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김정은, 확인 안 되니 위독하다 치자?…‘라면보도’ 안돼

입력 2020.05.02 (10:11) 수정 2020.05.0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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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소식을 직접 알고 있는 美 당국자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술 뒤 심각한 건강상 위험에 처했다는 기밀을 美 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CNN의 다른 소식통도 미국 정부가 김정은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보고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도 지난 12일 김정은이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 당국, 김정은이 수술 뒤 위중하다는 첩보를 주시 중, CNN, 4월 20일]


지난달 20일(한국 기준 21일) CNN은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했다. 기사에는 "수술 뒤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in grave danger after undergoing a previous surgery)"는 구체적 사유가 적혔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사실도 함께 제시했다. 4월 15일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로,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한 뒤부터 매년 김 주석이 묻힌 태양궁전을 찾아 참배했다.

이 CNN 보도 직후 한국에서 후속 보도가 폭발했다. 초고도비만인 김정은이 왜 심혈관계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심장 외에 더 아픈 곳은 없는지, 김정은 유고 시 누가 정권을 잡을 것인지 등 건강 이상설을 기정사실화 한 보도가 이어졌다. 청와대와 통일부까지 나서 "특이 동향 없다"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신명나게 질러보자? '라면 보도·논평' 폐해 심각


"김 위원장에게 심장병이 발생했다면, 심근경색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의 몸 상태와 병력은 심장병 교과서에서 심근경색증 발생 위험 요인이라고 제시한 것들을 거의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삼중 턱과 목 부위 비만으로 숨 쉬는 기도가 좁아져, 수면 무호흡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 중 돌연사의 최대 원인이며, 심근경색증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한때 발목 관절을 절며 공개 석상에 등장했는데, 이는 통풍 후유증으로 추정됐다."
[심장병도 3대 세습?… 김정은 몸은 '종합병동', 조선일보, 4월 22일]

"만일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최근 북한에서 김여정의 위상이 올라가 포스트 김정은 시대를 이끌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김여정을 떠받칠 세력이 누구인가. 6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이 북한의 기본 정치 세력이다. 이 세력이 김여정과 가까울까 김평일과 가까울까. 김정은이나 김여정은 북한에 뿌리가 없다. 김평일은 이 세력과 함께 남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 종합대학을 같이 갔다. 형·동생 하며 자랐다. 최룡해, 태형철, 오일준 등 북한판 태자당이다. 이 세력이 자택연금 중인 김평일을 옹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평일이 등장한다면 김일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의미다. 핵을 더 강화할 것이고, 건강해서 향후 20~30년 동안 북한 체제가 끄떡없이 갈 수 있다."
[<태구민의 긴급진단> 김정은, '원산 칩거' 맞다면…, 채널A, 4월 24일]


"만일", "~했다면", "~으로 추정된다", "~이라 배제할 수 없다"는 표현이 계속 등장한다. 이런 경우를 '라면 보도', '라면 논평'이라고 하자. '~라면'이라는 전제 없이는 쓸 수 없는 기사고, 할 수 없는 논평이기 때문이다.

'라면 보도'가 늘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과 같이 폐쇄된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외부 언론이 알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제한된 정보라도 일단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을 때는 예측·전망 보도가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는 다르다. 일단 김 위원장이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는 근거가 빈약하다. 또 청와대가 "김 위원장이 현재 지방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 중이고,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할 만한 특이 동향도 없다"고 의혹을 즉각 부인했다. 이런데도 상당수 언론이 별다른 반박 증거 없이 건강 이상설을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는 게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에 출연한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의 평가다.

"청와대가 이상 동향이 없다고 밝혔더라도 언론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다만, 청와대 발표가 어떻게 부족하고, 어떤 점에서 추가 설명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지적했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언론이 근거가 부족한 의혹을 양산만 한다면 김정은 건강 이상설과 '객관적 거리 두기'를 못한 것이다."

J에 고정 출연하는 임자운 변호사는 "조선일보는 김 위원장더러 '종합병동'이라고 하면서도, 바로 아래 다른 기사에서는 '청와대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줄까 봐 난감해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쪽에서 확인되지 않은 건강 이상설을 스스로 확산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건강 이상설이 남북 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유체이탈 화법 아니냐"고 지적했다.

'가짜뉴스 공장' 익명 소식통.."인용시 엄격한 기준 필요"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지구 내에 위치한 김 씨 일가의 전용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특각에 머물며 의료진들의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심혈관계 시술은 평양 김만유병원의 담당 외과의사가 직접 집도했으며, 김만유병원 뿐만 아니라 조선적십자종합병원, 평양의학대학병원 소속의 '1호' 담당 의사들도 이번 일로 모두 평양에서 향산진료소로 불려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 최근 심혈관 시술 받았다… 여전히 특각서 치료 중, 데일리NK, 4월 20일]


CNN에 김정은 건강 이상설을 직접 '확인'해 준 취재원은 '관련 첩보를 직접 알고 있는 미국 당국자(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 한 명이다. 다른 취재원들은 모두 "김정은의 건강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정도로 소극적 답변만 한다.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할 정도라면 단일 취재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취재원이 '익명'이다. CNN이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쓴 근거가 위 데일리NK의 보도다. 데일리NK를 인용하는 것으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이제 CNN의 '익명의 정부 당국자'와 데일리NK의 '북한 내부 소식통', 이 두 명이 진술하는 내용이 됐다.

국내 언론은 데일리NK가 제기한 건강 이상설에는 시큰둥했지만, CNN 보도에는 즉각 반응했다. 이에 대해 홍민 실장은 "국내 보도가 역수입 됐다"고 표현한다.

"일종의 변형된 북풍이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과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8년 영국 텔레그래프(Telegraph)지가 북한의 고위 방첩 요원이 탈북해 김정은이 암살조를 보냈다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때 텔레그래프가 참고한 언론도 데일리NK였다. 역수입된 오보성 기사를 국내 언론들이 받아썼다. ('데일리NK -> 해외 유력지 -> 국내 언론'으로 이어지는) 특정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익명 소식통'발 기사는 다른 언론이 검증할 수 없다. 특히 북한 관련 소식이 그렇다. 그 소식통의 정보라는 게 김정은 건강 이상설처럼 다른 취재원들로부터 확인할 수 없는 정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일성 총맞아 피살'설(조선일보, 1986년), '김정일 금고지기 이수용 처형'설(마이니치신문, 2013년), '김영철 노역, 김혁철 처형'설(조선일보, 2019년) 등 그간 논란이 된 오보들은 모두 익명 소식통에 의존한 기사였다.

임자운 변호사는 "'북한 뉴스는 오보가 없다'는 말이 있다. 다른 언론사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으니 오보인지 아닌지를 알기 어렵다는 취지다. 독자들은 팩트체크가 어려운 북한 뉴스를 기자들이 가장 쓰기 어려운 기사로 인식하길 바란다. 하지만 한국 언론 행태를 보면 가장 쉬운 기사로 여기지 않나 싶다"고 비판했다.

익명 소식통을 악용한 폐해가 크지만, 실명 취재원을 통해서만 북한 보도를 할 수는 없다. 실명 전제로 북한 정권의 내밀한 소식을 털어놓을 소식통은 없기 때문이다. 취재원의 신원이 드러나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 익명 소식통을 인용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 할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2008년 AP 서울 지국장으로 부임해, 2011년 평양 지국을 개설한 이진희 기자는 '북한관련 보도를 위한 제언'이라는 관훈저널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익명 소식통 활용 기준을 제시했다.

"AP통신 데스크들은 모든 기사에서 적어도 2명의 취재원을 인용할 것을 요구하며, 대개는 그 이상 인용하게 된다. 취재원이 익명성을 요청할 때는 더 철저하게 해당 취재원의 신뢰성을 검증한다. 익명을 요구하는 취재원이 제공하는 모든 정보는 다른 독립적인 취재원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 또 기사에서 왜 해당 취재원이 익명성을 요청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북한관련 보도를 위한 제언, 이진희 기자, 관훈저널, 2014년)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J 88회는 <변형된 북풍이 분다, 언론이 말하는 김정은 위중설>, <칠판 저널리즘의 극복, 기사 수정 이력제> 두 가지 주제로 오는 3일(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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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김정은, 확인 안 되니 위독하다 치자?…‘라면보도’ 안돼
    • 입력 2020-05-02 10:11:43
    • 수정2020-05-02 14:15:07
    저널리즘 토크쇼 J
"북한 관련 소식을 직접 알고 있는 美 당국자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술 뒤 심각한 건강상 위험에 처했다는 기밀을 美 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CNN의 다른 소식통도 미국 정부가 김정은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보고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도 지난 12일 김정은이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 당국, 김정은이 수술 뒤 위중하다는 첩보를 주시 중, CNN, 4월 20일]


지난달 20일(한국 기준 21일) CNN은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했다. 기사에는 "수술 뒤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in grave danger after undergoing a previous surgery)"는 구체적 사유가 적혔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사실도 함께 제시했다. 4월 15일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로,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한 뒤부터 매년 김 주석이 묻힌 태양궁전을 찾아 참배했다.

이 CNN 보도 직후 한국에서 후속 보도가 폭발했다. 초고도비만인 김정은이 왜 심혈관계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심장 외에 더 아픈 곳은 없는지, 김정은 유고 시 누가 정권을 잡을 것인지 등 건강 이상설을 기정사실화 한 보도가 이어졌다. 청와대와 통일부까지 나서 "특이 동향 없다"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신명나게 질러보자? '라면 보도·논평' 폐해 심각


"김 위원장에게 심장병이 발생했다면, 심근경색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의 몸 상태와 병력은 심장병 교과서에서 심근경색증 발생 위험 요인이라고 제시한 것들을 거의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삼중 턱과 목 부위 비만으로 숨 쉬는 기도가 좁아져, 수면 무호흡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면 중 돌연사의 최대 원인이며, 심근경색증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한때 발목 관절을 절며 공개 석상에 등장했는데, 이는 통풍 후유증으로 추정됐다."
[심장병도 3대 세습?… 김정은 몸은 '종합병동', 조선일보, 4월 22일]

"만일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최근 북한에서 김여정의 위상이 올라가 포스트 김정은 시대를 이끌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김여정을 떠받칠 세력이 누구인가. 6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이 북한의 기본 정치 세력이다. 이 세력이 김여정과 가까울까 김평일과 가까울까. 김정은이나 김여정은 북한에 뿌리가 없다. 김평일은 이 세력과 함께 남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 종합대학을 같이 갔다. 형·동생 하며 자랐다. 최룡해, 태형철, 오일준 등 북한판 태자당이다. 이 세력이 자택연금 중인 김평일을 옹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평일이 등장한다면 김일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의미다. 핵을 더 강화할 것이고, 건강해서 향후 20~30년 동안 북한 체제가 끄떡없이 갈 수 있다."
[<태구민의 긴급진단> 김정은, '원산 칩거' 맞다면…, 채널A, 4월 24일]


"만일", "~했다면", "~으로 추정된다", "~이라 배제할 수 없다"는 표현이 계속 등장한다. 이런 경우를 '라면 보도', '라면 논평'이라고 하자. '~라면'이라는 전제 없이는 쓸 수 없는 기사고, 할 수 없는 논평이기 때문이다.

'라면 보도'가 늘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과 같이 폐쇄된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외부 언론이 알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제한된 정보라도 일단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을 때는 예측·전망 보도가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는 다르다. 일단 김 위원장이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는 근거가 빈약하다. 또 청와대가 "김 위원장이 현재 지방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 중이고,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할 만한 특이 동향도 없다"고 의혹을 즉각 부인했다. 이런데도 상당수 언론이 별다른 반박 증거 없이 건강 이상설을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는 게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에 출연한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의 평가다.

"청와대가 이상 동향이 없다고 밝혔더라도 언론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다만, 청와대 발표가 어떻게 부족하고, 어떤 점에서 추가 설명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지적했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언론이 근거가 부족한 의혹을 양산만 한다면 김정은 건강 이상설과 '객관적 거리 두기'를 못한 것이다."

J에 고정 출연하는 임자운 변호사는 "조선일보는 김 위원장더러 '종합병동'이라고 하면서도, 바로 아래 다른 기사에서는 '청와대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줄까 봐 난감해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쪽에서 확인되지 않은 건강 이상설을 스스로 확산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건강 이상설이 남북 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유체이탈 화법 아니냐"고 지적했다.

'가짜뉴스 공장' 익명 소식통.."인용시 엄격한 기준 필요"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지구 내에 위치한 김 씨 일가의 전용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특각에 머물며 의료진들의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심혈관계 시술은 평양 김만유병원의 담당 외과의사가 직접 집도했으며, 김만유병원 뿐만 아니라 조선적십자종합병원, 평양의학대학병원 소속의 '1호' 담당 의사들도 이번 일로 모두 평양에서 향산진료소로 불려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 최근 심혈관 시술 받았다… 여전히 특각서 치료 중, 데일리NK, 4월 20일]


CNN에 김정은 건강 이상설을 직접 '확인'해 준 취재원은 '관련 첩보를 직접 알고 있는 미국 당국자(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 한 명이다. 다른 취재원들은 모두 "김정은의 건강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정도로 소극적 답변만 한다.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할 정도라면 단일 취재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취재원이 '익명'이다. CNN이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쓴 근거가 위 데일리NK의 보도다. 데일리NK를 인용하는 것으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이제 CNN의 '익명의 정부 당국자'와 데일리NK의 '북한 내부 소식통', 이 두 명이 진술하는 내용이 됐다.

국내 언론은 데일리NK가 제기한 건강 이상설에는 시큰둥했지만, CNN 보도에는 즉각 반응했다. 이에 대해 홍민 실장은 "국내 보도가 역수입 됐다"고 표현한다.

"일종의 변형된 북풍이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과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8년 영국 텔레그래프(Telegraph)지가 북한의 고위 방첩 요원이 탈북해 김정은이 암살조를 보냈다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때 텔레그래프가 참고한 언론도 데일리NK였다. 역수입된 오보성 기사를 국내 언론들이 받아썼다. ('데일리NK -> 해외 유력지 -> 국내 언론'으로 이어지는) 특정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익명 소식통'발 기사는 다른 언론이 검증할 수 없다. 특히 북한 관련 소식이 그렇다. 그 소식통의 정보라는 게 김정은 건강 이상설처럼 다른 취재원들로부터 확인할 수 없는 정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일성 총맞아 피살'설(조선일보, 1986년), '김정일 금고지기 이수용 처형'설(마이니치신문, 2013년), '김영철 노역, 김혁철 처형'설(조선일보, 2019년) 등 그간 논란이 된 오보들은 모두 익명 소식통에 의존한 기사였다.

임자운 변호사는 "'북한 뉴스는 오보가 없다'는 말이 있다. 다른 언론사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으니 오보인지 아닌지를 알기 어렵다는 취지다. 독자들은 팩트체크가 어려운 북한 뉴스를 기자들이 가장 쓰기 어려운 기사로 인식하길 바란다. 하지만 한국 언론 행태를 보면 가장 쉬운 기사로 여기지 않나 싶다"고 비판했다.

익명 소식통을 악용한 폐해가 크지만, 실명 취재원을 통해서만 북한 보도를 할 수는 없다. 실명 전제로 북한 정권의 내밀한 소식을 털어놓을 소식통은 없기 때문이다. 취재원의 신원이 드러나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 익명 소식통을 인용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 할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2008년 AP 서울 지국장으로 부임해, 2011년 평양 지국을 개설한 이진희 기자는 '북한관련 보도를 위한 제언'이라는 관훈저널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익명 소식통 활용 기준을 제시했다.

"AP통신 데스크들은 모든 기사에서 적어도 2명의 취재원을 인용할 것을 요구하며, 대개는 그 이상 인용하게 된다. 취재원이 익명성을 요청할 때는 더 철저하게 해당 취재원의 신뢰성을 검증한다. 익명을 요구하는 취재원이 제공하는 모든 정보는 다른 독립적인 취재원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 또 기사에서 왜 해당 취재원이 익명성을 요청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북한관련 보도를 위한 제언, 이진희 기자, 관훈저널, 2014년)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J 88회는 <변형된 북풍이 분다, 언론이 말하는 김정은 위중설>, <칠판 저널리즘의 극복, 기사 수정 이력제> 두 가지 주제로 오는 3일(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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