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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쿵’…위험천만 썩은 가로수
입력 2020.04.22 (14:25) 취재K
멀쩡히 서 있던 가로수 '쿵'..이것은 영화인가? 꿈인가?

지난 9일 오후 대전 도심을 걷던 시민들은 귀청을 찢는 굉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높이 10m의 버즘나무(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서서히 기울더니 순식간에 도로로 쓰러진 것입니다. 이상한 조짐이 보인 지 불과 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바로 옆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가 심하게 부서졌고, 근처를 지나던 시내버스는 급정거해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했습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는 재래시장이 있어 수많은 사람과 차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인명피해가 없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황당한 사고라고요?..흔하디 흔한 '가로수 쓰러짐'


멀쩡히 서 있던 가로수가 쓰러지는 사고,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황당한 광경이지만 사실 이런 사고는 드물지 않습니다. 대전만 해도 지난 2016년 10월 대전시 부사동에서 길이 20m의 대형 가로수가 쓰러져 달리던 승용차와 부딪쳤고, 그해 8월에는 대전시 용문동에서 가로수가 넘어져 주차된 차량을 덮치기도 했습니다. 2017년 들어서도 대전에서만 가로수 쓰러짐 사고가 다섯 건이나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가로수 쓰러짐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쓰러진 가로수의 수종이 모두 '버즘나무'라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가로수 쓰러짐 사고도 대부분 버즘나무 가로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버즘나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제 살 만큼 살았다..수령 다 한 가로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즘나무는 세계 3대 가로수의 하나로 꼽힙니다. 생육이 빠르고 매연이 많은 가혹한 도심 환경에서도 잘 자랍니다. 몸통만 남을 정도로 심하게 가지치기 해도 봄이면 어김없이 푸릇푸릇하게 잎이 돋아납니다.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정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면 가로수로서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버즘나무를 가로수로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도심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자연에서만큼은 오래 살지 못합니다. 버즘나무는 자연상태에서 보통 100년 이상 살지만 도심에서는 50~60년이면 수명이 다 된 걸로 봅니다. 버즘나무는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1960년대 초 본격적으로 도심이 형성되던 시기에 전국 주요 도시에 집중적으로 식재됐는데,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수명이 거의 다한 셈입니다.

곳곳에 썩은 가로수..실태조사 시급


가로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부 상태를 살펴봤습니다. 비파괴 장비는 음파가 내부를 통과하는 속도로 조직의 손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짙은 갈색은 음파의 통과 속도가 빠름을, 보라색은 내부 조직이 썩어 통과 속도가 느림을 나타냅니다. 취재진이 살펴본 가로수 상당수가 내부 1/4 정도는 보라색으로 표시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는 썩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썩었어도 생명력이 강한 버즘나무는 가지도 잘 자라고 잎도 무성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다 썩어 쓰러질 지경이 돼도 육안으로는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치단체는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 버즘나무를 제거하고 벚나무나 이팝나무 등으로 수종을 바꾸고 있지만, 대전에만 버즘나무 가로수가 수천 그루에 달해 예산과 인력문제 등으로 한꺼번에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해 위험 가로수를 구분하고, 신속하게 노후 가로수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대책이 더 늦어지면 앞으로 길을 걸을 때 '차'조심' 대신 어쩌면 '가로수 조심'하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 예고 없이 ‘쿵’…위험천만 썩은 가로수
    • 입력 2020-04-22 14:25:22
    취재K
멀쩡히 서 있던 가로수 '쿵'..이것은 영화인가? 꿈인가?

지난 9일 오후 대전 도심을 걷던 시민들은 귀청을 찢는 굉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높이 10m의 버즘나무(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서서히 기울더니 순식간에 도로로 쓰러진 것입니다. 이상한 조짐이 보인 지 불과 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바로 옆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가 심하게 부서졌고, 근처를 지나던 시내버스는 급정거해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했습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는 재래시장이 있어 수많은 사람과 차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인명피해가 없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황당한 사고라고요?..흔하디 흔한 '가로수 쓰러짐'


멀쩡히 서 있던 가로수가 쓰러지는 사고,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황당한 광경이지만 사실 이런 사고는 드물지 않습니다. 대전만 해도 지난 2016년 10월 대전시 부사동에서 길이 20m의 대형 가로수가 쓰러져 달리던 승용차와 부딪쳤고, 그해 8월에는 대전시 용문동에서 가로수가 넘어져 주차된 차량을 덮치기도 했습니다. 2017년 들어서도 대전에서만 가로수 쓰러짐 사고가 다섯 건이나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가로수 쓰러짐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쓰러진 가로수의 수종이 모두 '버즘나무'라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가로수 쓰러짐 사고도 대부분 버즘나무 가로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버즘나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제 살 만큼 살았다..수령 다 한 가로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즘나무는 세계 3대 가로수의 하나로 꼽힙니다. 생육이 빠르고 매연이 많은 가혹한 도심 환경에서도 잘 자랍니다. 몸통만 남을 정도로 심하게 가지치기 해도 봄이면 어김없이 푸릇푸릇하게 잎이 돋아납니다.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정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면 가로수로서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버즘나무를 가로수로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도심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자연에서만큼은 오래 살지 못합니다. 버즘나무는 자연상태에서 보통 100년 이상 살지만 도심에서는 50~60년이면 수명이 다 된 걸로 봅니다. 버즘나무는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1960년대 초 본격적으로 도심이 형성되던 시기에 전국 주요 도시에 집중적으로 식재됐는데,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수명이 거의 다한 셈입니다.

곳곳에 썩은 가로수..실태조사 시급


가로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부 상태를 살펴봤습니다. 비파괴 장비는 음파가 내부를 통과하는 속도로 조직의 손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짙은 갈색은 음파의 통과 속도가 빠름을, 보라색은 내부 조직이 썩어 통과 속도가 느림을 나타냅니다. 취재진이 살펴본 가로수 상당수가 내부 1/4 정도는 보라색으로 표시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는 썩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썩었어도 생명력이 강한 버즘나무는 가지도 잘 자라고 잎도 무성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다 썩어 쓰러질 지경이 돼도 육안으로는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치단체는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 버즘나무를 제거하고 벚나무나 이팝나무 등으로 수종을 바꾸고 있지만, 대전에만 버즘나무 가로수가 수천 그루에 달해 예산과 인력문제 등으로 한꺼번에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해 위험 가로수를 구분하고, 신속하게 노후 가로수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대책이 더 늦어지면 앞으로 길을 걸을 때 '차'조심' 대신 어쩌면 '가로수 조심'하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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