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택배취업사기’ 잠입 취재했던 그 곳…결국 대표 구속

입력 2020.04.27 (15:37) 수정 2020.04.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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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유명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직접 써봤습니다. 그간 수차례 보도됐던 '택배취업 알선 사기'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택배 취업 알선을 빌미로 대출을 통해 비싸게 트럭을 파는 업체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직접 면접을 보고 정말 사기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40대 무직 이력서에 "면접 보러 오라" 전화 빗발

직업도 없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성실하고 체력이 좋다'고만 썼습니다. 희망 업종은 '대리운전, 택배, 배달'로 골랐습니다. 이력서를 쓴 지 이틀 만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10통 넘게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곳 중 금천구와 성동구의 물류업체 두 곳을 방문했습니다. 두 곳에서 하는 말은 비슷했습니다.

"저희 소속으로 들어가야 물량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차량은 저희가 다 해드려요. 신용으로"
"차값은 2840. 취·등록세 보험 석 달 치 저희가 다 해드려요. 세금 환급받는 거까지 2200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자에게 택배 일자리를 소개하며 트럭을 판매하려는 물류업체 직원이다기자에게 택배 일자리를 소개하며 트럭을 판매하려는 물류업체 직원이다

두 곳 모두 면접 시작 1시간 만에 신용등급 조회까지 마치고 계약서를 쓰기 직전,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의심스러웠지만 사기라고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업체들에 대한 보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직접 트럭을 사서 일자리를 받아보기 전에는 이들의 거짓말을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보도를 위해 3000만 원짜리 트럭을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구속된 업자 10여 개 업체에 포함된 OOO물류…면접 봤던 그때 그곳

최근 송파구에 위치한 한 물류업체 대표 이 모 씨가 택배취업 알선을 빌미로 비싸게 트럭을 팔았다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최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택배취업 알선’ 빌미로 트럭값 부풀려…피해자 1900명(2020.04.24. KBS 1TV '뉴스9')

그동안은 본인 동의 하에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사기 혐의' 입증이 어려워 트럭 구매자들이 수사기관에 신고해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검찰은 물류업자가 트럭 개조비용 중 일부를 되돌려받으면서 트럭 구매자들 모르게 이득을 챙긴 행위에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류업체 대표가 개조 업체로부터 개조 비용 일부를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트럭 구매자 몰래 돈을 빼돌린 정황을 구체적으로 포착한 겁니다.

이 업체는 송파구뿐 아니라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 성동구 등 서울 각지에 10곳이 넘는 업체를 차려 트럭을 팔아 왔습니다. 10곳이 넘는 업체에서 이들이 트럭을 팔아넘긴 구직자만 약 1,9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자가 방문했던 성동구의 ‘OOO OOO물류’ 사무실에서 찍은 서류철 사진. 대표가 구속된 송파구의 ‘OO물류’라고 적힌 서류철이 많았다.기자가 방문했던 성동구의 ‘OOO OOO물류’ 사무실에서 찍은 서류철 사진. 대표가 구속된 송파구의 ‘OO물류’라고 적힌 서류철이 많았다.

그리고 올해 초 취재 과정에서 면접 봤던 두 곳 중 성동구의 한 물류업체 대표가 이미 구속된 송파구 물류업체 대표 이 씨와 동일인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범죄수익 600만 원이지만 트럭 구매자 입장에서 손해 보는 건 3,800만 원

구속된 이 씨의 물류업체가 트럭 개조 업체와 짜고 빼돌린 돈은 트럭 한 대당 600만~700만 원입니다. 하지만 트럭 구매자들이 트럭값으로 내야 하는 돈은 9%의 고금리 이자가 포함돼 3,700만~3,800만 원에 달합니다. 피해를 본 트럭 구매자들의 손실액은 이 씨가 빼돌린 돈보다 훨씬 많다는 겁니다.

트럭 구매자들이 비싸게 트럭을 산 뒤 소개받은 택배 일도 소개 당시 했던 얘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파트 위주로 소개해준다든지, 가벼운 것만 나르게 해준다는 얘기는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합니다.

업체 쪽에선 월 500만 원도 벌 수 있고 처음에도 300만 원은 벌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면 차량 할부금, 유류비 등을 빼고 막상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트럭을 사기 전엔 일이 힘들면 언제든 트럭 명의이전을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된 일을 견디지 못해 택배 일을 그만두고도 트럭을 팔지 못해 트럭은 주차해두고 대출금만 내고 있는 트럭 구매자도 있었습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에게도 "택배 할 수 있다"며 1년도 더 된 트럭 팔아

한쪽 손을 못 쓰고, 한쪽 다리를 저는 소아마비 장애인 유 모 씨(51)는 지난 2018년 10월 구속된 이 씨의 물류업체에서 대출을 통해 트럭을 샀습니다.

"장애인은 혼자서는 취직이 어려워서 우리 같은 사람이 도와줘야 된다고 했어요."
"장애인도 택배를 할 수 있대요.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물건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유 씨의 말입니다. 업체는 트럭을 사기 전엔 유 씨에게 택배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소개받고 간 곳에선 몸이 성치 않아 택배 일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류업체에 찾아가 따져 물었지만, 계약을 취소하려면 위약금 500만~6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물어물어 스스로 구한 택배 일자리는 아내와 함께 둘이 해봤지만, 너무 힘들어 지금은 그마저도 그만둔 상태로 한 달에 78만 원씩 할부금만 물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 씨가 새 차로 알고 산 트럭은 출고된 지 1년도 더 지난 트럭이었습니다.

■"물류업체, 차량 개조 업체, 캐피탈회사 모두가 한패"

취재 과정에서 만난 트럭 구매자들은 한목소리로 "직접 돈을 빼돌린 물류업체뿐 아니라 돈을 되돌려준 차량 개조업체와 고리로 차량구매를 지원하는 캐피탈업체까지 모두가 한패"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트럭 구매자 몰래 개조비용을 부풀려 받고 그중 일부를 물류업체에 되돌려준 특정 차량 개조 업체의 경우 물류업체의 '돈 빼돌리기'를 적극 도왔습니다.

실질적으로 택배 일을 하기 어려운 고령의 은퇴자나 유 씨 같은 소아마비 장애인에게 9% 이상의 금리로 차량구매를 알선한 캐피탈업체들도 이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도 택배 일을 하지도 못할 사람들이 비싸게 트럭을 사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은퇴 후 일자리를 찾다 택배 트럭을 비싸게 산 뒤 택배 일을 못 하고 할부금만 내고 있는 택배 트럭 구매자은퇴 후 일자리를 찾다 택배 트럭을 비싸게 산 뒤 택배 일을 못 하고 할부금만 내고 있는 택배 트럭 구매자

KBS와 인터뷰한 60대 트럭 구매자는 "최근에도 항의할 일이 있어 물류업체를 다녀왔다. 근데 그날도 4~5명이 면접 보려고 대기하고 있더라. 나도 그랬었는데…"라며 "이 문제가 널리 알려져 제발 우리 같은 트럭 구매자들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4월 24일 9시 뉴스 보도 직후, 관련 "택배 취업 알선을 빌미로 트럭을 비싸게 팔아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검찰 수사는 물론, 이 제보들에 대해서도 후속 취재를 통해 보도할 것이 없는지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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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택배취업사기’ 잠입 취재했던 그 곳…결국 대표 구속
    • 입력 2020-04-27 15:37:51
    • 수정2020-04-27 15:46:07
    취재후·사건후
지난해 말 유명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직접 써봤습니다. 그간 수차례 보도됐던 '택배취업 알선 사기'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택배 취업 알선을 빌미로 대출을 통해 비싸게 트럭을 파는 업체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직접 면접을 보고 정말 사기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40대 무직 이력서에 "면접 보러 오라" 전화 빗발

직업도 없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성실하고 체력이 좋다'고만 썼습니다. 희망 업종은 '대리운전, 택배, 배달'로 골랐습니다. 이력서를 쓴 지 이틀 만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10통 넘게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곳 중 금천구와 성동구의 물류업체 두 곳을 방문했습니다. 두 곳에서 하는 말은 비슷했습니다.

"저희 소속으로 들어가야 물량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차량은 저희가 다 해드려요. 신용으로"
"차값은 2840. 취·등록세 보험 석 달 치 저희가 다 해드려요. 세금 환급받는 거까지 2200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자에게 택배 일자리를 소개하며 트럭을 판매하려는 물류업체 직원이다
두 곳 모두 면접 시작 1시간 만에 신용등급 조회까지 마치고 계약서를 쓰기 직전,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의심스러웠지만 사기라고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업체들에 대한 보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직접 트럭을 사서 일자리를 받아보기 전에는 이들의 거짓말을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보도를 위해 3000만 원짜리 트럭을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구속된 업자 10여 개 업체에 포함된 OOO물류…면접 봤던 그때 그곳

최근 송파구에 위치한 한 물류업체 대표 이 모 씨가 택배취업 알선을 빌미로 비싸게 트럭을 팔았다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최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택배취업 알선’ 빌미로 트럭값 부풀려…피해자 1900명(2020.04.24. KBS 1TV '뉴스9')

그동안은 본인 동의 하에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사기 혐의' 입증이 어려워 트럭 구매자들이 수사기관에 신고해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검찰은 물류업자가 트럭 개조비용 중 일부를 되돌려받으면서 트럭 구매자들 모르게 이득을 챙긴 행위에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류업체 대표가 개조 업체로부터 개조 비용 일부를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트럭 구매자 몰래 돈을 빼돌린 정황을 구체적으로 포착한 겁니다.

이 업체는 송파구뿐 아니라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 성동구 등 서울 각지에 10곳이 넘는 업체를 차려 트럭을 팔아 왔습니다. 10곳이 넘는 업체에서 이들이 트럭을 팔아넘긴 구직자만 약 1,9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자가 방문했던 성동구의 ‘OOO OOO물류’ 사무실에서 찍은 서류철 사진. 대표가 구속된 송파구의 ‘OO물류’라고 적힌 서류철이 많았다.
그리고 올해 초 취재 과정에서 면접 봤던 두 곳 중 성동구의 한 물류업체 대표가 이미 구속된 송파구 물류업체 대표 이 씨와 동일인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범죄수익 600만 원이지만 트럭 구매자 입장에서 손해 보는 건 3,800만 원

구속된 이 씨의 물류업체가 트럭 개조 업체와 짜고 빼돌린 돈은 트럭 한 대당 600만~700만 원입니다. 하지만 트럭 구매자들이 트럭값으로 내야 하는 돈은 9%의 고금리 이자가 포함돼 3,700만~3,800만 원에 달합니다. 피해를 본 트럭 구매자들의 손실액은 이 씨가 빼돌린 돈보다 훨씬 많다는 겁니다.

트럭 구매자들이 비싸게 트럭을 산 뒤 소개받은 택배 일도 소개 당시 했던 얘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파트 위주로 소개해준다든지, 가벼운 것만 나르게 해준다는 얘기는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합니다.

업체 쪽에선 월 500만 원도 벌 수 있고 처음에도 300만 원은 벌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면 차량 할부금, 유류비 등을 빼고 막상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트럭을 사기 전엔 일이 힘들면 언제든 트럭 명의이전을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된 일을 견디지 못해 택배 일을 그만두고도 트럭을 팔지 못해 트럭은 주차해두고 대출금만 내고 있는 트럭 구매자도 있었습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에게도 "택배 할 수 있다"며 1년도 더 된 트럭 팔아

한쪽 손을 못 쓰고, 한쪽 다리를 저는 소아마비 장애인 유 모 씨(51)는 지난 2018년 10월 구속된 이 씨의 물류업체에서 대출을 통해 트럭을 샀습니다.

"장애인은 혼자서는 취직이 어려워서 우리 같은 사람이 도와줘야 된다고 했어요."
"장애인도 택배를 할 수 있대요.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물건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유 씨의 말입니다. 업체는 트럭을 사기 전엔 유 씨에게 택배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소개받고 간 곳에선 몸이 성치 않아 택배 일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류업체에 찾아가 따져 물었지만, 계약을 취소하려면 위약금 500만~6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물어물어 스스로 구한 택배 일자리는 아내와 함께 둘이 해봤지만, 너무 힘들어 지금은 그마저도 그만둔 상태로 한 달에 78만 원씩 할부금만 물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 씨가 새 차로 알고 산 트럭은 출고된 지 1년도 더 지난 트럭이었습니다.

■"물류업체, 차량 개조 업체, 캐피탈회사 모두가 한패"

취재 과정에서 만난 트럭 구매자들은 한목소리로 "직접 돈을 빼돌린 물류업체뿐 아니라 돈을 되돌려준 차량 개조업체와 고리로 차량구매를 지원하는 캐피탈업체까지 모두가 한패"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트럭 구매자 몰래 개조비용을 부풀려 받고 그중 일부를 물류업체에 되돌려준 특정 차량 개조 업체의 경우 물류업체의 '돈 빼돌리기'를 적극 도왔습니다.

실질적으로 택배 일을 하기 어려운 고령의 은퇴자나 유 씨 같은 소아마비 장애인에게 9% 이상의 금리로 차량구매를 알선한 캐피탈업체들도 이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도 택배 일을 하지도 못할 사람들이 비싸게 트럭을 사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은퇴 후 일자리를 찾다 택배 트럭을 비싸게 산 뒤 택배 일을 못 하고 할부금만 내고 있는 택배 트럭 구매자
KBS와 인터뷰한 60대 트럭 구매자는 "최근에도 항의할 일이 있어 물류업체를 다녀왔다. 근데 그날도 4~5명이 면접 보려고 대기하고 있더라. 나도 그랬었는데…"라며 "이 문제가 널리 알려져 제발 우리 같은 트럭 구매자들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4월 24일 9시 뉴스 보도 직후, 관련 "택배 취업 알선을 빌미로 트럭을 비싸게 팔아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검찰 수사는 물론, 이 제보들에 대해서도 후속 취재를 통해 보도할 것이 없는지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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