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예산 4천만 원 들인 ‘연말 예산 털기용’ 사업?

입력 2020.04.22 (16:12) 수정 2020.04.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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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KBS로 제보가 하나 왔습니다. 서울시의 공직 유관단체인 '서울테크노파크'에서 지난 2018년 말, 중고차 업자들을 돕기 위해 서울시 예산 수천만 원을 받아 만든 웹사이트가 '먹통'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울테크노파크에서 만든 ‘Janganpyeong Used Car Exporter’ 사이트 캡처.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중고차 매물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만든 사이트다.서울테크노파크에서 만든 ‘Janganpyeong Used Car Exporter’ 사이트 캡처.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중고차 매물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만든 사이트다.

실제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주소만 있을 뿐, 클릭은 안 되고 자동차 매물도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었습니다. SM5 차량에 아반테 사진이 붙어 있는가 하면, 기아 스포티지 사진에는 벤츠사의 차량이 올려져 있습니다. 차량 가격도 10만 달러로 동일하게 적혀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 만 겁니다. 중고차 주문란에도 역시 주문서 모양만 있을 뿐, 클릭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홈페이지의 외형을 갖추었지만, 실상은 그냥 하나의 '그림(이미지) 파일'이었습니다.

■ 서울시 사업 위탁받아 수행…4,450만 원 예산 사용

서울테크노파크는 서울시와 중기부,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출연해 만든 공직 유관단체입니다. 정부 업무를 받아 수행하는 단체입니다. 서울시로부터 연간 12억 원 정도의 예산을 받습니다.

위탁받은 업무 중에는 '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라는 기관을 운영하는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장안평 지역에 커다란 중고차 시장이 있는 만큼, 이 일대의 자동차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관인데요. 쉽게 말해,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서울시가 직접 하기 어려운 세세한 지역사회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민간 기관입니다.

서울테크노파크의 감사보고서서울테크노파크의 감사보고서

서울테크노파크의 내부 감사 결과 드러난 문제의 사업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 장안평 시장의 중고차 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다국어 웹사이트 구축
(2) 자동차 수출을 특화할 수 있는 웹사이트 구축
(3) 장안평 중고차수출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각각 1,650만 원, 1,000만 원, 1,800만 원이 소요돼 총 4,450만 원의 서울시 예산을 사용했습니다.

서울테크노파크의 감사는 각각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에서 위탁하지 않고 직접 2억 4,000만 원을 들여 만든 '장안평 자동차산업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용역사업'에 같은 성격의 사업이 포함돼 있는데도, 서울테크노파크에서 따로 세 가지 사업을 발주하여 중복이 됐다고 봤습니다.

또, 웹사이트에서 부품 정보를 알 수 없거나, 사진과 정보가 다르고, 상품 주문 요청 시 클릭이 안 돼 주문조차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역시 업체별 판매 품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 "연말 오니 진행한 예산털기식 사업…예산 낭비 너무 심해"

KBS 취재팀을 만난 제보자들은 이 사업이 2018년 말, "연말이 다가오는데 사업비가 많이 남아 예산을 털기 위해 진행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날림식으로 진행될 거라는 건 내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라는 겁니다.

"해마다 진행되는 사업과 내용을 봤을 때 같은 서울 시민으로서 한탄스러운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제대로 진행되는 거 같지도 않고, 사업 예산도 너무 낭비성으로 쓰는 거 같고…. 이제 그걸 지속적으로 보다 보니까"

서울시 위탁사업은 연초에 매년 쓸 예산을 미리 보고한 뒤 서울시에서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산을 다 쓰지 않으면 나중에 줄어들 수도 있고, 쓰지 않은 만큼 일을 안 했다고 평가받아, 연말이 되면 모두 집행하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기관 자체 감사에서 지적됐는데도 불구하고 기관 내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덮는 것 같다며 제보 이유를 밝혔습니다.

■ 서울테크노파크 "매매조합이 요청해서 만든 홈페이지"…매매조합 "요청한 적 없어"

서울테크노파크 측은 감사 내용에 대해 이사회에 올리긴 했다면서도, 이사회에서 차기 감사를 임명해 재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업의 담당자는 이 홈페이지가 자동차 상점들의 조합인 '서울장안평자동차매매사업조합'의 요청으로 만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에서 데이터를 올리지 않아 1년 넘게 홈페이지가 그대로"라고 말했습니다. 홈페이지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까지가 테크노파크에서 들인 예산에 포함된 거라는 설명입니다.

그럼 왜 그동안 매매조합 측이 매물을 올리지 않는지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는, "계속 요청했는데, 협동조합이 법인체를 만드는 과정을 진행 중이고, 업무를 진행해 줘야 저희(테크노마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21일 만난 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상인. 서울테크노파크가 만든 홈페이지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취재진이 21일 만난 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상인. 서울테크노파크가 만든 홈페이지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팀이 접촉한 매매조합 관계자는 매물을 올리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홈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먼저 요청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관계자는 "장안평 매매 시장 내에 수출업자가 많지 않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장안평 중고차시장의 상인들 역시, 장안평에선 수출 물량이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만나본 상인들은 중고차 매물로 유명한 사기업의 홈페이지를 주로 사용한다며 이런 홈페이지는 처음 본다고 전했습니다.

■ 예산 준 서울시, 위탁기관 평가에서 A+ 등급 부여…"개별 사업에 대해 승인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서울시는 이 사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서울시는 지난해 말 민간위탁기관에 대한 종합성과평가에서 서울테크노파크에 대해 80점을 줬으며, 특히 '당초 계획을 고려한 사업비 집행 및 관리방법, 합리적인 예산운영 노력'에 대해서는 A+의 등급을 줬습니다.

사업을 담당하는 주무과인 도시재생실은 서울시 자체 사업과 비슷한 성격의 사업에 예산이 이중으로 쓰인 것에 대해, 위탁기관의 개별 사업에 대해 세세하게 보고받고 승인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기관 내부 재감사에 맡길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도 서울테크노파크와 장안평 자동차산업에 대한 민간 위탁 사업을 다음 달에 종료하고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웹사이트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든 사업비는 4천4백여만 원. 공룡 지자체인 서울시의 '억' 소리 나는 다른 사업에 비해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연말만 되면 관행적이고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이 꼭 필요한 것인지 점검하는 건 필수입니다. 또 예산을 들였다면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고 활용해야 합니다. 자세한 소식은 오늘 저녁 KBS 1TV 뉴스에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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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예산 4천만 원 들인 ‘연말 예산 털기용’ 사업?
    • 입력 2020-04-22 16:12:59
    • 수정2020-04-22 16:49:50
    취재K
이달 초 KBS로 제보가 하나 왔습니다. 서울시의 공직 유관단체인 '서울테크노파크'에서 지난 2018년 말, 중고차 업자들을 돕기 위해 서울시 예산 수천만 원을 받아 만든 웹사이트가 '먹통'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울테크노파크에서 만든 ‘Janganpyeong Used Car Exporter’ 사이트 캡처.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시장의 중고차 매물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만든 사이트다.
실제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주소만 있을 뿐, 클릭은 안 되고 자동차 매물도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었습니다. SM5 차량에 아반테 사진이 붙어 있는가 하면, 기아 스포티지 사진에는 벤츠사의 차량이 올려져 있습니다. 차량 가격도 10만 달러로 동일하게 적혀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 만 겁니다. 중고차 주문란에도 역시 주문서 모양만 있을 뿐, 클릭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홈페이지의 외형을 갖추었지만, 실상은 그냥 하나의 '그림(이미지) 파일'이었습니다.

■ 서울시 사업 위탁받아 수행…4,450만 원 예산 사용

서울테크노파크는 서울시와 중기부,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출연해 만든 공직 유관단체입니다. 정부 업무를 받아 수행하는 단체입니다. 서울시로부터 연간 12억 원 정도의 예산을 받습니다.

위탁받은 업무 중에는 '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라는 기관을 운영하는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장안평 지역에 커다란 중고차 시장이 있는 만큼, 이 일대의 자동차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관인데요. 쉽게 말해,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서울시가 직접 하기 어려운 세세한 지역사회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민간 기관입니다.

서울테크노파크의 감사보고서
서울테크노파크의 내부 감사 결과 드러난 문제의 사업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 장안평 시장의 중고차 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다국어 웹사이트 구축
(2) 자동차 수출을 특화할 수 있는 웹사이트 구축
(3) 장안평 중고차수출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각각 1,650만 원, 1,000만 원, 1,800만 원이 소요돼 총 4,450만 원의 서울시 예산을 사용했습니다.

서울테크노파크의 감사는 각각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에서 위탁하지 않고 직접 2억 4,000만 원을 들여 만든 '장안평 자동차산업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용역사업'에 같은 성격의 사업이 포함돼 있는데도, 서울테크노파크에서 따로 세 가지 사업을 발주하여 중복이 됐다고 봤습니다.

또, 웹사이트에서 부품 정보를 알 수 없거나, 사진과 정보가 다르고, 상품 주문 요청 시 클릭이 안 돼 주문조차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역시 업체별 판매 품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 "연말 오니 진행한 예산털기식 사업…예산 낭비 너무 심해"

KBS 취재팀을 만난 제보자들은 이 사업이 2018년 말, "연말이 다가오는데 사업비가 많이 남아 예산을 털기 위해 진행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날림식으로 진행될 거라는 건 내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라는 겁니다.

"해마다 진행되는 사업과 내용을 봤을 때 같은 서울 시민으로서 한탄스러운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제대로 진행되는 거 같지도 않고, 사업 예산도 너무 낭비성으로 쓰는 거 같고…. 이제 그걸 지속적으로 보다 보니까"

서울시 위탁사업은 연초에 매년 쓸 예산을 미리 보고한 뒤 서울시에서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산을 다 쓰지 않으면 나중에 줄어들 수도 있고, 쓰지 않은 만큼 일을 안 했다고 평가받아, 연말이 되면 모두 집행하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기관 자체 감사에서 지적됐는데도 불구하고 기관 내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덮는 것 같다며 제보 이유를 밝혔습니다.

■ 서울테크노파크 "매매조합이 요청해서 만든 홈페이지"…매매조합 "요청한 적 없어"

서울테크노파크 측은 감사 내용에 대해 이사회에 올리긴 했다면서도, 이사회에서 차기 감사를 임명해 재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업의 담당자는 이 홈페이지가 자동차 상점들의 조합인 '서울장안평자동차매매사업조합'의 요청으로 만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에서 데이터를 올리지 않아 1년 넘게 홈페이지가 그대로"라고 말했습니다. 홈페이지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까지가 테크노파크에서 들인 예산에 포함된 거라는 설명입니다.

그럼 왜 그동안 매매조합 측이 매물을 올리지 않는지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는, "계속 요청했는데, 협동조합이 법인체를 만드는 과정을 진행 중이고, 업무를 진행해 줘야 저희(테크노마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21일 만난 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상인. 서울테크노파크가 만든 홈페이지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팀이 접촉한 매매조합 관계자는 매물을 올리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홈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먼저 요청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관계자는 "장안평 매매 시장 내에 수출업자가 많지 않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장안평 중고차시장의 상인들 역시, 장안평에선 수출 물량이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만나본 상인들은 중고차 매물로 유명한 사기업의 홈페이지를 주로 사용한다며 이런 홈페이지는 처음 본다고 전했습니다.

■ 예산 준 서울시, 위탁기관 평가에서 A+ 등급 부여…"개별 사업에 대해 승인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서울시는 이 사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서울시는 지난해 말 민간위탁기관에 대한 종합성과평가에서 서울테크노파크에 대해 80점을 줬으며, 특히 '당초 계획을 고려한 사업비 집행 및 관리방법, 합리적인 예산운영 노력'에 대해서는 A+의 등급을 줬습니다.

사업을 담당하는 주무과인 도시재생실은 서울시 자체 사업과 비슷한 성격의 사업에 예산이 이중으로 쓰인 것에 대해, 위탁기관의 개별 사업에 대해 세세하게 보고받고 승인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기관 내부 재감사에 맡길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도 서울테크노파크와 장안평 자동차산업에 대한 민간 위탁 사업을 다음 달에 종료하고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웹사이트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든 사업비는 4천4백여만 원. 공룡 지자체인 서울시의 '억' 소리 나는 다른 사업에 비해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연말만 되면 관행적이고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이 꼭 필요한 것인지 점검하는 건 필수입니다. 또 예산을 들였다면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고 활용해야 합니다. 자세한 소식은 오늘 저녁 KBS 1TV 뉴스에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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