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붙잡힌 ‘북미산 여우’…어디에서 왔니?

입력 2020.05.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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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진짜 여우야…? 청주 도심서 '붉은 여우' 발견

"눈앞에 보이는 게 진짜 여우인가 싶었어요. 동물원이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닌데…"

금요한 씨는 아직도 코앞에서 여우를 마주친 장면이 생생합니다.

지난달 29일 일요일 아침, 충북 청주시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사는 소설가 금 씨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바람도 쐴 겸, 운동하러 농구장 코트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금 씨에게 여우가 달려왔습니다. 처음엔 강아지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에서 천천히 살펴보니 여우가 정말 맞았습니다.

금 씨가 다가가자 뒷걸음치던 여우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금세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자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여우를 보며 누군가 잃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는 금 씨. 하지만 끝내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금 씨는 결국 119에 신고했습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그물을 이용해 여우를 잡아보려 했지만, 인근 건물로 숨는 바람에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0시간쯤 뒤, 인근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다시 나타난 여우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에게 생포됐습니다.

불그스레한 털과 까만 발이 특징인 '붉은 여우'였습니다.

충북 청주 서부소방서는 붉은 여우 종 복원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국립공원공단 생물종보전원 중부복원센터에 여우를 인계했습니다.


■ 장장 2주 넘게 걸린 DNA 분석… 결과는 '북미산 여우'?!

국립공원공단 생물종보전원 중부복원센터는 청주에서 발견된 여우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붉은 여우' 일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DNA 분석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2017년부터 중부복원센터는 우리나라 붉은 여우를 차례로 소백산에 방사해, 현재 49마리가 야생에 사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만약 청주에서 발견된 여우가 우리나라 붉은 여우 종이라면, 소백산에 방사된 여우가 성공적으로 터를 잡았다고 가늠할 수 있는 상황. 현재까지 방사한 여우 개체들과 하나하나 DNA 대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2주 넘게 걸린 분석 결과, 붉은 여우 44개 종 가운데 하나인 '북미산 여우'로 확인됐습니다.

환경부는 당시 붙잡혔던 여우의 털 상태가 상당히 깨끗했고, 사람을 많이 경계하진 않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키우다 잃어버렸거나 혹은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맨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붉은 여우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북미산 여우. 하지만 호주에선 설치류 등 토종 포유류 멸종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며 외래 침입종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북미산 여우를 만약 산에 방사할 경우, 바이러스를 옮기거나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가 있다며 동물원이나 보호 시설에 인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사전 절차 없어 확인 안 돼

북미산 여우가 어떻게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걸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지만 알 수 없습니다.

입국 허가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국 전 사전 승인과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종은 현재 300종입니다. 환경부는 2020년 4월 13일 기준 유입주의 생물 300종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데, 흔히 알려진 피라냐를 비롯해 유럽비버, 북미사막토끼 등 '유입 주의' 생물을 국내에 들여올 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승인이 났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위해성 평가를 거친 뒤, 등급에 따라 생태계 교란 생물이나 위해 우려 생물로 지정됩니다. 이렇게 들어온 생물들은 모두 방사가 제한됩니다.

문제는 북미산 여우 처럼 유입 주의 생물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검역만 통과하면 쉽게 국내에 들여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어딘가에서 또 다른 북미산 여우가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외래종 유입으로 생태계 교란 잇따라 '주의'

최근 외래종으로 국내 생태계 교란이 일어난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대부분 관상용이나 판매용으로 들여왔다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유입주의 생물로 지정되지 않아 국내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전남 나주 지석천에서 외래종인 미국 가재 2백여 마리를 포획했습니다. 당시 환경 당국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토종 가재와 먹이 경쟁을 벌이는 등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대적인 포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천적이 없는 데다 수질이 좋지 않은 4급수에서도 살아남는 외래종 붉은 귀 거북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종 민물 거북이인 남생이의 서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퇴치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장성현 과장은 "최근 무분별하게 외래종이 국내에 유입되고 있다"며, "유입주의 생물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외래종 소유나 유통,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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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주에서 붙잡힌 ‘북미산 여우’…어디에서 왔니?
    • 입력 2020-05-01 17:44:47
    취재K
■ 설마 진짜 여우야…? 청주 도심서 '붉은 여우' 발견

"눈앞에 보이는 게 진짜 여우인가 싶었어요. 동물원이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닌데…"

금요한 씨는 아직도 코앞에서 여우를 마주친 장면이 생생합니다.

지난달 29일 일요일 아침, 충북 청주시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사는 소설가 금 씨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바람도 쐴 겸, 운동하러 농구장 코트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금 씨에게 여우가 달려왔습니다. 처음엔 강아지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에서 천천히 살펴보니 여우가 정말 맞았습니다.

금 씨가 다가가자 뒷걸음치던 여우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금세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자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여우를 보며 누군가 잃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는 금 씨. 하지만 끝내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금 씨는 결국 119에 신고했습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그물을 이용해 여우를 잡아보려 했지만, 인근 건물로 숨는 바람에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0시간쯤 뒤, 인근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다시 나타난 여우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에게 생포됐습니다.

불그스레한 털과 까만 발이 특징인 '붉은 여우'였습니다.

충북 청주 서부소방서는 붉은 여우 종 복원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국립공원공단 생물종보전원 중부복원센터에 여우를 인계했습니다.


■ 장장 2주 넘게 걸린 DNA 분석… 결과는 '북미산 여우'?!

국립공원공단 생물종보전원 중부복원센터는 청주에서 발견된 여우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붉은 여우' 일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DNA 분석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2017년부터 중부복원센터는 우리나라 붉은 여우를 차례로 소백산에 방사해, 현재 49마리가 야생에 사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만약 청주에서 발견된 여우가 우리나라 붉은 여우 종이라면, 소백산에 방사된 여우가 성공적으로 터를 잡았다고 가늠할 수 있는 상황. 현재까지 방사한 여우 개체들과 하나하나 DNA 대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2주 넘게 걸린 분석 결과, 붉은 여우 44개 종 가운데 하나인 '북미산 여우'로 확인됐습니다.

환경부는 당시 붙잡혔던 여우의 털 상태가 상당히 깨끗했고, 사람을 많이 경계하진 않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키우다 잃어버렸거나 혹은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맨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붉은 여우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북미산 여우. 하지만 호주에선 설치류 등 토종 포유류 멸종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며 외래 침입종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북미산 여우를 만약 산에 방사할 경우, 바이러스를 옮기거나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가 있다며 동물원이나 보호 시설에 인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사전 절차 없어 확인 안 돼

북미산 여우가 어떻게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걸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지만 알 수 없습니다.

입국 허가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국 전 사전 승인과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종은 현재 300종입니다. 환경부는 2020년 4월 13일 기준 유입주의 생물 300종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데, 흔히 알려진 피라냐를 비롯해 유럽비버, 북미사막토끼 등 '유입 주의' 생물을 국내에 들여올 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승인이 났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위해성 평가를 거친 뒤, 등급에 따라 생태계 교란 생물이나 위해 우려 생물로 지정됩니다. 이렇게 들어온 생물들은 모두 방사가 제한됩니다.

문제는 북미산 여우 처럼 유입 주의 생물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검역만 통과하면 쉽게 국내에 들여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어딘가에서 또 다른 북미산 여우가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외래종 유입으로 생태계 교란 잇따라 '주의'

최근 외래종으로 국내 생태계 교란이 일어난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대부분 관상용이나 판매용으로 들여왔다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유입주의 생물로 지정되지 않아 국내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전남 나주 지석천에서 외래종인 미국 가재 2백여 마리를 포획했습니다. 당시 환경 당국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토종 가재와 먹이 경쟁을 벌이는 등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대적인 포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천적이 없는 데다 수질이 좋지 않은 4급수에서도 살아남는 외래종 붉은 귀 거북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종 민물 거북이인 남생이의 서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퇴치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장성현 과장은 "최근 무분별하게 외래종이 국내에 유입되고 있다"며, "유입주의 생물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외래종 소유나 유통,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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