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사외이사② 특수관계·부적절 겸임…그래도 ‘무사통과’ 사외이사들

입력 2020.04.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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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같은 회사에 재직한 사외이사의 연임을 금지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월 시행됐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난달 주주총회를 열어 새 이사진 선임을 마무리했다. KBS는 CEO스코어와 함께 새롭게 구성된 30대 그룹의 사외이사를 분석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주주총회를 개최한 188개 회사)

'터줏대감 금지법'도 못 막은 사외이사들

올해 주총에서는 장기 연임한 사외이사들이 대거 물갈이됐다. 그러나 기업과의 특수관계 또는 이해충돌의 우려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외이사들이 상당 수 다른 기업에 다시 선임됐다. 의결권 자문사나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기업들이 '지켜낸' 사외이사들은 누구일까.

2016년부터 4년 동안 롯데하이마트의 사외이사로 재직한 이장영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올해 롯데지주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 부원장은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김앤장은 신동빈 롯데 회장의 횡령과 배임 관련 형사재판을 변호했고, 2017년 롯데 4개 계열사의 분할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법률 자문을 수행했다.

의결권 자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회사의 최대주주와 자문계약이나 법률대리 등을 수행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로 독립성이 부족하다며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도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한 자에 해당"한다며 지침(표1)에 따라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인 권오곤 전 대구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국민연금과 CGCG는 같은 이유로 '반대'를 표시했지만 롯데지주에서 두 신임사외이사 선임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CJ ENM 사외이사로 선임된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효성 사외이사 시절부터 논란이었다. CGCG는 최 회장이 "2014년 3월부터 효성의 이사로 재직했지만 같은해 조석래 이사가 분식회계로 증권선물위의 해임권고를 받았는데도 이사해임 논의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은 총 8천억 원대의 횡령과 배임과 탈세,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2014년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최중경 사외이사가 포함된 효성 이사회는 2016년 조 회장의 재선임안과 이사보수 한도 100억원 안건 등을 주주총회에 올려 모두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CGCG는 또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비상장회사의 회계감리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CJ ENM은 다수의 비상장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어 이해상충의 우려도 있다"며 최 회장의 사외이사 선임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최중경 회장은 CJ ENM의 사외이사 뿐 아니라 감사위원으로도 선임되었다.

'겸임' 사외이사 30대 그룹내 29명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 자리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대거 등장했다. 상법상 사외이사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최대 두 곳까지 겸임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회사의 '러브콜'을 받고 임기가 남은 기존 사외이사직을 중도 퇴임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CEO스코어 조사 결과 30대 그룹 내 사외이사 가운데 2곳 이상 사외이사직을 겸임하는 경우는 29명에 달했다. 한진칼 신임 사외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기존에 맡고 있던 SK텔레콤과 현대캐피탈 가운데 현대캐피탈 사외이사에서 중도 퇴임했다. 한진칼이 새 사외이사로 선임한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과 이동명 전 의정부지방법원장도 이미 다른 두 곳의 사외이사로 일하다가 임기 만료 등으로 한 곳의 자리를 옮긴 케이스다.

조명현 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원장은 2018년부터 롯데건설 사외이사를 맡았고 올해 대한항공의 신임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이자 국제기업지배구조연대 이사로 네 개가 넘는 직함을 갖게 됐다. 국민연금은 "이해상충에 따라 기금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출석률 낮고 '부적절 겸임' 해도 무사통과?

올해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 권고는 전체적으로 줄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올해 사외이사 선임 안건 반대율은 15.9%로 지난해(23.7%)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상법 시행령 개정 영향이 컸다. KCGS는 "장기연임으로 인해 경영진과 독립성 유지가 의심되는 자가 후보로 상정되는 사례가 대폭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출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에 대한 반대 건수는 2배 이상 늘었고, 기업가치 훼손과 부적절한 겸임 등의 사유로 반대한 사외이사의 수도 오히려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KCGS는 "여러 경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지배주주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찬성"만 드는 사외이사들...견제는 요원.

삼성물산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9년 이사회는 7차례 열렸고 사외이사 5명은 빠짐없이 참석해 모든 안건에 '찬성'을 표시했다.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 등 다른 회의를 포함해 이들은 10회 안팎의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이 지난해 받은 보수는 일반 사외이사 2명은 1인당 평균 2억5천9백만 원, 감사위원회 위원인 3명은 1인당 평균 7천8백만 원이었다.

CEO스코어가 집계한 국내 59개 대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267곳의 지난해 사외이사의 안건 찬성률은 99.59%. 2769회차 이사회에서 6332건의 안건을 다뤘는데, 이 가운데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반대(보류, 기권 포함)표를 던진 안건은 26건에 불과했다. 기업별로는 267곳 중 253곳(94.8%)의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서는 각 기업들에 획일적인 기준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독립 사외이사제' 등의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잘못된 결정으로 주주들에게 손해가 생겼을 때, 회사가 선임한 독립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기업에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한해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을 받는 사외이사들을 두고 경영진 견제를 위해 따로 준법감시위원회와 같은 '옥상옥' 기구를 설치해야 하는 한국적 현실의 개선을 위해서는 사외이사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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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7 16:07:19
    취재K
오랜 기간 같은 회사에 재직한 사외이사의 연임을 금지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월 시행됐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난달 주주총회를 열어 새 이사진 선임을 마무리했다. KBS는 CEO스코어와 함께 새롭게 구성된 30대 그룹의 사외이사를 분석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주주총회를 개최한 188개 회사)

'터줏대감 금지법'도 못 막은 사외이사들

올해 주총에서는 장기 연임한 사외이사들이 대거 물갈이됐다. 그러나 기업과의 특수관계 또는 이해충돌의 우려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외이사들이 상당 수 다른 기업에 다시 선임됐다. 의결권 자문사나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기업들이 '지켜낸' 사외이사들은 누구일까.

2016년부터 4년 동안 롯데하이마트의 사외이사로 재직한 이장영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올해 롯데지주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 부원장은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김앤장은 신동빈 롯데 회장의 횡령과 배임 관련 형사재판을 변호했고, 2017년 롯데 4개 계열사의 분할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법률 자문을 수행했다.

의결권 자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회사의 최대주주와 자문계약이나 법률대리 등을 수행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로 독립성이 부족하다며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도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한 자에 해당"한다며 지침(표1)에 따라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인 권오곤 전 대구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국민연금과 CGCG는 같은 이유로 '반대'를 표시했지만 롯데지주에서 두 신임사외이사 선임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CJ ENM 사외이사로 선임된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효성 사외이사 시절부터 논란이었다. CGCG는 최 회장이 "2014년 3월부터 효성의 이사로 재직했지만 같은해 조석래 이사가 분식회계로 증권선물위의 해임권고를 받았는데도 이사해임 논의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은 총 8천억 원대의 횡령과 배임과 탈세,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2014년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최중경 사외이사가 포함된 효성 이사회는 2016년 조 회장의 재선임안과 이사보수 한도 100억원 안건 등을 주주총회에 올려 모두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CGCG는 또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비상장회사의 회계감리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CJ ENM은 다수의 비상장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어 이해상충의 우려도 있다"며 최 회장의 사외이사 선임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최중경 회장은 CJ ENM의 사외이사 뿐 아니라 감사위원으로도 선임되었다.

'겸임' 사외이사 30대 그룹내 29명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 자리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대거 등장했다. 상법상 사외이사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최대 두 곳까지 겸임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회사의 '러브콜'을 받고 임기가 남은 기존 사외이사직을 중도 퇴임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CEO스코어 조사 결과 30대 그룹 내 사외이사 가운데 2곳 이상 사외이사직을 겸임하는 경우는 29명에 달했다. 한진칼 신임 사외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기존에 맡고 있던 SK텔레콤과 현대캐피탈 가운데 현대캐피탈 사외이사에서 중도 퇴임했다. 한진칼이 새 사외이사로 선임한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과 이동명 전 의정부지방법원장도 이미 다른 두 곳의 사외이사로 일하다가 임기 만료 등으로 한 곳의 자리를 옮긴 케이스다.

조명현 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원장은 2018년부터 롯데건설 사외이사를 맡았고 올해 대한항공의 신임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이자 국제기업지배구조연대 이사로 네 개가 넘는 직함을 갖게 됐다. 국민연금은 "이해상충에 따라 기금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출석률 낮고 '부적절 겸임' 해도 무사통과?

올해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 권고는 전체적으로 줄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올해 사외이사 선임 안건 반대율은 15.9%로 지난해(23.7%)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상법 시행령 개정 영향이 컸다. KCGS는 "장기연임으로 인해 경영진과 독립성 유지가 의심되는 자가 후보로 상정되는 사례가 대폭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출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에 대한 반대 건수는 2배 이상 늘었고, 기업가치 훼손과 부적절한 겸임 등의 사유로 반대한 사외이사의 수도 오히려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KCGS는 "여러 경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지배주주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찬성"만 드는 사외이사들...견제는 요원.

삼성물산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9년 이사회는 7차례 열렸고 사외이사 5명은 빠짐없이 참석해 모든 안건에 '찬성'을 표시했다.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 등 다른 회의를 포함해 이들은 10회 안팎의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이 지난해 받은 보수는 일반 사외이사 2명은 1인당 평균 2억5천9백만 원, 감사위원회 위원인 3명은 1인당 평균 7천8백만 원이었다.

CEO스코어가 집계한 국내 59개 대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267곳의 지난해 사외이사의 안건 찬성률은 99.59%. 2769회차 이사회에서 6332건의 안건을 다뤘는데, 이 가운데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반대(보류, 기권 포함)표를 던진 안건은 26건에 불과했다. 기업별로는 267곳 중 253곳(94.8%)의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서는 각 기업들에 획일적인 기준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독립 사외이사제' 등의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잘못된 결정으로 주주들에게 손해가 생겼을 때, 회사가 선임한 독립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기업에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한해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을 받는 사외이사들을 두고 경영진 견제를 위해 따로 준법감시위원회와 같은 '옥상옥' 기구를 설치해야 하는 한국적 현실의 개선을 위해서는 사외이사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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