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조차 없는 모자 살인사건’…증거는 당신!

입력 2020.04.27 (09:01) 수정 2020.04.2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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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살해의 방법이나 피해자의 사망경위에 관한 중요한 일부 단서가 멸실된 경우라 하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 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12.9.27. 선고 2012도2658 판결)

이른바 '관악구 모자(母子) 살인사건', 기억하시나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40대 여성과 6살 아들이 안방 침대 위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죠.

범인으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숨진 모자의 남편이자 아버지, 42살 도예가 조 모 씨였습니다. 모자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집에 함께 있었던 사람은 조 씨가 유일하므로, 조 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는 두 생명을 앗아간 범행 도구나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나 족적,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범행 장면이 담긴 CCTV나 목격자도 없었죠.

쉽게 말해 조 씨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증명할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겁니다. 현장을 감식했던 경찰관이 "20년의 현장감식 경력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상한 살인사건 현장이었다"고 말했을 정돕니다.

게다가 조 씨는 자신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라며, 수사부터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완강하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열린 결심공판에선 눈물까지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죠.

하지만 법원은 조 씨가 재판에 넘겨진 지 6개월 만에 '유죄' 판단을 내놨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손동환 부장판사)는 조 씨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맞는다며, 지난 24일 조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이 선고된 뒤 피해자들의 유족은 기자들과 만나 "주위 많은 분이 '직접 증거가 없으니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많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것들을 모두 다 깰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정황 증거와 디지털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유죄 판결이 나온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왜, 조 씨가 범인이라고 판단한 걸까요? 40여 쪽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그 근거를 하나하나 짚어봤습니다.

■ 시간 : 위(胃) 속 토마토는 알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증거는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각과 조 씨가 사건 당일 피해자들의 집에 머무른 시간이 겹친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엔 숨진 피해자들의 위(胃) 속 음식물에 대한 법의학적 감정이 동원됐습니다.

부검 결과, 조 씨 아내의 위에선 양파, 채소, 견과류, 토마토가 발견됐고 조 씨 아들의 위에선 화장지, 토마토, 견과류가 발견됐습니다. 두 사람은 숨지기 직전 조 씨의 처형이 직접 해준 닭곰탕과 스파게티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망 시각을 추정하기 위해 재판에는 모두 6명의 법의학자가 출석해 증언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피해자들이 마지막 식사 후 최대 6시간이 지나기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시간이 지연될 순 있지만, 특히 6살 아이의 경우엔 그 정도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예상하기 어렵고, 2명의 사체에서 비슷한 감정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오류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조 씨 측은 위 내용물을 통한 사망 시각 추정 자체가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우선 피해자들이 문제의 닭곰탕과 스파게티를 모두 먹었는지, 하나만 먹었는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는 데다, 법정에 나온 부검의조차 위 내용물 소화 정도에 따라 사망 시각을 추정한 것을 객관적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법의학적 관점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는 겁니다.

재판부도 논란을 의식한 듯 두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조 씨가 피해자들의 집에 머문 게 지난해 8월 21일 오후 8시 56분에서 다음날 새벽 1시 35분까지라는 것은 주택 인근 CCTV를 통해 이미 확인됐습니다.

만약 피해자들이 오후 7시 반 이전에 식사를 마쳤을 경우 조 씨가 함께 있는 동안 살해당한 것이므로 조 씨가 범인이라는 점이 증명됩니다. 하지만 7시 반 이후에 식사했다면 조 씨가 떠난 뒤 제3자가 집에 들어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증거를 살펴봐야 했습니다.

■ 장소 : 그날, 그곳엔 당신뿐이었다

"결국 가능성의 문젠데요." 손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결심공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 씨 측이 끈질기게 주장해왔던 '집에 제3자가 들어왔을 가능성'을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지자, 이것이 합리적 의심에 해당하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는 취지였습니다.

단서가 된 건 집 근처 CCTV였습니다. CCTV 상으론 조 씨가 떠난 새벽 1시 반부터 새벽 3시까지 해당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심리를 위해 직접 해당 주택을 찾아 살펴본 것으로 알려진 재판부는, 변호인이 내세운 제3자의 동선에 대해 법정에서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CCTV에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주택 후문으로 들어왔을 경우 침입 장면이 포착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변호사님, 집에 가 보시면 밤에 아까 말씀하신 그 길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거 같습니까?"
(변호인)"네, 다닐 수 있습니다."
(재판부)"거기 가보고 저곳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할 수가 없는데요. 새벽 1시 이후에…"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제3자의 침입 가능성은 '추상적 가능성'에 그친다고 판시했습니다. 조 씨가 집을 떠나자마자 CCTV를 교묘하게 피해 피해자들이 직접 열어준 문으로 들어와야만 확보되는 대략 1시간 반 동안, 제3자가 들어와 범행을 저지른 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가능성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것은 결국 조 씨뿐이었던 셈입니다.

■ 동기 : 결혼생활 5년, 당신의 모든 게 증거였다

법정에선 조 씨와 피해자가 겪은 5년 동안 결혼생활의 진실이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재판을 지켜보던 피해자 유족이나 친구들은 충격적인 상황에 매번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억눌린 울음을 터뜨려야 했습니다.

조 씨와 숨진 아내는 2013년 12월 혼인 신고를 했고, 이듬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조 씨는 결혼 6개월 후부터 내연녀와 불륜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도예가인 조 씨는 오피스텔에 개인 공방을 마련해두고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2017년부터는 1년에 불과 10번 정도만 피해자들의 집에 들렀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내연녀와는 한 달에 20번 이상 만났고, 200번 이상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고정 수입이 많지 않았던 조 씨에게 숨진 아내는 내내 생활비와 도예 작업 비용을 지원해줬습니다. 피해자들은 철거가 예정된 낙후된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도, 조 씨 공방은 넓은 신식 아파트형 공간에 마련됐습니다. 조 씨는 차량 할부금, 모발 이식 수술비, 공방 안마의자, 캐시미어 코트 등도 모두 아내에게 받았습니다.

결국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아내가 공방 운영비용을 줄이고 생활자기를 만들어 파는 등 경제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자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조 씨는 급기야 아내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난해 2월, 조 씨가 아내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입니다.

"지금 도자 쪽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데? 알기나 알고 말하길 바라고 (…) '너 지금까지 못했으니 이제 다른 거 알아봐'잖아. 당신은 날 아직 하나도 모르고 이해하는 척하지만 하나도 이해 못 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을 물거품 만들려고 하는 당신이 싫다. 더 구질구질하게 이혼하기 싫으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법원 가서 합의이혼 신청하고 끝내자."

조 씨는 이혼하면 자신 명의로 된 주택의 임대차보증금으로 기존 생활을 계속하는 대신, 피해자들과의 관계만 없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보증금이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공방도 재산분할 대상이 되며 양육비 부담까지 안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작스레 이혼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굽힌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무렵 조 씨는 경마에 푹 빠져 석 달 새 경마장을 모두 23회 방문해 현금 합계 733만 원을 인출하는 등 지출이 많아진 상태였습니다.

재판부는 "숨진 아내는 오랜 기간 조 씨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아들은 한결같이 아빠인 조 씨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조 씨는 피해자들을 가족으로 생각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조 씨는 아내를 공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원자로, 아들을 아내 지원을 얻기 위해 주기적 만남을 가져야 할 의무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아내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조 씨가, 피해자들이 없어지면 상당한 경제적 이익도 자신에게 돌아오고 내연녀와의 관계도 지속하면서 자유로운 도예활동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 태도 : 냉정한 당신에게 물었다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신문을 하며 조 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재판부)"우리가 재판을 쭉 해왔는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재판하다가 보면 저도 그렇고, 검사님도 그렇고 숨진 아이의 모습(사진, 영상 등)을 보면 울컥하잖아요.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재판에서 저희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냉정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조 씨)"냉정하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눈물도 흘리지 않으려고요."

조 씨가 법정에서 보였던 태도는 판결문에도 언급됐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판절차에서는 사망한 피해자들의 현장사진, 부검 사진, 장기 사진들이 현출돼 지켜보는 제3자도 슬픔에 잠기도록 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런데 조 씨는 검사의 사형구형 당시 외에는 피해자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도 내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극히 냉정한 태도를 보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밖에도 조 씨가 경찰관으로부터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은 사실, 피해자들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단 20~30분만 머물다 떠난 사실, 범행 직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진범'을 내려받아 시청한 사실 등도 간접증거로 인정됐습니다.

1심 법원은 결국 조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치밀한 계획범행'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조 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 만큼,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도예활동을 마음대로 하려는 이기심, 아내의 사소한 비판과 경제적 지원 중단을 빌미로 피해자들을 살해한 조 씨에게, 재판부는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된 상태에서 평생 참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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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흔조차 없는 모자 살인사건’…증거는 당신!
    • 입력 2020-04-27 09:01:05
    • 수정2020-04-27 09:16:06
    취재K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살해의 방법이나 피해자의 사망경위에 관한 중요한 일부 단서가 멸실된 경우라 하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 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12.9.27. 선고 2012도2658 판결)

이른바 '관악구 모자(母子) 살인사건', 기억하시나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40대 여성과 6살 아들이 안방 침대 위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죠.

범인으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숨진 모자의 남편이자 아버지, 42살 도예가 조 모 씨였습니다. 모자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집에 함께 있었던 사람은 조 씨가 유일하므로, 조 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는 두 생명을 앗아간 범행 도구나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나 족적,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범행 장면이 담긴 CCTV나 목격자도 없었죠.

쉽게 말해 조 씨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증명할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겁니다. 현장을 감식했던 경찰관이 "20년의 현장감식 경력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상한 살인사건 현장이었다"고 말했을 정돕니다.

게다가 조 씨는 자신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라며, 수사부터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완강하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열린 결심공판에선 눈물까지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죠.

하지만 법원은 조 씨가 재판에 넘겨진 지 6개월 만에 '유죄' 판단을 내놨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손동환 부장판사)는 조 씨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맞는다며, 지난 24일 조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이 선고된 뒤 피해자들의 유족은 기자들과 만나 "주위 많은 분이 '직접 증거가 없으니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많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것들을 모두 다 깰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정황 증거와 디지털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유죄 판결이 나온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왜, 조 씨가 범인이라고 판단한 걸까요? 40여 쪽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그 근거를 하나하나 짚어봤습니다.

■ 시간 : 위(胃) 속 토마토는 알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증거는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각과 조 씨가 사건 당일 피해자들의 집에 머무른 시간이 겹친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엔 숨진 피해자들의 위(胃) 속 음식물에 대한 법의학적 감정이 동원됐습니다.

부검 결과, 조 씨 아내의 위에선 양파, 채소, 견과류, 토마토가 발견됐고 조 씨 아들의 위에선 화장지, 토마토, 견과류가 발견됐습니다. 두 사람은 숨지기 직전 조 씨의 처형이 직접 해준 닭곰탕과 스파게티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망 시각을 추정하기 위해 재판에는 모두 6명의 법의학자가 출석해 증언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피해자들이 마지막 식사 후 최대 6시간이 지나기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시간이 지연될 순 있지만, 특히 6살 아이의 경우엔 그 정도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예상하기 어렵고, 2명의 사체에서 비슷한 감정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오류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조 씨 측은 위 내용물을 통한 사망 시각 추정 자체가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우선 피해자들이 문제의 닭곰탕과 스파게티를 모두 먹었는지, 하나만 먹었는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는 데다, 법정에 나온 부검의조차 위 내용물 소화 정도에 따라 사망 시각을 추정한 것을 객관적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법의학적 관점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는 겁니다.

재판부도 논란을 의식한 듯 두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조 씨가 피해자들의 집에 머문 게 지난해 8월 21일 오후 8시 56분에서 다음날 새벽 1시 35분까지라는 것은 주택 인근 CCTV를 통해 이미 확인됐습니다.

만약 피해자들이 오후 7시 반 이전에 식사를 마쳤을 경우 조 씨가 함께 있는 동안 살해당한 것이므로 조 씨가 범인이라는 점이 증명됩니다. 하지만 7시 반 이후에 식사했다면 조 씨가 떠난 뒤 제3자가 집에 들어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증거를 살펴봐야 했습니다.

■ 장소 : 그날, 그곳엔 당신뿐이었다

"결국 가능성의 문젠데요." 손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결심공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 씨 측이 끈질기게 주장해왔던 '집에 제3자가 들어왔을 가능성'을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지자, 이것이 합리적 의심에 해당하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는 취지였습니다.

단서가 된 건 집 근처 CCTV였습니다. CCTV 상으론 조 씨가 떠난 새벽 1시 반부터 새벽 3시까지 해당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심리를 위해 직접 해당 주택을 찾아 살펴본 것으로 알려진 재판부는, 변호인이 내세운 제3자의 동선에 대해 법정에서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CCTV에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주택 후문으로 들어왔을 경우 침입 장면이 포착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변호사님, 집에 가 보시면 밤에 아까 말씀하신 그 길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거 같습니까?"
(변호인)"네, 다닐 수 있습니다."
(재판부)"거기 가보고 저곳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할 수가 없는데요. 새벽 1시 이후에…"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제3자의 침입 가능성은 '추상적 가능성'에 그친다고 판시했습니다. 조 씨가 집을 떠나자마자 CCTV를 교묘하게 피해 피해자들이 직접 열어준 문으로 들어와야만 확보되는 대략 1시간 반 동안, 제3자가 들어와 범행을 저지른 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가능성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것은 결국 조 씨뿐이었던 셈입니다.

■ 동기 : 결혼생활 5년, 당신의 모든 게 증거였다

법정에선 조 씨와 피해자가 겪은 5년 동안 결혼생활의 진실이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재판을 지켜보던 피해자 유족이나 친구들은 충격적인 상황에 매번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억눌린 울음을 터뜨려야 했습니다.

조 씨와 숨진 아내는 2013년 12월 혼인 신고를 했고, 이듬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조 씨는 결혼 6개월 후부터 내연녀와 불륜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도예가인 조 씨는 오피스텔에 개인 공방을 마련해두고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2017년부터는 1년에 불과 10번 정도만 피해자들의 집에 들렀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내연녀와는 한 달에 20번 이상 만났고, 200번 이상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고정 수입이 많지 않았던 조 씨에게 숨진 아내는 내내 생활비와 도예 작업 비용을 지원해줬습니다. 피해자들은 철거가 예정된 낙후된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도, 조 씨 공방은 넓은 신식 아파트형 공간에 마련됐습니다. 조 씨는 차량 할부금, 모발 이식 수술비, 공방 안마의자, 캐시미어 코트 등도 모두 아내에게 받았습니다.

결국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아내가 공방 운영비용을 줄이고 생활자기를 만들어 파는 등 경제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자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조 씨는 급기야 아내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난해 2월, 조 씨가 아내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입니다.

"지금 도자 쪽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데? 알기나 알고 말하길 바라고 (…) '너 지금까지 못했으니 이제 다른 거 알아봐'잖아. 당신은 날 아직 하나도 모르고 이해하는 척하지만 하나도 이해 못 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을 물거품 만들려고 하는 당신이 싫다. 더 구질구질하게 이혼하기 싫으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법원 가서 합의이혼 신청하고 끝내자."

조 씨는 이혼하면 자신 명의로 된 주택의 임대차보증금으로 기존 생활을 계속하는 대신, 피해자들과의 관계만 없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보증금이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공방도 재산분할 대상이 되며 양육비 부담까지 안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작스레 이혼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굽힌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무렵 조 씨는 경마에 푹 빠져 석 달 새 경마장을 모두 23회 방문해 현금 합계 733만 원을 인출하는 등 지출이 많아진 상태였습니다.

재판부는 "숨진 아내는 오랜 기간 조 씨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아들은 한결같이 아빠인 조 씨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조 씨는 피해자들을 가족으로 생각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조 씨는 아내를 공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원자로, 아들을 아내 지원을 얻기 위해 주기적 만남을 가져야 할 의무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아내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조 씨가, 피해자들이 없어지면 상당한 경제적 이익도 자신에게 돌아오고 내연녀와의 관계도 지속하면서 자유로운 도예활동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 태도 : 냉정한 당신에게 물었다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신문을 하며 조 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재판부)"우리가 재판을 쭉 해왔는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재판하다가 보면 저도 그렇고, 검사님도 그렇고 숨진 아이의 모습(사진, 영상 등)을 보면 울컥하잖아요.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재판에서 저희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냉정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조 씨)"냉정하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눈물도 흘리지 않으려고요."

조 씨가 법정에서 보였던 태도는 판결문에도 언급됐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판절차에서는 사망한 피해자들의 현장사진, 부검 사진, 장기 사진들이 현출돼 지켜보는 제3자도 슬픔에 잠기도록 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런데 조 씨는 검사의 사형구형 당시 외에는 피해자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도 내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극히 냉정한 태도를 보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밖에도 조 씨가 경찰관으로부터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은 사실, 피해자들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단 20~30분만 머물다 떠난 사실, 범행 직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진범'을 내려받아 시청한 사실 등도 간접증거로 인정됐습니다.

1심 법원은 결국 조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치밀한 계획범행'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조 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 만큼,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도예활동을 마음대로 하려는 이기심, 아내의 사소한 비판과 경제적 지원 중단을 빌미로 피해자들을 살해한 조 씨에게, 재판부는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된 상태에서 평생 참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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