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에 유령 슈퍼만 7개…‘담배권’이 뭐기에?

입력 2020.04.17 (07:01) 수정 2020.04.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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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동구 한 신축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지하 1층에 지상 2층 규모의 상가도 함께 들어섰는데, 최근 들어 상가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층 공실마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간판을 하나둘 걸리더니, 한 달 사이 1층에 모두 7개나 들어섰습니다. 입주자 온라인 카페에선 단지 상가가 '슈퍼 천국'이 됐다며 이유를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간판과 매대만 설치된 '유령슈퍼'...한 상가에 점포만 7개

실제로 상가를 가보니, 건물 1층에 슈퍼마켓 7곳이 간판이 걸렸는데, 모두 운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판 이름만 다를 뿐 문은 하나같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상가에 있는 ‘유령 슈퍼’ 사진 모음상가에 있는 ‘유령 슈퍼’ 사진 모음

과자나 컵라면 몇 개만 배치된 매대와 계산대만이 덩그러니 있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점포 안 모습은 황량할 뿐입니다. 주민들은 이런 '유령 슈퍼'가 생긴 건 한 달이 채 안 됐다고 합니다.

'신축상가 담배소매인 지정 공고'가 이유...인근 담배 판매 독점

인근 부동산 등에 확인해보니 그 이유는 '담배권' 때문이었습니다. 담배권은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된다'는 의미로, 이 자격이 있는 자만 담배를 팔 수 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100m 이상마다 담배소매인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이 상가의 경우 담배 판매를 독점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입니다.

담배의 매출 비중도 상당한데요. 매년 편의점 매출의 40%가 담배일 정돕니다. 담배를 팔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단골 확보에 영향을 받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업주 대부분이 담배권을 얻으려 합니다. 특히 아직 아무런 편의점이나 슈퍼가 들어오지 않은 신축 상가에서는 담배권 하나를 두고 여러 사람이 경합을 하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담배사업법 시행규칙담배사업법 시행규칙

그럴 때 현행법 시행규칙은 구청 공고로 신청자를 모으고 실사 후 추첨을 통해 담배소매인을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이 신축 상가도 담당구청인 강동구청이 지난달 27일 '해당 상가의 담배소매인을 지정할 계획이니 원하는 사람들은 신청하라'는 공고를 올렸습니다.

'점포를 갖춰야 하는' 신청 조건 ...다음주면 한 곳만 남을 슈퍼들

신청만 하면 되지 왜 굳이 슈퍼마켓 간판을 걸고 매대에 과자들을 갖다놓고 운영 중인 것처럼 외관을 꾸며놓았을까요? 신청조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청조건 중엔 '점포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적어도 당장 운영이 가능할 수준으로 점포를 갖춰야만 이후 실사 등을 통과해 추첨대상자가 된다는 겁니다.

20년 넘게 편의점을 해온 한 점주는 "담배권을 얻기 위해 '유령 슈퍼'를 만드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면서, 구청의 서류 요건을 맞추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업주가 여러 개의 유령 슈퍼를 한 상가 안에 개설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합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담배권 지정 과정에서 편법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사전 방지를 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신청조건신청조건

담배권으로 인한 과잉 경쟁이 만들어낸 '유령 슈퍼'들, 보통 '담배권'을 얻은 한 곳만 빼곤 추첨이 끝나는 대로 점포를 철수한다고 합니다. 이곳 강동구의 유령 슈퍼들도 다음 주 선정이 되면 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구청의 요건만을 맞추기 위해 생겼다 사라지는 유령 슈퍼. 지금도 새로 생기는 상가마다 점포가 생겼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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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가에 유령 슈퍼만 7개…‘담배권’이 뭐기에?
    • 입력 2020-04-17 07:01:22
    • 수정2020-04-17 08:51:11
    취재K
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동구 한 신축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지하 1층에 지상 2층 규모의 상가도 함께 들어섰는데, 최근 들어 상가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층 공실마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간판을 하나둘 걸리더니, 한 달 사이 1층에 모두 7개나 들어섰습니다. 입주자 온라인 카페에선 단지 상가가 '슈퍼 천국'이 됐다며 이유를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간판과 매대만 설치된 '유령슈퍼'...한 상가에 점포만 7개

실제로 상가를 가보니, 건물 1층에 슈퍼마켓 7곳이 간판이 걸렸는데, 모두 운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판 이름만 다를 뿐 문은 하나같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상가에 있는 ‘유령 슈퍼’ 사진 모음
과자나 컵라면 몇 개만 배치된 매대와 계산대만이 덩그러니 있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점포 안 모습은 황량할 뿐입니다. 주민들은 이런 '유령 슈퍼'가 생긴 건 한 달이 채 안 됐다고 합니다.

'신축상가 담배소매인 지정 공고'가 이유...인근 담배 판매 독점

인근 부동산 등에 확인해보니 그 이유는 '담배권' 때문이었습니다. 담배권은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된다'는 의미로, 이 자격이 있는 자만 담배를 팔 수 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100m 이상마다 담배소매인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이 상가의 경우 담배 판매를 독점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입니다.

담배의 매출 비중도 상당한데요. 매년 편의점 매출의 40%가 담배일 정돕니다. 담배를 팔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단골 확보에 영향을 받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업주 대부분이 담배권을 얻으려 합니다. 특히 아직 아무런 편의점이나 슈퍼가 들어오지 않은 신축 상가에서는 담배권 하나를 두고 여러 사람이 경합을 하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그럴 때 현행법 시행규칙은 구청 공고로 신청자를 모으고 실사 후 추첨을 통해 담배소매인을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이 신축 상가도 담당구청인 강동구청이 지난달 27일 '해당 상가의 담배소매인을 지정할 계획이니 원하는 사람들은 신청하라'는 공고를 올렸습니다.

'점포를 갖춰야 하는' 신청 조건 ...다음주면 한 곳만 남을 슈퍼들

신청만 하면 되지 왜 굳이 슈퍼마켓 간판을 걸고 매대에 과자들을 갖다놓고 운영 중인 것처럼 외관을 꾸며놓았을까요? 신청조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청조건 중엔 '점포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적어도 당장 운영이 가능할 수준으로 점포를 갖춰야만 이후 실사 등을 통과해 추첨대상자가 된다는 겁니다.

20년 넘게 편의점을 해온 한 점주는 "담배권을 얻기 위해 '유령 슈퍼'를 만드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면서, 구청의 서류 요건을 맞추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업주가 여러 개의 유령 슈퍼를 한 상가 안에 개설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합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담배권 지정 과정에서 편법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사전 방지를 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신청조건
담배권으로 인한 과잉 경쟁이 만들어낸 '유령 슈퍼'들, 보통 '담배권'을 얻은 한 곳만 빼곤 추첨이 끝나는 대로 점포를 철수한다고 합니다. 이곳 강동구의 유령 슈퍼들도 다음 주 선정이 되면 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구청의 요건만을 맞추기 위해 생겼다 사라지는 유령 슈퍼. 지금도 새로 생기는 상가마다 점포가 생겼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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