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사과문에 또 다시 상처입은 피해자…무엇이 문제였나

입력 2020.04.24 (21:25) 수정 2020.04.2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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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분, 누군가에겐 찰나처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추행 사실을 밝히면서 '5분'을 강조한 건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란 걸 강조하려는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5분은 피해자에겐 인생을 뒤틀어버린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피해자는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이야기했죠.

누군가에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 5분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일생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긴 시간, 가해자의 시간과 피해자의 시간은 결코 공평하게 흐르지 않았습니다.

여성계는 특히, 오거돈 부산시장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일부 표현이 사회적 비난을 피하려는 가해자의 전형적인 언어라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 역시 2차 피해에 노출돼 있습니다.

선재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오거돈/전 부산시장/어제 :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였습니다. 경중에 관계없이..."]

오거돈 전 시장의 사과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자신의 행동이 큰일이 아니었다는 식의 뉘앙스입니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 : "'경중을 가리지 않고' 라는 표현을 통해서 큰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고. 사실은 미안한 게 아니다, 억울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들리거든요."]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 것 또한 피해자에겐 상처였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도리어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는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라고 언급한 것도 2차 피해로 이어졌다는 지적입니다.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장 : "5분 동안의 짧은 면담에서 라고 하는 말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피해자는 2차적인 수많은 피해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과오를 짊어지고 가겠다'는 표현도 잘못에 비해 과도한 책임을 지는 것처럼 묘사됐다고 여성단체연합은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대중의 인식이 사회 분위기를 바꿨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관련 기사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전에 급하게 사퇴한 요인이 됐다는 겁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했고, 성폭력 문제를 의제화 해 왔잖아요. 이를 통해서 한국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는 역량이 성장했습니다."]

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감수성은 높아졌지만, 피해자나 피해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는 등 2차 가해가 여전한 점은 과제로 남았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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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돈 사과문에 또 다시 상처입은 피해자…무엇이 문제였나
    • 입력 2020-04-24 21:28:19
    • 수정2020-04-24 22:04:23
    뉴스 9
[앵커]

5분, 누군가에겐 찰나처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성추행 사실을 밝히면서 '5분'을 강조한 건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란 걸 강조하려는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5분은 피해자에겐 인생을 뒤틀어버린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피해자는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이야기했죠.

누군가에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 5분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일생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긴 시간, 가해자의 시간과 피해자의 시간은 결코 공평하게 흐르지 않았습니다.

여성계는 특히, 오거돈 부산시장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일부 표현이 사회적 비난을 피하려는 가해자의 전형적인 언어라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 역시 2차 피해에 노출돼 있습니다.

선재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오거돈/전 부산시장/어제 :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였습니다. 경중에 관계없이..."]

오거돈 전 시장의 사과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자신의 행동이 큰일이 아니었다는 식의 뉘앙스입니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 : "'경중을 가리지 않고' 라는 표현을 통해서 큰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고. 사실은 미안한 게 아니다, 억울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들리거든요."]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 것 또한 피해자에겐 상처였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도리어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는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라고 언급한 것도 2차 피해로 이어졌다는 지적입니다.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장 : "5분 동안의 짧은 면담에서 라고 하는 말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피해자는 2차적인 수많은 피해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과오를 짊어지고 가겠다'는 표현도 잘못에 비해 과도한 책임을 지는 것처럼 묘사됐다고 여성단체연합은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대중의 인식이 사회 분위기를 바꿨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관련 기사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전에 급하게 사퇴한 요인이 됐다는 겁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했고, 성폭력 문제를 의제화 해 왔잖아요. 이를 통해서 한국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는 역량이 성장했습니다."]

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감수성은 높아졌지만, 피해자나 피해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는 등 2차 가해가 여전한 점은 과제로 남았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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