김다영/서울시 관악구 : "왠지 무너지면서 막 오열을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직접 오지 못하다가 마음만은 계속 와 있다가 이번에는 조금 그래도 뭔가 다시 기억을 되새기고자 약간 용기를 내서 오게 됐습니다."]

[김용태/전남 해남군 : "다행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이게 오보가 되고 반대로 뒤집혀버린 상황이 돼버리니까 참 안타깝죠. 빨리 구조됐었으면 했는데요."]

난생처음 분향소를 찾은 어린이도 언니 오빠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는 함께 슬픔을 느낍니다.

[정예원/광주광역시 산정동/10살 : "지금은 이미 없지만 기쁘게 갔는데 슬프게 돌아가서 많이 안타깝고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하늘에서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가 난 지 6년이 지난 지금.

희생자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고(故) 편다인 양의 어머니 김미영 씨는 한 해 전 경기 안산에서 익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아픔이 수그러들까, 하던 일을 모두 접고 고향을 찾았지만 가슴에 묻은 자식의 흔적은 쉽사리 씻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집안 구석구석에는 딸의 흔적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쓰라린 마음은 감출 수 없습니다. 

또다시 아픔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김미영/고 편다인 양 어머니 : "작은 아이는 몇 살이지 하면 22살 하는데 우리 다인이는 아직도 18살인 거에요. 저한테는...그게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란 모습이 없잖아요. 그게 마지막이니까 거기에 멈춰 있는 것 같아요. 옛말에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다지만 자식에 대한 것은 해결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정말로..."]

날마다 그리움과 맞서야 하는 건 아직 안산에서 살고 있는 다른 희생자 유족도 마찬가지.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서로를 다독이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합니다. 

[최순화/고 이창현 군 어머니 : "동력이 줄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게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나 우리 아이들이 있고 애들의 친구들이 있고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저희들은 위축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계속 활동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세월호 추모 공간으로 남아있는 전주 풍남문 분향소. 

평일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교대로 지키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병무 씨는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말을 자주 듣지만 결코 이곳을 쉽게 떠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병무/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 "수백 만의 전국의 시민들이, 국민들이 오고 가는 한옥마을에서 분향소 하나쯤 우리가 유지하는 데 노력을 같이 해야 되지 않냐 이런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죠./ 그동안 해오던 것을 끝까지 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

세태의 흐름 속에 세월이 지나 행여 잊혀지지 않을까?

삼백 네 명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의 노력은 우리 고장에서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혈연도 지연도 없지만 전북의 어른들은 누구나 안전한 나라를 바라며 아침 출근길에 피케팅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정혜란/전주시 효자동 : "저희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세상이 지금보다는 안전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와야 되기 때문에..."]

손수 지어 낭송하는 추모 시부터, 직접 만들어 함께 부르는 추모 노래까지.

뜻있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날의 희생을 기리는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강양오/주부 : "'그런 사건이 있었지, 그래 마음 아프겠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고 또 그분들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 위로해야 할지, 그런 방법들을 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선미/교사 : "꿈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를 만나면서 그런 그리운 마음들을 표현하고자 플루트의 선율로 녹여냈습니다."]

[김해원/고등학교 1학년 : "잊지 않을 테니까 언니 오빠들은 거기서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6년이 지나도, 60년이 지나도 세상을 먼저 떠난 세월호 희생자들의 애틋함과 그리움은 애절한 시와 노래 속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KBS 뉴스 길금희입니다.

[앵커]

현장 케이, 클릭 현장 속으로 시간입니다.

6년 전 오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KBS 뉴스가 박근혜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희생자 가족을 외면했다는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이후 KBS는 새노조 파업 등 진심어린 반성의 시간을 거쳐 세월호의 진상 규명과 아픔 극복에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오늘, 세월호 6주기를 맞아 길금희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길 기자, 진도 팽목항에 직접 다녀왔죠? 

세월호 참사 6년이 지났는데, 현재 그곳의 분위기 좀 전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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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K] 세월호 6주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입력 2020-04-16 20:51:41
    • 수정2020-04-17 15:47:30
    뉴스7(전주)
짙푸른 바다를 하얗게 가로지르며 길게 뻗은 방파제, 오롯이 솟은 빨간 등대 앞으로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 ["서울이요."] ["순천에서 왔어요.“] ["광주에서 왔어요.“] 진도 팽목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종일 발길이 이어집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6년이 흘렀지만 오늘도 이곳에는 여전히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마다 숙연함 속에 고개 숙여 묵념에 동참합니다. 나이도 성별도 지역도 다르지만, 세월호에 대한 마음은 한 마음 한 뜻입니다. [김다영/서울시 관악구 : "왠지 무너지면서 막 오열을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직접 오지 못하다가 마음만은 계속 와 있다가 이번에는 조금 그래도 뭔가 다시 기억을 되새기고자 약간 용기를 내서 오게 됐습니다."] [김용태/전남 해남군 : "다행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이게 오보가 되고 반대로 뒤집혀버린 상황이 돼버리니까 참 안타깝죠. 빨리 구조됐었으면 했는데요."] 난생처음 분향소를 찾은 어린이도 언니 오빠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는 함께 슬픔을 느낍니다. [정예원/광주광역시 산정동/10살 : "지금은 이미 없지만 기쁘게 갔는데 슬프게 돌아가서 많이 안타깝고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하늘에서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가 난 지 6년이 지난 지금. 희생자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고(故) 편다인 양의 어머니 김미영 씨는 한 해 전 경기 안산에서 익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아픔이 수그러들까, 하던 일을 모두 접고 고향을 찾았지만 가슴에 묻은 자식의 흔적은 쉽사리 씻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집안 구석구석에는 딸의 흔적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쓰라린 마음은 감출 수 없습니다.  또다시 아픔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김미영/고 편다인 양 어머니 : "작은 아이는 몇 살이지 하면 22살 하는데 우리 다인이는 아직도 18살인 거에요. 저한테는...그게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란 모습이 없잖아요. 그게 마지막이니까 거기에 멈춰 있는 것 같아요. 옛말에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다지만 자식에 대한 것은 해결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정말로..."] 날마다 그리움과 맞서야 하는 건 아직 안산에서 살고 있는 다른 희생자 유족도 마찬가지.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서로를 다독이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합니다.  [최순화/고 이창현 군 어머니 : "동력이 줄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게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나 우리 아이들이 있고 애들의 친구들이 있고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저희들은 위축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계속 활동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세월호 추모 공간으로 남아있는 전주 풍남문 분향소.  평일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교대로 지키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병무 씨는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말을 자주 듣지만 결코 이곳을 쉽게 떠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병무/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 "수백 만의 전국의 시민들이, 국민들이 오고 가는 한옥마을에서 분향소 하나쯤 우리가 유지하는 데 노력을 같이 해야 되지 않냐 이런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죠./ 그동안 해오던 것을 끝까지 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 세태의 흐름 속에 세월이 지나 행여 잊혀지지 않을까? 삼백 네 명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의 노력은 우리 고장에서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혈연도 지연도 없지만 전북의 어른들은 누구나 안전한 나라를 바라며 아침 출근길에 피케팅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정혜란/전주시 효자동 : "저희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세상이 지금보다는 안전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와야 되기 때문에..."] 손수 지어 낭송하는 추모 시부터, 직접 만들어 함께 부르는 추모 노래까지. 뜻있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날의 희생을 기리는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강양오/주부 : "'그런 사건이 있었지, 그래 마음 아프겠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고 또 그분들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 위로해야 할지, 그런 방법들을 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선미/교사 : "꿈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를 만나면서 그런 그리운 마음들을 표현하고자 플루트의 선율로 녹여냈습니다."] [김해원/고등학교 1학년 : "잊지 않을 테니까 언니 오빠들은 거기서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6년이 지나도, 60년이 지나도 세상을 먼저 떠난 세월호 희생자들의 애틋함과 그리움은 애절한 시와 노래 속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KBS 뉴스 길금희입니다. [앵커] 현장 케이, 클릭 현장 속으로 시간입니다. 6년 전 오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KBS 뉴스가 박근혜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희생자 가족을 외면했다는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이후 KBS는 새노조 파업 등 진심어린 반성의 시간을 거쳐 세월호의 진상 규명과 아픔 극복에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오늘, 세월호 6주기를 맞아 길금희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길 기자, 진도 팽목항에 직접 다녀왔죠?  세월호 참사 6년이 지났는데, 현재 그곳의 분위기 좀 전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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