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갈 길 먼 노동 안전

입력 2020.04.27 (22:35) 수정 2020.04.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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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20 안전 전북, 연중 기획보도 순서입니다.

다음 달 1일, 백 서른 번째 세계 노동절에 앞서 내일(28)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올해는 노동 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이기도 한데요.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노동자들의 일상, 안승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벽 작업을 하던 40대 중국인 노동자가 설비에 몸이 끼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제대로 된 안전 교육 없이 투입된 단기 계약직이었던데다, 현장에는 사고를 막을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공장 안 설비가 까맣게 탔고, 주변엔 시커먼 재와 함께, 깨진 안전모가 바닥에 나뒹굽니다.

인화성 가스가 폭발하면서 시설 공사를 하던 노동자 세 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온몸에 화상을 입은 한 명은 결국 숨졌습니다.

폭발 사고 뒤 한 달 반 만에 다시 찾은 공장.  

한 노동자가 20미터 높이의 대형 텐트 위에 앉아 덮개를 고정합니다.  

텐트에 둘러야 하는 안전줄은 보이지 않고, 기둥에 벨트를 건 채 작업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김상진/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전북지부장 : "다치거나 죽을 일을 예상하고 출근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나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이런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게 현장의 현실입니다."]

맨몸으로 철제 구조물에 매달려 위층으로 올라가는 노동자 주변에는 추락을 막을 장치가 전무하고, 공사 중인 건물 외벽에는 10미터 높이마다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크레인이 작동하는 구역은 출입을 미리 통제하고, 자재가 노동자의 머리 위로 통과하면 안 된다는 원칙도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들이 오가는 도롯가에 고소 작업차를 세우고 일하는 통신 노동자는 늘 불안감을 안고 홀로 전봇대에 오릅니다.  

[김길수/통신 노동자 : "3~4년 전만 해도 2인 1조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인원 감축 때문에…한 명은 작업하고 한 명은 차량 통제하면 되는데, 지금은 혼자 일하기 때문에 너무 부담돼요."]

최근 5년 동안 전북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만8천 여건. 

2천17년부터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에는 4천 건을 넘어섰습니다.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한 해 평균 67명에 달합니다. 

전국적으로는 해마다 2천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유기만/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국장 :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가 대한민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벌이 너무 약하다 보니 기업이 안전장치를 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고 마는 문화가 굳어져서…."]

사고가 빈번하지만, 고용노동부 감독관 한 명이 만 곳에 달하는 사업장을 맡다 보니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운 게 현실.  

사업주에게 과실이 있어도 대부분 과징금 처분에, 금액도 평균 5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고길주/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산재예방지도과장 : "추락과 끼임 사고에 선택과 집중해서 건설 현장은 7백 곳, 제조업은 8백 곳을 선정해 전문 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합동으로 예방 점검할 예정입니다."]

도급 업체에 위험을 떠넘기는 외주화를 막기 위해 '김용균 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 1월부터 시행됐지만, 위험 작업의 범위를 너무 좁게 규정해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입니다. 

전문가들은 위험 업무를 맡긴 뒤 안전 대책에는 손 놓은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고, 높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업환경의학 전문의 : "실제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법 제정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면서, 법 제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프라와 주체들의 활성화가 이뤄지면서 실제 산재 사망 감소 효과를 낳았거든요."]

올해는 고 전태일 열사가 노동 조건 개선을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사른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위험한 일터로부터 노동자를 지키겠다는 정부의 약속. 

[정세균/국무총리/지난 23일 : "산업안전 제도보완과 함께 위험사업장 집중점검 등 필요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특히, 산재 사고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업 분야는 특단의 안전대책을 추진하겠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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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 50주기…갈 길 먼 노동 안전
    • 입력 2020-04-27 22:35:13
    • 수정2020-04-27 22:54:59
    뉴스9(전주)
[앵커] 2020 안전 전북, 연중 기획보도 순서입니다. 다음 달 1일, 백 서른 번째 세계 노동절에 앞서 내일(28)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올해는 노동 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이기도 한데요.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노동자들의 일상, 안승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벽 작업을 하던 40대 중국인 노동자가 설비에 몸이 끼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제대로 된 안전 교육 없이 투입된 단기 계약직이었던데다, 현장에는 사고를 막을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공장 안 설비가 까맣게 탔고, 주변엔 시커먼 재와 함께, 깨진 안전모가 바닥에 나뒹굽니다. 인화성 가스가 폭발하면서 시설 공사를 하던 노동자 세 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온몸에 화상을 입은 한 명은 결국 숨졌습니다. 폭발 사고 뒤 한 달 반 만에 다시 찾은 공장.   한 노동자가 20미터 높이의 대형 텐트 위에 앉아 덮개를 고정합니다.   텐트에 둘러야 하는 안전줄은 보이지 않고, 기둥에 벨트를 건 채 작업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김상진/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전북지부장 : "다치거나 죽을 일을 예상하고 출근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나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이런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게 현장의 현실입니다."] 맨몸으로 철제 구조물에 매달려 위층으로 올라가는 노동자 주변에는 추락을 막을 장치가 전무하고, 공사 중인 건물 외벽에는 10미터 높이마다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크레인이 작동하는 구역은 출입을 미리 통제하고, 자재가 노동자의 머리 위로 통과하면 안 된다는 원칙도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들이 오가는 도롯가에 고소 작업차를 세우고 일하는 통신 노동자는 늘 불안감을 안고 홀로 전봇대에 오릅니다.   [김길수/통신 노동자 : "3~4년 전만 해도 2인 1조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인원 감축 때문에…한 명은 작업하고 한 명은 차량 통제하면 되는데, 지금은 혼자 일하기 때문에 너무 부담돼요."] 최근 5년 동안 전북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만8천 여건.  2천17년부터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에는 4천 건을 넘어섰습니다.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한 해 평균 67명에 달합니다.  전국적으로는 해마다 2천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유기만/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국장 :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가 대한민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벌이 너무 약하다 보니 기업이 안전장치를 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고 마는 문화가 굳어져서…."] 사고가 빈번하지만, 고용노동부 감독관 한 명이 만 곳에 달하는 사업장을 맡다 보니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운 게 현실.   사업주에게 과실이 있어도 대부분 과징금 처분에, 금액도 평균 5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고길주/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산재예방지도과장 : "추락과 끼임 사고에 선택과 집중해서 건설 현장은 7백 곳, 제조업은 8백 곳을 선정해 전문 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합동으로 예방 점검할 예정입니다."] 도급 업체에 위험을 떠넘기는 외주화를 막기 위해 '김용균 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 1월부터 시행됐지만, 위험 작업의 범위를 너무 좁게 규정해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입니다.  전문가들은 위험 업무를 맡긴 뒤 안전 대책에는 손 놓은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고, 높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업환경의학 전문의 : "실제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법 제정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면서, 법 제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프라와 주체들의 활성화가 이뤄지면서 실제 산재 사망 감소 효과를 낳았거든요."] 올해는 고 전태일 열사가 노동 조건 개선을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사른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위험한 일터로부터 노동자를 지키겠다는 정부의 약속.  [정세균/국무총리/지난 23일 : "산업안전 제도보완과 함께 위험사업장 집중점검 등 필요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특히, 산재 사고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업 분야는 특단의 안전대책을 추진하겠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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