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사외이사③ 임기제한도 무력화?…사외이사 ‘꼼수’ 선임

입력 2020.04.23 (17:43) 수정 2020.04.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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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같은 회사에 재직한 사외이사의 연임을 금지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월 시행됐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KBS가 CEO스코어와 함께 새롭게 구성된 30대 그룹(*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주주총회를 개최한 188개 회사)의 사외이사를 분석한 결과, 관료 출신 쏠림(37%)이 여전했고 특수관계·부적절 겸임 등 고질적 문제도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결권 자문사인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오늘(23일) 내놓은 '2020년 주주총회 트렌드'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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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승계 등 이슈 있는 그룹,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선호"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규 또는 재선임된 30대 그룹 상장사의 사외이사 240명 중 27.9%인 67명이 감독기관·사법기관·정부 등 '3대 권력기관'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56.5%), 현대차그룹(45.0%), 한진그룹(36.8%) 등 경영권 승계 관련 이슈가 있는 그룹의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특히 높았다.


연구소는 "특정 분야 출신의 사외이사 선임이 집중되는 것은 전문성 확보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관(對官) 업무 차원에서의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권력기관을 상대할 때, 해당 기관 출신의 사외이사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30대 그룹 사외이사들의 현직 경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법무, 회계 비중이 27.2%에 달하는 반면, 이사회의 전문성을 보강할 수 있는 '기업인' 비중은 11.6%에 불과했다.

법도 비껴 간 '터줏대감' 사외이사들

올해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가 한 회사에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됐지만, 이를 '무력화'한 사외이사들도 있었다. 글로벌텍스프리㈜는 검사 출신 조성규 변호사를 신규 선임했는데, 조 변호사는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브레인컨텐츠에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사외이사를 지냈다. 기존 임기(7년)와 신규 임기(3년)를 합치면 총 10년으로 계열사 포함 9년 임기제한을 넘기지만 선임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파멥신은 이동섭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시 3년 임기로 신규선임했다. 이 교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반 동안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재직해, 이번 임기를 포함하면 임기제한 6년을 넘어간다. 해당 회사들은 "앞으로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중도 퇴임하면 법 위반이 아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그룹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는 최대주주인 ㈜영풍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신정수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상법은 '최대주주 법인의 이사·감사·집행임원 및 피용자'를 사외이사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최소한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풍 측은 상법상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최대주주 법인의 '이사'는 '상근 이사'여서 비상근인 사외이사의 경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독립적 사외이사, 기업 가치 높인다"

2018년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를 견제·감독할 독립이사로 미국 5대 부호 중 한 명인 래리 엘리슨(74) 오라클 창업자 겸 회장 등 2명을 선임했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상장 폐지하겠다는 SNS 글을 올려 투자자들을 기만한 혐의로 고소당했는데, 고소 취하의 합의 조건이 독립이사 선임이었기 때문이다.

김진욱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현직 기업인들이 다른 기업의 독립이사로 활동하며 이사회에서 자신의 소신대로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우리나라 기업의 사외이사 가운데 경영진을 견제하는 '독립이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외이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법 개정 등을 통해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반복적으로 선임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한국에서는 사외이사 비율과 기업가치와 유의미한 관계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독립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를 위해 실질적으로 기업이 시행할 수 있는 상장공시 규정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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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04-23 17:57:00
    취재K
오랜 기간 같은 회사에 재직한 사외이사의 연임을 금지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월 시행됐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KBS가 CEO스코어와 함께 새롭게 구성된 30대 그룹(*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주주총회를 개최한 188개 회사)의 사외이사를 분석한 결과, 관료 출신 쏠림(37%)이 여전했고 특수관계·부적절 겸임 등 고질적 문제도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결권 자문사인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오늘(23일) 내놓은 '2020년 주주총회 트렌드'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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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승계 등 이슈 있는 그룹,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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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특정 분야 출신의 사외이사 선임이 집중되는 것은 전문성 확보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관(對官) 업무 차원에서의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권력기관을 상대할 때, 해당 기관 출신의 사외이사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30대 그룹 사외이사들의 현직 경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법무, 회계 비중이 27.2%에 달하는 반면, 이사회의 전문성을 보강할 수 있는 '기업인' 비중은 11.6%에 불과했다.

법도 비껴 간 '터줏대감' 사외이사들

올해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가 한 회사에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됐지만, 이를 '무력화'한 사외이사들도 있었다. 글로벌텍스프리㈜는 검사 출신 조성규 변호사를 신규 선임했는데, 조 변호사는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브레인컨텐츠에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사외이사를 지냈다. 기존 임기(7년)와 신규 임기(3년)를 합치면 총 10년으로 계열사 포함 9년 임기제한을 넘기지만 선임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파멥신은 이동섭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시 3년 임기로 신규선임했다. 이 교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반 동안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재직해, 이번 임기를 포함하면 임기제한 6년을 넘어간다. 해당 회사들은 "앞으로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중도 퇴임하면 법 위반이 아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그룹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는 최대주주인 ㈜영풍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신정수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상법은 '최대주주 법인의 이사·감사·집행임원 및 피용자'를 사외이사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최소한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풍 측은 상법상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최대주주 법인의 '이사'는 '상근 이사'여서 비상근인 사외이사의 경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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