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고 죽고…태종대 소나무 수난

입력 2020.04.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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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깎아질듯한 절벽, 그 아래로 이어지는 해안가로 찾아드는 파도까지. 푸른 바다와 초록빛 소나무 숲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만나 어우러집니다.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태종대 유원지입니다.

이 아름다운 절벽과 해안가 주변에 최근 심상치 않은 기류가 포착됐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절벽 인근의 나무들은 듬성듬성 잘려 있었고, 초록색 비닐로 덮인 나무 더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심지어 나무들은 잎 끝이 모두 빨갛게 삭아 본래의 빛을 잃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원인은 '소나무 재선충병'이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 입에서는 새로운 주범이 튀어나왔습니다.

"저희들이 매년 피해목에 대한 부분과 위험목에 대한 부분을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검사결과를 보게 되면 실제로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뿐만 아니라 염해 피해가 많다는 결과가..."

몰아치는 태풍에 재선충병까지 이중고

지난해 대한민국에 몰아닥친 태풍은 5개가 넘습니다. 이 가운데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와 제18호 태풍 미탁은 우리나라를 강타해 특히 더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잦은 태풍에 타격을 입은 건 태종대 소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벽 인근에 있던 소나무 대다수가 염해 피해를 입었고, 가을이 지나면서 점점 빨갛게 변해 본연의 색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린 것 같다고 짐작했고, 국립산림과학원과 부산시설공단, 부산시 등이 합동으로 점검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소나무 재선충병이 일부 발견됐지만, 염해 피해도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바닷물에 젖은 나무의 잎이 상하고, 일부는 고사했다는 겁니다. 이미 2017년부터 2000본 가까운 나무를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베어냈던 태종대는 올해 또 1000본 가량의 나무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방재 인력·예산 부족...주변 환경도 악조건

방재작업은 크게 피해목과 위험목을 제거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송진검사를 통해 송진을 내뿜지 않는 소나무가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린 것으로 보고 해당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또 주변에 죽은 나무 등으로 재선충이 옮아가지 않도록 인근 나무도 모두 벌채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1개의 나무가 재선충에 걸려도 인근 나무들이 다 잘려나가게 됩니다.


잘린 나무들은 한 곳으로 모아 파쇄 작업을 진행합니다. 2mm 수준의 크기로 잘라내야 감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힘든 경우에는 유독물질로 해충을 죽이는 '훈증' 처리를 하는데, 약품처리를 하고 비닐로 덮어 6개월 가량 지나면 나무와 해충이 함께 죽게 됩니다. 그런데 태종대는 바람이 많이 불어 이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가서 직접 자르고 꺼내고 싶어도 해안가 절벽에 위치해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감염을 최소화하려면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최대한 빠르게 방재작업을 펼쳐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올해 관리를 담당하는 부산시설공단은 예산 중 40% 가량을 산림청에 요청해야 했습니다. 추가로 해안가 나무를 정리해야 하지만 이를 마치려면 내년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부산시설공단 제공부산시설공단 제공

다시 푸른 나무를 보기까지 최소 5년

태풍 등 기상 조건이 악화되면 방재작업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염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물을 뿌리고 약품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태종대처럼 가파른 절벽과 돌산이 있는 곳은 더 그렇습니다.

이번 방재작업에는 산림청 헬기가 투입돼 1000본 가까운 나무를 옮겼습니다. 3월 말에 작업한 뒤 소나무 방재기간에 맞춰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얼마 전 울산에서 난 산불로 헬기 인력이 모두 투입돼 작업이 늦어졌습니다. 결국, 태종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나무를 처리해야 했고, 월요일부터 파쇄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하반기 재선충병 예방주사까지 놓고 나면, 이제 숲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5년이라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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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리고 죽고…태종대 소나무 수난
    • 입력 2020-04-24 17:40:34
    취재K
푸른 바다와 깎아질듯한 절벽, 그 아래로 이어지는 해안가로 찾아드는 파도까지. 푸른 바다와 초록빛 소나무 숲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만나 어우러집니다.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태종대 유원지입니다.

이 아름다운 절벽과 해안가 주변에 최근 심상치 않은 기류가 포착됐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절벽 인근의 나무들은 듬성듬성 잘려 있었고, 초록색 비닐로 덮인 나무 더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심지어 나무들은 잎 끝이 모두 빨갛게 삭아 본래의 빛을 잃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원인은 '소나무 재선충병'이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 입에서는 새로운 주범이 튀어나왔습니다.

"저희들이 매년 피해목에 대한 부분과 위험목에 대한 부분을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검사결과를 보게 되면 실제로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뿐만 아니라 염해 피해가 많다는 결과가..."

몰아치는 태풍에 재선충병까지 이중고

지난해 대한민국에 몰아닥친 태풍은 5개가 넘습니다. 이 가운데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와 제18호 태풍 미탁은 우리나라를 강타해 특히 더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잦은 태풍에 타격을 입은 건 태종대 소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벽 인근에 있던 소나무 대다수가 염해 피해를 입었고, 가을이 지나면서 점점 빨갛게 변해 본연의 색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린 것 같다고 짐작했고, 국립산림과학원과 부산시설공단, 부산시 등이 합동으로 점검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소나무 재선충병이 일부 발견됐지만, 염해 피해도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바닷물에 젖은 나무의 잎이 상하고, 일부는 고사했다는 겁니다. 이미 2017년부터 2000본 가까운 나무를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베어냈던 태종대는 올해 또 1000본 가량의 나무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방재 인력·예산 부족...주변 환경도 악조건

방재작업은 크게 피해목과 위험목을 제거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송진검사를 통해 송진을 내뿜지 않는 소나무가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린 것으로 보고 해당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또 주변에 죽은 나무 등으로 재선충이 옮아가지 않도록 인근 나무도 모두 벌채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1개의 나무가 재선충에 걸려도 인근 나무들이 다 잘려나가게 됩니다.


잘린 나무들은 한 곳으로 모아 파쇄 작업을 진행합니다. 2mm 수준의 크기로 잘라내야 감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힘든 경우에는 유독물질로 해충을 죽이는 '훈증' 처리를 하는데, 약품처리를 하고 비닐로 덮어 6개월 가량 지나면 나무와 해충이 함께 죽게 됩니다. 그런데 태종대는 바람이 많이 불어 이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가서 직접 자르고 꺼내고 싶어도 해안가 절벽에 위치해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감염을 최소화하려면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최대한 빠르게 방재작업을 펼쳐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올해 관리를 담당하는 부산시설공단은 예산 중 40% 가량을 산림청에 요청해야 했습니다. 추가로 해안가 나무를 정리해야 하지만 이를 마치려면 내년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부산시설공단 제공
다시 푸른 나무를 보기까지 최소 5년

태풍 등 기상 조건이 악화되면 방재작업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염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물을 뿌리고 약품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태종대처럼 가파른 절벽과 돌산이 있는 곳은 더 그렇습니다.

이번 방재작업에는 산림청 헬기가 투입돼 1000본 가까운 나무를 옮겼습니다. 3월 말에 작업한 뒤 소나무 방재기간에 맞춰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얼마 전 울산에서 난 산불로 헬기 인력이 모두 투입돼 작업이 늦어졌습니다. 결국, 태종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나무를 처리해야 했고, 월요일부터 파쇄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하반기 재선충병 예방주사까지 놓고 나면, 이제 숲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5년이라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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